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2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28. 13:10

너와 나의 공화국21(손진길 소설)

 

1991가을에 정치부기자인 이민욱 차장은 현대그룹 본사에 들어가서 정주영 왕회장을 만나고 있다. 주위를 물린 다음에 정주영이 신중하게 본론을 꺼내고 있다; “이차장, 자네가 나를 좀 도와주어야 하겠어. 나는 오랜 세월 기업을 경영하면서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금을 대주기에 바빴어. 그런데 이제는 내가 나이도 들었고 하니 그 돈을 직접 써보고 싶어… “;

그 말을 듣자 이민욱은 문득 그 옛날 제3공화국 시절에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그 이전 자유당 정권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낸 홍진기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이회장이 홍 전장관에게 자신이 직접 정치를 할 생각을 밝히자 그는 반대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시 홍 전장관의 조언이 대충 다음과 같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다소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역시 회장님은 계속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나라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정치계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싶으면 앞으로 언론창달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옳은 말이다. 따라서 이병철 회장이 정계진출의 꿈을 접는 대신에 언론과 미디어에 손을 댄 것이다. 그에 따라 1965년에 중앙일보가 창간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삼성이 계속 미디어왕국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계인사들이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제2의 권력인 것이다;

이민욱 차장이 그와 같은 전례를 참조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려고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 그 이유는 느닷없이 왕회장이 다음과 같이 말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네가 내 아들인 정몽준과 서울대학교 입학동기라고 들었어. 그러니 나를 좀 도와주게나… “.

아들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말하면서 이민욱 차장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이도 젊은 자신이 함부로 그 옛날 홍 전장관과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이민욱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뜻을 밝히고 있다; “회장님, 일개 신문사의 정치부 차장에 불과한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회장님께 실제적인 도움이 되겠습니까?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     

그 말을 듣자 정주영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한다; “허허허, 정치판의 형세를 읽고 분석하는데 있어서는 이민욱 차장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내가 진작부터 듣고 있는데, 그 무슨 겸양의 말씀이신가? 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이 싫어서 그러한 것인가?... “.

그 말에 이민욱 차장이 즉시 대답을 한다; “아닙니다. 젊은 저의 소견을 물으신다면 두가지 말씀을 먼저 드릴 수가 있지요. 하나는, 정치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부자(父子)사이에도 나눌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이 사실이지요. 따라서 회장님이 정치권에 나서서 만약 뜻하시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 뒷감당이 불감당이라서 제가 그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

한국나이로 77세인 정주영 회장이 41세인 젊은 이민욱 차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이민욱이 계속 설명한다; “또 하나는, 정치적인 입지를 위한 발판마련에 있어서 회장님의 기반이 약하고 또한 자체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

이민욱이 잠시 숨을 쉬고서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 “거대여당인 민자당은 지역적으로 영남과 충청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DJ의 제1야당은 호남권에 기반을 두고 있지요. 그런데 강원 이북 출신인 회장님은 자연히 그 지역기반이 강원도가 되겠지요. 그러니 그 세력이 약한 것입니다. 더구나… “;

정주영 회장이 이민욱의 말을 심각하게 듣고 있다. 그의 귀에 이차장의 말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내년 3월에 총선이 있고 12월에 대선이 있습니다. 그 두번의 선거를 치르자면 신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합니다. 자연히 현대그룹의 물적 인적 자원이 동원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되면 회사가 경제활동이 아니라 정당일을 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해명과 대국민 설득이 쉽지가 않다고 봅니다마는… “.

이차장의 말이 끝나자 정주영 회장이 자신의 신념을 밝히고 있다; “자네 말이 모두 맞아. 그렇지 그렇고 말고. 그런데 말이야. 나는 언제나 불모지에서 새로운 기업을 일구어 온 사람이야. 새로운 사업분야를 개척하는 일에 항상 앞장을 섰고 또한 지금까지 성공을 했지. 그런데 그것은… “;

정회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이민욱 차장의 얼굴을 주시한다. 그 다음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마디로 겉으로 보면, 하나의 기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내 나름대로 냉철한 분석과 미래전망에 근거한 것들이야. 사실 나는 한국정치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어. 한번 들어보고 판단을 해주면 좋겠네… “.

이민욱 차장이 귀를 기울인다. 숨소리도 내지 아니하고 경청하자 정회장의 색다른 말이 들려온다; “정치도 사업처럼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집단이 이끌어간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경우 시대적으로 분명히 그러하지. 우선, 해방정국에 있어서는 일제치하에서 총독부나 경찰에서 관료경험을 가진 집단들이 나름대로 행정능력이라도 지니고 있었지. 따라서 이승만 정권이 그들을 활용한 것이야. 그 다음에는 말이야… “.

 정회장의 설명이 투박하지만 묘하게도 설득력이 있다. 그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자연히 군대가 비대해지고 군관료들이 먼저 현대화가 되었지. 그러니 선진화된 그들이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하고 경제개발에 앞장선 것이야. 그 다음은 말이지… “.

이민욱 차장이 경청하는 것을 보고서 정회장이 침을 한번 삼키고서 이어 말한다; “지금은 경제개발에 참여한 기업이 가장 현대화에 앞서고 있는 집단이야. 그러므로 한국의 경제개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기업가 출신이 정계의 지도자가 되고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 정치계를 이끌고 나가게 되겠지.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네… “;

정회장은 이민욱 차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있는 것을 보고서 씨익 웃으면서 자신의 복안을 말한다; “그러니 이번에 내가 나서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다른 재계의 인물이 나서서 한국의 정치계를 이끌어 나가게 되겠지. 그러니 이차장이 나의 말에 동의한다면 내가 짜는 새로운 판에 들어와서 함께 일해보지 아니하겠는가?... “.

이민욱이 잠시 정회장의 말을 반추한다. 분명히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자신이 보기에도 지금의 재계와 기업이 한국에서는 가장 거대하고 앞선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집단이다. 조직의 기법과 경영의 효율성에 있어서도 사기업이 공기업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업이라는 관료집단이 정당의 관료조직을 장악하게 될지도 모른다. 재계의 인물 특히 기업경영에서 탁월한 실적을 지닌 인물이 정계에 투신한다면 장차 그 인물이 한국의 정치계의 리더가 되고 기업출신의 관료들이 정당에 진출하여 그를 뒷받침할 지도 모른다. 그러한 변화가 머지않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생각을 마치자 이민욱 차장이 입을 뗀다; “제가 보기에는 시대에 앞선 선각자의 정견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장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고 결심하신다면 제가 미력이지만 견마지로를 다할 생각도 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

그 말을 듣자 정주영 회장이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역시 젊은 사람이 결단이 빨라. 좋으이. 이차장이 뜻을 함께하겠다고 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야. 그러면 우선 신당을 만드는 실무적인 일에 참여하면서 내년 3월 총선에는 수도권에서 출마할 준비를 해주게나. 자네는 나의 비서진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이야. 내가 소개를 해주겠네… “;

사람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 순식간에 바뀌기도 하는 모양이다. 십 수년간 정치부기자로 살아온 이민욱이 정회장을 만나 그날 그렇게 정계에 투신하게 될 줄은 1시간 전에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