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22강(렘22:16-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9월 20일(목)
여호야김 왕이 다윗 대왕과 달리 어떻게 처신을 하였기에 여호와의 버림을 받고 마는가?(렘22:16-19)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유다의 왕 성군 요시야의 의로운 행적과 그의 아들로서 애굽의 바로와 내통하여 동생 여호아하스의 왕좌를 불의하게 차지한 유다 왕 여호야김의 행적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본문 앞에서 이미 의미상 거론하고 있는 다윗왕조의 시조인 다윗 왕의 행적과 그의 아들인 솔로몬 왕의 행적을 비교하면서 유다 왕국 말기의 왕들에 대하여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볼 수가 있는지를 먼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왕이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돌보지 아니하고 불의하게 자신의 왕궁을 크게 지으며 부정한 방법으로 많은 재물을 거두어 자신의 다락방에 계속 모아 들이고 또한 백성들을 국가권력으로 압박하여 세금을 많이 거두고 강제로 부역공사에 계속 동원하게 되면 그러한 왕은 여호와의 진노를 사게 된다고 본문에 앞서 제 13절에서 벌써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라를 통치한 왕은 다윗왕조에 있어서 그 시조인 다윗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솔로몬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소원하여 지혜의 왕이 되었지만 통치 후반기에 가서는 국가권력으로 백성들을 압박하였으며 1,000명의 처첩과 함께 그의 화려한 궁궐에서 온갖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지혜와 영광을 추구하고 맙니다. 그러한 사실을 본문에서는 그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으며(렘22:16), 압박과 포악을 행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렘22:17).
(2) 둘째로, 다윗의 행적은 그의 아들인 솔로몬과 다릅니다; 다윗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자신의 왕궁을 지은 것이 아니라 돌로써 튼튼하게 산성을 지어 선민의 나라와 강토를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고자 합니다(렘22:15a). 그리고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돌아보아 결코 부당한 세금과 많은 부역을 강요하지 아니합니다(렘22:15b). 선민의 왕국을 침략하고 있는 주변의 적들을 소탕하고 얻은 그 전리품을 군사들과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 다윗 왕입니다. 그렇게 솔로몬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기에 본문에서는 그를 여호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서 행동한 형통한 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렘22:16).
(3) 셋째로, 다윗의 행적과 요시야의 행적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행적과 여호야김의 행적이 또한 비슷합니다. 다윗과 요시야 왕이 서거하였을 때에는 만백성이 크게 슬퍼하고 통곡을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압제한 솔로몬과 여호야김이 죽었을 때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렘22:18). 그러므로 부친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같은 정책을 추진한 그의 아들 여호야긴 왕 역시 예루살렘 성밖으로 끌려가서 끝내 이방 땅 바벨론에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렘22:19, 왕하24:15). 그러나 다윗과 요시야의 믿음과 선정을 기억하시는 여호와께서는 훗날 여고냐를 방면하여 다윗의 가문을 이어가게 하십니다(왕하 25:27-3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렘22:16-1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2:16);
1)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한 다윗왕조의 왕인 다윗과 요시야는 여호와의 보살핌으로 형통한 왕이 되고 성군으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러하지 못한 다윗의 후계자 솔로몬 왕과 요시야의 후계자들인 여러 왕들은 여호와의 눈 밖에 나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다윗왕조의 나라가 둘로 쪼개어지거나 아예 멸망을 당하는데 그들이 크게 기여하고 맙니다.
