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73강(렘31:11-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0. 29. 04:55

예레미야 강해 제173(31: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111(주일)

 

야곱의 언약을 승계한 성도들이 온 세상 만민 가운데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그 기쁨을 어떻게 노래하며 즐거워하고 있는가?(31:11-14)

 

창세기에서 야곱을 구원하시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대선지서 예레미야 제31장에서 새 언약에 따라 만민을 야곱처럼 구원하시겠다고 예언하십니다. 새 언약에 관하여서는 예레미야 제31장 제31-34절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야곱이 상대할 수 없는 적들로부터 그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은혜가 새 언약에 따라 만민 가운데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나서는 성도들에게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31:11).

(2)  둘째로, 유대인 출신이거나 이방인 출신이거나 상관없이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세상적인 복과 영적인 복이 가는 곳마다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31:12).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과 같은 내용입니다(12:3).

(3)  셋째로,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면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춤추며  노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슬픔과 근심을 이기는 부활과 영생의 기쁨을 영적인 믿음의 확신으로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31:13).

(4)  넷째로, 가축의 기름과 내장 그리고 콩팥 등을 화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시면서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그리고 나머지 살코기를 백성들에게 화목의 음식으로 나누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종들인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배려하신다는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31: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31: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31:11a);

1)    창세기 제4장 말미에서 아담의 믿음의 형상을 물려 받은 아들 ’(Seth, 5:3)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짓고서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4:25-26). 그 의미는 죽을 수밖에 없는 목숨을 가진 육신의 인생이지만 이제는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께서 불쌍하게 여기시고 부디 영생의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셋의 가문이 고수하고 있는 여호와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러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 창세기의 교훈입니다(6:1-8).

2)    따지고 보면, 믿음의 조상이라고 사도 바울이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도 브엘세바에서 영생의 여호와를 찾고 있으며(21:33) 또한 모리아 산에서 영생과 부활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바치고자 합니다(22:1-2, 11:19). 부친 아브라함의 여호와신앙을 물려 받은 이삭이 여호와의 언약을 계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언약과 신앙을 이삭의 차남인 야곱이 승계하고 있습니다. 본래 영적인 장자의 축복과 언약의 승계는 쌍둥이 아들 가운데 장남인 에서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들사람인 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서 자신의 용맹과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합니다. 그 때문에 차남인 야곱에게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여호와의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3)    야곱은 믿음의 어머니 리브가의 장막에서 여호와께 타고난 자신의 운명을 축복받은 장자로 그리고 족장으로 바꾸어 달라고 간구하면서도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습니다(25:27-28). 따라서 세상적인 꾀로써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고자 합니다(25:29-34, 27:22-30). 그러나 그것이 망할 장본입니다. 그때문에 야곱은 아비의 집을 떠나 하란 땅에서 외삼촌 라반의 머슴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두차례나 죽음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①하나는, 외삼촌이며 장인인 라반의 양떼를 몰고서 야반도주를 했다가 길르앗 산에서 꼬리가 잡히고 만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의 강력하신 간섭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31:23-24).

4)    ②또 하나는, 얍복 시냇가에서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는 형 에서를 만나게 되는 위기에 직면합니다. 자신과 처자식을 부디 살려 달라고 밤새 여호와 하나님께 매어 달립니다. 그 결과 세상의 꾀로 앞 사람의 발목이나 잡는 야곱의 삶을 버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스라엘이 되는 조건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32:24-31, 33:15-16). 야곱처럼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자신의 타고난 육신적인 삶과 운명을 바꿀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께 밤새 기도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운명을 얻은 자들이 바로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5)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의미는 여호와의 종인 성도들을 일컫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혈통적으로 야곱의 자손이라고 하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31:11a)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듯이 이제는 이방인들을 새로운 여호와의 종으로 삼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구원사상에 의존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율법생활이 아닙니다. 혈통과 사람들이 만든 종교를 떠나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속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새로운 언약 곧 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31:31-34, 1:12-14, 1:8).

(2)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31:11b);

1)    야곱에게 있어서 그가 상대할 수 없는 강한 자는 라반과 에서 그리고 가나안 원주민들입니다; ①첫째, 외삼촌이며 장인인 라반은 야곱보다 두뇌회전이 더 빠른 사람입니다. 라반의 간교한 꾀로 말미암아 야곱이 무려 14년간이나 별 소득없이 그 집에서 머슴살이와 양치기 생활을 하게 됩니다. ②둘째, 쌍둥이 형 에서는 야곱보다 월등 힘이 세고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그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로 매어 달리고 에서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온갖 성의를 표시할 따름입니다(32:13-29, 33:10-11).

2)    ③셋째, 가나안 땅의 중심도시가 세겜입니다. 세겜 성의 추장의 칭호가 세겜인데 그는 히위 족속입니다. 그런데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욕보이고 차제에 그녀를 아내로 취하고자 합니다(34:2-4).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이 세상적인 꾀로 야습하여 세겜 성에 살고 있는 히위 족속의 남자를 전부 살해합니다(34:24-29).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 주변의 가나안 원주민들이 연합하여 야곱의 가문을 공격하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34:30). 위기에 직면한 야곱이 여호와께 간구한 결과 남쪽 벧엘로 도주하여 살 길을 도모하고 있습니다(35:1-5).

