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44강(렘25:35-3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0. 13. 04:55

예레미야 강해 제144(25:35-3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012()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어째서 목자의 초장에 강력하게 임하시는가?(25:35-38)

 

본문에서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첫째로, 목자들의 울부짖음입니다(25:36a). 자신의 우리에 있는 양떼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꼴로 제공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10:10). 그 때문에 양들이 어그러진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여호와의 진노로 양의 우리가 박살이 나고 양떼들이 흩어지며 이리들에게 물려서 죽게 되는 참극입니다. 그 잘못에 대하여 목자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며 회개를 해야만 할까요? 여호와께서는 그 목숨으로 그리고 그 영적인 생명으로 그 책임을 지라고 하십니다(25:35a, 32:32-35, 20:6, 28:16-17).

(2)  둘째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정치적인 지도자들의 잘못이 우선적인 것입니다. 국방을 튼튼히 하고 사회적인 기강을 바로 잡으며 근면성실한 백성을 길러내는 것이 국가의 정책 목표입니다. 그 목표의 달성에 충실하지 못하고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이 사치와 향락에 젖어서 살고 있으며, 국가권력으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하게 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질책이 대단하십니다. 그들은 그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으므로 이제는 애곡을 해야만 합니다(25:35b, 36b).   

(3)  셋째로, 여호와께서는 정치적인 지도자와 영적인 지도자만 문책하고 처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백성들에게도 그 책임을 물으시고 동일하게 처벌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의 초장이 여호와의 분노로 황폐하게 되고 그곳에서 살지 못하며 이방 땅으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25:36c, 37). 그것은 선민의 나라의 완전한 멸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25:3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목자들도망할 수 없겠고(nowhere to flee), 양떼의 인도자들도주할 수 없으리로다(no place to escape). 목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와 양떼의 인도자들이 애곡하는 소리여,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함이로다”(25:35-3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목자들도망할 수 없겠고(nowhere to flee), 양떼의 인도자들도주할 수 없으리로다(no place to escape)”(25:35);

1)    목자들은 이리떼가 달려와서 자신의 양떼를 섬멸하고자 하면 대항을 하다가 최후의 순간에는 양떼를 버리고 피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이 선민 유대인들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국의 왕과 권력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거짓 예언이라도 하면서 비위를 잘 맞추어 주면 됩니다(28:1-4). 그리고 자신들은 권력의 힘을 빌려서 영적인 권위를 누리다가 여차하면 애굽으로 피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도망할 수 없도록 역사를 섭리하시는 것입니다(25:35a, 20:6, 28:16-17).

2)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양떼를 정치적으로 통솔하고 인도하는 자들을 여기서 양떼의 인도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5:35b). 벌써 100년 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고 말았기에 지금은 유다 왕국의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일컫고 있습니다. 다윗왕조 말기의 두 왕 여호야김과 시드기야의 경우를 보면 그 운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여호야김 왕은 11년간 제멋대로 통치를 하다가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됩니다(왕하24:1). 바야흐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에 그는 죽고 맙니다(왕하24:6).

3)    그것은 온전한 피신이 아닙니다. 영원한 심판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5:29). 그 대신에 그의 아들이 왕이 되어 적들을 막다가 바벨론으로 붙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왕하24:8, 15). ②둘째, 시드기야 왕은 3년간 예루살렘성을 방어하다가 최후의 순간에 근위병들과 함께 성밖으로 도망을 칩니다(왕하25:1-5). 그러나 추격군에게 붙잡히고 자신의 눈 앞에서 왕자들이 살해가 되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두 눈이 뽑힌 채 적국으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5:7). 결코 여호와께서는 편하게 도망을 치도록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조선의 왕 선조나 한국의 대통령 이승만 그리고 북한의 주석 김일성의 경우는 참으로 예외적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거나 인도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란을 피하여 도망을 갔다가 나중에는 명나라, 미군, 중공군 등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권좌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특이한 경우가 반복이 될까요? 21세기부터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재래식 전쟁 때처럼 피신을 할 수가 없는 현대전이 전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론 영원한 심판이 아직 그들에게 버젓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5:24-29).

