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21강(렘22:13-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9. 19. 02:22

예레미야 강해 제121(22:13-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919()

 

여호야김 왕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무엇인가?(22:13-15)

 

성군 요시야 통치 13년인 주전 627년에 약관의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그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가 됩니다(1:1-2). 그는 유다 왕 시드기야 통치 11년인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인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예루살렘성전과 솔로몬의 궁궐이 불타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39:1-14). 예레미야가 41년 동안 조국이 망할 때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서 선지자활동을 하는데 그 기간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말기에 해당합니다(1:3).

성군 요시야의 뒤를 잇고 있는 4명의 유다 왕들의 통치기간 22년이 말기입니다. 그 말기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집중적으로 임하고 그의 선지자활동이 활발합니다(1:3). 당시의 4명의 유다 왕은 다윗왕조에 있어서 요시야의 아들 3명과 손자 1명입니다(대상3:15-17). 먼저 그들이 차례로 왕좌에 즉위하게 된 배경과 당시의 국내외사정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더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는 관건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주전 701년에 사경을 헤매고 있는 히스기야의 예루살렘성을 구해 주십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두가지입니다;

1)    첫째, 유다 왕국의 모든 성읍을 정벌하고 이제 그 수도인 예루살렘성을 장기간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는 산헤립 황제의 앗수르 군대가 오만방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여러 나라와 족속을 쳐부수었는데 그것은 원주민들의 수호신을 앗수르의 군대가 징벌한 결과라는 것입니다(왕하18:33-35, 19:12-13). 그러므로 약소국인 유다 왕국의 수호신인 여호와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으므로 히스기야 왕과 백성들이 더 이상 여호와를 믿고 앗수르에 대항을 하지 말고 속히 성문을 열고 항복을 하라는 것입니다(왕하18:32, 19:10-11).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권능을 멸시하고 있는 엄청난 신성 모독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서 앗수르 군대를 멸절시킬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왕하19:28, 32-34). 실제로 그날 밤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병사 185천명을 쳐죽이고 마십니다(왕하19:35).  

2)    둘째,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왕 다윗의 후계자들이 다스리고 있는 다윗왕조를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13:22). 특히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왕하19:34)라고 선언하고 있는 이유는 다윗의 눈물을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한때 자신이 잘난 줄만 알고서 장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서 간음을 합니다(삼하11:2-5). 그리고 선봉장인 우리야를 흉계로 전사를 당하도록 만듭니다(삼하11:14-17). 다윗왕은 자신이 여호와의 종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십계명을 가볍게 여기고 정면으로 어긴 것입니다.

3)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자 다윗은 눈물로써 회개를 합니다. 그 보응으로 남은 평생 칼날 위에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징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으니 부디 여호와를 경외하는 종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삼하12:7-16). 그러므로 다윗의 후계자인 히스기야 왕 역시 남은 인생을 다윗처럼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왕하19:34-35). 이제 히스기야 왕이 그동안 여호와가 아니라 애굽의 원군을 의지하고 있던 자신의 잘못을 예루살렘성전에서 눈물로 회개하고 있습니다(왕하18:21, 24, 19:9, 19). 그러므로 그 결심 그대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여호와의 뜻에 맞게 잘 통치할 수 있도록 히스기야 왕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것입니다(왕하19:34-35).

(2)  둘째로, 구원을 받은 유다 왕 히스기야와 신하들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이 겸손하게 여호와의 종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서 살아갔을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이 잘 나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인 앗수르를 물리친 것으로 대내외적으로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1)    첫째, 앗수르에 의하여 이웃나라로 쫓겨난 바벨론 망명정부의 왕이 사절단을 히스기야 왕에게 보내어 반 앗수르 동맹을 맺자고 제안했을 때에 히스기야 왕이 그들 앞에서 자신의 위세를 높이고 유다 왕국의 부강함을 자랑한 것이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왕하20:12-13).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세상자랑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히스기야의 다윗왕조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장차 바벨론에 의하여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왕하20:14-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왕이 회개하지를 않습니다. 당대에 자신이 끝까지 왕의 복을 누리고 유다 왕국이 건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왕하20:19). 그것은 영생하시는 여호와 앞에 겸손하게 서있는 종의 모습이 아니라 현세적인 왕의 복을 누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는 기복적인 우상문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2)    둘째, 그와 같은 히스기야 왕의 잘못된 현세적인 기복신앙을 보고 배운 자가 그의 아들인 므낫세 왕입니다. 유다 왕 므낫세는 다윗왕조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사악한 왕이 되고 맙니다(왕하21:11-14). 그는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모든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며 심지어 자신의 왕국의 번영을 위하여 왕자를 인신제사로 바칩니다(왕하21:2-6). 그리고 전국에 무죄한 약자의 피가 흘러 넘치게 하는 포악한 통치를 합니다(왕하21:16). 더욱 악한 일은 55년간 통치하면서 한번도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선포하지 아니하였기에 그만 전국적으로 여호와의 절기와 경전이 모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왕하22:8, 23:21-23).

