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3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7. 13. 23:19

너와 나의 공화국36(손진길 소설)

 

한국의 대통령선거와 총선이 묘하게 엇박자로 실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1987년 개헌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고 국회의원의 임기는 여전히 4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대부분의 총선의 경우 현직 대통령의 운신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소위 여소야대국회의 탄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점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98712월에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다. 그렇지만 이듬해 19884월에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여당인 민정당이 과반의석 150석에 훨씬 못 미치는 125석을 얻는데 그치고 있다. 그것은 여소야대 국회의 등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태우 대통령은 정국타개를 위하여 1990년초에 인위적으로 3당합당하여 거대한 여당 민주자유당을 만들어낸다. 그것으로 그는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가 비싸다. 한 지붕 세가족인 민자당에서 새로 들어온 군식구 YS 김영삼이 대선후보를 차지하고 말기 때문이다.

(2)  19923월에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민자당이 149석을 얻어 과반의석 150석에 1석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무소속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이 21명이나 있으므로 여권으로 포섭하기에 어려움이 별로 없다. 따라서 199212월에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김영삼은 이듬해 19932월에 취임하여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64월에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이 139석을 얻는데 그치고 만다. 그것은 과반의석 150석에 비하여 11석이나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은 남은 임기동안에 절름발이 신세가 되고 만다;

(3)  199712월에 제15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되고 제1야당 후보인 김대중이 제2야당의 총재인 JP 김종필의 도움을 받아 당선된다. 그가 이듬해 19982월에 취임하여 대통령직무를 수행하지만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의석이 79석에 불과하여 운신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그는 JP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과 아예 연정을 실시한다. 그것이 이름하여 DJP연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며 JP 김종필이 실세총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JP가 이끌고 있는 자유민주연합의 의석수 50석을 합하더라도 여권의 의석수는 129석에 불과하다. 과반의석 150석에 비하여 21석이나 부족하다.

(4)  그와 같은 여소야대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선거전의 귀재인 DJ 김대중 대통령이 20004월에 실시가 되는 제16대 국회의원선거에 총력을 기울인다. 21세기에 실시되는 첫번째의 총선이므로 그는 많은 정치인을 포섭하여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선에 임한다. 과감하게 JP와의 연정도 끊어버리고 국회의 의석수도 줄여서 273석으로 조정한다. 그러므로 여당이 과반의석인 137석만 획득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여당인 새천년민주당115석 확보에 그치고 만다. 한마디로, 정치 10단인 DJ 김대중 대통령의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다시 JP와 연정을 하기에도 정치적인 배신을 심하게 하였기에 힘이 든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의 후반기 통치는 여소야대의 정국아래에서 일찍 레임덕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아들 3명이 모두 검찰조사를 받게 되는 처지가 되고 만다;

(5)  흔히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궁하면 통한다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정치 10단인 DJ 김대중 대통령이 200212월에 실시가 되는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영남 지역 출신인 노무현 후보를 은근히 밀고 있다. DJ의 영향력으로 호남의 표가 여당 새천년민주당 후보인 노무현에게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노무현 후보가 강력한 라이벌 제1야당의 이회창 후보를 극적으로 이기고 있다. 그렇지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의석수가 여전히 115석에 불과하여 20032월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이듬해 20043월에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그만 탄핵을 당하고 만다;

(6)  야당의 강수에 여당 내의 () 노무현 세력이 합세하여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직무를 정지하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전화위복이 되고 있다.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추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기성정치인들의 야합을 좋지 아니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알아채고서 신생정당 열린우리당을 이끌고 정동영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를 계속한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20044월에 실시되는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 있다. 과반의석 150석을 넘는 152석을 차지한 것이다.

(7)  그 결과 헌법재판소에서는 탄핵소추를 기각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여 26개월간 안정적으로 개혁적인 진보정치를 실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200311월에 창당이 된 신생정당 열린민주당은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7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초부터 서로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우르르 나서면서 당이 분열되고 있다. 그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정초에 당적을 포기하고 만다. 그 결과 200712월에 실시된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제1야당 한나라당 후보인 이명박이 압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의 정치는 노무현의 진보정치에서 이명박의 보수정치로 다시 회귀하게 된다.

