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29강(렘42:18-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1월 6일(주일)
여호와의 뜻을 어기고 애굽으로 들어가서 살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지적하시면서 백성들이 결국은 여호와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들 친(親) 애굽 사대주의자들의 말을 따르다가 장차 그 운명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렘42:18-22)
사람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감찰하고 계시는(히4:12-13) 영(靈)이신 여호와께서는(요4:24)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렘42:18-22);
(1) 첫째로, 사람들은 여호와의 창조물이므로 한평생 자신의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뜻을 받들어 실천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여호와의 종의 모범을 이방인들에게 보여 주도록 하기 위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하십니다(출19:4-6);
1)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게 되자 선민들은 더 이상 여호와를 섬기는 종으로 살아가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들처럼 죄악을 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시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렘7:25-26). 그들은 오히려 선지자들을 해치고자 합니다(렘26:20-24).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에게 진노하시고 재앙으로 심판하십니다. 이방 강대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선민의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이방 땅에서 살아가도록 흩어 버리시는 것입니다(렘7:12-16).
2) 역사적으로,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앗수르 변방으로 끌려가서 그 자취가 사라지고 있습니다(왕하17:1-6, 21-23). 주전 586년에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5:1-12). 이제 유대인들 가운데 빈민들과 부녀자들 그리고 유목민들이 가나안 땅에 남아 있지만 그들도 갈대아 군대의 재침을 우려하여 멀지 않아 애굽의 땅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렘41:17-18).
3) 그렇게 선민의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나안 주변의 왕국들을 멸망시키고 뒤이어 애굽제국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렘25:29). 그리고 신바벨론제국의 멸망이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렘25:12). 그 이유는 그들 모든 이방인들이 선민들과 동일한 죄악을 여호와 앞에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의 유다 왕국에 이어 주변의 이방나라들과 강대국들에게 차례로 여호와의 진노의 술잔을 마시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진작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하신 바가 있습니다(렘25:6-29).
4) 그러나 그와 같이 중요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는 유대인 유민들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너희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면 멀지 아니하여 여호와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잔을 애굽인들과 함께 얻어 마시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렘42:18).
(2) 둘째로,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가 유다 왕 시드기야가 지키고 있던 예루살렘성을 함락한 것이 태양력으로 주전 586년 7월 9일입니다(렘39:2). 그런데 가나안 주변의 두로와 시돈, 모압과 암몬, 그리고 에돔 등 반(反) 바벨론 동맹에 가입한 바 있는 5왕국을 동시에 공격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는 참으로 바쁩니다. 그는 군사력이 부족하여 유대 땅을 정복하자 마자 총사령관 네르갈사레셀이 지휘하고 있는 갈대아 군대를 조기에 철수하여 이웃 왕국의 전장(戰場)에 곧바로 투입하고 있습니다(렘39:3). 유다의 땅에서는 현지사령관 느부사라단의 군대만이 한달동안 뒷처리를 하고 역시 빠르게 철수하고 맙니다(왕하25:8-17). 기타 유다의 포도원과 밭을 유다 땅에 남겨진 빈민과 노약자 그리고 유목민들에게 배분하고 경작하도록 하는 일은 전부 유다 총독의 일입니다. 그는 황제에게 조공을 바쳐야 하는 총책임자입니다. 그 총독의 일을 느부갓네살 황제는 다윗왕조의 주화파(主和派) 귀족 아하김의 아들인 그다랴에게 맡기고 있습니다(렘26:24, 39:10);
1) 따라서 그해 8월에 그다랴 총독은 불타버린 예루살렘 대신에 그 북쪽 12km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요새지 미스바에 총독부를 개설하고 있습니다(렘40:5-6). 그러나 그해 10월에 불행하게도 그다랴 총독은 왕족 이스마엘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렘41:1-3). 다행스럽게도, 애굽에서 돌아온 귀족 출신 가레아의 아들들과 유다 땅에서 오래 갈대아 군대에게 항거한 유다의 장군 스라야 그리고 용병장 여사냐들이 힘을 합하여 이스마엘 일당을 쳐부수고 총독부의 재산과 포로로 끌려가던 백성들을 모두 구출하게 됩니다(렘41:11-16).
2) 그러나 문제는 유다의 땅에 무장세력이 있는 것을 시리아의 총독부와 바벨론의 황제가 알게 되었으므로 갈대아 군대가 토벌전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렘41:18). 그러므로 지휘관들은 빨리 애굽으로 백성들을 이끌고 피난을 가는 것이 상책입니다(렘41:17). 그렇지만 그들의 미래가 참으로 불확실하므로 지휘관들과 백성들은 마지막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부탁하여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한번 들어보고자 합니다(렘42:1-3). 겉으로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어떠하든지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하면서 예레미야에게 의뢰를 하고 있습니다(렘42:5).