3)    그렇게 강한 적에게 마냥 쫓기던 야곱이 세상적인 꾀를 버리고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새로운 인생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되자 오히려 세겜 성과 그 주변의 가나안 원주민들을 정벌하고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대 족장으로 살게 됩니다(37:12-17, 48:22). 그렇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변화가 만민 가운데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있어서 세상의 강한 적들은 누구일까요? ①첫째가 악한 영들입니다(6:12). ②둘째가 패권을 자랑하고 있는 제국들입니다(2:31-43). 그러나 그들이 성도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성도들을) 속량하셨기”(31:11b) 때문입니다.  

둘째로,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곡식과 새 포도주기름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심령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31:12);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31:12a);

1)    선민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이 구절을 해석하면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훗날 여호와께서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제국을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예루살렘성에서 모든 속국의 사신들이 메시아에게 예물을 드리고 여호와를 찬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31:12a).

2)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거하여 해석을 하게 되면 달라집니다; ①첫째, 야곱을 새로운 운명 곧 여호와의 종 이스라엘로 변화시키는 그러한 운명의 변화가 모든 이방인들에게 대속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임하게 됩니다. ②둘째, 그때에는 시온과 같이 높은 산에 올라가서 하늘에 계시는 여호와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은혜를 성도들이 찬양할 것입니다.

3)    선민구원사상이 아니라 만민구원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높은 산 시온의 의미가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시온산성은 본래 다윗의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원주민 가운데 작은 부족인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난공불락의 성입니다(삼하5:6). 그런데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이 된 다윗이 그곳을 점령하여 다윗의 성으로 삼고 훗날 이스라엘제국의 수도 예루살렘성으로 명명한 것입니다”(삼하5:5, 7, 9-10). 그러므로 유대인이거나 이방인들이거나 누구나 시온의 높은 곳에서 여호와를 찬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31:12a).

(2)  여호와의 복곡식과 새 포도주기름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31:12b);

1)    성도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그 땅에 어떠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될까요? 그 복은 성도들을 통하여 그 땅의 족속들에게 흘러가게 되는 복입니다(12:3). 알기 쉽게 본문에서는 세상적인 복으로 여호와의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표현입니다;

2)    첫째, 목축을 하는 떠돌이 삶보다 정착식 농업의 복이 앞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곡식과 새 포도주가 가축인 양과 소떼보다 먼저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정적인 생활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 농사를 지어 생계를 도모합니다. 그것이 곡식의 생산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생계만이 아니고 삶의 풍요를 맛보게 하십니다. 따라서 매년 새 포도주가 생산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4)    셋째, 목축을 하면서 기름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바치는 화제입니다. 그리고 가축의 새끼가 많이 태어나서 양과 소가 번성하여 큰 떼를 이루게 됩니다.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는 여호와의 세상적인 축복입니다.

5)    넷째, 그 옛날 그랄 평야에서 초보 농사꾼 이삭이 농사를 지어 백배의 소출을 얻은 것과 비슷합니다(26:12-14). 그러므로 만약, 그 땅의 거주민들이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면 그러한 여호와의 축복은 그들에게도 흘러 넘치게 됩니다. 반면에 성도들을 해치고자 하면 여호와의 복은 마치 그 옛날 그들이 빼앗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물처럼 말라버리게 되고 말 것입니다(26:18).

(3)  심령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31:12c);

1)    여호와의 복은 세상적인 복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축복이 반드시 세상적인 복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령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31:12c)는 말씀이 뒤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2)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지방 수가 성의 여인에게 생수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4:14). 그 복음의 생수가 마치 물 댄 동산같이 성도들의 심령속에서 솟아날 것이라고 여호와께서는 여기서 예언하십니다(31:12c).

3)    풀이를 하자면, 대속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따라 성도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여호와의 종들에게 말씀의 위로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항상 공급이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셋째로,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31: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31:13a); 여기서 처녀처녀 이스라엘’(31:4)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새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의 성도로 부르심을 받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처녀와 같은 순수하고 깨끗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따라 나선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즐거워하면서 그것을 온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31:13aa). 그 결과 이방인들 가운데 많은 청년과 노인들이 대속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서 진심으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이제는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게 됩니다. 바야흐로 놀라운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길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방인들에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31:13ab).

(2)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31:13b);

1)    사람들은 너나 없이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슴 속에 묻고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그나마 조부모나 부모의 상을 당한 경우에는 세월이 지나면 잊고서 살아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품안에서 키우다가 일찍 떠나 보내게 되면 그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부모의 가슴에 자녀의 무덤이 남아서 그 슬픔을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2)    그와 같은 인간의 슬픔의 정체를 아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슬픔을 돌려서 즐거움으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31:13ba). 그것이 구원의 의미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발휘가 될 때에 비로서 가능합니다;

3)    첫째, 성도에게 영원한 위로를 주십니다(31:13bb). 슬픔이 가득한 육신을 벗고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처럼 천국에 들어가서 헤어진 가족을 모두 만날 수가 있다는 부활의 메시지를 소망 가운데 믿게 해주시는 것입니다(3:10-16, 14-18).

