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59강(렘29: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0월 28일(주일)
선지자 예레미야는 신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가?(렘29:1-7)
본문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동포들에게 보내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렘29:1-7).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사신단을 보낼 때에 주화파(主和派) 사절인 엘라사와 그마랴 편으로 이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렘29:3).
그때까지 두차례의 인질과 포로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그 경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주전 605년에 즉위한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렘25:1) 메소포타미아에서 앗수르의 잔당을 완전히 소탕하고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요새지 갈그미스에 진을 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쳐부숩니다. 그 여세를 몰아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애굽의 군대를 무찌르면서 남하를 합니다. 당시 유다 왕국에는 친 애굽 정권의 왕인 여호야김이 통치하고 있습니다(단1:1). 여호야김 왕은 그때부터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기로 하고 그 증거로 귀족의 자제들을 바벨론으로 인질로 삼아 보내게 됩니다(단1:2-4). 그것이 제1차 인질사건인데 그 가운데 다니엘과 그의 3친구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단1:6).
(2) 둘째로, 제2차 인질 또는 포로는 주전 597년에 발생합니다. 그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주전 601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애굽을 정벌하려고 나섰다가 별 소득이 없이 물러나고 맙니다. 눈치가 빠른 유다 왕 여호야김은 얼른 친 애굽 노선으로 돌아서고 더 이상 바벨론으로 조공을 보내지 아니합니다(왕하24:1). 그것을 괘씸하게 생각한 느부갓네살 황제가 주전 597년에 유다 왕국을 침범합니다.
2) 둘째, 당시 유다 왕국에서는 여호야김 왕이 죽고 그의 장남인 여고냐가 여호야긴 왕으로 즉위하여 신바벨론의 대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웠지만 역부족입니다(왕하24:10-11). 여호야긴 왕은 도성을 구하고자 스스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나아가서 항복을 합니다(왕하24:12). 그에 따라 예루살렘에서는 여호야긴 왕의 숙부인 맛다니아가 정권을 잡고 엄청난 금과 은을 모아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바칩니다(왕하24:13).
3) 셋째,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다 왕국이 다시는 자신을 배반할 수 없도록 강력하게 조치합니다. 따라서 맛다니아를 유다 왕 시드기야로 삼고 친 바벨론 정권을 수립한 후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수많은 유다의 귀족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장정들을 포로로 삼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그로 말미암아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피폐해지고 맙니다. 그것이 제2차 인질사건인데 그 포로의 규모가 대단한 것입니다.
4) 넷째, 그때의 생생한 기록이 역사서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또 용사 칠천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아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왕하24:14-17).
5) 참고로, 그때 제사장 에스겔도 함께 포로로 끌려갑니다(겔1:1). 제사장 에스겔은 5년 후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이 임하여 선지자로 세움을 받고 있습니다(겔1:2-3). 그 시기는 시드기야 왕 5년인 주전 592년경입니다. 그때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바벨론에서 예언의 말씀으로 유대인 포로들을 돌보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렘24:5, 27:22).
(3) 셋째로, 갈라진 동포들은 항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적국에 끌려가서 인질로 살거나 힘든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은 그 소원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 그 옛날 모세시대에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였듯이(출2:23-25) 그렇게 바벨론에서는 수많은 유다의 인질과 포로들이 해방과 귀국을 소망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2) 그 내용은 당장에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바벨론제국의 황제를 70년간 섬기고 나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5:11-12).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현지에서 그들을 돌보실 것이니(렘24:5, 27:22) 믿고서 평안을 누리며 바벨론에게 적대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렘29:5-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그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렘29: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렘29:1);
1) 바벨론으로 유다 왕국의 인질이 처음 끌려간 때는 주전 605년입니다. 그때는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이 되는 귀족의 젊은 자제들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요청에 의하여 바벨론의 황궁으로 끌려간 것입니다(단1:4). 그들은 3년간 황궁에서 바벨론의 문물과 학문을 배우고 난 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다 왕국을 통제하는데 있어서 손과 발의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단1:5).
2) 그와 달리 주전 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인질과 포로들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그들은 당시의 유다의 왕이었던 여호야긴과 그의 신하들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들과 기술을 가진 백성들 및 군사로 동원이 가능한 튼튼한 장정들입니다(왕하24:14-16). 그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끌고 감으로 말미암아 신바벨론제국은 강성해지고 그 반면에 시드기야의 유다 왕국은 피폐하게 된 것입니다.
3) 따라서 시드기야의 유다 왕국은 자력으로는 도저히 신바벨론제국을 배반하거나 반란을 도모할 능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와 같은 때에 시드기야 왕은 매년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습니다. 대규모 사절단이 공물을 바벨론까지 운반하고 있습니다. 그때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영적인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개인적으로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렘29:1).
