예레미야 강해 제242강(렘47: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1월 19일(토)
여호와께서는 주전 609년에는 바로 느고의 군대를 불러서 블레셋을 치시고 주전 605년에는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를 불러서 또 블레셋을 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렘47:1-7)
여호와께서는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 왕국에 참여한 이스라엘 10지파의 흔적을 지우고 계십니다(왕하17:5-6, 21-23). 그리고 주전 586년에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 왕국에 참여한 2지파와 레위인들을 대부분 바벨론 포로가 되게 하고 일부만 애굽에서 난민생활을 하게 만드십니다(렘39:1-10, 43:5-7, 왕하25:1-12).
그렇게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았던 이스라엘 12지파를 처벌하신 다음에는 애굽으로 피난한 유대인들을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가서 아예 애굽까지 정벌을 하도록 만들고 계십니다(렘44:1-14, 46:13-19). 그 다음에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블레셋 해변국가를 바로 느고의 군대와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처벌하시는 예언의 내용을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십니다(렘47:1-7).
그와 같이 여호와의 역사심판은 선민들에 대한 처벌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숨가쁘게 그 주변으로 그리고 자꾸만 이방 땅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동심원적으로 여호와의 역사적인 심판이 땅끝까지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선민과 이방인 구별할 필요가 없이 모두가 한통속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거나 자신들의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지를 아니하고 있으며 그 대신에 제멋대로 우상을 만들어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우상이란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사람들은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소원을 가장 잘 들어주는 편리한 도구로서의 신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환언하면, 자신의 일방적인 소원만을 들어주는 자신만을 위한 그러한 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에 따라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의 성취에 적합한 신이 결코 아닙니다.
(2) 둘째, 인간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우선 자신부터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세상적인 이기주의에 입각하여 소원성취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이기적 소원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는 그러한 편리한 신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와 같은 그러한 능력이 많은 종과 같은 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종이 될 수가 없으므로 자연히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만을 위한 신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이며 인간들이 만든 자신들의 수호신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방인들의 우상문화가 불행하게도 선민들의 여호와신앙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선민들의 참된 여호와신앙이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을 줄 수 있도록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만 하는데 그것이 거꾸로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한 선민들의 영적인 타락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선민들의 여호와 섬김에 있어서도 우상문화가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겉으로는 여호와를 신정국가의 주인으로 섬기는 척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전부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심과 소원을 손쉽게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이 지은 모든 죄를 아주 편리하게 가축의 제물만 받고서 여호와께서는 그대로 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2) 둘째, 창조주의 축복과 구원은 항상 선민들 자신들에게만 베풀어 주시고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주변의 이방민족들에게는 여호와께서 분노하시고 그 옛날 애굽에 내리신 재앙과 같이 그렇게 처벌을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마5:43).
(3) 셋째, 그러한 우상문화에 젖어 있으므로 감히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우상의 하나로 삼고자 합니다. 예컨대, 선민들의 세속적이고도 이기적인 소원을 들어주면 하나님으로 계속 섬기고 그렇지 아니하면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버리겠다고 하는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선민들입니다(출17:7).
