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제106강(요12:2-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7월 3일(수)
베다니 마리아와 가룟 유다와 그리고 예수님(요12:1-8)
가룟 유다는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삼 년 육 개월을 스승과 함께 다니면서 많은 기적도 보고 천국의 말씀도 들었지만 그 중심에는 늘 세상적인 출세욕과 재물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왜 가룟 유다에게서는 성품의 변화가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을까요? 어떻게 많지도 아니한 돈, 넉 달치 품삯에 불과한 은 삼십 량을 받고서 스승 예수를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에 팔아 치울 생각을 했을까요? 한 마디로, 그 속에 천국과 하나님의 보좌를 믿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세속적인 출세의 야망을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나사렛 예수를 스승으로 모시고서 숙식을 같이 하며 부지런히 배웠지만 그 선지자의 말씀은 모두 구름을 잡는 것과 같았습니다. 도무지 현실감이 없으며 그 복음의 말씀이라는 것이, 특히 그가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 형체도 없으며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는 것입니다(눅17:20-21).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나 혹시 이루어질 수 있는 내세의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룟 유다가 보기에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은 오로지 스승 예수가 행하고 있는 놀라운 능력뿐입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로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믿을 수도 없고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에는 미래가 불확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스승 예수에게서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그 방법을 배우고 그를 떠나려고 생각을 굳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에게도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되살려낸 사건 때문에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일행을 주시한 것입니다(요11:46-47). 그대로 복음전파가 계속되면 그 부활의 능력 때문에 민심이 나사렛 일파에게 기울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 유대주의자인 예수의 선동에 의하여 유대교의 기반이 송두리째 뒤흔들릴 판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예수일행에 대한 지명수배를 내렸습니다(요11:57). 그 정보를 조기에 접하게 된 예수님과 제자들은 북쪽으로 급히 피신을 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의 외딴 마을에서 겨울 내내 숨어서 지냈습니다(요11:54). 그리고 새 봄이 되고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다시 예수님이 체포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우선 예루살렘 다 가기 전에 위치하고 있는 베다니의 나사로의 집부터 들르고 있는 중입니다(요12:1). 가룟 유다는 자꾸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초능력만 배우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그만 다 배우기도 전에 자신마저 지명수배자가 되고 신변이 자꾸만 위험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변의 안전도 확보하고 출세의 연줄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은 말을 갈아타는 방법입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버리고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라는 말을 얻어 타는 것입니다. 비록 스승을 배신하는 일이 될지라도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세상적인 출세의 기회를 잡는 데에 있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가룟 유다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나라를 선택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살이의 방법이라는 것이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그 약속에 대한 신뢰가 아닙니다. 세상적인 권모술수를 선택하고 살아 있는 세상의 권력과 타협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가룟 유다의 내심과 성품을 사도 요한이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4-6).
참고로, 일 데나리온은 어른 한 사람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므로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는 거의 햇빛이 비치는 날 일년 동안에 야외 공사장에서 노동을 해서 벌 수 있는 전체 수입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다니의 마리아는 그녀가 시집갈 때 사용을 하려고 거의 일년치의 품삯을 모아서 그 향유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비싼 향유를 그녀의 결혼을 뒤로 미루면서 먼저 예수님께 부어 드리고 있습니다.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예수님이 자신의 집을 떠나서 예루살렘에 가서 유월절 행사에 참여를 하시게 되면 아무래도 체포를 당하고 큰 변을 당하실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일개 처녀도 그토록 위험을 감지하고 있는 그 길을 예수님이 묵묵히 가시고자 하십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자신이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것이 필요조건이라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막14:36). 다른 쉬운 방법이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만이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 제물이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사람들이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처방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는 예수님의 고심(苦心, 괴로운 마음)과 그 일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을 드리는 최후의 기도의 내용이 요한복음의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성(人性)을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인간의 몸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심히 두렵습니다. 그러나 베다니 마리아의 향유부음이 그 마지막 가는 길을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시집가고 장가를 가는 것보다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기억하고 평생을 주님의 말씀을 쫓아서 살겠다고 하는 마리아의 그 결심이 크게 위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요12:7-8). 베다니의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으므로 향유의 냄새가 온 집에 가득하였다고 사도 요한이 그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요12:3). 그러므로 마리아의 향유는 이미 다 소비가 되고 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간직할 것은 이제 향유가 아닙니다. 향유를 부은 그 지극한 마음입니다.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리시고 대신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아서 그 향유를 마지막 가시는 길에 부어드린 것입니다. 그 마음을 고이 간직하라는 의미입니다. 마리아와 같은 마음이 바로 성도들의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 대속의 길을 고통 가운데 향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가슴과 마음 속에 담고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대속의 은혜를 입고서 되살아난 성도들의 마음가짐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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