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2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30. 08:21

너와 나의 공화국23(손진길 소설)

 

한편 입법관료인 강훈1990년 봄학기부터 서울시내에 있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 대학이 모교는 아니지만 여의도 국회에서 가깝고 특히 정치학과의 교수진이 그의 마음에 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강훈은 일본의 정치제도와 정치문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데 그 대학의 정치외교학과 교수 가운데 그 분야의 대가인 윤정석 교수가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진이 훌륭하다고 강훈이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당시 국제정치경제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면서  좋은 전문서적을 출간한 박경서 교수, 근대 한국정치사상에 박식한 김민하 교수,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문승익 교수 등이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훈이 몇 달 전에 제법 경쟁이 붙어 있는 박사과정 입학시험에 응시하여 다행히 합격을 하였다.

당시 한국의 박사과정은 미국대학원의 운영체계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무조건 2년반 세미나에 참석하여 강의를 듣고 과목당 시험을 치루어 먼저 학점을 따야 한다. 그 다음에 지도교수의 논문지도를 받고서 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한다. 논문작성에 적어도 2년이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종합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그것은 제출한 논문에 대하여 다른 대학 교수를 포함하여 5명의 교수들이 심사를 하면서 제출자에게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듣고서 평가를 하는 것이다. 특히 종합대학교 대학원에서 그 분야의 박사학위를 얻자면 반드시 마지막 종합시험에서 합격을 해야 한다.

그때 논문제출자의 전공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 학문추구에 대한 열정과 능력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그 학문에 대한 가치관을 하나의 철학으로 함양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문답식 종합시험에 합격하여 단과대학이 아니라 소위 종합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얻게 되는 경우 그 학위의 명칭이 그냥 Doctor가 아니라 철학박사에 해당하는 PhD이다. 그것은 인접하고 있는 다른 사회과학을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박사라고 하는 의미를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What does the ‘Ph.D.’ stand for?

Ph.D. is an acronym for ‘Doctor of Philosophy,’ which is derived from the Latin phrase (Ph)Philosophiae (d)doctor. The term ‘Philosophy’ refers to Philo (friend or lover of) Sophia (wisdom).

Is there a difference between a Ph.D. and a doctorate?

A Ph.D.is a form of doctorate. A doctorate is any certification that leads to the awarding of a doctoral degree in any field. It is necessary to produce advanced work that makes a substantial new addition to knowledge in your profession to be eligible for one.

The Ph.D. is the most prevalent sort of doctorate and is conferred in virtually all fields of study in universities. All PhDs are doctorates, but not all doctorates are PhDs.

 

그런데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 강훈은 다른 학우들과 때로 토론하는 기회가 있어서 그것이 좋다. 게다가 1990년대 전반기에는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귀국한 인물들이 많은데 국내에 교수자리가 크게 부족하다. 그러므로 박사과정 세미나에 출강하는 시간강사의 질이 대단히 우수한 것이다.

그들 수준이 높은 강사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박사과정의 수강생들이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것은 아주 유용한 시간이다. 특히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한 강사분이 그와 같은 토론문화를 권장하고 있다.

1992년 초여름에는 반년 후 12월 중순에 있게 되는 한국의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여당의 후보 결정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신생 통일국민당의 총재인 정주영의 도전에 대한 논의가 이채롭다.

먼저 여당의 후보 결정과정에 대하여 연구하여 온 학우 조상제의 발언의 요지가 다음과 같다;

(1)  당시의 대통령 노태우는 반년 후가 되면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고 그에게 내년 2월에는 정권을 내주고 물러나야 한다. 그가 아무리 문민정부 제6공화국의 첫번째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역시 신군부 출신이라는 딱지를 완전히 뗄 수는 없다. 구체적으로, 1979년말 12.12 쿠데타와 19805월의 광주사태에 대한 무력진압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내각의 권한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로 이양하게 한 일 등은 재조명을 받을 것이며 그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 신군부 출신으로서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노태우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2)  그러한 고민이 깊어서 애초에 자신의 후계자로 처조카 뻘인 박철언 검사를 내세우고 싶어한 노태우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노태우 대통령은 면죄부를 받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려워지고 만다. 3당합당의 결과 탄생한 민자당에서 1991년 후반기에 당수에 해당하는 당대표가 되어 있는 김영삼이 탈당할 수도 있다는 배수진을 치고서 대통령주자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노태우 대통령이 3가지의 방안을 마련하여 김영삼의 출마를 막고자 한다; 첫째가, 내각제 개헌을 시도한다. 둘째가, 박철언을 지지하는 조직 월계수회의 활동을 은밀하게 지원한다. 셋째가, 서울대 정치학 교수 출신인 노재봉을 총리로 영입하여 국민에게 내각제 수상 감으로 어필하도록 한 것이다;

(3)  그러나 그와 같은 노태우 대통령과 박철언의 시도가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그 이유는 박철언을 앞장세워 내각제 개헌을 계속 시도하면 김영삼 대표는 반정부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당인 민자당을 쪼개고 나가서 야당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퇴임을 앞둔 노태우 대통령은 양 김씨의 집중포화를 받게 된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19924월에 박철언을 월계수회 고문직에서 사퇴시키고 5월에는 김영삼 대표가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참으로 흥미진진한 스토리이다. 그 다음에는 강훈이 신생 통일국민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지난 324일 총선의 결과 여당인 민자당이 149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하고 제1야당인 민주당이 97석 그리고 통일국민당이 31석을 차지했어요. 그렇게 소위 3당 구조가 탄생한 것이지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한국정당정치의 불안정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

강훈은 그 즈음 정당체계와 선거제도에 관하여 관심이 많다. 따라서 그가 다음과 같이 갑자기 통일국민당이 등장하여 3당 구조가 정립된 것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1)  구미의 정치학계에서 정당체계이론과 민주주의 이론으로 명성이 높은 사르토리의 견해에 따르게 되면 정당체계가 구조화되면 여러 번의 선거를 치룬다고 하더라도 이익집단과 정당 간의 결합이 단단하기에 갑자기 신생정당이 제3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 한국의 제14대 총선의 결과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정당체계의 구조화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체계가 불안하여 정치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2)  일반적으로 정당체계에서 의미가 있는 정당으로 평가가 되자면 전국정당, 정책정당, 그리고 정치인을 만들어내는 정당이라는 조건을 만족하여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의 정당정치를 보면 지역정당의 성격이 강하고 정책대결이 아니라 흑색선전에 몰두하고 있으며 정치적 인물이 자신의 정당을 만드는 행태가 만연이 되고 있다. 그러한 실정이므로 현대의 정주영 왕회장이 자신의 기업과 회사원을 활용하여 정당을 만드는 준비를 하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신생정당에 국민들이 표를 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단숨에 제3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니 그것은 한국의 정치발전이 아직 요원하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3)  이제 마지막으로 눈 여겨 보야야 할 대목은 제3당의 후보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는 기업인 출신 정주영이 어느 정도 득표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그 옛날 정감록의 예언을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믿는지 어떤 확신을 가지고 한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이 되는 것일까? 그가 만약 대선에서 실패를 한다면, 그에 대한 차기 정권의 견제와 현대그룹에 대한 정치적 제재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이 향후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본다;

  그와 같은 강훈의 주제발표에 대하여 여러 학우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도 관심이 큰 것이다. 그렇게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드디어 19921218일 대선이 치루어지고 그 결과 약 42%의 득표로 여당 후보인 김영삼이 제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있다;

 그에 따라 정주영 후보는 다음해 2월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통일국민당을 탈당하고 만다.

그렇다면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초선의원 이민욱의 정치적인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