4)    둘째, 성도가 근심하고 있을 때에 그것을 떨쳐버리고 기쁨을 얻게 하십니다(31:13bc). 성도라고 하더라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죽을 것만 같은 근심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7:21-24, 9:1-3). 그때 믿음을 회복하도록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통하여 보여주신 복음의 진리를 깨닫도록 하십니다(14:16-20, 26). 그 결과 이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처럼 성도들도 이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승리와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8:1-2, 35-39).

넷째로,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31:14a);

1)    먼저, 율법에 따라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에 있어서 제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에 이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그에 대한 분류를 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화제(火祭)와 전제(奠祭)입니다. 화제는 가축이나 곡식을 제물로 사용할 때에 그것을 태워서 그 향기를 올려드리는 제사입니다. 전제는 제물이 액체인 경우로서 가축의 피, 곡식으로 짠 기름, 포도주 등을 제단에 부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3)    둘째, 화제(火祭)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번제(燔祭)입니다. 그것은 가축을 토막을 내고 전부 제단 위에 올려서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기타의 화제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먹으면 좋지가 아니한 가축의 기름과 내장 그리고 콩팥 등을 태워서 드리고 식용이 가능한 살코기는 다리 한쪽을 먼저 제사장들에게 분깃으로 주고  나머지는 백성들에게 화목의 식사를 위하여 돌려주는 것입니다.

4)    그렇지만 일단은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거제’(擧祭, 제물을 높이 들어서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을 함)요제’(搖祭, 제물을 높이 들고 흔들어서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을 하고 동시에 분깃으로 주심을 감사함)입니다. 여기서 거제와 요제라고 하는 제사의 방법을 제례의식에 관한 율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그것이 제사장과 백성을 아끼시는 여호와의 마음과 그 배려하심을 넉넉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31:14a)라고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5)    셋째, 가축과 곡식과 기름과 기타 열매들로 나누어 볼 수도 있습니다; ①가축과 곡식은 화제(火祭)로 드리는데 그것은 완전히 태워서 바치는 번제와 일부만 태워서 드리는 기타 화제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곡식의 경우에는 소제’(燒祭)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곡식 역시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번제와 같은 소제가 있고 일부만 태워서 소제로 드리고 나머지는 요제나 거제로 바치는 모양만 내고서 제사장들에게 분깃으로 주고 있습니다.  ②액체인 기름, , 포도주 등은 전제(奠祭)로 드린다고 이미 설명했습니다. ③기타 과일이냐 열매는 태우지 아니하고 예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참고로, 땅의 소산과 가축 그리고 야채와 허브 등 모든 십일조 및 성전세를 여호와께 바치는 경우에도 그것은 예물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6)    요컨대, 사람이 먹으면 좋지 아니한 가축의 기름과 같은 것들을 화제물로 삼아 여호와께서 받으시고 살코기는 전부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부위별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거제와 요제라는 제사의 방법을 구태여 도입하여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을 하고 그것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곡물의 경우에는 일부만 소제로 바치게 하고 나머지는 예물로 삼아 제사장들에게 분깃으로 주고 있습니다. 또한 십일조에 대해서도 여호와의 제단에 바치는 모양새만 갖추고 사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분깃으로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배려와 넉넉하신 도우심에 대하여  알기 쉽게 본문에서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31:14a)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4b);

1)    이 세상의 재화는 한정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재생산이 되고 있는 것일 뿐 그 전체의 양이 이미 확정이 되어 있습니다. 재화가 고무줄과 같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생물들이 그것을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하여 생존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글의 법칙’,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원색적인 용어가 사용이 되고 있으며 약간 고상하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또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재화란 모두가 행복하게 나누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2)    그런데 인류의 구원의 문제와 관련하여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4b)고 당당하게 선포를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뜻은 세상의 재화는 피조세계의 재생산의 법칙에 기속(羈束)이 되어 있기에 한정적인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새로운 창조를 통하여 플러스섬’(plus-sum)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넉넉하게 주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하늘의 곳간을 열어서라도 배불리 먹이시고 그 영적인 기근과 갈급함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면서 오병이어’(五餠二魚, 5덩어리와 물고기  2마리)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배가 고픈 청중들에게 베풀어 주십니다(14:17-21, 15:32-38). 그렇게 맛배기로 선을 보인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이 만민구원을 위해서는 풍족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31:14b, 28:18-20, 1:23, 4:19).

결론적으로, 육신을 가진 인간의 지극한 슬픔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죽음과 이별의 고통을 3일간이나 친히 경험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만민의 죄를 구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서 대속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게 됩니다. 그때 무덤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제3일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실 때까지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은 자신의 죽음만큼이나 시리고 아픈 것입니다.

그러한 고통을 당하면서 만민구원의 대속의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나 대속의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그들을 모두 성도로 삼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옳습니다(12:13, 29-30, 13:1-2). 아무쪼록 끝까지 그렇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