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2. 5. 12:14

상규와 아끼꼬15(손진길 소설)

 

임상규아끼꼬는 자신들의 결혼식 날짜를 이듬해 2008322일 토요일로 잡는다. 그 다음날이 부활절 주일날이므로 321일 금요일부터 부활절 휴가가 실시된다. 따라서 휴가기간에 결혼식 날짜를 잡는 것이 여러 친지들이 참석하기에 편리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때쯤 되면 200710월 중순에 태어난 딸 임상아5개월이 되므로 품에 안고서 이동을 할 수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그런데 미리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 두가지나 있다;

하나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시집의 식구들이 참석할 수 있어야 하고 미국에 살고 있는 친정의 식구들도 참석하기에 편한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또 하나는, 내년 부활절 휴가기간에 친지들이 결혼식 참석을 하자면 그들에게 미리 결혼식 날짜를 통지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결혼식 참석이 가능하도록 비행기 좌석을 서둘러서 예약할 수가 있다. 실제로 서양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일년 중 가장 큰 휴가가 크리스마스 휴가와 부활절 휴가이다. 그때 누구나 장거리 여행에 나서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여행계획에 반영할 수 있도록 아주 일찍 사전통지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현실을 감안하여 임상규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가족과 친구에게 결혼식 장소와 날짜를 200711월 중순에 벌써 통보한다. 아끼꼬도 미국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통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두사람이 결정하고 있는 결혼식 장소는 하와이 호놀룰루이다. 그들이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미국과 뉴질랜드의 중간지점이라는 사실과 그곳에서 아끼꼬 집안의 이민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익히 알고 있는 임상규가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다.

북반구에 속하고 있는 하와이 호놀룰루는 나름대로 아열대성 기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3월 하순의 날씨가 환상적으로 좋다. 그 시기가 북반구에서는 대체로 봄이고 남반구에서는 가을이지만 그때쯤 하와이의 일기는 초여름의 날씨처럼 아주 좋은 것이다;

그런데 아끼꼬의 조모인 케이트 맥도웰의 친정이 본래 하와이 호놀룰루에 거주하면서 원주민에게 선교를 열심히 했다. 그 때문에 케이트의 오빠네 자손들이 아직도 호놀룰루에서 선교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아끼꼬의 조모 케이트가 친정 오빠의 손자인 제이콥 목사에게 요청하여 그곳 현지교회에서 결혼식을 간단하게 거행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따라서 2008322일 토요일 11시에 호놀룰루에 있는 작은 선교교회에서 임상규아끼꼬의 결혼식이 있게 된다;

그날 참석한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가 아니하다; 미국에서 온 사람이 아끼꼬의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남동생인 브라이언이다. 뉴질랜드에서 온 사람이 임상규의 부모님과 남동생 임상민 그리고 절친의 대표인 정기수이다. 정기수는 개인적으로 건축 설계사이므로 아무래도 시간을 내기가 쉬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현지 호놀룰루에서는 아끼꼬의 친척인 제이콥 목사 부부가 참석을 했다. 특히 제이콥 목사는 임상규와 아끼꼬의 결혼식을 주례하고 정식으로 결혼 공증인(marriage celebrant)이 되기도 한다. 그날 아기인 임상아는 할머니 김영숙의 품에서 잘 놀고 있다. 제법 자란 5개월짜리 손녀 상아를 품에 안고서 조모 김영숙이 너무나 행복해한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남편 임호준이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여보, 당신은 상민이의 아들보다 상규의 딸이 더 귀여운 모양입니다. 그거 자식을 편애하는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김영숙이 정색을 하고서 대답하다가 끝내는 웃고 만다; “그것이 아니지요. 상민이의 자식은 내가 매일 보고 돌보아 주었지만 상규의 자식은 오늘 처음 보았으니 그만큼 애정을 듬뿍 주어야지요. 그리고 상규아끼꼬는 비혼(非婚)을 주장하다가 이제서야 자식을 생산하였으니 두배로 축하를 해주어야 마땅하지요, 호호호… “.

그날 단출하게 결혼식을 끝내고 교회에 딸린 야외 정원(garden)에서 캐이터링 음식(catering foods)으로 모두들 점심식사를 한다;

 그 다음에 미리 준비한 버스로 일동이 이동을 하는데 그들의 목적지가 호놀룰루 교외에 있는 사탕수수 농장과 파인애플 농장이다.

