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2. 4. 03:13

상규와 아끼꼬14(손진길 소설)

 

4. 호주 시드니에서의 새로운 삶

 

아끼꼬는 뉴욕에 살고 있는 조부 찰스(Charles)의 집과 부친 피터(Peter)의 집을 서로 비교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조부인 찰스는 조모인 케이트 맥도웰(Kate McDowell)을 자신의 은인인 천사로 여기고 그는 아예 미국 성씨인 맥도웰(McDwell) 가문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조부 찰스는 그 직업이 하이스쿨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따라서 그는 오랜 세월 하이스쿨에서 미국의 역사와 더불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질서 곧 Pax Americana의 세계사를 가르친 것이다;

요컨대, 조부인 찰스는 백인인 아내 케이트 맥도웰과 함께 살아오면서 자신도 백인 가문 ‘맥도웰(McDowell)의 일원이라고 하는 의식이 강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가 바로 자신의 역사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와 달리 컬럼비아대학에서 동남아와 미국과의 관계를 국제정치학으로 가르치고 있는 부친 피터 하야시 맥도웰은 그것이 아니다. 피터는 맥도웰의 가문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하야시()라고 하는 일본인의 뿌리의식이 더 강한 것이다.

피터(Peter)는 미군이 되어 월남전에 참전하여 막강한 미국의 군대가 약소국 월맹의 베트콩을 결코 굴복시키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목격하였다. 그 이유가 바로 다()민족 사회이며 이민국가인 미국의 군대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애국 애족의식의 한계인 것이다. 한마디로, 미군은 직업적인 용병으로 볼 수가 있다;

그와 달리 공산주의 집단지도체제가 이끌고 있는 월맹의 군대 베트콩은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사명감이 투철하다. 요컨대,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민족의 통일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역사적인 사명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피터는 그 처절한 투쟁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와 같은 체험을 가진 피터는 컬럼비아대학에서 비교정치론을 전공하면서 미국의 정치와 더불어 자신의 조국인 일본의 정치문화를 함께 공부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유구한 일본의 정치와 역사 가운데 배울 점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피터는 자신의 연구범위를 더 넓힌 것이다. 그는 일본인의 후예이기에 애정을 가지고 그 옛날 ‘대동아공영권(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에 속했던 동남아 여러 나라와 미국과의 관계를 계속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피터는 그의 아내가 헌신적인 일본계 미국인 히로꼬 윌슨이다. 그러므로 피터와 히로꼬의 가정에서는 영어와 더불어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이 은연중에 자녀인 아끼꼬브라이언에게 조국에 대한 애정과 뿌리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피터와 히로꼬의 딸인 아끼꼬에게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부모님의 영향이 조부모님의 영향보다 더욱 크다. 그렇지만 자신이 미국인인지 아니면 일본인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야만 한다. 따라서 그녀는 대학에서 일본어와 일본의 역사 및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아끼꼬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일본의 역사에 있어서 다른 나라와 다른 색다른 요소가 두가지 들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1868년 명치유신 이전에 오래 존재하고 있던 무신정권과 사무라이 계급의 존재이다. 또 하나는, 일본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죠오닝 계급의 존재이다.

일본의 천황가 대신에 쇼오궁바쿠후를 통하여 오랜 세월 천하를 다스렸다. 무신정권은 수만명에 이르는 사무라이 계급에게 반항하는 일반백성에 대하여 현장 참살을 시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그 때문에 일반백성들은 무조건 사무라이의 칼 앞에서는 복종하는 얼굴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본심과는 전혀 다른 이중적인 가면 곧 다떼마에( 建前, たてまえ)이다. 그리고 일본의 백성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최고지도자인 쇼오궁에 대해서는 무조건 존경과 충성을 바치는 정치문화를 일종의 동조성향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와 같은 일본사람의 특이한 정치문화는 그 존경과 충성의 대상이 역사적으로 쇼오궁에서 명치원로, 그 다음에는 천황에서 미국대통령으로 옮겨가는 특색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천하를 제패한 승자가 바로 그들의 영웅이며 최고지도자이다. 그러므로 일본계 미국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통령이 다스리고 있는 미국인으로 뿌리내리는 것이 정치문화적으로는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죠오닝 계급이 일본의 역사에서는 찬란한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를 존경하고 최고기술을 가진 대가인 장인(匠人)을 스승으로 삼고서 우러러보고 있다;

 그와 같은 죠오닝의 의식구조가 일본인에게 내면화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그 재주가 남다른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성공의 비결이다.  