(4) 넷째,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이세상을 창조하셨지만 그 다음에는 그 모든 경영권을 선민인 자신들에게 위임하시고 이제는 일체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아니하고 계신다고 하는 편리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종인 인간들이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 제 마음대로 경영을 하겠다고 하는 오만방자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도저히 선민의 자리에 그대로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방인들은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편리한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선민들은 창조주 여호와를 사람들이 만든 우상처럼 취급하고 있기에 이 세상에서는 창조주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따라서 약육강식의 철칙만이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선민의 나라에서 시작이 된 여호와의 역사심판이 온 세상 모든 족속에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두드러진 심판의 모습이 지중해의 해양민족이면서 가나안 바닷가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블레셋 도시국가의 멸망으로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렘47:1-7). 블레셋 도시국가들은 이웃인 이스라엘 지파들을 끊임없이 침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민의 나라를 처벌하시는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 블레셋 도시국가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그에 따라, 주전 609년에는 바로 느고에 의하여 해변의 블레셋의 도시국가들이 절단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4년 후에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블레셋의 도시국가들이 전부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렘47: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렘47:1); 여기서 ‘가사’는 블레셋 5도시국가 가운데 해변 쪽으로 가장 남쪽에 있습니다. 그곳을 먼저 치고서 북상을 하게 되는 애굽의 육군을 지휘하고 있는 바로가 느고2세입니다. 그때는 성군 요시야가 바로 느고2세에 의하여 죽게 되는 해 곧 주전 609년입니다(왕하23:29). 그러므로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주전 609년 이전에 받은 것입니다(렘47:1). 그때 벌써 블레셋의 멸망에 관하여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시고 그 내용을 동족들에게 말해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일이 훗날 발생하게 되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사람들이 창조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며 사람들의 역사를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어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렘47:2);
1) ‘가사’가 블레셋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이므로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가 주전 609년에 해변길을 따라 북상을 할 때에 가장 먼저 가사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반대의 사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군의 침략의 물결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덮치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렘47:2a). 그것은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느부갓네살이 갈대아 군대를 지휘하여 갈그미스의 애굽 군대를 격파하고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바로의 군대를 전부 남쪽으로 몰아낼 때에 발생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때 애굽의 패잔병들이 빨리 하(下) 이집트로 후퇴하기 위하여 블레셋의 해변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 뒤를 갈대아 군대의 기마대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갈대아 군대는 그냥 블레셋을 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마치 훗날의 몽고의 기마대처럼 통과하는 모든 성읍들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블레셋의 도시국가들은 전부 불길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거구인 블레셋의 장정들이 갈대아 군대에게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블레셋 땅에는 부녀자들과 노약자들의 부르짖음만이 하늘에 사무치고 있습니다(렘47:2b). 블레셋이 그렇게 일찍 망했기에 그 다음부터는 애굽의 군대나 갈대아 군대가 손쉽게 유다 왕국에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군마의 발굽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렘47:3-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군마의 발굽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렘47:3);
1) 블레셋은 가나안의 서남쪽 해변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5개의 도시국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지중해 해안에는 3개의 도시국가가 있는데 그 이름이 북에서부터 남으로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입니다. 그리고 내륙으로는 아스돗의 동쪽에 에글론이 있고 아스글론의 동쪽에 가드가 있습니다. 해변이므로 땅이 비옥하지만 특히 가사의 동쪽에는 한국의 호남평야처럼 비옥한 곡창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이름이 창세기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그랄 평야’입니다(창20:1-2, 26:1, 6, 12). 그 곡창지대는 5도시국가의 연맹왕인 ‘아비멜렉’의 차지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비’는 아버지이고 ‘멜렉’은 왕입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이란 칭호는 5도시국가의 왕들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2) 그런데 주전 609년에는 바로 느고의 육군이 블레셋의 해변도로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예 가사와 아스글론을 정벌하고서 지나가고 있는데 그 길을 감히 블레셋의 아버지인 ‘아비멜렉’ 왕이 저지하지를 못합니다. 단지 내륙의 도시국가들을 보호하고자 수성만 철저하게 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주전 605년에는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지휘하는 갈대아 군대가 블레셋을 덮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4년전 바로 느고의 공격과 다릅니다. 그들은 블레셋의 성읍을 모조리 정벌하고 모두 불태워버립니다. 완전한 블레셋의 멸망을 초래하고 맙니다. 연맹왕 아비멜렉은 상대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와 같은 블레셋의 완전멸망이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임하게 될 것임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군마의 발굽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렘47:3)라고 여호와의 예언으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렘47:4);
1) 여호와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를 사용하여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물론이고 반(反) 바벨론 동맹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왕국들을 정복하게 할 것이라고 벌써 그 동맹의 결성 당시에 말씀하십니다(렘27:3-8). 그 동맹에 참여한 왕국은 두로와 시돈, 모압과 암몬, 에돔과 유다 등입니다. 그리고 그 동맹의 수장이 애굽의 바로입니다.
