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74강(렘13: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8월 3일(금)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하는 교만을 버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띠를 띠고서 헌신하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렘13:8-11)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유프라테스 강가에 둔 허리띠가 썩어서 쓸 수가 없게 되었다는 그 비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의미를 먼저 묵상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허리띠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예레미야가 시장에 가서 돈을 주고 사서 자신의 허리를 묶고 있는 베띠입니다(렘13:1-2). ②또 하나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아름다운 띠를 만들어 제사장들이 허리를 묶고 있는 채색띠입니다(출28:39-40). 그 가운데 세상사람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그 흔한 베띠를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명령으로 하나 사서 허리를 매고 있습니다(렘13:1-2).
(2) 둘째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 베띠를 물에 적시지 말고 마른 상태로 유프라테스 강가에 가지고 가서 잘 묻어 두라고 말씀하십니다(렘13:1, 4-5). 그리고 여러 날 후에 그곳으로 다시 가서 그 베띠를 찾아서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십니다(렘13:6).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어떠한 변화가 그 베띠에 발생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한 마디로, “썩어서 더 이상 허리띠로는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렘13:7).
(3) 셋째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렘13:9)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띠가 썩는 것처럼 선민 유대인들의 교만이 썩게 된다는 그 말씀의 뜻을 풀이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개선이 되지를 못하고 더욱 악화가 된다고 하는 의미로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띠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완전히 부패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를 유일한 창조주이며 자신들의 인생과 왕국의 주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이방신상과 우상을 도입하여 자신들의 현세적인 소원을 이루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도 우상의 하나로 여기고 마는 세속적인 교만에 빠진 자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이방인들의 제국에서 오래 살게 되었으니 무신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우상문화 가운데 완전히 매몰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 이방인 제국의 포로로 살게 되면서 이제는 세상의 문물과 여러 세상종교의 노예로 살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2) 둘째, 선민들의 교만이 포로생활을 하는 고난 가운데 청산이 된다고 하는 좋은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수도이며 왕국의 지도자들과 기득권층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 선민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종으로 살지를 아니하고 자신들이 이 세상의 유일한 선민이며 주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참으로 큰 교만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유다 여러 성읍에 살고 있는 일반백성들도 선민의 교만이 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태도가 신바벨론제국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일단 청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4) 넷째로, 그러나 완전하게 청산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그 다음의 여호와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렘13:10); 완악한 마음을 따르고 있으므로 그 마음속에서 우상문화가 완전히 청산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노예인 이스라엘의 수호신으로 그리고 우상의 하나로 보았기에 그 마음이 끝까지 완악하여 10가지 재앙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그 완악한 마음을 청산하지 못하면 여호와의 일꾼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방 땅에서 썩어버린 베띠가 주고 있는 교훈입니다.
2) 둘째,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내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렘13:11);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은 특별한 채색의 허리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띠로 허리를 묶어야 여호와의 종으로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허리띠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의 종으로 하나님의 목전에서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는 마음의 자세와 몸의 태도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베띠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마음과 행동만은 제사장의 채색 허리띠를 띠고 있는 것처럼 처신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그리고 제사장나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러한 모범을 훗날 여호와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확하게 교훈으로 그리고 공생애로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가 바로 여호와께서 만민구원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허리띠이며 새 포도주를 담고 있는 새 부대라고 하겠습니다(막2:2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렘13:8-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13:8-9a);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다가와서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의 인격으로 선지자에게 다가와서 음성으로 말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훗날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3위1체의 한 위격이심을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 제1장에서 기록하고 있는데(요1:1-3, 14) 그러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창세기 제15장에서도 그러한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창15:1).
2) 또 하나는, 그 다음에 예레미야가 적고 있는 내용이 참으로 중요하며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대목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13:9a)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당시 선민 유대인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모든 성도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인류들에게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와 같은 중요한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법칙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서 그 다음 구절을 음미하라는 것입니다.
(2)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렘13:9b);
1)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 백성들이 앗수르 변경으로 끌려가버린 이후(왕하17:5-6, 22-23) 이 세상에 선민의 족보를 유일하게 보전하고 있는 나라가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선민의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2) 더구나 주전 701년에는 중동의 패권국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의 성밖에서 전멸을 당하고 마는 대 사건이 여호와의 신위적인 능력으로 발생하고 맙니다(왕하19:34-35). 그러므로 앗수르제국이 망할 때까지 유다 왕국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은 얼마나 자신들의 위세를 세상적으로 자랑하고 있는지 모릅니다(왕하20:13).
3) 그들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겨우 구원을 받은 줄 깨닫지를 못하고 자신들이 잘나서 강대국 앗수르를 물리친 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으로 제멋대로 살다가도 마지막 순간에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서 히스기야 왕처럼 여호와의 구원을 호소하면 또다시 유다 왕국이 적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왕하19:14-19, 렘28:1-4). 따라서 그들은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고 현세적인 탐욕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4)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 왕의 시대는 우상문화가 성행을 하고 죄악이 만연합니다(왕하21:11-13). 그것을 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이 청산을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그러므로 요시야의 뒤를 이은 4왕이 모두 므낫세의 본을 따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살아갑니다. 그 결과 선민의 지도자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성의 교만이 극심하여 여호와의 심판의 기준에 도달하고 맙니다(왕하23:25-27). 유다 백성들이 모두 교만하므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망하고 맙니다.
