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47강(렘7:27-3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7월 7일(토)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는 4가지 큰 죄악이 무엇인가?(렘7:27-3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선민들이 이방인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 4가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십니다;
(1) 첫째로,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선지자를 보내어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아니한 것입니다(렘7:27b, 28a). 그것은 창조주이시며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아버지 여호와께 패륜을 저지른 잘못입니다.
(2) 둘째로, 여호와의 교훈을 선민 유대인들이 받고자 하지 아니하고 있으며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렘7:27a, 28b). 그 의미가 무엇이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1) 첫째,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정국가의 주권자로 그리고 자신들의 인생의 주인으로 더 이상 모시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자신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한 세상을 살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을 행한 것입니다.
2) 둘째, 여호와의 부르심에 답변을 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의 교훈을 물리치고 제멋대로 육신적인 부귀영화와 탐욕을 이루고자 살아가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여호와께 패역한 자들은 자신들의 욕심대로 살도록 세상에 버려 두시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떠나 버리십니다(창6:33, 롬1:28). 그 결과 하나님의 진리의 영이 아니라 악한 영 곧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그들의 주인이 되며 백성들은 악한 영이 주는 거짓말을 그 입에서 달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요8:44, 렘7:28c).
(3) 셋째로,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가 유다의 왕이 되자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신 예루살렘성전에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는 제단을 마련하는 가증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왕하21:2-3). 성전 내에 바알 제단을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세웠으며 성전의 마당에는 일월성신을 경배하고 섬기는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왕하21:4-5). 그 다음의 유다 왕국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1) 첫째,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이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종교개혁을 실시하였으나(왕하23:4-7) 그의 후계자들이 성전을 다시 더럽히고 맙니다(왕하23:32, 37, 24:9, 19-20). 그 때문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요시야 왕의 개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2) 둘째, 그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역사서 역대하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가증한 일들과 그에게 발견된 악행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8세라. 예루살렘에서 3달 10일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대하36:8-9),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21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그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였으나 그가 왕을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대하36:11-17).
(4) 넷째로, 선민 유대인들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암몬의 신인 몰렉을 섬기는 도벳 사당을 만들고 인신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렘7:31). 히스기야 왕을 전후하여 그 부왕인 아하스, 그의 아들인 므낫세가 몰렉의 번제단인 도벳에 자녀를 불태워서 바치는 무지몽매한 인신제사를 드린 것입니다(왕하16:3, 21:6, 대하28:3, 33:6). 그와 같은 심히 가증스러운 짓을 자행하였으므로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이방인 강대국의 손에 붙여 버리시는 것입니다(왕하21:11-13, 23:25-2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에게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니,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렘7:27-2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에게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니”(렘7:27);
1)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말은 전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외치라고 맡기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맡기신 말씀을 아무리 동족들에게 외쳐도 그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지를 않습니다(렘7:27a).
2) 선민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행을 하게 되면 자신들에게 당장 손해와 희생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선민들에게 주어지는 합당한 세속적인 보상이 별로 없습니다. 요컨대 여호와께서 약속하시는 영적인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 당장 현세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3) 더구나 그것은 본인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을 하나같이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이시기에 편파적으로 일방적인 이익과 형통함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보상과 상급이라고 하는 것은 현세적으로는 그렇게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에 따라 현세적인 이기주의에 젖어 있는 선민사회에서 그들의 이기심과 육신적인 탐욕에 비추어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오히려 현세적인 이익을 얻는 길이 된다고 하는 그러한 사조가 지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세속적인 이해득실을 이성적으로 따지고 있는 동족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가 마지막으로 친분에 의지하여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부디 여호와의 처벌을 받지 말고 함께 회개와 구원의 길로 나아가자고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호응을 할까요? 여호와의 말씀은 그들이 대답조차 회피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렘7:27b). 말세가 되면 그렇게 여호와의 사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집안에서도 외면을 당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2)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렘7:28a);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말씀을 위탁하고 그냥 버려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듣고 백성들이 순종을 하는지 아니하는지를 감찰하십니다. 그렇게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일종의 평가를 내리십니다. 물론 그 평가에 따라서 심판이냐 구원이냐가 결정이 될 것입니다.
2) 여기서는 그 중간 과정인 평가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렘7:28a). 여호와의 은혜를 저버리고 그 말씀을 배척하고 있는 패역한 백성들이 되어 버렸다고 하는 평가입니다.
3) 그러한 상태로 내어버려 두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까요? 그것이 다음 구절입니다(렘7:28b). 그러한 절망적인 상태에 버려 두는 것보다는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시 시작하는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예레미야의 글에 있어서 한참 후에 나타나는 나중 구절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렘15:19-20).
(3)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렘7:28b);
1) 훗날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 예수님의 말씀 한 토막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주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백성에게 성령님을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게 하신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 심령속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2) 여기서 귀신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부하들이며 악한 영들입니다(요8:44). 그러므로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그 진리를 믿고 있는 성도의 신앙이 사라지고 없으니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 온통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레미야 시대의 선민사회가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서 진리가 사라진 사회라고 하나님께서 평가를 하십니다(렘7:28b).
둘째로, “너희 머리털을 베어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렘7:29-3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 머리털을 베어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라”(렘7:29);
1) 여호와 앞에 잘못을 범한 자는 그 머리털을 밀고 통곡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렘7:29a). 그러한 사실을 나실 인이 부정을 타게 된 경우 어떻게 다시 깨끗함을 받을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면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일곱째 날에 밀 것이며”(민6:9),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 인이 그의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 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 인의 두 손에 두고”(민6:19).