상규아끼꼬가 어째서 그러한 일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20세기 전반기에 그곳 농장에서 그들의 조상인 일본인과 조선인 노무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손들이 오늘날은 미국의 오래된 이민자로서 대를 이어가며 잘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조상은 그렇게 비참한 육체 노동자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아니하고 더욱 미국사회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 후손들의 사명이다. 그리고 먼 훗날 조국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그들이 당당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날 임상규아끼꼬는 그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을 일일이 설명하지 아니하고 그저 버스편으로 한바퀴 현지를 시찰하면서 친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사람은 내심 소원하고 있다; “이 사진을 함께 찍은 사람들은 언제나 그 옛날 자신들의 이민의 뿌리를 잊지 않고 그 의미를 다시금 상기해주었으면 좋겠다!... “;

결혼식을 마치고 호주 시드니로 돌아오자 임상규아끼꼬는 다시 바빠진다. 상규는 로펌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아끼꼬는 계속 육아에 힘을 쓰다가 3년후에는 하이스쿨에서 다시 일본어선생으로 근무하게 되는 것이다.

시드니에서 상규아끼꼬에게는 시간이 참으로 빨리 흘러가고 있다. 4년의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20124월이 되고 있다;

 47일 토요일에 상규가 모처럼 부활절 휴가를 맞이하여 집에서 처자식과 쉬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자신의 집 랜드라인(land line)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많지가 아니한데 그것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상규가 얼른 집전화 수화기를 집어 든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서 상규의 말이 다음과 같다; “헬로우, 여보세요?... ”. 영어를 사용하는가 아니면 한국말을 사용하는가?...

그런데 다음순간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한국말이다; “임상규씨 집 전화입니까? 저는 상규의 친구 김호성입니다. 오늘 시드니에 도착했어요. 상규와 통화할 수가 있을까요?... “.

그 말을 듣자 상규는 너무나 반갑다. 따라서 얼른 대답한다; “호성아, 나 상규야!... 그래 시드니에 잘 왔다. 지금 시드니 어디에 있니?... 내가 차를 가지고 그곳으로 갈까?... “. 그 말에 김호성이 껄껄 웃는다.

그 다음에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집 주소를 내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너의 집 근처이다. 하하하, 내가 공항에서 벌써 이곳으로 이동을 했지. 그래 여기 파라마타(parramatta) 주소가 아직도 유효한 것이지?... “.

그 말에 상규가 자신의 집 주소를 빨리 말한다. 그 소리를 듣자 마자 현관에서 벨이 울리고 있다. 상규가 깜짝 놀라서 도어 뷰(door view)로 내다보니 김호성이다. 얼른 현관문을 열고서 상규가 그의 짐을 안으로 옮긴다. 그리고 김호성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자 얼른 그를 껴안는다;

잠시후에 두사람이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때 그 옆에 서서 두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아끼꼬가 배시시 웃으면서 김호성에게 말한다; “호성이는 옛날 모습 그대로이네!... 어떻게 전문의가 되었다고 하더니 오클랜드에서 지내기가 좋은 모양이지. 집안식구들도 모두 안녕들 하시고?... “.

그 말을 듣자 김호성이 깍듯이 아끼꼬에게 대답한다; “아끼꼬 센세이, 시바라꾸데스네. 오겐끼데스까? 와따꾸시노 가조꾸와 젠부 요로시이데스!... “. 김호성이 학창시절에 아끼꼬 선생을 학교 일본어선생으로 처음 만났으니 그때 생각이 난 모양이다.

그 점을 생각하고서 아끼꼬가 웃으면서 답변한다; “하이, 소오데스까? 소레와 이이데스네. 데와 도오시떼 시드니에 기마시다까?... “. 이번에는 김호성이 한국말로 대답한다; “나는 오클랜드에서 암전문의로 벌써 2년간 일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시드니에서 모처럼 자리가 났기에 한번 옮겨서 일해보려고 왔어요!... “.

그 말을 듣자 임상규가 묻는다; “언제 인터뷰 날짜가 잡혔는데? 그리고 오케이가 되면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시드니로 이주할 예정인가? 그렇게 되면 나는 좋겠지만!... “. 그 말에 김호성이 얼른 대답한다; “아마 오케이가 될 것이야. 나는 확정이 되면 바로 가족을 데리고 이사할 생각이야!… ”.

그때가 동갑내기인 임상규김호성이 한국나이로 35살이다;

 그리고 상규의 아내인 아끼꼬40살이다. 임상아는 한국나이로 5살이다;

 나중에 그들의 이웃에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되는 김호성 부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 이름이 김영호인데 벌써 8살이다.

시드니에서 이웃하여 정답게 살게 되는 임상규의 가정과 김호성의 가정에서는 장차 어떠한 좋은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