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28강(렘42:13-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25. 20:42

예레미야 강해 제228(42:13-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15()

 

여호와의 뜻대로 유다의 땅에 머물러 살지를 아니하고 애굽으로 들어가서 산다고 하면 어떠한 재앙을 당하게 된다고 여호와께서 예언하시는가?(42:13-17, 52:30)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임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유다의 땅에 남아 있는 지휘관들과 백성들에게 대언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그들이 만약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의 공격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을 하게 되면 멀지않아 그곳에서 발생하는 느부갓네살 황제와 바로와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바벨론 포로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42:13-17, 52:30).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일까요? 그 점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주전 605년 유다 왕 여호야김 4년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느부갓네살은 정복전쟁에 나서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앗수르제국의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잔존세력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맙니다(25:1). 그리고 시리아를 점령하고 있는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를 쳐부수어 그들을 나일강 유역으로 전부 밀어 부칩니다. 회군하는 길에 애굽의 바로인 느고가 임명한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항복을 받습니다(1:1-6).

(2)  둘째로, 주전 601년에 느부갓네살 황제는 아예 애굽을 정복하기 위하여 원정에 나섭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의 필사적인 항전에 부딪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일단 철군을 하고 맙니다. 그것을 보고서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이 느부갓네살 황제 대신에 다시 애굽의 바로를 섬기고자 합니다;

1)    그때 유다 왕 여호야김도 과감하게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3년간이나 바치던 조공을 끊어버립니다(왕하24:1). 느부갓네살 황제의 진노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따라서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먼저 시리아의 아람과 가나안 동쪽의 암몬과 모압을 다시 침략하여 항복을 받습니다.

2)    그 다음에 자신에게 항복한 나라들의 군대를 모두 동원하여 갈대아 군대와 함께 주전 597년에 유다 왕국을 침략합니다(왕하24:2). 마침 유다 왕 여호야김이 서거하였으므로 그 장자 여고냐가 왕이 되어 대항을 하였으나 역부족입니다(왕하24:10-11). 그러므로 여고냐 곧 여호야긴 왕이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항복을 하고 맙니다(왕하24:12). 황제는 유다 왕 여호야긴을 폐위시켜 바벨론으로 끌고가면서 유다의 왕족과 귀족은 물론 1만명 이상의 유다의 군사를 포로로 끌고 갑니다(왕하24:14-16). 그리고 괴뢰정권의 수장으로 유다 왕 시드기야를 세운 것입니다(왕하24:17).

(3)  셋째로, 애굽제국의 바로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리아와 가나안 땅의 모든 왕들이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고 있으니 언제 갈대아 군대가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애굽의 바로는 힘이 약합니다;

1)    역사적으로 분열시대인 제3중간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애굽의 여러 왕국의 왕들에게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공격에 대비하여 군사적인 합작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일대의 왕들에게는 반() 바벨론 동맹의 결성을 제안합니다. 그러한 바로의 외교적 노력이 열매를 맺어 주전 593년경 바로는 두로와 시돈 그리고 에돔, 모압, 암몬을 위시하여 유다 왕국까지 참여하는 반() 바벨론 동맹의 수장이 됩니다(27:3, 28:1).

2)    그 동맹을 쳐부수기 위하여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다시 정복전쟁을 시작합니다. 먼저 시돈 왕국을 치고 그 다음에 모압과 암몬 그리고 에돔 왕국까지 격파합니다. 그 다음에는 주전 588년 말부터 유다 왕국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유다 왕국마저 무너지면 애굽제국이 위험합니다. 따라서 바로가 대군을 이끌고 갈대아 군대의 배후를 공격합니다. 그 때문에 느부갓네살 황제는 잠시 유다 왕국 바깥으로 갈대아 군대를 작전상 후퇴를 시키고 있습니다(37:5).

(4)  넷째로, 주전 587년 말이 되자 느부갓네살 황제가 대규모의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시드기야의 유다 왕국을 다시 공격합니다(37:7-10). 예레미야를 통하여 나타난 여호와의 예언 그대로, 갈대아 군대가 삽시간에 유다의 전역을 휩쓸고 그 수도인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합니다. 이번에는 애굽의 바로도 여러 왕들의 협력을 얻지 못하여 구원에 나서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주전 586년 여름에 끝까지 버티고 있던 예루살렘성이 무너집니다(39:2, 왕하25:2-7);

1)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완전히 정복한 느부갓네살 황제는 그 여세를 몰아 항전을 계속하고 있는 두로 성의 공격을 강화하고 아라비아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항전에 나서고 있는 모압과 암몬 자손들의 왕들을 소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완전 소탕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습니다.

