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69강(창46:5-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5. 11:09

창세기 강해 제269(46:5-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419()

 

애굽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일행의 모습이 상징하고 있는 것(46:5-7, 1:8-11)

 

오늘 날은 이미 국제화가 이루어져서 소위 지구촌시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공기를 이용하여 나라와 나라 사이를 여행하며 아예 생활의 터전까지 옮기는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 결과 여러 민족들이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고 함께 노동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공여객기가 없었던 시절만 하더라도 배를 타고서 험한 바다를 건너 외국을 여행하거나 아예 이주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하물며 우마차를 이용하여 이동을 했던 고대사회나 중세사회에 있어서는 이민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희귀한 경우입니다. 바로 그러한 아주 드문 경우가 성경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데라, 아브람, 롯이라고 하는 삼대의 가나안 이주가 그러하고 여기 이스라엘 가문의 애굽 이주가 그러합니다(11:31, 46:5-7).

그런데 이스라엘 집안의 애굽 이주는 더욱 특이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그들이 애굽의 총리로 있는 요셉의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기 때문입니다(45:9-11). 둘째로, 이미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영주허가를 받아서 정식으로 입국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5:16-20). 그것은 마치 성도가 천국에 입성하는 것만큼이나 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10:24-27). 그 당시 이민족에 대한 바로의 영주허가가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곳 오세아니아에 한국사람들이 이주한 역사를 잠시 살펴보더라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1950년대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일부 한국사람을 데리고 들어온 경우가 있고 전쟁 후에 원조계획의 일환으로 한국의 교사들을 잠시 초청하여 영어교육을 시켜준 일이 그 시초입니다. 그러므로 그 역사가 길어야 60년 정도입니다. 정식 이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1970년대에 월남전이 끝나가면서 일부 한국사람들이 귀국을 하지 아니하고서 오세아니아로 들어옴으로써 어쩔 수 없이 그 서막이 열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세아니아 이민 역사와 대조하더라도 3,800여년 전인 BC 1,876년에 야곱의 집안이 정식으로 이민을 떠나고 있습니다(46:6). 가나안의 대 족장인 이스라엘은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손주들 그리고 부인들과 딸들을 모두 거느리고 정식으로 애굽 총리의 초청을 받고 황제의 허가까지 얻어서 애굽에 입국을 하고 있습니다(46:7). 그 모습을 모세가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남부의)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 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46:5-7).

이스라엘 일행의 애굽 이주행렬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노약자들을 먼저 바로의 수레에 태우고 있습니다(46:5). 둘째, 대 족장 이스라엘의 엄청난 재산을 모두 가지고 갔습니다(46:6a). 특히 애굽에서 목축업을 계속 경영하기 위하여 가나안에서 자신들의 수 많은 가축의 떼를 모두 끌고 가고 있습니다(46:6b). 그 결과 가축을 안전하게 몰고 가기 위하여 많은 수의 목동이 함께 입국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흉년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약탈이 심합니다. 수 많은 가축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수의 호위무사가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셋째, 종들인 목동들과 호위무사들의 수는 계산에서 제외를 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요셉의 부모와 형제들 그리고 그들의 직계자손들의 수만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46:7)입니다.

이스라엘과 그 자손들의 애굽 이주행렬은 매우 당당합니다. 그 모습을 430년 후에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다시 만나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60만 가량이요 수 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12:35-3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라. 430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12:40-41). 출애굽의 광경은 마치 이스라엘 자손의 애굽 이민 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이 세상나라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출입국을 하도록 만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나라의 임금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려고 합니다. 자신들의 이득과 안전보장을 위해서 선민들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이민 당시와 매우 대조적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1:8-11). 성도들이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그 나중의 모습은 매우 당당합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출애굽의 역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