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205강(렘36:7-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12. 03:16

예레미야 강해 제205(36:7-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213()

 

바룩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대신하여 예루살렘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가?(36:7-8) 주전 605년에 제1차 인질사건이 발생하자 그 다음해에 예루살렘성전에서는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가?(36:9-10)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서기관 바룩은 스승이신 선지자 예레미야의 지시대로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유대인들에게 양피지에 기록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낭독합니다(36:8). 여호와께서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일찍 알려주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닥치는 여호와의 노여움과 분노를 미리 알고서 그 악한 길을 돌이키고 회개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36:7).

(2)  둘째로, 주전 605년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의 침략을 당하자 유다 왕 여호야김은 재빨리 항복을 하고 앞으로 애굽의 바로 느고 대신에 느부갓네살 황제를 자신의 주군으로 섬기며 매년 착실하게 조공을 바치고자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전쟁배상금을 물었을 뿐만 아니라 황제가 원하는 유다 왕국의 인재들을 바벨론으로 인질로 보내게 됩니다(1:1-5). 그들 똑똑한 귀족 가문의 자손들 가운데 다니엘과 세 친구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1:6).

(3)  셋째로, 여호야김 왕은 간교하게도 자신의 정치적인 잘못과 수치를 교묘하게 종교적인 행사를 통하여 가리고자 합니다;

1)    그는 주전 609년에 부왕인 성군 요시야가 급서를 하게 되자 동생 살룸이 먼저 신하들에 의하여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외세를 이용하여 동생의 왕위를 찬탈한 인물입니다(왕하23:29-34). 부끄럽게도 애굽의 바로 느고에 의하여 이름을 고쳐 유다의 왕으로 책봉이 된 것입니다(왕하23:35). 다윗왕조의 역사상 외세에 의하여 왕위에 오른 희한한 인물입니다.

2)    그 수치에 하나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주전 605년에는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에게 항복을 하고 그 신하가 되더라도 유다의 왕좌에 계속 머물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백성들 보기에 후안무치(厚顔無恥, 얼굴이 두껍고 수치를 모름)이며 권력의 화신의 모습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은 그러한 자신의 잘못된 처신과 수치를 순전히 백성들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 간특(奸慝, 간교하고도 영특함)한 방법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3)    그것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민족적인 굴욕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해달라고 선민의 수호신이신 여호와 앞에 금식을 하면서 매어 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연일 계속이 되는 백성들의 릴레이식 금식기도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후 604년 여호야김 제5년의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36:9). 그러한 북새통 가운데 담대하게도 서기관 바룩이 양피지에 적혀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낭독하고 있습니다(36:8).

(4)  넷째로, 서기관 바룩이 백성들에게 양피지에 적혀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고 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성전의 뜰 가장자리에 있는 서기관들의 방에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기관들은 동료인 바룩이 편하게 낭독할 수 있도록 편의를 보아주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금식기도를 하느라고 시끄러운 성전의 뜰보다는 서기관의 방이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기에는 한층 효과적인 것입니다(36:10). 그들이 서기관 바룩에게 호의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같은 서기관이라는 동료애도 있겠지만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주전 609년에는 애굽의 바로에게 전쟁배상금을 많이 물어주고 또한 주전 605년에는 신바벨론의 황제에게도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많이 물어준 유다 왕국입니다.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 있으므로 유다 왕국의 고관들과 서기관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한 때에 서기관 바룩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적혀 있는 양피지를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고 있으므로 사실은 그들도 그 내용이 궁금한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36:7-8); 다음과 같이 두 부분을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36:7);

1)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는 자들은 큰 무리이므로 그들이라고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악한 길에서 떠나는 자들은 개인적인 결단에 달려 있으므로 각기라고 표기가 되고 있습니다(36:7a). 기도는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통성으로 할 수가 있으며 분위기에 따라 감정의 공명을 이루어 열심히 회개의 기도를 여호와께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행사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도하고 서원한대로 자신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개인이 스스로 강하게 결심을 하고서 그 약속과 서원의 이행을 위하여 자신의 삶속에서 전력투구를 하지 아니하면 실행하기가 참으로 힘이 드는 것입니다.