(3)  셋째로, 여호와의 절기가 사라지고 경전이 없어 율법을 배울 수가 없으므로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여호와 앞에 깨닫지를 못하고 맙니다(3:20). 그것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멸망을 당하고 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1)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왕이 요시야입니다. 그는 통치 18년에 신하들이 우연히 예루살렘성전에서 신명기 두루마리를 발견하여 올렸기에 그 내용을 읽게 됩니다(왕하22:8-10). 생전 처음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기록으로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에는 축복의 언약과 저주의 언약이 동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6:1-3, 8:11-20, 28:1-14, 15-68). 그런데 신명기의 내용이 여호와신앙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멀지 아니하여 나라가 망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고 만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29:19-29, 왕하22:13, 16-20).

2)    요시야 왕은 통분하여 자신의 왕복을 찢고서 죄인의 모습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갑니다(왕하22:11-13, 19). 그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죄인의 심정으로 모든 이방신상과 우상을 철거하고 유월절의 절기를 지키라고 강조합니다(왕하23:1-23). 그러나 통치 31년에 므깃도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갑자기 죽게 됨으로써(왕하23:29-32) 그의 개혁의 노력이 백성들의 마음에 뿌리를 박지 못하고 그의 계승자들에 의하여 그만 허사가 되고 맙니다(왕하23:25-27).

(4)  넷째로, 앗수르의 갈그미스 요새를 치고 시리아 땅을 정복하고자 애굽의 바로인 느고가 군대를 이끌고 유다 왕국의 해변길로 북상을 하고 있습니다(왕하23:29). 주전 609년의 일입니다. 당시의 국제정세는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놓고서 앗수르와 신바벨론이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성군 요시야 말기의 일이므로 조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가까스로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난 바벨론이 주전 612년에 은밀하게 메대와 연합하여 앗수르제국의 수도인 니느웨를 기습하여 일거에 점령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티크리스 강 상류 니느웨와 그 일대를 잃어버린 앗수르는 전군을 동원하여 유프라테스 강 중류에서 신바벨론과 총력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북부 시리아를 지키고 있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요새지 갈그미스에 병력의 수가 격감하고 서쪽의 시리아의 땅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가 됩니다. 그 틈을 보고서 애굽의 바로인 느고가 시리아 땅을 차지하고자 갈그미스로 원정에 나선 것입니다.

2)    그런데 문제는 유다 왕국의 해변길을 거쳐야 북부 시리아로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애굽의 바로가 주전 609년에 유다의 성군 요시야에게 해변도로를 빌리자고 요청을 합니다. 바로 느고의 정북가도’(征北假道, 북쪽의 시리아 앗수르를 치고자 유다 왕국의 길을 빌리자는 것)의 요청을 두고서 다윗왕조의 중신들은 의견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대주의적인 친() 애굽파와 자주독립을 강조하는 성군 요시야파의 대결구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논쟁이 그치지를 아니하자 요시야 왕이 결단을 내립니다; “일단 해변길의 요새지 므깃도에서 바로 느고의 군대를 막되 요시야 왕이 변복을 하고서 후미에서 은밀하게 지휘를 한다는 것입니다”.

3)    하지만, 유다 왕국의 비극적인 내부갈등이 성군 요시야의 참담한 죽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친 애굽파가 은밀하게 다윗왕조의 정책을 애굽의 바로인 느고에게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바로 느고는 저격수를 배치하여 후미에서 변복을 하고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요시야 왕을 꿰뚫게 합니다. 중상을 입은 요시야 왕이 예루살렘으로 후송이 되는 도중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왕하23:29). 요시야 왕을 지지하는 중신들이 백성들과 단합하여 똑똑한 왕자 살룸을 후계왕으로 삼고 신왕 여호아하스를 중심으로 대동단결하여 바로 느고의 군대와 일전을 준비하고자 합니다(왕하23:30, 대상3:15).