3)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벌써 꿰뚫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립 서비스’(Lip Service)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으로 떠나는 것이 좋다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나타나면 자신들의 뜻과 맞으므로 즉시 순종하겠지만 그 반대로 유다 땅에 그냥 남아 있도록 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이 나타나면 그들은 단지 참조만 하고 자신들의 애초의 작심대로 애굽으로 들어가고자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렘41:17-18, 43:2-3). 그것은 여호와의 예언을 진심으로 따르고자 하는 신앙인 곧 종의 태도가 전혀 아닙니다.
4) 단지 ‘자문’(諮問, a second opinion)만을 구하고 있는 ‘상급자의 행동’에 불과합니다. 선택은 항상 자기들 마음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따르는 신앙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한마디로, 가짜 믿음이며 외식적(外飾的)인 신앙 태도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어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렘42:20)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셋째로, 선민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만 여호와를 섬기고 속으로는 여호와를 우상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세상적인 이익을 주면 진심으로 섬기고 그 이익에 반하게 되면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대로 행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신앙의 모습이며 가식적인 신앙 태도입니다;
1) 그 때문에 예루살렘성이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고 완전히 불타버리고 맙니다(렘17:27, 39:8). 이제는 또 망국의 백성들이 유다의 땅에 그냥 남아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어기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신 그 진노와 재앙으로 애굽과 애굽에 피신한 유다의 백성들을 처벌하고자 하십니다(렘42:21-22). 그 처벌이 4년 후 애굽에서 역사적으로 발생하고 마는 것입니다(렘52:3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렘42:18);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렘42:18a);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이루기 위하여 여호와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할 때 그 죄악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고 심판을 행하십니다; ①첫번째의 심판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준 선민의 지위를 회수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그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②두번째의 심판은 이방인의 땅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오지 아니하면 다시 재앙을 내리고 온세상에 흩어버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섭리에 대하여 다시 한번 본문에서 정확하게 여호와께서 망국의 유민(遺民)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렘42:18a).
(2)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렘42:18b);
1) 망국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확실하게 여호와의 구원을 얻는 길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그 뜻을 받드는 여호와의 종으로 명실상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을 여호와 앞에서 회개한 자의 새로운 신앙의 태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믿음의 자세를 보고자 하시며 그러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다시 진노와 재앙으로 그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두가지로 역사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2) 하나는, 유대인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까지 갈대아 군대가 쳐들어가서 그곳을 초토화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여호와의 심판의 역사에 대하여 경악할 따름입니다(렘37:10, 롬11:33). 그것을 바라보고서 애굽인들은 망국의 백성 유대인들이야말로 적들을 끌어 들이는 재앙 덩어리라고 욕하면서 저주하게 됩니다(렘42:18ba).
3) 또 하나는, 애굽을 침범하는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는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 다바네스에 정착한 유대인 피난민들을 집중적으로 소탕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띄는 대로 죽이거나 아니면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렘52:30). 그때가 느부갓네살 황제 23년인 주전 582년입니다. 역사적으로 신바벨론제국이 메대와 바사의 연합공격에 의하여 수도 바벨론을 점령당하게 되는 것이 주전 539년입니다(렘25:12, 단5:30-31).
4) 그렇지만 신바벨론의 나보니더스 황제가 아라비아에 장기 주둔하면서 그곳의 반군들을 토벌하느라고 정예병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사의 고레스 왕이 나보니더스 황제의 갈대아 군대를 완전히 격파하고 바벨론으로 입성하여 메대의 다리오 왕을 끌어내릴 때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에 따라 고레스 황제가 페르시아제국을 선포하고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면서 원하는 자에게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칙령을 내린 때는 주전 535년경으로 보입니다(스1:1-4).
5) 그러므로 애굽에서 주전 582년에 갈대아 군대의 공격으로부터 살아 남은 유대인 또는 그곳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자유를 얻게 되어 고향 땅을 다시 보게 되는 때는 적어도 47년 후가 됩니다. 그것은 고대사회의 평균 생존연령이 40세이므로 그보다 더 긴 세월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예레미야가,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렘42:18bb)라는 예언의 말씀을 여기에 수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확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어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렘42:19-2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렘42:19); 여호와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신탁을 의뢰한 유다의 지휘관들과 남은 백성들에게 대언하였는데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축복의 언약입니다. 만약 그들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여호와의 약속을 믿고 유다의 땅에 그대로 남아서 살아간다면 그들이 염려하고 있는 갈대아 군대의 침입을 여호와께서 막아 주시고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렘42:10-12).