아끼꼬는 미국의 대학에서 일본어와 일본의 문학 그리고 일본의 역사를 모두  공부한 다음에는 제3국에 가서 일본어선생을 하면서 일본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져보고자 한다. 그것이 그녀가 뉴질랜드에 와서 일본어선생으로 근무하게 된 이유이다. 그와 같은 긴 설명을 아끼꼬임상규에게 찬찬히 이야기하고 있다.

임상규아끼꼬의 설명을 끝까지 듣고나서 그녀를 힘껏 포옹한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말한다; “아끼꼬, 나는 당신이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와서 나를 만나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준 것이 참으로 고마워요. 그리고 우리는 같은 ()이라고 하는 한자를 성씨로 사용하고 있지요. 그러니 우리는 구태여 한국인 일본인이라고 구별하지 말고 그저 앞으로 임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도록 해요!… “;

그의 말은 사실 어폐가 있다. 만약 중국인 ()씨를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도 친척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만 아끼꼬임상규의 그러한 주장에 대하여 이의를 달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진심으로 임상규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두사람의 결속을 다진 상규아끼꼬가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생활을 정리하고 호주 시드니로 건너간 시점이 이듬해인 20063월이다. 그런데 시드니에서 먼저 직장을 얻은 사람이 아끼꼬이다. 그녀는 하이스쿨에서 일본어선생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서 찾아갔더니 쉽게 (job)을 얻게 된 것이다.

그와 달리 임상규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영미의 보통법 체계’(common law system)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호주의 법의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서 변호사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몇 과목을 더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듬해 20073월에 임상규가 호주의 법체계를 공부한 후 시드니의 로펌에서 다시 변호사로 일하게 되자 그의 가정에 기쁜 일이 생기고 있다. 상규와 아끼꼬가 조심스럽게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데 뜻밖에 아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아끼꼬는 비혼(非婚)주의자이기에 임신사실을 알고서 깜짝 놀라고 있다. 그녀가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보이 프렌드인 임상규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혼자서 조용히 처리를 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임상규가 오클랜드에서 동생 상민이가 먼저 결혼한다고 했을 때에 크게 낙담하는 모습을 그녀가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29살인 상규는 분명 아끼꼬 자신과의 사이에 아기를 가지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아끼꼬 자신이 비혼을 고집하고 있기에 상규가 어쩔 수가 없이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또 하나는, 아끼꼬 자신의 나이가 벌써 34살이다. 만약 아기를 가진다고 하면 적당한 나이이다. 더 늦어지게 되면 그만큼 어렵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녀가 임상규를 사랑하고 있는 처지이므로 그의 아기를 가지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 결과 아끼꼬가 저녁에 퇴근한 임상규에게 그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준다. 그러자 상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역시 아끼꼬의 생각이 맞았다. 임상규는 결혼도 하고 자녀도 생산하여 완전한 가정을 꾸미고 싶어하는 것이다.

200710월 중순이 되자 임상규와 아끼꼬의 가정에 딸이 태어난다. 건강한 아기이다. 젊은 부부는 딸의 이름을 임상아라고 짓는다. 상규의 ’() 자와 아끼꼬의 ’()자를 합성하여 부르기 쉽게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미국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성씨를 하나 만들어 주고 있다. 그것이 아끼꼬가 사용하고 있는 맥도웰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풀 네임(full name)상아 임 맥도웰’(Sanga Lim McDowell)이다.

임상규는 아끼꼬가 하야시라는 일본어 발음을 고집하지 아니하고 이라고 불러준 것이 고맙다. 따라서 그는 아끼꼬가 사용하고 있는 맥도웰을 성씨로 첨가해준 것이다. 그것이 장차 구미사회에서 살아가자면 편리할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 소식을 임상규가 오클랜드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동생 상민이에게 전해준다. 그러자 엄청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언제 결혼식을 올릴 것인지를 그들이 묻고 있다. 따라서 임상규는 그 문제를 아내 아끼꼬와 상의한 다음에 알려드리겠다고 대답하고 있다. 과연 상규와 아끼꼬는 언제 어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