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18강(요13:18-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16. 00:35

요한복음 강해 제118(13:18-2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14(주일새벽)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13:18)

 

떡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가족이나 한 식구인 경우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배신자나 반역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이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41:9).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음모를 꾸며서 충신을 전사하게 한 자입니다(삼하11:4-5, 14-20). 그 때문에 다윗은 왕자의 반란을 두 번이나 경험하게 됩니다(삼하12:10). 압살롬 왕자의 반란을 맞았을 때에는 대부분의 친구와 신하들이 다윗 왕을 버리고 그를 대적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벌이 내린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으로는 한 없이 친구와 신하들에게 섭섭했던 다윗입니다. 그 때의 상실감과 절망감이 아득하게 묻어나고 있는 시가 위의 구절입니다.

그와 똑 같은 경우를 지금 예수님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36개월 동안이나 한 식구로서 동고동락을 했는데 선생인 자신을 버리고 가룟 유다는 배신을 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발꿈치를 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술책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남자와 여자의 후손입니다. 순수한 여자의 후손은 생물학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일이 역사적으로 단 한번 하나님의 능력으로 발생을 한다는 것이 3:15’절 예언의 내용입니다. 예언 그대로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의 능력으로 태어났습니다(1:18).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서 그렇게 성육신하신 것입니다(3:16-17).

이제 예수님이 공생애를 끝내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자 합니다(13:1). 그리하면 무덤 속에서 사탄의 가장 큰 권세인 음부의 권세를 부수어버리고 부활할 것입니다. 그 일을 알지 못한 채 사탄은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의 발꿈치를 물도록 획책을 하고 있습니다(13:2, 18). 사탄의 술책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자승자박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 점 역시 다윗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내가 야훼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야훼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7:14-17).

 

선생이신 주님의 복음의 말씀,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13:19)

 

예수님의 일생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담겨 있는 세상구원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점을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정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4-48). 그 일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예수님은 사탄의 수하가 되고 있는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 대속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지금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언의 말씀대로 자신이 십자가를 진 것이며 그 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의 은혜가 믿는 자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훗날 깨닫게 해주기 위함입니다(13:19).

예수님의 일생이 하나님 아버지의 세상구원의 계획에서 비롯되고 있듯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전해준 복음의 말씀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복음이 동일한 메시지이기에 그것은 진리입니다. 다만 선민들은 히브리 정경의 말씀을 자기본위로 해석을 하고 적용을 하였을 뿐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특혜에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채택한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이스라엘로 편입이 되지 아니하는 한 구원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자신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성전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율법과 할례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삼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좇는 자에게는 동일한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지적하고 하나님 말씀의 본뜻을 명백하게 밝히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복음의 말씀으로, 그리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입증한 것입니다. 선민 유대인들과 대적하였기 때문에 비록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지마는 그것이 승리의 길이 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예수님의 복음이 자신의 뜻과 동일한 것이며 진리이었기에 이 땅에 전대미문의 부활의 역사를 창조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확실하게 판결하신 것입니다. 판결의 결과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과 초대교회의 탄생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면 어떤 복을 받을 수 있는가?(13:20)

 

심부름을 온 종을 영접하는 자는 심부름을 보낸 주인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13:20). 이 말씀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영접하게 되는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임한다는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1:12). 그러므로 그 인생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 운명이 달라지고 팔자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죽을 자가 살아나고 남을 해치고 자신만이 살고자 하던 자가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그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를 영접하는 자에게도 똑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복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첫째, 복음을 들고 찾아오는 예수님의 일꾼들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움을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자를 잘 영접하는 것은 주인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자를 살리고 돌보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자가 된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예수님 자신을 영접한 것으로 간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상급이 주어진다는 내용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공관복음에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18: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