4)    그렇지만 친 애굽파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은 살룸의 형인 왕자 엘리아김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고 갈그미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남하를 하고 있는 바로 느고와 내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호아하스 왕은 즉위한지 3개월만에 적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왕하23:31-34). 적과 내통한 신하들이 은밀하게 애굽의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끌어 들여서 여호아하스 정권을 타도한 것입니다. 다윗왕조가 바야흐로 내우외환의 위기로 외세를 섬기는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친 애굽파들은 많은 금은보화를 바로 느고에게 주고서 충성을 맹세합니다(왕하23:33, 35). 바로 느고는 그들이 옹립하고 있는 왕자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고 정식 유다의 왕으로 책봉합니다(왕하23:34). 따라서 애굽의 바로를 섬기는 속국 여호야김의 유다 왕국이 그렇게 출범하고 마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여호야김이 통치하는 11년 동안에 국제정세가 소용돌이를 치고 있습니다(왕하23:36). 주전 605년에 앗수르를 패망시킨 신바벨론제국이 갈그미스를 점령하고 시리아 전역에서 애굽의 군대를 물리치고 맙니다. 그에 따라 유다 왕 여호야김은 애굽을 버리고 친 바벨론으로 외교노선을 변경합니다. 그런데 주전 601년에는 애굽으로 쳐들어간 신바벨론이 승리를 얻지 못하고 후퇴를 합니다. 그러자 여호야김 왕은 다시 친 애굽으로 노선변경을 합니다(왕하24:1). 그것이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된 요인이 되고 맙니다(왕하24:2-4). 그리고 그것은 다윗왕조의 뼈아픈 패착입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황제의 신바벨론이 강성하게 되고 그 반면에 바로의 애굽의 세력이 약화가 되어 다시는 가나안 땅에 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왕하24:7). 마치 조선 중기에 청나라를 멸시하고 명나라를 계속 섬기고자 한 인조와 그 신하들의 사대주의적인 잘못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6)    세력을 결집한 느부갓네살 황제가 주전 597년에 유다 왕국을 침공하고자 합니다. 그 묘한 시기에 여호야김 왕이 죽게 됩니다(왕하24:6). 그의 아들인 여고냐가 즉위하여 여호야긴 왕으로 불리며(대상3:16-17) 3개월 동안 느부갓네살 황제의 침략에 대비를 합니다(왕하24:8). 그러나 중과부적(衆寡不敵)입니다. 너무나 사대외교에 의존하고 있던 다윗왕조 유다 왕국인지라 자주국방의 능력이 약하여 그만 침략군에게 무릎을 꿇고 맙니다. 여호야긴 왕이 폐위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그의 숙부인 맛다니야가 친 바벨론 정권의 왕이 됩니다(왕하24:10-17). 그 이름이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개명이 된 시드기야입니다(왕하24:7).

7)    시드기야가 유다 왕국을 11년간 통치하게 되는데 그 동안에 국내적으로 자주독립노선을 추구하는 주전파가 득세를 하게 됩니다. 그들은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고무가 된 광신주의자들입니다(28:1-4). 100여년 전 히스기야 왕 때에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고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선민의 영광을 온세상에 떨친 것처럼 다시 한번 그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내정간섭을 일삼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를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유다 왕국이 물리칠 것이며 선민의 영광을 되찾게 된다는 것입니다(28:1-4, 38:1-6). 그러한 주전파의 주장이 맹신적인 위험한 거짓 예언에 기초하고 있음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일이 지적하고 있지만 그들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가 않습니다(38:17-28). 그 결과 시드기야 왕 11년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역사 가운데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1-7, 39:1-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22:13);

(1)  본문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왕국 말기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1:3). 특히 본문은 제18절의 말씀을 참조하면, 여호야김 왕에 대한 경고입니다. 여호야김 왕은 애굽의 바로 느고가 책봉한 유다의 왕이므로 친 애굽 노선의 괴뢰정부의 왕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왕하23:34).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후계자들이 다윗왕조를 계승하고 선민의 나라를 이끌어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본문에서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그 요체는 불의와 부정과 착취로 왕권을 행사하지 말고 여호와의 공의와 사회적인 정의를 실천하고 백성들이 정당한 몫을 얻을 수 있도록 국가를 운영하라는 것입니다(22:13).

