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46강(렘7:21-2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7월 6일(금)
출애굽 이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한 것이 무엇이며 선민들이 그 요구를 어째서 거절하고 있는가?(렘7:23-26) 그러면서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렘7:21-22)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신앙이란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정확하게 그 말씀의 뜻대로 실천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렘7:22-23, 삼상15:22-23, 사1:10-17). 그러므로 선민들은 자신들의 인생길과 행위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바르게 맞추어서 살아가고 있는지 항상 점검을 해야만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어긋나고 있다고 한다면, 여호와의 말씀의 뜻대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과 기도로 여호와의 뜻을 실천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자가 바로 올바른 선민이며 성도입니다(렘7:3, 5).
(2) 둘째, 선민들이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작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의 형태로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렘7:23a). 그 율법 가운데 들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게 되면 선민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렘7:23b). 그 복은 개인적으로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네가지 축복의 언약입니다(창12:1-4). 그리고 민족적으로는 호렙 산과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언약의 내용입니다(출3:7-12, 15-18, 19:4-6, 32:34).
(3) 셋째, 그런데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선민들이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을 그대로 따르고자 하지를 않습니다(렘7:17-19, 24). 그 이유는 세상적인 복과 육신적인 소원의 성취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곧 이방인들의 수호신과 우상을 들여와서 그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무당에게 예물을 주고 그를 통하여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게 되면 어떠한 탐욕스러운 소원이라고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이루어 준다고 하는 엄청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상을 섬긴 다음에는 그 산에서 여사제들과 육체적인 향락까지 즐길 수가 있으니 금상첨화인 셈입니다(민25:1-3, 렘2:20).
(4) 넷째, 이방인들은 그러한 우상문화로 끝나고 있지만 선민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선민들은 가증스럽게도 음란한 우상숭배의 죄악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와서 버젓이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렘7:9-11). 그것은 선민에게 주는 여호와의 복까지 모두 얻겠다고 하는 탐욕입니다. 그렇게 성전에 제물을 바치고 제사장을 통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되면 눈이 어두운 여호와로부터 구원의 복까지 전부 받을 수가 있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5) 다섯째, 그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또한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선민들입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어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원하고 있는 신실한 청지기의 직분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가 참혹합니다. 그 옛날 실로에서 선언한 여호와의 정책에 따라 엘리의 집이 망하듯이 선민의 나라도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렘7:14-15). 그것을 막아 보겠다고 간구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러한 기도를 그만 두라고 말씀하십니다(렘7:16).
(6) 여섯째, 예레미야의 중보기도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그 전에 여호와께서 수도 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선민들의 회개를 종용하였지만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렘7:13).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길과 행위를 여호와의 뜻에 맞도록 바르게 하라고 계속 외쳤지만 끝까지 거절하고 있는 선민들입니다(렘7:25-26). 선민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동시에 여호와께 희생제물과 번제를 바치고 있으니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렘7:21).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게 될 따름입니다(렘7:2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렘7:2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렘7:21a); ‘만군의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의미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두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만군의 여호와’(the Lord Almighty)는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많으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에 비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단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만을 위하여 일하시고 계신다는 의미를 진하게 함축하고 있는 용어입니다. 결국 그것은 선민우월사상에 입각하여 진술하고 있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사11:10-16).
2) 둘째, 이 세상의 창조주가 되시는 여호와께서 먼저 이스라엘 자손을 선민으로 삼아 역사섭리에 대한 원칙을 알기 쉽게 말씀하여 주시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출애굽의 역사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이 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는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민들에게 임하고 있는 여호와의 복과 저주가 바로 이방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신30:19-20, 렘7:12-15, 25:29).
(2)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렘7:21b);
1) 율법의 제례의식(祭禮儀式)에 따르게 되면 희생제물인 가축은 그 목을 따고 그 피를 먼저 땅에 흘리고 일부는 번제단에 뿌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희생제물은 원칙적으로 각을 뜨고 번제단에 올려서 모두 태우게 됩니다(레1:8-9). 번제물 전체를 태워서 여호와께서 향기로운 연기로 흠향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물의 고기는 사람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까맣게 탄 것을 누가 먹겠습니까? 그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기서는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렘7:21b)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2) 첫째, 백성들이 여호와께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속죄의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이 희생제물입니다. 특히 번제물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여호와 앞에 이미 죄인이 아니고 율법과 할례를 가진 의인들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구태여 성전에 들러 희생제사를 드리고 번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의인으로 자처하고 있다고 하면 그 제물을 여호와께 바치지 말고 자신들의 식량으로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미심장한 질책의 말씀입니다.
