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46강(렘26:8-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0. 14. 06:11

예레미야 강해 제146(26: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014(주일)

 

성전의 뜰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유다 왕국의 영적인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그를 어떻게 해하고자 하는가?(26:8-11)  

 

본문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①첫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한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선민 유대인들의 마음에 가장 거리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②둘째, 유다 왕국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해치고자 하지만 막상 행동에 나설 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③셋째,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왕궁에서 나온 유다의 고관들이 지니고 있는 권한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  첫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한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선민 유대인들의 마음에 가장 거리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첫째, 그 옛날 실로에 성막이 있을 때에 대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이 저지른 잘못을 지금의 선민 유대인들이 똑같이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엘리의 두 아들의 죄악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성막의 여호와께 바치는 제물과 예물 가운데 좋은 것을 자신들이 사취한 것입니다(삼상2:14-17). 그것은 여호와께 바치는 것을 가로챈 절도 행위입니다. ②또 하나는, 회막에서 시중을 드는 여인들을 자신들의 여인처럼 잠자리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삼상2:22). 그것은 간음죄입니다. 또한 엘리 대제사장의 잘못은 두 아들의 범죄행위를 지적하면서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단죄를 하지 아니한 것입니다(삼상2:23-25).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자식들을 더 끔찍하게 아끼고 섬긴 인물입니다(삼상2:29-30). 그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2)    둘째, 그러한 동일한 잘못을 선민 유대인들이 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회개하지 아니하며 선지자들이 외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며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옛날 실로에 내린 여호와의 처벌이 그대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벌써 위탁 받고 있는 동일한 내용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7:12-15).

3)    셋째, 그 말씀이 여호와의 예언인 것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확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6:4). 선민 유대인들은 많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가장 듣기에 좋은 말씀만 선택하여 듣고 있습니다(20:6, 28:1-4, 38:1-6).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와 우리야의 예언이 가장 그들의 마음에 듣기 싫은 것입니다(26:20). 그 두 선지자의 말에 찬성하는 다른 선지자나 제사장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두 사람은 소수의견에 불과합니다. 다수의 힘으로 무시해도 좋지만 그것이 어렵습니다. 그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들이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들은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6:20, 28:14-16). 따라서 선민 유대인들이 두 사람에게서 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거짓 예언을 퍼뜨렸다고 하는 자백입니다. 그러한 자백을 받아 내고자 선민 유대인들이 우리야와 예레미야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26:20-24).

(2)  둘째로, 유다 왕국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해치고자 하지만 막상 행동에 나설 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영적인 지도자들에게는 종교적인 재판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단으로 정죄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 형벌을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다 왕국의 왕의 집행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지도자들의 재판과 선고를 받아야 처형이 가능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성전의 뜰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서 격분한 영적인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왕궁에 연락하여 재판관을 파견하여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셋째로,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왕궁에서 나온 유다의 고관들이 지니고 있는 권한이 무엇인가? 그것은 재판권과 처형권입니다. 그것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왕이 지니고 있는 권한입니다. 그것을 왕은 고관들에게 위임하여 처리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국의 높은 관리가 재판관의 소임을 맡아 지금 성전으로 행차를 한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26:8-9);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26:8); 선지자 예레미야의 도전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선포와 그에 대한 선민 유대인들의 적나라한 반응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굉장히 도전적인 것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옛날 실로가 망한 것처럼 그들도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미구에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26:4-6).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유다 왕국의 멸망과 선민 유대인들의 포로생활에 대하여 강력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으니 그것을 듣고 있는 유다 왕국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백성들은 마음이 상하기가 그지 없습니다(26:7).

2)    그들은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거짓 예언을 함부로 선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대에 선지자 우리야와 예레미야를 제외한 모든 영적인 지도자들은 정반대의 예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보전하시며 이방 강대국의 침략으로부터 지켜 주시기로 결정하셨다는 예언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습니다(20:6, 28:1-4, 38:1-4). 따라서 조국의 멸망을 버젓이 예언하고 선민 유대인들에게 적대행위를 하고 있는 예레미야를 처단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26:8). 그와 같은 민심의 향방을 파악한 성전의 총감독 바스훗 제사장이 다시 레위인들을 시켜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체포한 것으로 보입니다(20:1-2, 26:8).