정치학교수인 강훈은 대학에서 한국정치론을 강의하면서 한국정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으로 세가지의 변수를 주장하고 있다; 첫째가 여소야대와 여대야소, 둘째가 진보정치와 보수정치, 셋째가 사익(私益)과 공익(公益)이다.

그 가운데 강훈 교수는 둘째와 셋째의 잣대를 가지고 서울시장 출신인 이명박 후보가 어떻게 압도적인 성적으로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다. 그 점을 강훈은 20081월 하순에 강북에서 열린 상록회 정기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요령껏 발표하고 있다;

첫째로,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정치는 민족주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사회복지를 강조하면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재벌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게다가 보수성향을 지니고 있는 언론과 군부 그리고 관료집단에 대해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골고루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진보정치의 구호는 좋지만 막상 자신들의 뼈를 깎고 큰 부담을 져야만 하는 그러한 개혁은 싫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재벌과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는 대통령 후보 이명박이 보수층의 지지를 크게 받게 된다;

둘째로, 사익정치의 특징은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는 패거리의 문화가 정치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사익을 도모하는 집단이라고 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따라서 필요한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거나 인위적으로 성공신화를 만들어 널리 유포하게 된다. 그것이 한마디로 조작정치인데 정치학적으로 고상하게 말하자면 상징의 조작이다. 이명박 후보의 경우에는 대기업에서 월급쟁이가 엄청나게 성공하여 CEO가 되었다고 하는 성공신화가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 점을 책이나 드라마를 통하여 대중에게 진작부터 선전하여 그가 서울시장이 되고 이제는 대통령후보까지 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그 뿐만이 아니다. 이명박과 그의 측근들은 이명박이 서울시장이 되어 청계천을 그 옛날 냇물이 흐르는 자연으로 복구하여 시민들에게 쾌적한 자연환경과 휴식공간을 제공하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신군부 출신 대통령 전두환이 한강 고수부지를 만들어 서울시민에게 쾌적한 자연환경과 휴식공간을 제공하였다고 홍보한 내용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정치적인 상징 조작으로는 여전히 성공적인 것이다;

넷째로,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후보는 교묘하게도 서울시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동안에 벌써 대통령이 되겠다고 작심하고서 사전 공작을 은밀하게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 옛날 6.3데모에 고대 총학생회장으로서 가장 앞장을 서고 있는 모습을 드라마로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드라마를 텔레비전을 통하여 시청하고 있으면 마치 이명박 후보가 한국정치의 민주화를 위하여 대학의 운동권에서 가장 혁혁한 공헌을 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과거 4.19세대와 6.3세대 그리고 1970년대 유신시대와 1980년대 신군부 시대에 목숨을 걸어 놓고서 독재정치에 항거하였던 그 수많은 운동권 대학생들의 희생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을 과대 포장하여 국민들에게 보여주면서 다른 이들의 공로를 전부 가로채어간 인물이 이명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일제와 싸운 항일독립운동은 전부 김일성 장군의 것이라고 과대 포장하여 인민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북한의 김씨왕조 우상화작업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의 정치의식과 정치문화는 여전히 미성숙한 것이다.

 그와 같은 강훈 교수의 발표를 듣고서 4선의원인 이민욱, 3선의원인 조영백, 그리고 검찰의 수뇌부인 나아문이 조용히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한마디를 하고 있다; “이거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정치적인 상징조작에 그대로 놀아나겠구만. 역시 유권자인 국민들이 똑똑해져야 한국정치가 발전하는 것이야. 강훈 교수 수고했어요”.

그렇게 20081월이 끝나고 있다. 이제 225일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대통령 직무를 시작하게 되면 한국사회에 어떠한 정치적인 바람이 불어올 것인가? 어느 정도의 보수정치로 회귀할 것인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