2) 또 하나는, 저주의 언약입니다.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창조주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서 자신들의 세상적인 판단과 당장의 이익을 쫓아 애굽으로 피난을 간다고 하면 그 불신앙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진노와 재앙으로 역시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렘42:13-17).
3) 그와 같은 사실을 여기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백성들 앞에서,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렘42:19)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족들이 잘못되기를 결코 바라지 아니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경고인 것입니다.
(2)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어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렘42:20);
1)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하여 순종하고 불리한 것은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것이 유대인 지휘관들과 남은 백성들의 속마음입니다(렘42:20).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속을 여호와께서 벌써 꿰뚫어 알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미련하고 어리석게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없으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알아채지를 못하시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전적인 인간의 교만이며 착각입니다; “근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그저 사람의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불신앙과 교만한 행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좀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창세기와 복음서 가운데 예를 하나씩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아담부부의 장남인 가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마음속에 아우인 아벨을 미워하는 마음과 여호와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을 보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미리 경고하십니다; “죄의 소원을 다스리고 여호와 앞에 범죄를 하지 말라”(창4:7의역). 그러나 가인은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아무도 보지 아니하는 공간으로 동생 아벨을 불러내어 살해하고 암매장을 하고 맙니다(창4:8). 여호와께서 그에게 아벨에 대하여 물으셔도 그는 여호와께서는 그의 완전범죄에 대하여 결코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서 거짓말을 합니다(창4:9). 그것은 모든 피조세계를 감찰하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을 피조물 정도로 여기고 있는 불신앙입니다(창4:10-11). 따라서 가인은 죄를 범한 떠돌이들이 살고 있는 이방 땅 ‘놋’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창4:11-16).
3) 둘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밤중에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데 가룟 유다가 인도하는 체포조가 스승이신 예수님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마26:45-50).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호신용 칼을 지니고 있기에 그것을 휘둘러서 스승을 지키고자 합니다(마26:5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칼을 거두라고 명령하십니다(마26:5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여호와의 뜻이 없으면 사람들이 결코 체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체포와 십자가 대속의 길이 필요한 것이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절차이므로 자신은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마26:54-56).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하늘의 12군단이나 되는 천사들을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이 시간 사용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마26:53).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아들까지 대속의 제물로 바치시고 천군천사의 동원까지 막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훗날 사도 베드로는 남은 인생을 복음사역에 매진하다가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운명을 맞이하고 마는 것입니다(마16:24, 요21:17-19).
셋째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렘42:21-22);
(1) 한마디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가는 곳마다 축복과 구원을 보게 되고(창12:1-5), 반대로 불순종하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을 몰고 다니게 됩니다(렘42:21-22). 그것을 신명기에서 모세는 전자가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고 후자는 저주의 언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그 땅의 풍요에 취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순종의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신8:11-20). 따라서 모세는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의 언약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의 언약을 선포하라고 여호수아에게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신27:11-15).
(2) 실제로 선민들이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며 살아가고 맙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여 선민의 나라가 차례로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망하고 그들의 삶은 재앙덩어리가 됩니다. 그것은 축복의 언약이 아니라 그들에게 저주의 언약이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의 땅에 남아 있는 백성들마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애굽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렘42:21). 따라서 그들이 그 풍요로운 애굽의 땅에서 역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는 경고입니다(렘42:22).
결론적으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엄격한 구별과 차이가 있습니다;
(1) 첫째, 우주의 질서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우주의 창조와 새로운 인생과 역사의 창조를 자신이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만 합니다.
(2) 둘째,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시공간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보고 계시며 온세상을 전부 감찰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온전한 선택과 결정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모순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모두를 살리고 자신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요3:16-17, 17:3, 롬11:33-36, 12:1-2).
(3) 셋째, 창조주께서는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에게 하나의 특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창조주와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창2:7). 그러므로 영적인 동물인 인간은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그 뜻을 구하면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가 있습니다(눅11:9-13). 그와 같은 영적인 교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며 인간이 가진 유일한 특권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만약 종이 주인을 대신하겠다고 교만하게 나서게 되면 불순종한 종이 되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유대 땅에 남아 있는 백성들과 지휘관들이 그러한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판단을 우선하여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면 멀지 않아 그곳에서 갈대아 군대의 침입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입장에서도 본문의 말씀은 그대로 유효합니다. 자신이 여호와의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게 되면 자신도 살리고 모두를 살리게 되는 값진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끝까지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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