2) 여기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렘22:16a)한다는 것은 본문 앞에 기록이 되고 있는 말씀,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것”(렘22:13)과 정반대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선민의 나라의 왕이 가난한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아니하고 자신의 궁궐을 크게 짓고 조세와 공물을 많이 거두어 많은 처첩과 함께 궁중에서 탕진을 하게 되면 여호와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장정들을 계속 동원하여 부역을 시킨다면 백성들이 농사를 제때에 짓지를 못하여 그 삶이 궁핍해지고 맙니다. 그것 역시 궁핍한 자를 돌보라고 명령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왕들은 형통하지를 못합니다. 예를 들면, 지혜의 대왕으로 불리고 있는 솔로몬의 통치 후반기가 그러합니다. 따라서 그의 후계자 르호보암 왕 때에 나라가 둘로 쪼개어지고 맙니다. 또한 다윗왕조 말기의 왕인 여호야김이 그러합니다. 그에 따라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침입으로 적국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2)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렘22:17);
1) 다윗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는 달밤에 목욕을 하고 있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서 탐하게 됩니다. 그리고 통간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그 남편 우리야를 흉계로 살해하고 맙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계획하여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십계명을 어겼으므로 선민의 나라의 왕으로는 이제 실격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다윗 왕에게 보내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합니다.
2)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이 회개를 하면서 여호와의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가 계속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그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여호와 앞에 회개하지 아니하는 왕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압박하고 포악한 통치를 계속합니다. 그러한 왕들이 다스리고 있는 시기가 다윗왕조의 말기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진노로 선민의 나라가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렘22:1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22:18a);
1)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다윗왕조의 말기의 왕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잘못을 질책하게 하십니다. 그 가운데 여호아하스 왕과 여호야긴 왕은 각각 3개월간 짧은 통치를 하다가 적국으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왕하23:30-34, 34:8-15). 그들이 즉위한 시기가 전운이 감도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준비만 하다가 적군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폐위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정치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여호아하스 왕은 애굽으로,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만 것이기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 비운의 두 왕들에게 대하여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한 것은 주로 여호야김 왕과 시드기야 왕에게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렘1:3).
2) 두 왕의 운명은 비슷합니다; ①첫째, 그들은 각각 애굽의 황제 바로 느고에 의하여(왕하23:34), 그리고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유다의 왕으로 책봉이 됩니다(왕하24:17). 그렇지만 다윗왕조의 범같은 신하들이 여건만 성숙이 되면 자주 독립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가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내정간섭을 계속 받고 있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선민 유대인들의 자존심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야김 왕과 시드기야 왕은 각각 11년간 유다 왕국을 통치하는 동안에 어떻게 하면 외세인 애굽과 신바벨론의 지배를 벗어날 수가 있는지를 계속 모색한 것입니다. ②둘째, 그들 두 왕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성군 요시야가 아니라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전철을 밟았다는 것입니다(왕하23:25-27). 역사서에서는 여호야김이 악한 왕 므낫세의 정책을 따르고 시드기야는 악한 왕 여호야김의 본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23:37, 24:3, 18-20). 따라서 본문에서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22:18a)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렇지만 두 왕의 최후의 모습은 상당히 다릅니다; 여호야김 왕은 애굽과 바벨론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나중에는 신바벨론 황제의 미움을 단단히 사게 됩니다(왕하24:1-2). 따라서 느부갓네살 황제의 재침이 예견이 되고 있으며 전운이 짙어 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에 공교롭게도 여호야김 왕이 승하하게 됩니다(왕하24:6). 여호야김 대신에 그의 아들인 여호야긴이 왕이 되는데 그는 참으로 불운한 왕입니다. 부왕 여호야김을 대신하여 갈대아 군대의 침입을 받고 끝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왕하24:15). 여호야김과는 달리 시드기야 왕은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끝까지 항전을 합니다. 시드기야 왕은 천혜의 요새지인 예루살렘성에 틀어 박혀서 3년간 버티다가 끝내 성이 함락이 되자 도망을 칩니다(왕하25:1-5). 그러나 붙잡혀서 왕자들이 참살을 당하는 광경을 직접 보게 되고 자신은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6-7).
(2)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렘22:18b);
1) 므낫세의 전철을 밟고 있는 악한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역사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3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왕하24:1-4). 한 마디로, 므낫세 시대와 같이 여호야김의 시대가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렘22:17)는 것입니다.