2)    그러한 도중에 유다의 통치를 위임 받은 그다랴 총독이 왕족 출신인 이스마엘 일당에 의하여 암살을 당하고 미스바의 총독부가 약탈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41:1-10).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왕족 출신 이스마엘 일당이 유다의 남은 백성들을 사로잡아 아라비아로 끌고 가는 것을 유다의 귀족 출신과 장군 출신들이 힘을 합하여 자체 토벌을 했다는 것입니다(41:11-16).

3)    따라서 느부갓네살 황제는 차제에 유다 땅의 통치를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신바벨론제국의 동향을 벌써 알고 계시는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의 지휘관들과 백성들에게 유다 땅에 그대로 잔류를 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42:7-12).

(5)  다섯째로, 그러나 애굽에서 망명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유다의 귀족 가레아의 아들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1)    유다의 땅에서는 장군 출신 스라야와 그의 지휘관들의 힘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유다 왕국이 망했지만 갈대아 군대와 계속 싸우기 위하여 빨치산 항쟁을 한 그들을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크게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족 출신인 가레아의 아들들 곧 요하난과 요나단은 유대 땅에서는 지휘관들의 의견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지휘관들과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으로 들어가서 난민촌을 만들고 정착하게 되면 상황은 역전이 됩니다.

2)    애굽의 바로 및 여러 왕들과 친한 자는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맏이인 요하난의 경우에는 애굽에 들어가서 유다의 정착촌에 망명정부를 만들고 나면 자신은 대내외적으로 유다 자손의 왕으로 행세를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속셈을 가지고 있기에 귀족인 요하난은 유대 땅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파견하면 그때에는 모두가 무장해제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지휘관들과 백성들에게 엄청 겁을 주고 있습니다(41:17-18). 그러므로 갈대아 군대가 쳐들어 올 수 없는 안전한 땅 애굽으로 피신을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6)  여섯째로,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아주 정확한 예언의 말씀을 지휘관들과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본문에서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42:13-17).

(7)  일곱째로, 실제로 4년후에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두로 성을 정복한 후에 갈대아 군대를 동원하여 애굽을 침략합니다(52:30). 바로가 여러 왕들의 협력을 얻어 대항을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그 결과 바로가 죽고 하이집트에서는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한 새로운 바로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고대의 자료가 유다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다음과 같은 언급입니다; 예루살렘 약탈 5​년째 되던 느부갓네살 통치 ​23​ 느부갓네살 코엘레시리아 진군하여 그곳 점령 모압 사람 암몬 사람 양쪽 모두 전쟁 벌였다. 그런 다음 나라 자기에게 복종시킨 , 이집트 굴복시키기 위하여 침공하여 당시 통치하고 있던 죽이고 다른 임명하였다. 그리고 나라 살던 유대인 또다시 포로 삼아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이상은,「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X, 181, 182 (ix, 7)의 내용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42:13-14);

(1)  사람들은 흔히 여호와의 예언이 먼저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이 먼저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따르게 되면 위험하고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자신의 세상적인 판단을 따르게 되면 안전하고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선지자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유다의 땅에 그대로 머물러 살게 되면 안전하겠지만 애굽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휘관들과 백성들의 판단으로는 비상식적인 말씀입니다.

(2)  왜냐하면 주전 605년과 주전 601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애굽제국은 신바벨론제국 갈대아 군대와 전쟁을 쳤지만 결코 자신들의 본토를 빼앗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힘이 약한 유다 왕국은 주전 586년에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망하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다시 유다의 땅에 쳐들어오게 되면 자신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가는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반면에 애굽에 피난을 하게 되면 안전할 것입니다. 결코 갈대아 군대가 애굽의 본토까지 집어 삼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3)  요컨대, 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갈대아 군대를 물리치고 나일강 유역을 방어할 것이기에 그 안에서 살게 되면 세상적으로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를 구하고 있는 망국의 백성 남은 유대인들의 어리석은 선택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4년이 지나면 느부갓네살이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애굽을 침입하여 하() 이집트를 점령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벌써 보고 계시는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언의 말씀으로 남은 유대인들을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세상적인 판단에 사로잡혀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고 다시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42:18-22).

