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스룹바벨
(1)스룹바벨은 BC 597년 바벨론 포로가 되었던 유다 왕 여호야긴의 손자이다(대상3:16-19). 그는 BC 538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였으며(스2:2, 64-69)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다(스4:2-3, 5:1-2, 학1:12-15, 슥4:8-10). 스룹바벨의 생애와 관련하여 특별히 묵상해보아야 할 질문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 째로, 여호야긴 왕의 지차 셋 째 아들의 소생인 스룹바벨이 어떻게 정통성을 지닌 장자가 되었는가? 둘 째로, 유다 백성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가? 셋 째로, 성전을 짓고 복구하는 다윗 왕조의 역활은 스룹바벨의 손을 거쳐서 그의 후손 누구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2) 여호야긴 왕의 유다 식 이름은 여고냐 또는 여고니아이다(대상3:16-17, 렘28:4). 그의 아버지 여호야김 왕은 요시야 왕의 맏아들이었지만(왕하23:31-36) 동생 여호아하스(또는 요하난)가 먼저 왕위에 올랐으므로 족보상 둘 째로 밀려나 기록되어지고 있다(대상3:15).
여호야긴 왕은 부친 여호야김 왕이 죽자(왕하24:6) 십팔 세에 왕이 되어 불과 삼 개월간 통치하다가 BC 597년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왕하24:8-15). 삼십 칠년후 석방된 여호야긴 왕은 다시 집안을 바벨론 땅에서 일으켜 세울 수가 있었는데(왕하25:27-30) 그 슬하에 일곱 아들을 두었다(대상3:17-18). 그의 장자는 스알디엘이었으며 셋 째아들이 브다야였고 브다야의 아들이 스룹바벨이었다(대상3:19). 그런데 장자 스알디엘이 일찍 죽자 여호야긴 왕은 똑똑한 왕손인 스룹바벨을 택하여 스알디엘의 양자로 입적하고 그에게 가문을 물려 주었다. 그리고 스룹바벨이 장성할 때까지는 생부인 브다야가 족장일을 대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마태복음 제1장의 다윗의 족보를 보면,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 형제를 낳으니라”(마1:11)고 기록되어져 있어 마치 여고냐로 불리는 여호야긴 왕이 그 할아버지 요시야 왕의 아들인 것 처럼 보인다. 이 내용은 “낳고(γε√√άω)”의 의미가 ①아들 ②후손 ③양자 등 다양함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위의 사실로 부터 다음을 알 수 있다.
첫 째로, 족장 사회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다윗 왕조의 족보 역시 장자 승계가 원칙이다.
둘 째로, 백성들이 추대한 경우에는 지차가 먼저 왕이 될 수 있으며 이 때 장자의 신분을 획득하게 된다.
셋 째로, 아들이 없는 경우 동생에게 양위하기 보다는 똑똑한 조카를 입양하여 왕권이나 족장권을 넘겨주었다. 생부는 섭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정통성을 가질 수는 없었다.
넷 째로, 다윗 왕조는 바벨론에 의하여 망했지만 왕가의 대물림은 여호야긴 왕이 풀려난 이후 “여호야긴-스알디엘-스룹바벨”로 계속되고 있었다.
(3)스룹바벨은 유다 백성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을 뿐아니라 페르샤 제국의 왕으로 부터도 신임을 받았다. 그래서 BC 538년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었으며(느7:6-7) 다리오1세(BC 521-486)로 부터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기도 했다(학1:1).
스룹바벨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유다 백성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사마리아 인들의 요구를 배척했다(스4:1-4). BC 586년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여 황폐화되기 시작하자 사마리아 인들이 남하하여 이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BC 538년 유대 인 포로들이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을 복구하려고 했다. 이를 무력으로 함부로 저지할 수는 없었다. 왜냐 하면, 사마리아 땅도 페르샤 제국에 속해 있었으며 황제가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마리아 인들은 유대 인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성전 짓는 일을 돕고 함께 살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예수아와의 협의를 거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째로, 사마리아 인들은 이미 이스라엘 자손으로서의 긍지와 혈통적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BC 722년 멸망당한 이후 이백 년 동안 이민족과 함께 다민족사회를 형성해서 살아 오는 동안 그 곳 사마리아 땅에서는 이스라엘의 혈통도 유일신 하나님 종교도 모두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둘 째로,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함께 살자고 하는 것은 하나님 신앙을 회복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예루살렘 거주권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의도였으므로 이는 위험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일찌기 여로보암이 도입한 금송아지 숭배사상은 물론 사마리아 땅의 온갖 우상 문화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잔류하게 될 것이었다. 이 점을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분명히 한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스룹바벨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는 정치적, 종교적 타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회개와 하나님 경외가 먼저 요청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사마리아 인들은 이에 동의하지 아니한 채 재물과 인력을 동원하여 성전 건축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아니하냐는 물질주의적이며 세속적인 주장을 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4) 스룹바벨은 BC 966년 조상 솔로몬이 처음 지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450년만에 재건하는 감격을 맛보았던 정치적 지도자였다. 그 때의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 등 선지자들을 통하여 스룹바벨의 후손이 말세에 택함을 받아(학2:20-23) 하나님의 전을 이 세상에 다시 세울 것임을 선포하고 계신다(슥4:6-10). 이는 스룹바벨의 가계에서 메시야가 나타나실 것이며(마1:13-16) 그 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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