2)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그 동맹에 참여하지 아니한 블레셋은 물론이고 지중해에 있는 섬 ‘갑돌’까지 갈대아 군대를 보내어 정복하게 되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렘47:4). 어째서 그들까지 멸망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선민과 이방인들이 하나같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쫓아 온갖 죄악을 범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선민의 나라에서부터 차례로 이방나라까지 전부 멸망시켜버릴 계획이라고 벌써 선포하십니다”(렘25:29).
3) 그 순서에 입각하여 ①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주전 586년에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했고 ②그 이전에 주전 605년에는 블레셋이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③반 바벨론 동맹에 가입한 가나안 일대의 5왕국이 모두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합니다. ④그 다음에는 주전 582년에 애굽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국토의 노른자위를 전부 점령 당하고 맙니다.
4) 그 정도만이 아닙니다.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가 두로와 블레셋을 지원하고 있던 지중해의 큰 섬 2군데를 정복합니다. 그 이름이 하나는 ‘깃딤’이고 또 하나는 ‘갑돌’입니다. 여기서 ‘깃딤’은 훗날 ‘구브로’라고도 불리게 되는 ‘키프러스’ 섬입니다. 그곳에는 유럽인종과 유대인들이 살고 있으며 두로의 식민지입니다(행4:36). 그리고 ‘갑돌’은 그리스 남단 100km지점에 있는 큰 섬 ‘크레타’를 말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블레셋 족속이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창10:14, 렘47:4). 그곳에서 블레셋이 가나안을 침입하여 비옥한 초생달 지역인 서남해안을 차지한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신바벨론재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아예 후환이 없도록 ‘깃딤’과 ‘갑돌’에 침입하여 그곳을 모조리 초토화시켜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두로’에 대해서는 나중에 무역항으로 다시 사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바벨론은 자체 해군력이 약하여 지중해의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페니키아 왕국을 다시 재건하여 그 일을 맡도록 한 것입니다.
셋째로,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렘47:5-7);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렘47:5); 블레셋의 해변길에는 3개의 도시국가가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북쪽에서부터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입니다. 그곳을 먼저 점령하게 되는 세력이 다음과 같이 애굽의 바로의 군대입니다;
1) 애굽의 제26왕조의 영웅왕인 프삼메티쿠스1세가 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왕인 느고1세가 앗수르제국의 황제 아슈르바니팔을 주군으로 섬기기로 맹세하고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 주전 664년에 하(下) 이집트 사이스에서 제26왕조를 세운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프삼메티쿠스1세는 자신의 힘으로 애굽을 통일하고 나아가서 시리아 땅으로 진출하고 싶어합니다. 그의 통치 후반기에 좋은 기회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앗수르에서 갑자기 내분이 발생하고 제국의 힘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따라서 프삼메티쿠스1세는 리비아에 들어와 있는 해양민족들을 용병으로 삼고 상(上) 이집트와 누비아 땅을 정벌합니다. 그리고 주전 612년에 앗수르가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공격으로 수도인 니느웨를 빼앗기는 것을 보고서는 과감하게 시리아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는 앗수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땅에 들어가고자 해군력을 가지고 블레셋의 아스돗으로 상륙을 하여 그곳을 거의 점령합니다. 그러나 블레셋의 연맹왕인 아비멜렉이 애굽의 군대를 막아 서고 있습니다.
3) 블레셋 5도시국가의 연맹왕인 아비멜렉이 나머지 4개 도시국가의 군사를 모아 적극 방어에 나선 것입니다. 도저히 해군력만으로는 블레셋 정벌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애굽의 바로인 프삼메티쿠스1세가 본국으로 돌아오고 맙니다. 하지만 주전 609년에 부왕 프삼메티쿠스1세가 서거하자 그의 아들 바로 느고2세는 해군이 아니라 육군을 끌고서 시리아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는 가나안의 해변길을 따라 북상을 하면서 가사와 아스글론을 정벌합니다(렘67:5a).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이 전군을 동원하여 전투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바로 느고의 군대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지를 못합니다.