2)    예를 들면 그 옛날 야곱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는 77세가 되는 적지 아니한 나이에 브엘세바의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북부 시리아 하란 땅으로 찾아가고 있습니다(28:10). 도중에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비박을 하게 됩니다(28:11). 그때 꿈속에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서 잠이 깨어 그 자리에서 서원을 하게 됩니다(28:12-18). 무사히 타향살이를 마치고 아버지 이삭의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신다면 벧엘에 제단을 쌓고 신실하게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맹세입니다(28:20-22). 그런데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되자 야곱의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33:16-20).

3)    남하하여 벧엘로 찾아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서원대로 이행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북진하여 가나안 땅의 대도시 세겜으로 올라가서 여생을 향락과 사치 가운데 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겜사건을 만나고 여호와께 간구하여 살길을 다시 도모합니다(34:25-35:1). 그것이 벧엘로 돌아가서 여호와께 맹세한 자신의 서원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행이 있을 때에 야곱이 여호와의 대 족장 이스라엘이 되는 거듭난 영적인 운명이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35:7-15).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변화가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36:7).

4)    따라서 야곱이 세겜 땅에서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것처럼 선민 유대인들이 계속 우상을 섬기며 죄악 가운데 살아가게 되면 반드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유대인들은 선민의 지위와 가나안의 기업을 잃어버리고 이방 땅을 유리방황(流離彷徨, 정처없이 떠도는 것)하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라고 하는 예언의 말씀을 미리 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36:7b). 그 뜻은 빨리 세겜에서의 야곱처럼 개인적으로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회개를 하여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영적인 삶을 다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36:7a). 그와 같은 여호와의 가르치심이 함축적으로 본문에.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36:7)고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36:8);

1)    네리아의 아들인 바룩은 총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나이에 벌써 서기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36:26). 그리고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신 중인 스승 예레미야를 대신하여 그가 양피지에 기록한 여호와의 예언을 두려움 없이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낭독하고 있는 것입니다(36:8). 바룩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만 충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로 작심한 인물입니다. 그 모든 점에서 바룩은 나이가 젊지만 벌써 훌륭한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겠습니다.

2)    참고로, 여기서 서기관이라고 하는 벼슬은 유다 왕국에서 공문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는 관리인데 학문이 있어야 하고 특히 신정국가인 유다 왕국이므로 율법과 제례의식에 대한 공부도 되어 있어야 합니다. 비록 악한 왕 므낫세의 시대를 지나면서 양피지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사라진 시대라고는 하지만(왕하22:8) 그래도 총명한 서기관들이 조상 때부터 암기하여 머리속에 간직하고 있는 여호와의 율법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미쉬나는 제사장들에게도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을 가진 악한 왕이 분서(焚書, 책을 태워버림)의 잘못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이 암기하고 있는 그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교훈과 행적만은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리새인들의 노력으로 여러 번 집대성이 되어 훗날 탈무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3)    유다 왕국이 망하고 70년 후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에 다시 서기관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민간의 서기관은 왕국의 관직이 아니라 유대인사회에서 율법에 대하여 박식하며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소위 율법학자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3:13). 그리고 훗날 바리새인들의 사회에서는 율법선생인 랍비가 있고 그 가운데 명망이 높은 랍비들이 산헤드린 대 공회원이 되었을 때 율법학자또는 서기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20:1). 산헤드린 대 공회원인 가말리엘이 주후 1세기에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율법학자인데 때로는 교법사’(敎法師, 교리와 율법을 가르치는 스승)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5:34, 22:3). 가말리엘 역시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처럼 바리새인이며 서기관인 것입니다(3:1 9-10, 19:38-39).

둘째로,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59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36:9);

(1)  요시야 왕과 그의 아들인 여호야김 왕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는 것은 대조적인 성격이 있음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는 표현입니다(36:9a). 요시야 왕이 역사에 유례가 없는 성군이므로 당연히 그의 아들인 여호야김 왕도 훌륭한 왕일 것으로 기대를 하는데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위대한 만큼 반비례하여 그의 아들인 여호야김 왕은 형편없이 나쁜 왕입니다(왕하23:34-37);