(2)  목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와 양떼의 인도자들이 애곡하는 소리여,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함이로다”(25:3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세 군데에 그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1)    첫째,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목자로 표현이 되고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그 책임의 대상입니다(25:36a). 그들에게 맡겨진 양떼가 이리떼의 습격을 받고 있으면 그 책임은 목자들이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코 그 책임추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2)    둘째, 정치적인 지도자들이 또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25:36b). 백성들이 방종하고 교만하며 약자를 짓밟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면서 사치와 향락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백성들의 기강을 정직하고도 청렴하게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만약 적폐의 청산을 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가게 되면 나라가 망하고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설 곳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3)    셋째, 지도자들 탓만 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하나같이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의 안위(安危, 안전과 위험)를 돌보기 위해서는 파수꾼과 같이 깨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고 맙니다(25:36c).

둘째로,평화로운 목장들여호와의 진노하시는 열기 앞에서 적막하게 되리라. 그가 젊은 사자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 그 호통치시는 분의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라 하시니라”(25:37-3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평화로운 목장들여호와의 진노하시는 열기 앞에서 적막하게 되리라. 그가 젊은 사자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25:37-38a);

1)    여기서 목장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나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나라와 백성들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은 두가지 덕분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자신들 선민을 지켜 주시는 수호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패권국이나 이방 강대국이라도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2)    그 사실은 그 옛날 출애굽 당시에 벌써 입증이 된 것입니다.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가 여호와의 재앙을 만나 항복하였으며(12:29-42)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다가 애굽의 군대가 여호와의 역사로 홍해에 모조리 수장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14:26-31). 특히 다윗왕조의 선민 유대인들은 100년전에 그러한 여호와의 역사가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에 다시 임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유다 왕국을 짓밟고 있던 앗수르 군대가 여호와의 진노로 섬멸이 되고 산헤립 황제가 겨우 도망을 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왕하19:34-35). 지금 선민들의 수호신이신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성전 지성소에 임재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3)    ②또 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굴속에 계시는 늙은 사자와 같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굴속에서 나오셔서 호통을 치시는 것이 결코 아니십니다. 그저 선민들을 지켜 보시고 그 안위를 돌보아 주시기만 하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따라 매년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만 정성스럽게 드려주면 됩니다(16:29-34). 평소에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이 여호와신앙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세속적으로 제멋대로 욕심껏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작은 일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치 우상처럼 사람들의 일방적인 편의만을 돌보아 주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선민들이 참으로 편하게 생각하면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4)    그러한 생각에 젖어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나라와 사회가 마치 평화스러운 초장과 같습니다(25:37a). 그러나 그들이 틀렸습니다. 두가지 고정관념이 박살이 나고 있습니다; ①첫째, 여호와께서는 그들 선민들만 무조건 보호하여 주시는 우상과 같은 신이 결코 아니십니다. 선민들이 이방인처럼 죄악 가운데 살아가게 되면 동일하게 처벌하십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진노로 선민 유대인들의 평화가 깨어지고 있습니다(25:37b). ②둘째, 여호와께서는 굴속에 안주하고 있는 늙은 사자가 아니라 굴밖으로 뛰어나오는 젊은 사자와 같습니다(25:38a). 창조주 여호와를 감히 이기적인 자신들의 관념의 굴속에 가두어 둔 선민 유대인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이제 강력하게 징벌하고자 하십니다.   

(2)  그 호통치시는 분의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라 하시니라”(25:38b); 여호와의 진노가 세가지로 임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 먼저 임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인 목자들과 정치적인 지도자인 왕과 귀족들에게 그 책임을 분노의 호통으로 물으시는 것입니다(25:38ba). ②둘째, 악한 지도자들에게 동조하여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 욕심과 정욕을 쫓아 살아간 백성들을 함께 처벌하십니다. 그 진노가 동일하게 극렬하신 것입니다(25:38bb). ③셋째, 그 삶의 터를 황폐하게 하고 전란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모조리 전쟁포로로 끌려가게 하고 마시는 것입니다(25:38bc).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들을 돌보아 주시고 모든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며 인생 가운데 평화를 지켜 주시는 줄 그렇게 믿고자 합니다. 그 옛날 예레미야 시대의 선민 유대인들의 생각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믿고자 하는 대로 그렇게 행동하시는 수호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사람들의 소원성취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우상이 아닙니다. 모든 창조물을 똑같이 돌보시고 공평하게 그 생명을 두루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이방인들과 같은 죄악을 범했으면 동일하게 여호와의 처벌을 받게 될 따름입니다. 그 결과 선민 유대인들의 평화스러운 초장은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며 소위 적막강산(寂寞江山)으로 변하고 맙니다. 영적인 지도자들과 정치적인 지도자들이 뒤늦게 후회를 해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방적이고도 이기적인 관념 가운데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가두어 버리는 그러한 어리석은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깊이 깨닫고 실천하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