2) 선민들이 자신들의 머리털을 밀고 통곡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렘7:29b). 여기서 ‘벗은 산’은 영적인 의미를 하나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산 위에 올라가서 우상을 섬기고 육체의 향연을 벌인 선민들의 영적인 타락을 가리키고 있는 용어인 것입니다(렘2:20, 3:6, 21).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고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는 모든 선민들은 자신들의 머리털을 밀고서 여호와 앞에 애통하는 심정으로 나아와야만 합니다. 그것이 선민의 나라의 멸망 가운데에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3)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멸망시켜버리고 그 백성들을 이방나라에 전쟁포로가 되게 하고자 결심하신 여호와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변경하기에는 그동안 지은 그들의 악행과 패역함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라”(렘7:29c)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영원한 징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이 세대만 그 절망을 맛보고 그 다음 세대에게는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 그대로 훗날 바벨론 포로기간이 70년으로 한정이 되게 됩니다(렘25:11).
(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렘7:30); 선민 유대인들이 행한 가장 큰 범죄가 무엇일까요? 여기서 두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여호와께서 보고 계시는 그 앞에서 감히 선민들이 악행을 한 것입니다(렘7:30a).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 옛날 요셉의 경우와는 정반대입니다(창39:9). 그러므로 당연히 여호와의 형통함의 도우심을 얻지를 못하고 나라가 망하게 되는 그 큰 불신앙의 요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예루살렘성전 안에서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렘7:30b). 히스기야 왕의 아들인 므낫세 왕은 예루살렘성전에 바알 신을 섬기는 제단을 쌓았으며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성전의 마당에는 일월성신을 경배하고 섬기는 제단까지 마련하고 있습니다(왕하21:2-5, 대하33:2-5). 성군 요시야를 제외한 유다 왕국 말기의 왕들이 모두 악한 왕 므낫세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대하36:5, 9, 12-14).
3)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성전을 모독한 것입니다. 성막에 임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했더니 그 성막이 있는 성전을 이방신과 우상으로 더럽히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전쟁포로가 되는 것이 역사적인 순리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렘7:31);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렘7:31a);
1) 예루살렘성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그곳을 정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부스 족속이 계속 시온 산성에 의지하여 모리아 산에 살고 있었습니다(삼하5:6). 그런데 주전 1,010년경 유다의 왕이 된 다윗이 7년 후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수도를 시온 산성이 있는 북쪽으로 옮기고 싶어합니다(삼하5:3, 7-9). 그는 원주민 여부스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샛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잠입하여 시온 성과 그 인근 요새를 전부 점령하게 됩니다. 그곳에 다윗 성을 쌓고 전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습니다. 그때가 주전 1,003년경입니다.
2) 예루살렘은 해발 780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산지입니다. 그곳을 3면에서 높은 산들이 가파르게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들이 계곡으로 올라오게 되면 3면의 산성에서 굴려 내리는 바위와 통나무 그리고 기름불과 화살에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요새를 둘러싸고 있는 계곡에는 적들의 주검이 쌓이고 날짐승들이 그 시신을 파먹게 됩니다. 돌이 많은 그 계곡에서 시신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곡의 동쪽이 기드론입니다. 그리고 남쪽이 힌놈입니다. 그 두 골짜기가 만나고 있는 지점에 암몬에서 도입한 신 몰렉을 섬기는 도벳 사당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렘7:31aa).
3) 암몬 사람들의 주신(主神, 으뜸 신)인 몰렉은 ‘밀곰’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그것은 소리가 비슷한 말 ‘멜렉’(king)에서 온 것입니다. 그 모양은 몸체는 사람이고 얼굴은 황소이며 두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신이지만 신(神, god) 중의 왕이므로 당연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자녀를 힌놈 골짜기에 있는 도벳 제단에 번제물로 바치게 되면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렘7:31ab). 제사 가운데 가장 정성이 큰 것을 ‘인신제사’(人身祭祀)로 여기고 있는 고대사회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몰렉에게 인신제사를 바치는 왕이야 말로 가장 저주의 대상입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저주의 대상이 역사적으로 아하스 왕과 므낫세 왕입니다(대하28:3, 33:6).
(2)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렘7:31b);
1) 창세기 제22장을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깨달음과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인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여호와께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창22:1). 당시 브엘세바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데리고 90km나 멀리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그곳 가파른 산을 올라가서 장작에 붙을 지피고 이제는 이삭의 목을 칼로 내리치고자 합니다(창22:10). 결박을 당해 있는 이삭은 체념한듯이 눈을 감고 있습니다.
2) 그러한 급박한 때에 여호와께서는 사자를 보내어 말리십니다. 그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조차 여호와께 바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는 여호와의 종인지를 시험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기록에 있어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칭호를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얻게 됩니다(창22:12). 그리고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잡아서 이삭 대신 여호와께 번제를 드립니다(창22:13). 그 모리아 산이 나중에 ‘성전 산’이라고 불리며 그곳에 예루살렘성전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대하3:1).
3)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사람의 목숨을 여호와께서는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창1:26-27, 9:5-6). 그러므로 모든 회개하는 인류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영원한 제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일체 인신제사를 허락하시지 아니하십니다(요1:29, 히7:27). ②또 하나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국가의 번성을 위하여 왕이 자녀를 인신제사로 드리는 경우가 이방인들의 종교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왕하3:27).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뜻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레20:1-5, 렘7:31b).
결론적으로, 이방인들은 자신의 가문의 번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에 있어서는 결코 그러한 무지몽매한 짓을 행해서는 안됩니다(렘7:31b).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목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막3:4, 눅10:33-37). 그러므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해치는 경우에 있어서는 여호와의 진노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뜻을 항상 구현하시는 성도님들의 복음사역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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