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2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6. 25. 09:30

  

너와 나의 공화국20(손진길 소설)

 

19918월말 서울 상도동에 있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집에 자파의원들이 모여서 향후의 정국운영에 관하여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들은 열흘 전에 김영삼의 왼팔로 불리던 김동영 의원이 별세하였기에 그의 빈자리를 그날따라 크게 느끼고 있다;

무거운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그날 상도동계 영수인 김영삼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금년 3월과 6월에 지방자치단체 의원선거가 두차례 있었어요. 그리고 내년에는  3월에 총선이 있고 12월에 대선이 있습니다. 그런 중차대한 시점에 그만 우리의 유능한 동지 김동영 의원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따라서 나는… “;

주위에서는 기침소리조차 나지 아니하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다. 앞으로의 정국구상을 영수가 발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귀에 김영삼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들려온다; “김동영 동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김덕룡 의원과 강하삼 의원을 나의 최측근 보좌역으로 삼고자 합니다. 두 분은 나의 오른팔인 최형우 의원과 함께 나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앞으로 우리 상도동계가 결행해야 할 일은 내년 3월의 총선과 연말의 대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당장 두가지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 향후정국을 이끌어 나가며 정권을 재창출하는 주체가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만약… “.

만나이로 62세인 김영삼이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그 다음에 결연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와대에서 우리의 앞길을 방해한다면 그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사생결단을 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의 의지가 관철되지 아니하면 당을 쪼개고 나가는 불이익도 감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

김영삼이 천천히 그 이유를 설명한다; “숨을 죽이고 오로지 대통령의 처분만을 바라고 있으면 결코 여당의 대선주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결코 말 잘 듣는 2인자에게 순순히 대권을 물려준 적이 없어요. 단적으로 JP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지요… “;

그 말을 하면서 김영삼이 잠시 앞줄에 앉아 있는 강하삼 의원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  며칠 전에 가신그룹에 새로 영입이 된 그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영수께서 지금처럼 대통령의 말을 잘 듣는 2인자 행세만 하고 있으면 결코 내년 대선의 여당후보가 되지 못합니다. 노통은 자신의 처족인 6공 황태자 박철언에게 그 자리를 주고 말겠지요.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니까요. 그 점은… “;

깜짝 놀라서 경청하고 있는 김영삼에게 서울법대 출신인 엘리트 강하삼 의원의 말이 이어진다; “과거 박통이 언제나 숨을 죽이고 있던 JP에게 대권을 주지 아니한 전례에 비추어보면 심히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강하게 맞서야 합니다. 대통령후보의 자리를 내어놓지 않으면 당을 쪼개고 나간다는 각오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노통에게 퇴임후의 위기를 느끼게 하고 영수의 손을 들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강하삼의 그와 같은 진언을 명심하고 있는 김영삼이 다음과 같이 좌중에게 설명한다; “나는 노대통령이 나를 지지하지 아니할 수 없도록 만들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각오를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내년 3월의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 상도동이 먼저 당권을 확실하게 장악해야 합니다. 그 점을 명심하시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계속 투쟁에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상도동계는 위기에 강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험난한 유신치하와 신군부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민주화투쟁을 그렇게 계속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전통을 되살리고자 한다. 그것이 그들의 장기이므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그와 같이 상도동계의 회의가 흘러가는 것을 보고서 강하삼 의원은 새삼스럽게 조카 강훈의 생각이 난다. 그가 한달 전에 자신을 찾아와서 한 말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숙부님, 민주투사 김영삼이 이제는 신군부 출신인 노대통령의 말을 잘 듣는 2인자 행세만 하고 있어요. 그렇게 민주화를 열망하고 있는 국민들의 기대를 계속 저버리고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으면 대선후보도 되지 못하고 설혹 후보가 되어도 선거에서 지고 말아요. 그 점을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을 만나서 반드시 말해주세요… “;

그것은 옳은 말이다. 강하삼 의원이 틈을 보아 김영삼 의원에게 진지하게 그 점을 말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상도동계에서 강하삼 의원이 김영삼 영수의 최측근이 되고 이제는 상도동계의 투쟁방향이 그와 같이 정해지고 있다. 따라서 강하삼 의원은 국회 경제관계위원회에서 선임 입법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조카 강훈 서기관의 정치적인 식견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한편 서기관 강훈의 절친인 조영백 변호사는 그때쯤 국방부차관실에서 처가 숙부 격인 권영해와 만나고 있다. 작년 1990년말에 차관이 된 권영해는 자신의 임기가 2년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차관의 임기가 2년이기 때문이다. 벌써 차관이 된 지 8개월이 지나가고 있으니 이 자리도 1년 남짓이면 끝이 난다. ‘그 다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육사 15기 출신인 권영해는 1988년에 소장으로 전역을 하고서 운이 좋아 노태우 대통령에 의하여 국방부 기획실장이 된 인물이다. 노대통령은 하나회 출신들이 자신의 말보다는 전임 대통령 전두환의 말을 더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하나회 출신이 아니면서 행정능력이 탁월한 권영해를 국방부의 차관보급인 기획실장으로 삼았으며 그 다음에는 차관으로 중용한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명석하고 처신술이 뛰어난 권영해 차관은 노대통령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자리가 차관이 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노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군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하나회원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장관자리는 역시 하나회 출신에게 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내후년 932월이면 끝나게 되니 이제 1년반이 지나면 자신의 공직생활은 모두 끝나고 만다. 그러나 이왕 국방부차관을 지내고 있으니 권영해는 반드시 장관자리에 올라가고 싶다. ‘고향에서는 정말 오래간만에 차관이 나왔다고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가?’, 그 점을 생각하면서 권차관이 비상한 수단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 방법은 차기대권을 차지할 수 있는 세력에게 사전에 잘 보이는 것이다. 현재 노대통령의 후계자는 처조카 뻘인 박철언이거나 아니면 상도동계의 수장인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다. ‘누구에게 줄을 대는 것이 더 유리한 것일까?’… 그 점이 궁금한 권영해가 집안의 조카사위 뻘인 인권변호사 조영백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와 같이 중요한 자신의 진로문제를 어째서 권영해 차관이 조변호사를 불러서 개인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일까? 그 배경이 다음과 같다; 경주 월성이 고향인 권영해가 10년전에 집안 재종형님 댁에 혼사가 있다고 하여 오래간만에 고향을 방문한 김에 찾아 뵈었다.

경주시내에서 주유소, 버스회사, 정비공장, 운전학원 등을 두루 경영하면서 큰 돈을 번 재종형 권영한 사장이 자신에게 사위 조영백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딸 혜경이가 좋은 신랑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어;

 내 사위 조변호사는 일찍 사시에 합격하여 줄곧 서울에서 일하고 있지. 서울대 출신이고 고향이 경주에서 가까운 포항 인근 영일이야. 그러니 영해 자네가 잘 좀 지도를 해주게나. 부탁하이… “.

돈 많은 집안 형님의 부탁이라 권영해가 대령시절부터 서울에서 간혹 조영백 변호사를 만나오고 있다. 그런데 10년의 세월이 지나자 자신은 차관이 되어 있고 조영백은 정치권에서도 알아 주고 있는 인권변호사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따라서 권차관은 차제에 그의 정치적인 견해를 듣고 싶은 것이다.  

과연 그날 조영백 변호사가 처숙부 격인 권차관에게 어떠한 조언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훗날 김영삼 정권에서 어떠한 대변혁을 초래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