둘째로,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42:13-1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42:15a);

1)    유다 왕 시드기야와 주전파(主戰派) 신하들 그리고 유다의 백성들이 한사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멸시하고 살아갔기 때문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주전 586년 여름에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39:2-3).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유대 땅에 남겨진 백성들이 지휘관들과 함께 선지자 예레미야를 제 발로 찾아오고 있습니다(42:1-6). 유대 땅에 그대로 머물러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전쟁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을 가야만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부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받아서 자신들에게 알려주면 그대로 순종하여 따르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2)    일찍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멸시한 결과 망국의 백성이 된 그들이 이제는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보기에 좋습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지극정성으로 그들에게 반드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대로 행동을 하라고 하는 의미에서 본문 가운데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42:15a)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이제는 더 이상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그 말씀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히 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42:15b-16);

1)    만군의 여호와’(Almighty God)는 이 세상의 피조물이 도저히 그 상대가 되지 아니하는 전능성을 가진 창조주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응하신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그대로 이방인들에게도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25:29). 그러한 맥락에서 다음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는, 애굽제국이나 신바벨론제국의 역사도 창조주 여호와의 손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과 신바벨론 사이의 전쟁이 여호와의 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3)    또 하나는, 여호와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게 되면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예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길을 도모하게 되면 그것은 엄청난 판단의 실수로 나타나게 됩니다.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역사가 그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망국의 백성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29:18). 진작에 선포된 여호와의 그 예언이 역사 가운데 그대로 임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42:17); ‘29:18, 52:30’절 말씀과 직결이 되고 있습니다;

(1)  멀지 않아 애굽의 본토에 전쟁에 의한 살륙,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은 기근, 죽은 자의 시신을 방치함으로 발생하는 전염병 등이 나타날 것이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내가 기근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29:18a);

1)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자기들 판단으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피난한 그곳에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전쟁과 굶주림과 질병이 발생하도록 역사를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세상적인 판단에 의존하여 구원을 생각하지 말고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원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2)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그 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며 영생의 구원의 축복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벌써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2)  그와 같은 끔찍한 전쟁의 참상이 실제로 4년 후에 발생하게 됩니다.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이 주전 582년에 애굽을 침입하여 대승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훗날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제23년에 사령과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간 유다 사람이 745명이니” (52:30). 예레미야의 관심은 온통 자신의 동족입니다. 그러므로 애굽 땅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다바네스에서 유대인 얼마가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포로로 끌려갔는지 그 수를 대선지서 예레미야 말미에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출애굽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묵상하게 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망국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데 다시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을 겁내고 있습니다(41:17-18). 그래서 귀족 출신 요하난의 인도를 따라 애굽으로 피난을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가나안 땅에 그냥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외적을 막아 주고 보호하시며 구원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42:7-12).

여호와의 약속을 믿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들어가는 경우에는 자신들의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을 운명에 처하고 만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42:13-17).

그와 같은 본문의 메시지는 성경의 제일 앞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세오경의 메시지와 동일한 것입니다. 그 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창세기의 주요 메시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북부 시리아 하란 땅에 머물고 있는 아비 데라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는 곳마다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선지자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12:1-5).

2)    야곱은 가나안 땅의 7년 연속 흉년을 피하여 아들 요셉이 초청하는 애굽으로 이주를 하지만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민족을 이루고 반드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있습니다(46:1-4). 따라서 그는 천성을 바라보고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안장되어 있는 조상들과 함께하기를 그토록 소원하고 있습니다(47:29-31, 49:29-33).

3)    그러한 야곱 곧 이스라엘의 믿음이 애굽의 총리를 지낸 아들 요셉에게도 승계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창세기가 끝나고 있습니다(50:24-26).

(2)  둘째, 출애굽기에서는 야곱의 출애굽신앙이 그의 12아들과 12지파의 자손들에게 계승이 되어 모세 시대에 출애굽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23-25).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 앞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성막을 만들어 언약궤를 메고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출발하게 됩니다(19:4-6, 24:1-8, 40:1-38).

(3)  셋째, 그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방법이 레위기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민수기와 신명기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발생한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특히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풍요에 취하여 여호와신앙을 상실하지 아니하도록 하라고 여러 번 강조하면서 그의 유언과 같은 신명기의 기록을 마치고 있습니다.

전란 가운데 세상적으로 판단하면 분명히 가나안 땅에 머물게 되는 것은 목숨이 위험한 일입니다. 반면에 애굽으로 피난을 가면 안전과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의지하여 가나안 땅에 머무르게 되면 구원을 베풀어 줄 것이지만 인간의 판단을 우선하여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세상나라 애굽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위기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세상적인 판단을 의지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살아가게 되면 그것이 풍요와 안전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거듭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호와신앙과 복음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넓힌 최대의 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