4) 애굽의 군대가 워낙 대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느고의 군대가 내륙으로 쳐들어오는 것만 저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와 같은 전쟁의 양상을 여호와께서는 진작에 다음과 같이 예언하십니다;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렘67:5a). 참고로, 아비멜렉의 직할지가 블레셋의 곡창지대인 ‘그랄 평지’인데 아스글론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느고는 일단 시리아로 들어가는 길이 바빠서 해변길만 확보한 다음에 바로 북상을 하고 맙니다. 물론 므깃도에서는 유다 왕 요시야의 군대를 물리치고 그를 화살받이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왕하23:29).
5) 그런데 블레셋 족속은 본래 ‘갑돌’ 섬에서 아프리카의 해양족속과 유럽의 해양족속이 혼혈을 이루어 탄생한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잡종강세로 체구가 크고 용맹합니다(민13:32, 삼상17:4). 그들은 전투에서 지면 반드시 설욕을 하는 끈질긴 족속입니다. 그러한 성격의 민족이므로 블레셋은 바로 느고에게 해변길을 빼앗기고나서 절치부심을 합니다. 스스로 자해를 하면서 설욕을 하고자 칼을 갈고 있습니다;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렘47:5b). 그러나 그것이 역사적으로 그들의 희생만 초래할 뿐이라고 여호와께서 경고하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2)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렘47:6); 복수를 하겠다고 칼을 갈게 되면 과연 설욕이 될까요? 복수는 또 복수를 낳으며 쉬지를 않고 피의 악순환만 초래합니다(렘47:6b).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문제를 칼로써 해결하고자 하시지 않습니다(마26:52). 그렇지만 세상사람들이 칼로써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면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강대국을 소위 ‘여호와의 칼’로 동원하여 분쇄하십니다(렘47:6a). 따라서 성도는 원수 갚는 것을 주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수행하는데 전념을 해야 합니다(롬12:9a).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롬12:9b).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는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렘47:6c)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렘47:7);
1) 바로인 프삼메티쿠스1세가 지휘하는 애굽의 해군에게 아스돗이 무너진 것을 블레셋 족속들이 잊지를 못하고 설욕을 하고자 칼을 갈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주전 609년에 새로운 애굽의 바로인 느고2세가 대군을 이끌고 해변길로 북상을 하게 하십니다. 애굽의 육군은 블레셋의 해변국가인 가사와 아스글론을 차례로 격파합니다(렘47:7). 이번에는 아비멜렉도 적극적으로 바로 느고의 군대를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느고가 마음만 먹으면 그 대군을 가지고 블레셋의 내륙의 도시국가까지 모조리 전멸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로 느고가 육군이 블레셋의 해변길을 통과하여 사마리아 지역의 해변길로 북상하는 것을 주의 깊게 지켜 보고만 있습니다.
2) 그러나 여호와의 명령과 보응은 참으로 두렵습니다. 블레셋 족속이 자신들의 힘 만을 믿고서 이웃나라를 계속 침략하고 우상을 심하게 섬긴 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과 이웃하여 살면서도 전혀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늘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삼상4:2-11, 17:1-11). 따라서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시리아의 애굽 군대를 추격하여 남하를 할 때에 아예 블레셋의 도시국가를 전부 멸망시키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렘47:7)라고 벌써 예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민들의 여호와신앙이 우상문화에 물들어 타락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세속적이면서도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서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다. 마치 천박한 장사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주전 586년에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같이 이 세상과 자신들의 인생의 주인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들 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차례로 여호와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렘25:29). 예레미야는 유다, 애굽, 블레셋 순서로 그들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블레셋의 멸망이 먼저입니다.
구체적으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멸망이 주전 722년으로 가장 먼저입니다. 그리고 주전 605년에 블레셋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주전 586년에 유다 왕국이 망하고 4년 후에 애굽이 갈대아 군대의 침입으로 줄초상이 나고 있습니다.
어쨌든 세상 끝까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여 성도로서의 새로운 영적인 삶이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렘31:31-34).
‘새 언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행운아들입니다. 생전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서 성령님을 모시고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종말이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보다 개인적으로 더 기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 은혜를 깊이 감사하면서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신바벨론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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