2) 요컨대, 므낫세 왕처럼 여호야김 왕은 여호와의 버림을 받고 그의 왕국이 망하는 광경을 직접 그 눈으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가 짊어져야만 하는 죄짐을 그의 아들이 대신 지고서 적의 인질이 되어 끌려 가게 됩니다. 유다 왕국의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우상을 섬기며 포악하게 통치를 한 여호야김 왕입니다. 그는 애굽과 신바벨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마침내 나라의 운명마저 풍전등화가 되도록 만든 왕입니다. 그는 운이 좋게도 신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3개월 전에 죽고 맙니다(왕하24:6, 8).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망조가 들도록 모든 악한 일을 도맡아 하다가 편히 전란 초기에 눈을 감게 되니 그것을 바라보는 신하들과 백성들이 분통이 터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렘22:18b)는 여호와의 예언이 여호야김 왕의 장례식에 그대로 응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렘22:19);
(1) 두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①하나는, 바벨론 갈대아 군대가 침입하여 여호야김 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고 힌놈의 골짜기에 매장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 왕이 폐위를 당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두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2) 고대 유다 왕국에서 왕과 귀족들의 시신은 돌관에 넣고 바위 굴속에 안장을 합니다. 매장을 하는 경우는 무연고자나 죄인들의 시신 그리고 가축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성을 점령합니다. 여호야긴 왕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북송합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조공을 끊어버린 괘씸한 여호야김 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예루살렘성 ‘분문’(糞門, the Dung Gate)을 통하여 ‘힌놈의 골짜기’에 버립니다. 그곳에 마치 가축의 주검처럼 매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렘22:19).
결론적으로, 성군 요시야가 전란 중에 갑자기 죽고 나자 다윗왕조에는 두개의 노선이 대립하게 됩니다; ①하나는 제 맘대로 유다 왕국의 해변길을 따라 북상하고 있는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를 상대하여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자주 독립국임을 온 천하에 밝히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군 요시야 왕의 노선인데 그의 중신들이 그 노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애굽의 바로를 계속 섬기는 것이 유다 왕국의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대주의자들입니다.
중신들이 의논하여 똑똑한 왕자 살룸을 신왕으로 모시고 바로 느고의 군대를 상대할 준비를 합니다. 그가 여호아하스 왕인데 그는 불운합니다. 3개월 만에 반란을 만나서 애굽 왕에게 인계가 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유다 왕국의 사대주의자들이 애굽의 바로 느고와 은밀하게 내통하여 여호아하스 왕을 잡아서 넘긴 것입니다. 그리고 살룸의 형인 엘리아김을 신왕으로 옹립합니다.
사대주의자들이 많은 금은보화를 애굽에 바치자 바로 느고는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고 유다의 왕으로 책봉합니다. 그렇지만 똑똑한 동생을 음모로 해치우고 왕좌에 오른 여호야김 왕의 통치가 형편없습니다. 그는 성군인 요시야의 노선을 따르지 아니하고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전철을 정확하게 밟아갑니다. 그 결과 통치 11년만에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오게 되는 위기를 맞이하고 맙니다.
여호야김은 운이 좋게도 예루살렘 함락 3개월 전에 죽고 그의 아들이 왕이 되어 대신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처벌은 죽은 여호야김 왕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의 죽음을 백성들이 슬퍼하거나 애통해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의 무덤이 파괴가 되고 그 시신이 힌놈의 골짜기에 마치 가축의 주검처럼 매장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렘22:18-19).
이스라엘의 역사서에서는 여호야김이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뒤를 따르고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본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24:1-4, 18-20). 그만큼 유다 왕국 말기의 왕 가운데 악한 왕이 여호야김입니다. 따라서 그를 책망하는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시고 본문의 내용을 다시 음미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호야김의 노선이 아니라 성군 요시야의 노선을 따라서 복음사역에 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예루살렘성의 성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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