(2)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26:9a); 유다 왕국의 영적인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항의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예레미야가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6:9aa).

2)    둘째, 엘리 대제사장의 시절에 언약궤를 블레셋 족속들에게 빼앗기고 실로의 성막이 끝장이 난 것처럼 예루살렘성전이 멸망을 당한다고 예언하고 있으니 그것이 잘못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선지자들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예레미야가 반대로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6:9ab, 28:1-4).

3)    셋째,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유다 왕국이 패하여 멸망을 당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감으로써 가나안 땅이 황폐하게 된다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보호하시고 이방 강대국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분쇄하여 주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왕하19:34-35) 멸시하는 행위라는 지적입니다(26:9ac).

4)    그와 같이 예레미야가 세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라고 주장하면서 유다 왕국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그를 인민재판에 붙이고자 합니다.

(3)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26:9b); 예루살렘 출신의 선지자들과 성전에서 일하고 있는 제사장들이 지금 성전의 뜰에서 예언활동을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거짓 예언을 함부로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낱낱이 열거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잘못이 세가지나 됩니다. 성전의 뜰에서 그 말을 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흥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선지자 예레미야를 둘러싸고서 그를 해치고자 합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듯이 바야흐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숨이 위험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 가운데 선지자 예레미야를 아끼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예레미야를 살리기 위하여 급히 예루살렘 왕궁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평소 선지자 예레미야의 강직함을 잘 알고 있는 높은 관리 아히감에게 그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구원을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26:24).

둘째로, 유다의 고관들이 말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26:10-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다의 고관들이 말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26:10); 유다 왕국의 높은 관리들이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벌어진 소요사태에 대하여 급보를 듣고 이제 그 사건을 해결하고자 재판관으로 참석을 하고 있습니다(26:10a). 그런데 특기사항이 본문에 두가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예루살렘성에 있는 왕궁에서 성전으로 들어오는데 그 표현이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26:10b)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왕조의 왕이 거처하고 있는 왕궁보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예루살렘성전이 더 지위가 높은 곳이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흔히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上京, 서울로 올라간다는 것)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수도로 올라간다는 의미와 왕이 살고 있는 그곳이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곳보다는 더 지체가 높다고 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 유다 왕국에서는 최상의 권위가 다윗왕조의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뜻에서 왕궁에서 성전으로 올라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26:10c)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예루살렘성전에 들어올 때에는 예루살렘성의 동문(사자문이나 황금문을 말함)을 통하여 성전의 입구인 동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미 예루살렘의 성안에 있는 왕궁에서 성전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때에도 출입문은 동문입니다. 그런데 성전의 새 대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 시대에 어떤 성전의 문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재판을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위치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형구를 갖추고 있는 베냐민 문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20:2). 그 방향은 성전의 뜰 북편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북쪽 방향에 베냐민의 땅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26:11); 영적인 지도자들이 함부로 예레미야를 처형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종교재판을 할 수는 있지만 범죄자를 처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재판권과 처형권한은 유다 왕의 소관입니다. 그러므로 왕국의 높은 관리들이 재판관으로 예루살렘성전의 새 대문 입구에 좌정하고 있는 것입니다(26:10). 그 앞에서 예레미야를 기소하고 있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먼저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을 입에 담고 있는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이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자이므로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입니다(26:11). 과연 재판관들이 어떠한 판결을 내릴까요?

결론적으로, 본문의 내용은 600여년 후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와 종교재판 그리고 로마총독에게 처형을 요구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행태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26:57, 65-66, 18:31).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정직하게 대언하였기 때문에 동족들로부터 고초를 당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당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 사명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8:17-18).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천국에 들어가신 것처럼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미래가 고난을 당한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22:28-30).

그 사실을 명심하고서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끝까지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예루살렘의 성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