5) 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도 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인본주의적인 문물과 우상문화에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맙니다. 그 결과 예레미야가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되찾아온 허리띠가 완전히 썩어서 못쓰게 된 것처럼(렘13:7) 유대인들이 이방 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히 부패하여 이방인처럼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13:9b).
둘째로,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렘13:10);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렘13:10a);
1)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정의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거절하게 되면 그것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이라고 하는 개념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 뜻을 거절하며 제멋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선’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2) 훗날 예수님께서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뜻은 모든 피조물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요3:16). 그러므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선’이며 해치는 것은 그 어떠한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악’에 속한다는 것입니다(막3:4).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에 선민 유대인들이 악한 백성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면서 자신들의 육신적인 욕심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2)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렘13:10b);
1)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를 계속 거절하게 되면 마침내 그 마음이 완전히 여호와를 떠나서 완고하게 변하고 맙니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소원으로 성취하기 위하여 세상적인 신을 찾게 됩니다. 이 세상의 이방신과 우상들은 제물을 많이 바치고 정성을 보이게 되면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하는 참으로 편리한 도구입니다.
2) 사람이 만든 우상은 여호와 하나님처럼 창조주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기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하라고 하는 그러한 무리한 요구를 사람들에게 절대로 하고 있는 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방신과 우상이 영적으로 타락한 선민 유대인들의 마음에 쏙 들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유대인들이 이방신상과 우상을 도입하여 얼마나 열심히 섬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일부 유대인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제는 우상의 하나로 생각하고서 성전에 들어가서 마치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있습니다.
(3)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렘13:10c); 그러한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생활과 우상을 섬기는 완악한 마음이 그들의 왕국이 망하고 전쟁포로로 끌려가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고생을 하면서도 전혀 고쳐지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온갖 이방신과 우상들이 들끓고 있는 제국에 살게 되면서 더욱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부패하고 그 마음이 세상적으로 썩어버리고 맙니다. 이방 땅에서 선민의 구실을 전혀 하지를 못하고 마치 썩어버린 베띠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렘13:10c).
셋째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내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렘13: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렘13:11a);
1)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허리띠의 주인이 누구인가? 깊이 생각해보라고 은유로 말씀하십니다. 그 대목이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렘13:11a)입니다. 허리띠의 주인은 그 베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허리띠를 자기 허리에 두르고 있는 그 사람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허리띠가 이방 땅에서 썩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그 베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는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부패하지 아니하고 생명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2)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종으로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면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구원의 축복을 나누어 줄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그 썩어버린 세상의 허리띠를 버려버리고 새로운 제사장의 거룩한 허리띠를 구하여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동이고서 이제부터는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제사장의 거룩한 허리띠를 구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을 요한복음 제21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라”(요21:18-19).
3)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인생을 제멋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는 세상의 허리띠를 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의 허리띠를 매게 되면 그때부터는 달라집니다. 더 이상 제멋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사역의 현장을 주님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그 길은 자신의 욕망과 세상적인 성취를 위한 길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여호와의 구원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전파하여 그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삶입니다. 그와 같은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물론(요21:18-19)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600년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작에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렘13:11).
(2) “내 이름과 내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렘13:11b);
1) 선민들이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모든 일을 여호와 앞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렇게 신실한 종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급으로 함께하셨을까요? 그에 대한 답변이 본문에서 “내 이름과 내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렘13:11ba)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2) 그 의미는 ①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을 그들에게 그대로 적용시키고 또한 성취가 되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렘13:11baa, 창12:2-3, 요16:23-24). ②둘째, 아브라함처럼 이 세상에서 진실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명예스러운 칭호를 주십니다(렘13:11bab, 창22:12). ③셋째,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렘13:11bac, 눅22:28-30).
3) 만약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앞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영위했더라면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고 여호와의 종으로 높임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세적인 이기주의에 물든 육신적인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방신과 우상들이 선민의 나라에서 번성하였으며 백성들은 육신적인 쾌락과 사치를 즐기는데 여념이 없게 되고 맙니다. 그에 따라 선민들에게 약속이 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와 영광을 선민 유대인들이 어리석게도 썩어지는 이 세상의 영광과 바꾸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렘13:11bb, 롬1:23).
결론적으로, 그렇다면, 언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이 세상에서 높임을 받으며 이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으로 역사를 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때가 바로 선민이 아니라 여호와의 진실한 종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만민을 구원하는 복음사역을 하시고 회개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에 의지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도들,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음의 일꾼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의 영광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썩어지는 베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채색띠를 허리에 매고서 여호와 앞에서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 세상에서 썩어지는 유대인들의 허리띠를 매고서 살지 마시고 제사장의 허리띠로 옷깃을 여미고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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