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17강(요13:16-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16. 00:33

요한복음 강해 제117(13:16-1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13()

 

무엇을 알고 행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가?(13:16-17)

 

예수님이 그 해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3:16-17).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종이란 주인에게 속해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종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주인의 뜻을 실천하는데 사용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종이 주인의 손발처럼 움직여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크리스천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성도는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뜻과 말씀을 좇아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 본문 말씀의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낸 자와의 관계를 예수님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냄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보낸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독생자는 본래 창조주와 함께 있는 말씀이며 그 자신이 창조주입니다(1:1-3). 한 마디로, 독생자와 창조주 하나님은 같은 본체이십니다(10:30, 2:6-7). 그러나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을 하셨습니다. 비천한 인간으로,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크지를 못합니다. 하나님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희생하고 헌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희생과 헌신의 결과로 하나님의 아들은 신원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본체의 영광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을 구원하는 큰 뜻을 이루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뜻을 본문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심부름꾼은 보내신 자의 뜻만을 따라서 행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은 파송자보다 결코 크지가 아니합니다. 크고 중차대한 일은 모두 주인이 알아서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종과 심부름꾼은 그저 간단한 일만 처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짐은 가벼운 것입니다(11:28-30). 그 이치를 알게 되면 세상살이에 있어서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복을 받은 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인을 해치는 종은 복을 받을 수가 없다(13:18)

종이 주인보다 크지를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행동을 한다면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점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더 영리하다고 처신을 하게 될 때에는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주인의 뜻을 벗어나서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추구하게 될 때 아무리 총애하던 종이라고 하더라도 주인은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처벌을 내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전승에 따르면, 천사장 루시엘이 하나님의 보좌를 탐내다가 사탄인 루시퍼가 되어 이 세상으로 쫓겨나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전승이 반영되어 있는 성경의 기록이 이사야 제14장입니다.

또한 창세기 제3장에는 영리하지만 간교한 뱀의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탄의 영이 그 뱀에게 들어간 것은 간교한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간사하며 동시에 교활한 것이 간교함입니다. 구체적으로, 윗사람에 대해서는 간사합니다. 비위를 잘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어리석고 약한 존재에 대해서는 교활하게 속이며 타락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 올무에 아담부부가 걸려들어서 타락하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심판을 행하십니다. 평생 동안 몸으로 기어 다니면서 흙이나 집어삼키도록 만드십니다(3:14). 이제 다시는 하나님 앞에 두 발로 서서 말을 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먹고 살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성과 지성을 잘못 사용을 하였기에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그 대상이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을 선생이며 주님으로 모시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선생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배신을 꿈꾸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산헤드린 공회에 밀고를 하고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하고자 합니다(22:4-6).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서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지를 아니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야망의 달성과 안전과 영달만을 추구할 뿐입니다. 세상 것에 가치의 중심을 두고 있기에 하늘의 복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가장 큰 복인 구원과 영생을 잃어버리는 자가 바로 종의 신분을 망각하고 있는 가룟 유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