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2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29. 08:46

너와 나의 공화국22(손진길 소설)

 

새해 1992년이 되자 정초인 1 3일에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서울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현대그룹의 왕회장으로 불리고 있는 정주영이 연세대 철학교수 출신인 저명인사 김동길과 함께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것이다;

그들은 3 24()의 총선에 참여하여 지역구 24석의 당선자를 내고 비례대표 7명을 합하여 31명의 국회의원을 얻어 당당하게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원내 제3당으로 올라서고 있다. 통일국민당 창당의 주역인 현대그룹의 정주영 왕회장은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하게 됨으로써 경제인이 아니라 이제는 정치인이 되고 만다. 

지난해 가을부터 금년 초까지 실무적으로 신당창당작업에 분주하였던 이민욱은 통일국민당의 공천을 받아 수도권에 출마하여 무난하게 지역구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다. 정치부기자 출신인 이민욱이 한국나이 42세에 제14대 국회에 초선의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당 민자당 의원인 강하삼19923월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벌써 3선의원이 되고 있다. 그는 이제 김영삼 당수의 최측근으로서 최형우 김덕룡 의원과 더불어 연말에 있게 되는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영수인 YS를 당선시키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제13대 국회 중반 1990년에 인위적인 3당 합당으로 거대여당이 된 민주자유당은 1991년 지방자치단체 의원선거에 있어서는 과반수 당선자를 내어 나름대로 선전을 했다. 그렇지만 막상 1992년에 들어서서 3월 총선에 후보자를 내기 위하여 공천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1지붕 3가족의 분열상이 그대로 노출이 되고 만다. 그 때문에 총선결과 과반수인 150석을 얻지 못하고 149석 확보에 그치고 만다;


▼ 1992년 3월 24일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주요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정당 지역구 전국구 총합 비율

자유민주당
민주자유당
 
116 33 149 49.83%

민주당
민주당
 
75 22 97 32.44%

통일국민당
통일국민당
 
24 7 31 10.36%


신정치개혁당
 
1 0 1 0.33%

무소속
무소속
 
21 - 21 7.02%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게 된 의원들이 상당수 신당인 통일국민당에 가입하거나 아예 무소속으로 출마를 한다. 그로 말미암아 신생 통일국민당이 제14대 총선에서 31석을 얻게 되어 제2야당이 된다. 그리고 무소속 당선자가 무려 21명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3당 합당으로 인하여 졸지에 약세 제1야당이 되어 버린 DJ의 신민주연합당이 꼬마 민주당과 합당하여 새 이름 민주당이 되어 제14대 총선에 임한 결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무려 97석을 확보한 것이다.    

한편 199111월 하순에 매달 모이고 있는 상록회에서 이민우가 절친인 조영백, 강훈, 나아문에게 자신과 뜻을 함께하여 정주영 회장이 앞장서고 있는 신당에 모두 참여하자고 권고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같이 고사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길을 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그들의 주장이 이듬해 제14대 국회의원이 되어 여의도 국회에 등청하고 있는 이민우에게 아직도 새록새록 되새김이 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각각 다른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완전히 납득이 안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날 모임에서 그들이 말한 거절의 답변이 다음과 같다; 조영백은 장차 고향에 돌아가서 변호사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강훈은 서울에서 박사과정을 끝내고 수도권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문 자신은 검사생활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검찰총장이 될 때까지는 결코 다른 꿈을 꾸고 싶지가 않다고 절친 이민욱에게 한마디로 답하고 있다;

그들 3사람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의 이상과 야망이 무엇인지 이민욱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만큼 사람의 속은 다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지역구 관리와 의정활동에 너무 바빠서 이민욱 의원이 그만 친구들의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매달 모이던 그들의 상록회 모임도 1992년에 들어와서 그때부터는 춘하추동에 계절적으로 한번씩 모이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있다.

한편 인권변호사인 조영백1992년 여름에 재종 처숙부 권영해 차관의 요청으로 그의 집무실을 다시 방문한다. 용산에 있는 국방부청사로 들어갈 때에는 정문에서부터 헌병이 방문자에게 일일이 용무를 파악하고 방문대상자에게 전화를 걸어 거듭 확인을 한 후에 방문증을 주고 있다.

그러한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면서 조영백이 속으로 생각한다; “안보학을 공부한 강훈의 말 그대로 서울은 군사분계선에서 너무 가까워 적의 공격과 침투에 취약한 것이야. 그러니 국방부청사를 들어가는데 있어서도 이렇게 절차가 까다로운 것이지. 장차 지하벙커를 더 설치하거나 아니면 후방으로 주요시설을 옮길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

그날 따라 조카사위 뻘인 조영백권영해 차관이 크게 반기고 있다. 무엇인가 중요하게 상의할 내용이 있는 것만 같다. 아니나 다를까 주위를 완전히 물린 다음에 그가 아주 심각한 논의를 시작한다; “영백이 자네, 내가 상도동 쪽에 중요한 기밀서류 하나를 넘겨주고자 하는데 어떤 루트를 선택하면 좋을까?... “.

어느 사이에 권차관이 조변호사를 심복 중의 심복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자신의 책사로 삼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한 신임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조영백 변호사이다. 그렇지만 지금 권차관이 질문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자신이 도움이 될 것도 같다.

그래서 그의 대답이 긍정적이다; “무슨 기밀인지는 몰라도 제가 아는 친구 중에 YS 쪽에 연줄이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에게 부탁하면 그 서류는 틀림없이 YS가 받아서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조치를 해 드릴까요?... “.

권차관이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면서 거듭 확인을 한다; “그래, 그 친구는 자네와 어느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가? 이 서류의 내용을 전혀 뜯어보지 아니하고 확실하게 비밀을 보장하면서 YS에게 직접 전달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가?... “.

그때서야 조영백이 빙그레 웃으면서 확언을 해준다; “그 친구는 국가의 정책을 검토하는 입법 관료이며 저와는 동향이고 오랜 절친이지요. 게다가 그의 숙부가 YS의 한쪽 팔입니다. 그러니 안성맞춤이지요… “.

그 말을 듣자 권차관의 미간이 활짝 펴지고 있다. 그는 서랍에서 서류봉투를 하나 꺼내어 조영백에게 주면서 신신당부를 한다; “참으로 안성맞춤이군. 그러면 이 서류를 은밀하게 그 친구에게 건네면서 극비 사항이니 반드시 YS가 직접 개봉하여 보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하여 주시게. 보안을 부탁하네… “;

 

조영백이 국회사무처까지 자신을 찾아와서 신중하게 부탁하고 있는 서류이므로 강훈은 그 내용을 보지 아니하고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그 서류를 들고 직접 의원회관으로 가서 집안 숙부 강하삼 의원을 방문하고 그의 집무실에 두사람만이 남게 되자 그에게 은밀하게 그 서류봉투를 전달한다;

다만 강훈이 강하삼 의원에게 전달한 말이 다음과 같다; “제 친구 조영백 변호사가 국방부 권차관으로부터 받아서 온 서류입니다. 기밀 사항이므로 내용을 보지 말고 반드시 YS가 직접 개봉하여 친히 보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숙부가 이 서류 봉투를 들고가서 YS와 함께 개봉하여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그 비밀이 무엇인지 제게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내용은 군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밀조직 하나회의 명단이다;

 신군부의 뿌리가 되고 있는 비밀 조직이므로 김영삼 당수가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그들을 찾아내어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점을 알고서 권차관이 선수를 치고 있다. 과연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