1)    그가 유다의 왕이 되는 과정부터가 그러합니다. 주전 609년에 자주성이 강한 동생 살룸이 중신들의 추대로 새로 유다의 왕이 되어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가 침입하여 올 것을 대비하고 있습니다(왕하23:29-30). 그때 여호야김은 자신이 왕이 되고자 애굽을 숭상하는 사대주의자들을 끌어 모으고 시리아에서 회군하는 바로 느고와 내통하여 동생 여호아하스 왕을 붙잡아 바로에게 넘긴 것입니다(왕하23:33-34). 여호야김은 애굽의 괴뢰정권을 수립하고 그 수장으로 바로에게서 유다의 왕으로 책봉을 받게 됩니다(왕하23:34). 그것은 다윗왕조의 역사에 있어서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2)    여호야김 왕의 잘못된 행보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나일 강변으로 몰아내고서 유다 왕국으로 쳐들어왔을 때 무조건 항복을 하고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챙겨줍니다(1:1-6). 그리고 느부갓네살 황제의 신하가 되기로 맹세하고 장래가 촉망이 되는 귀족의 자제들을 바벨론으로 인질삼아 보내기를 서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무능함과 악한 행실을 후회하지 아니하고 정치적인 약은 꾀로 위기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3)    그 방법이 주전 604년에 예루살렘성전에서 백성들이 스스로 구국을 위한 금식의 기도를 시작하는 운동을 일으키도록 정치적인 술수를 부린 것입니다(36:9). 그것은 마치 고려 말에 몽고군들이 쳐들어오자 백성들을 내버리고 강화도로 도망한 비겁한 무신정권(武臣政權)이 오랜 세월 권력암투를 일삼으면서 국방을 게을리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아니하고 도리어 불교의 힘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민심을 끌어 모으고자 거국적으로 팔만대장경을 제조한 것과 유사합니다.

(2)  제대로 된 나라의 정권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국방정책을 수립하여 강력하게 시행하여야 국가의 안전보장이 확립이 되는데 그러한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엉뚱하게 민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자신들의 무능함과 잘못을 은폐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이니 그것이 나라가 망할 장본인 것입니다. 그러한 유다 왕국 말기 여호야김 왕 때의 시대상을,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59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36:9)는 본문이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36:10);

(1)  서기관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지시를 성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매주 안식일에 예루살렘성전의 뜰을 찾아가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백성들에게 낭독하고 있습니다(36:5-8). 그런데 주전 604년이 되자 거국적으로 금식기도운동이 발생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의 뜰에 모여 합심기도를 하느라고 매우 시끄럽습니다(36:9). 그러한 와중에 바룩이 두루마리를 읽는 소리가 상대적으로 전달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같은 서기관인 그마랴가 바룩을 돕고자 나섭니다.

(2)  서기관 그마랴는 아버지 사반 때부터 서기관 집안이며 예루살렘의 명문거족입니다(왕하22:3, 8-12). 따라서 성전의 뜰 가장자리에 자신들의 가문에 할당이 되어 있는 별도의 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위치가 성전의 북쪽에 난 새 문과 통하는 2층에 있는 방입니다(36:10a). 그곳에서 서기관 바룩이 큰 소리로 두루마리에 기록이 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외치자 많은 유대인들이 그 소리를 듣고서 2층 그 방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36:10b).

결론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요시야 왕 13년인 주전 627년에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11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때까지 무려 41년간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십니다(1:1-3, 38:28, 39:1-10).

그 동안에 여호야김 왕의 미움을 받아 목숨이 위험할 때에 고관 사반의 아들 아히감을 통하여 그의 목숨을 구해 주십니다(26:24). 그리고 서기관 바룩을 그에게 수제자로 보내어 주어 성전을 출입하지 못하고 피신생활을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 대신에 양피지에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여 그것을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정기적으로 낭독하게 합니다(36:1-8).

그리고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도와주는 유다의 고관들과 서기관들의 손길이 늘 나타나도록 여호와께서는 역사를 섭리하십니다(36:10, 19, 26). 조국이 망한 다음에는 임시 총독이 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예레미야와 바룩을 돌보게 됩니다(40:6). 그다랴가 암살을 당하게 되자 예레미야와 바룩은 애굽의 난민촌으로 옮겨지고(43:6-7)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곳에서 이방의 여러 나라에 대하여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44-51).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그를 통하여 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끝까지 신실하게 외치게 하고 또한 기록으로 남기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생각하면서 아무쪼록 힘있게 복음사역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