(2)  그런데 여호와의 공의와 사회적인 정의 그리고 과세 및 부역의 공평성들의 문제에 있어서 그 우선순위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1)    첫째,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경영함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가치가 그 나라를 여호와 보시기에 불의하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움직여 나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22:13a). 여호와의 공의는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돌보고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는 정신입니다.

2)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은 그 옛날 그들의 언약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주변의 이방인들을 적이나 원수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여호와가 창조주이심을 알려주고 여호와를 올바로 섬길 수 있는 말씀과 율법을 전해주어야 합니다(12:1-5). 그리고 창조주이신 여호와 앞에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율법에 따른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어야 합니다(19:6). 그러한 여호와의 공의를 실천하라고 하는 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맡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은 이유이며 목적이라는 것입니다(19:4-6, 5:43-48, 12:39).

3)    둘째,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이 선민의 나라를 세우는 1층이라면 그 2층인 다락방을 세우는 것은 사회적인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22:13b). 그것은 선민사회에서 생계가 막막한 과부와 고아를 돕고 살 길을 모색하여 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율법으로 다음과 같이 벌써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22:22-24).

4)    셋째, 권력을 행사하여 돈을 주지 아니하고 제마음대로 약자를 노예처럼 부려먹는다고 하면 그러한 나라는 여호와를 섬기는 선민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솔로몬 대왕의 후반기의 통치가 그러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성전과 자신의 궁전을 크게 짓는데 20년 동안 국고를 낭비하고 맙니다. 그 결과 국가재정이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유다 지파를 제외한 다른 지파를 차례로 동원하여 한달씩 국가재정을 책임지고 또한 전국에 건설하고 있는 공사를 진행하라고 강요합니다(왕상9:16-19).

5)    그렇게 2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무거운 세금과 부역 때문에 이스라엘 10지파가 다윗왕조를 싫어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그 이듬해에 북쪽의 10지파가 독립을 하고 갈라져 나간 것입니다(왕상12:12-20). 그런데 유다 왕국 말기의 왕들이 솔로몬의 그 악정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22:13c)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22:14);

(1)  솔로몬 대왕은 여호와를 위하여 7년 동안 예루살렘성전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건축합니다(왕상6:38). 두로 왕 히람에게 부탁하여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오고 목공와 석공을 불러서 예루살렘성전을 완성한 것입니다(왕상5:8-18).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제국의 황제인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자 13년 동안 왕궁을 건축합니다(왕상7:1).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무려 1,000명의 처첩과 함께 생활을 할 수 있는 궁궐이기 때문입니다(왕상11:3).

(2)  예루살렘성전과 솔로몬의 궁궐 가운데 그 규모가 더 크고 화려한 것은 당연히 그의 왕궁입니다. 대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하여 궁궐의 붉은 빛이 화려합니다. 그리고 역시 아름드리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솔로몬의 왕궁을 지은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성전보다는 왕이 자신의 궁궐을 위하여 더 많은 돈을 사용하고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권위보다 자신의 권위를 더 높이고자 하는 무언의 행동입니다. 그와 같은 잘못을 다윗왕조 말기의 왕들이 반복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22:14)는 여호와의 질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셋째로,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22:15);

(1)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튼튼하게 왕궁을 짓는다고 하여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강성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잘 먹고 잘 산다고 하여 형통한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주십니다;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22:15)는 것입니다.

(2)  그 말씀은 그 의미에 있어서 솔로몬과 다윗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제국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기 위하여 화려하고도 웅장하게 왕궁을 짓고 나라의 부강함을 먹는 것과 마시는 것으로 크게 드러낸 왕입니다(왕상7:1-12, 10:5). 그에 비하여 사울 왕의 조그마한 이스라엘 왕국을 대제국 이스라엘로 건설한 다윗은 그렇게 행동한 왕이 아닙니다. 그는 백향목으로 화려한 궁궐을 지은 것이 아니라 돌로 튼튼한 시온산성을 건축합니다(삼하5:9).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을 부하들과 함께 검소하게 한 왕입니다(삼상21:3-6, 삼하17:27-29). 그렇게 살아간 다윗이 여호와 보시기에 형통한 왕입니다(22:15).

결론적으로, 오늘날 화려한 솔로몬의 궁궐도 그가 지은 예루살렘성전도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 대신에 히브리정경에는 150편의 영적인 시가가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윗의 이름으로 73편의 시가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적인 화려함과 영광을 추구한 솔로몬은 단지 2편의 시만을 남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의 생애를 어떻게 비교하여 평가하고 계시는지를 단적으로 그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시면서 본문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