3) 둘째, 선민들이 출애굽의 은혜와 더불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여호와의 은덕을 모두 잊어버리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에 있어서 인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자신들이 바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는 번제로 바치는 희생제물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다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생활에도 인색하여 급료를 받지 못한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성전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느13:10-13, 말3:8-12). 그와 같은 상황을 아시는 여호와께서는 차라리 번제물과 희생의 가축까지 인색하게 바치지를 말고 너희들이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4) 셋째, 희생제사와 번제를 드리고 있는 선민들의 심령속을 여호와께서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마음중심에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욕심과 세상적인 탐욕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저 세상적인 복을 여호와로부터 얻기 위하여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 모습을 보신 여호와께서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정작 중요한 것을 행하지 아니하면서 가증스럽게 제례의식을 드리고 있으니 그것이 어떻게 가납이 되겠느냐?는 질책의 말씀을 본문에서와 같이 표현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로,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렘7:22-2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렘7:22-23a);
1)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창22:1-2). 그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희생제사가 이루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당시 이방인들의 인신제사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도 인신제사를 원하시는 줄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섬기고 있는지 아니면 귀중한 약속의 아들 이삭을 가장 아끼고 있는지 그것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2) 막상 장작에 불을 붙이고 희생제물을 바치고자 아들 이삭의 목을 칼로 치려고 하자 여호와께서는 급히 사자를 보내어 말리십니다(창22:10-11). 그것으로 아브라함이 진심으로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까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바칠 줄 아는 진정한 여호와 경외자임이 밝혀졌다는 것입니다(창22:1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숫양으로 대신 모리아 산에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창22:13). 훗날 그 모리아 산에 예루살렘성전이 건축이 되는 것입니다(대하3:1). 그에 따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이나 그의 자손인 선민들에게 원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게 됩니다.
3) 여호와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희생의 제물이나 번제물이 아닙니다(삼상15:21-23, 사1:10-14). 그 마음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자 하는 종의 자세가 확립이 되어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렘7:22-23). 그와 같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이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아직 출애굽기에서는 율법에 따른 제례의식이 여러가지 제사로 규정이 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4) 단지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신정국가의 법률인 율법으로 삼아 백성들이 어떻게 순종하고 실천할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레위기에 가서야 제례의식이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레1-7장). 그러한 순서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그 뜻의 실천이 선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점을 예레미야가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렘7:22-23a)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렘7:23b);
1) 사람들이 여호와를 올바로 섬김으로써 두가지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이 세상에서도 그리고 내세에서도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받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렘7:23b)라고 말씀하십니다.
2)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정직하게 살아가게 되면 그와 같은 복을 전부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민들이 마음속으로 그러한 종의 자세를 지니고자 하지를 않습니다.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한 세상을 살아보고 싶어 합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도 자신들을 도와주는 우상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한 선민들의 패역함에 대하여 다음 구절에서부터 통렬하게 지적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렘7:24);
(1)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렘7:24a). 그 순서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렘7:24b). 듣는 체 하면서도 사실은 그 귀를 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어도 그것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 마음속에 여호와의 말씀을 진심으로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듣는 체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시늉만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2)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듣고 마음속으로 묵상을 하게 되면 악한 영들의 속삭임을 물리칠 수 있는 성령님의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듣는 체 마는 체 하고 있으므로 악한 영의 꾀를 물리칠 방도가 없습니다(렘7:24c).
3) 셋째, 악한 영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따르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소원성취와 성공의 비결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마4:8-9, 눅4:5-7). 그 말을 신뢰하고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교만하게도 하나님 앞에서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렘7:24d).
(2) 여호와의 은혜를 배신하고 우상을 자신의 신으로 섬기며 살아가게 되면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버림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를 외면하고서 제멋대로 한 세상을 살아가고자 떠나간 자들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도 그들의 육신적인 삶을 보고서 떠나 버리십니다(창6:3). 그 결과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렘7:15).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나라가 그 다음에 줄줄이 역사적인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렘25:29).
넷째로,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곧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렘7:25-2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렘7:25-26a);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종에서 해방이 된 때가 주전 1,446년입니다. 지금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대언하고 있는 때는 주전 600년경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바 애굽에서 나온 때부터 예레미야 시대까지는 적어도 800년이 경과하고 있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는 그 교만과 패역함을 보고 계십니다.
2)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을 지상에서 멸절시키는 것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서 다시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800년 동안 수도 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게 합니다. 죄악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민의 나라가 망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끝내 순종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사라지는 비극의 역사가 발생합니다(왕하17:5-6).
3) 이제 마지막 남아 있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중보의 기도에 나서지만 여호와께서는 이제는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렘7:16-17).
(2)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곧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렘7:26b);
1)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모두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닫고 있습니다(렘7:26ba). 완강하게도 그들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신바벨론제국의 침략을 막아낼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렘7:26bb). 그러한 거짓말을 외치고 있는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주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2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렘28:2-4).
2) 그와 같은 거짓선지자의 말을 듣고서 유다 왕과 신하들이 여호와 앞에 돌아와서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유다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뒤를 따라 백성들이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사치와 퇴폐 향락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가나안의 원주민인 아모리 족속의 죄악보다 더 심합니다(왕하21:11, 렘7:26bc). 그러면서도 성전에서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으니 참으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렘7:21). 아모리 족속보다 더 악한 백성들이 되고 말았기에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기어코 다윗왕조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1-7).
결론적으로, 주전 15세기 출애굽 이후 주전 6세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할 때까지 800년 이상 여호와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있는 선민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하여 수도 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선민들에게 베푸신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더구나 여호와께서 창조주이심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며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대속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닫고 그 얼굴을 외면하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주님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복음사역에 힘쓰는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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