4) 여기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렘29:1)이라고 하는 표현은 세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북송과정에 많은 포로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사히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가 ‘남은 자’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②둘째, 포로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지 한두해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의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상당합니다. ③셋째, 선민우월사상과 반골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적국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저항과 반란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많이 희생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남아 있는’이라고 하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렘29:2);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는 유다 왕국의 사절들을 통하여 그곳에서 포로로 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서신을 보낸 때는 주전 597년 제2차 인질사건이 발생한 이후입니다. 그것은 시드기야 왕의 통치 초창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주변국의 사신들이 반(反) 바벨론 동맹을 결성하자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오는 주전 594년 이전입니다(렘27:3, 28:1). 참고로, 주전 597년에 유다 왕국을 침략한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여호야긴 왕과 왕후 그리고 내시와 고관들을 인질로 끌고 갔으며 유다 왕국의 많은 기능공과 토공까지 잡아가서 바벨론의 부족한 기술인력을 보충한 것입니다(왕하24:16).
둘째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29:3-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렘29:3);
1) 주전 597년에 유다 왕으로 즉위한 시드기야는 신바벨론제국의 영웅 왕인 느부갓네살 황제가 세운 왕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으며 매년 조공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공물을 보내면서 그 사절편으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여러가지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부디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왕국의 인질과 포로들을 잘 돌보아 달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2) 그 사절단에는 예루살렘의 명문가의 자손들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군 요시야 시절부터 유명한 대제사장 힐기야의 집안과 서기관 사반의 자손들이 그러합니다(왕하22:3-4). 여기서는 대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 그마랴이고 서기관 사반의 아들이 엘라사입니다(렘29:3).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하여 호의적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서신을 바벨론에 있는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3)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바벨론에서 인질로 그리고 포로로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대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이 70년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렘25:11-13). 참고로, 사반의 또다른 아들인 아히감과(렘26:24) 역시 사반의 아들인 서기관 그마랴가 모두 예레미야의 선지자 활동을 도와주고 있습니다(렘36:10).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29:4);
1)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왕의 시절부터 장차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다 왕국을 침범하여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갈 것이며 그들의 포로생활이 70년이나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렘25:1-2, 11-12). 여호야김 왕이 죽고 그 해 주전 597년에 유다 왕국을 침략한 느부갓네살 황제는 왕족과 귀족 뿐만이 아니라 유다 왕국의 기술자들과 장정들을 너무 많이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왕하24:14-16).
2) 적국에서의 인질과 포로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고달프기가 그지 없습니다. 따라서 몇번의 저항운동이 발생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반란과 저항운동이 발생한다면 유대인 포로들의 씨가 마를 지경입니다. 그러한 사정을 예루살렘에서 듣고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급히 조공 사절편으로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지도자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깊은 내용은 부디 여호와께서 책정하신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무사히 마치라는 것입니다(렘29:4).
셋째로,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렘29:5-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렘29:5); 농촌에서는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어 부식물을 얻으며 노동을 통하여 주곡을 얻게 되면 나름대로 터를 잡고 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곳을 고향으로 생각하면서 대를 이어가면서 살 궁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신바벨론제국의 이방 땅에서 70년의 포로생활을 견딜 준비를 하라고 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당부입니다.
(2)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렘29:6);
1) 더 이상 유대인들의 수가 줄어들어서는 안됩니다. 이방 땅 바벨론에서도 번성을 해야만 합니다. 그 옛날 애굽에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아갔을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번성의 축복을 누린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출1:12). 다시 한번 그때의 번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디 결혼을 하여 자녀를 생산하고 그 아들과 딸들이 다시 결혼을 하여 손주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2) 유대인 남자와 여자들은 자신들의 머리속에 기억이 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자손들에게 어릴 때부터 들려주고 대물림을 하라는 당부입니다. 참고로, 유대인들은 부계 뿐만 아니라 모계로도 신앙의 상속과 족보의 상속이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이방에서 오래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혈통적인 의미보다는 여호와신앙과 율법생활의 대물림이라는 독특한 종교와 문화를 통하여 민족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29:7);
(1) 특히 다음과 같은 ‘렘27:7-8, 28:14’절 말씀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그(느부갓네살 황제)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렘27:7-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렘28:14).
(2)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나라인 중동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게 되는 것이 여호와의 역사의 섭리라는 말씀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결과가 초래가 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향락을 쫓아 이방인보다도 못한 이중적인 삶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오죽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으면 므낫세 시대를 예를 들어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 쫓아낸 아모리 족속의 죄악보다 더 심하다고 여호와께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꾸중을 하셨겠습니까?(왕하21:11)
(3) 그러므로 바벨론 땅에서 유대인들은 여호와께서 메어준 쇠 멍에를 함부로 벗겠다고 저항과 반란을 도모하여 죽임을 당할 일이 아닙니다. 유배생활 70년이 확정이 되어 있으므로 그 세월을 잘 지내기 위하여 오히려 신바벨론제국의 평강을 여호와께 간구해야 합니다. 신바벨론제국이 전란에 휩싸이게 되면 많은 유대인들이 전장에 동원이 되어 죽게 되는 운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29:7)는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에게 대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을 끝까지 보살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서신을 통하여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전 597년에 대규모의 인질과 포로가 유다 왕국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들은 노예생활이 힘들어서 저항과 반란을 도모하다가 많이 희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으로 가는 사절단에게 부탁하여 편지를 보내라고 지시하십니다.
그 내용은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여호와께서 정하신 기간이므로 부디 저항하지를 말고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돌보아 이방 땅에서도 번성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삶이 아무리 힘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아버지 하나님의 돌보심과 번성의 축복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 깊은 사랑과 돌보심을 명심하고서 끝까지 힘있게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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