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60강(요6:52-5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9. 23:11

요한복음 강해 제60(6:52-59)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20()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6:53)

 

  요한복음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신 독생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가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으니 성도들이 마치 식인종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러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 초대교회 로마시대에는 기독교가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예수님이 인자의 살또는 인자의 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인자를 강조하면서 살과 피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자라고 하는 용어는 성육신하신 독생자가 자신을 사람들에게 소개를 할 때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입니다(1:51, 3:13-14). 그러한 인자라고 하는 단어가 수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살과 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신성이 담겨있는 살과 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신성이 담겨있는 살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인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성이 담겨있는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게 되는 대속의 피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한 마디로, “예수님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대속의 희생적인 삶을 의미합니다(16:24). 따라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6:53)는 말은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인생과 대속의 희생을 감당하는 인생을 살지 아니하면 영생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가 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6:56)

 

예수님의 안제자들의 안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며 이 세상의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장차 부활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가실 분입니다(3:13). 반면에 제자들은 아직 육신을 입고서 이 땅에 남아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자들입니다(28:18-20). 그러므로 예수님의 안이 세상에서 승리하신 천국의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영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안거듭난 성도들의 속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한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6:56). 그러므로 말씀을 실천하면서 대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처럼 영적인 삶을 살 수가 있고 예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도의 몸 속에는 십자가의 대속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남은 생애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도록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삶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라고 부르면서 남은 평생을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살게 됩니다. 그와 같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성도의 선례를 사도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예수님의 친동생인 장로 야고보 등에게서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벧후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1:1)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6:57)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는 나사렛 예수만 처형을 하고 나면 자신들의 유대교가 튼튼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총독에게 부탁을 하여 사형판결을 받아서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엄청난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만 상대를 했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야훼 하나님의 존재를 깜박했기 때문입니다.

전후(戰後, 세계 제2차대전 후를 말함) 일본에서는 정치권의 실세가 전면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패전의 책임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화된 정국에 일본제국시대의 주역들이 얼굴을 내밀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다른 인물들을 내세워서 정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자유민주당이 장기집권을 해오면서 그러한 행태는 하나의 정치적 관습으로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막후실세라는 말이 생기고 그러한 정치를 합리화하는 명분으로서 옛날 일본의 속담이 재등장을 했습니다; “춤을 추는 인형보다 인형을 조정하는 사람이 실력자인 것이다”. 각 파벌의 영수들이 실력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원내각제이므로 여당을 대표하는 당수가 수상이 되는데 그 수상은 실세인 파벌들의 흥정과 합의에 의하여 탄생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파벌간의 협상이 사후에라도 깨어지게 되면 수상이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일본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당수나 수상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파벌영수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해야만 합니다.

그와 동일한 원리가 하늘에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과 이 땅에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시는 독생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독생자를 아들로 파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아들에게 새로운 몸을 만들어 주고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서 살아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2:7).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히브리 성경에 대한 해석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도 나사렛 예수의 복음적인 해석이 히브리 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 말씀의 본래 뜻이라고 생각을 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세상법정에서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가 승리를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정의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정반대였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은 패배자였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걸림돌이 되고 만 것입니다. 만민과 열방을 구원하고자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 선민들만 구원하시고 이방인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을 베푸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여전히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얼마나 구태의연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온 세상의 창조주를 자신들만을 위한 보호자로 축소하여 제한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결과 나사렛 예수는 이단아이며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반역자라고 판정한 것입니다. 환언하면, 야훼 하나님이 예수의 손을 들어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자신 있게 믿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이후에 유대 땅에서 벌어진 역사는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무덤 속에서 다시 살려주심으로써 복음이 옳았다는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1:16-17).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예수님이 본문 가운데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6:57a). 동일한 역사의 원리로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파송하고 있는 제자들과 성도들도 무덤 속에서 다시 살릴 것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6:57b),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6:5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