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254강(창44:2-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4월 3일(목)
요셉의 은잔의 의미(창44:2-5)
애굽의 총리인 사브낫바네아는 사실 요셉이며(창41:45) 그의 친동생이 베냐민입니다(창35:16-18). 22년만에 친동생 베냐민을 처음으로 상봉하게 된 요셉은 그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하여 총리의 관저로 초청을 합니다(창43:16). 오찬모임을 준비하는데 베냐민 덕분에 그의 이복 형들이 모두 초청이 되고 있습니다(창43:17). 관저 접견실에서 베냐민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된 요셉은 그 핏줄의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급히 안방으로 들어가서 혼자서 울고 나옵니다(창43:30-31). 그날 오찬은 물론이고 아주 총리관저의 객실에서 하루 밤을 지내도록 배려를 해줍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떠나 보낼 준비를 합니다(창44:3). 그런데 요셉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로, 가나안에는 아직 5해의 흉년이 남아 있습니다(창45:6). 양식이 떨어지게 되면 계속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와야만 합니다(창42:1-4, 43:1). 하지만 그 경비를 모두 감당하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결국 앞으로 베냐민도 굶는 날이 먹는 날보다 더 많아질 것입니다. 차마 그와 같은 미래의 일을 알면서 그를 그냥 가나안으로 보낼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가나안에서 계속 살게 되면 베냐민이 보고 듣는 것에 제한이 있을 것입니다. 잘해야 일부 목초지를 지배하는 족장이 되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선진문명의 혜택을 별로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칠 공산이 큽니다. 그런데 요셉이 총리로 살고 있는 애굽 제국의 수도에서는 볼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습니다. 세계관이 넓어지고 높은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노예로 팔려온 애굽이었지마는 그래도 청년시절부터 보고 배울 것이 많았던 대 제국입니다(창39:1-6). 가히 “말은 새끼를 낳으면 가나안으로 보내고 사람은 애굽의 수도로 보내라”고 말하고 싶은 요셉입니다. 이제 그러한 혜택을 애굽의 총리인 요셉은 친 동생 베냐민과 함께 나누어서 누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난 요셉이 청지기에게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창44:1-3); 첫째, 그들이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양의 곡식을 나귀에 실어 주라는 것입니다. 둘째, 돈도 자루 속에 많이 넣어주라는 것입니다. 셋째, 양식을 살 때 지불했던 돈도 그대로 다시 넣어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참으로 이상한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애지중지하는 은잔을 베냐민의 짐 속에 몰래 넣으라는 것입니다(창44:2).
그 은잔이 두 가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요셉의 청지기가 그들을 추적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물건입니다(창44:4). 주인의 것을 훔쳐갔다는 물증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그 은잔이 자루 속에서 발견이 되면 자루의 주인은 애굽 총리의 관저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일종의 ‘유턴’장치인 셈입니다. 일단은 은잔을 몰래 훔친 혐의를 받고서 소명을 해야만 합니다. 설명이 신통하지 않거나 입증이 되지 않으면 두 배로 배상을 해야만 합니다(출22:4). 그것도 부족하면 종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출22:3). 결국 그 은잔은 베냐민을 가나안이 아니라 애굽 총리의 관저로 다시 불러들이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물건입니다.
요셉은 청지기에게 그의 형제들을 따라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창44:4-5). 돈을 받았다가 되돌려주면서 양식을 그냥 준 사람이 애굽의 총리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더구나 총리의 관저에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 했습니다. 객실에서 하룻밤 유하고 다음날 아침식사도 하고서 떠나 보낸 요셉입니다. 그와 같은 호의를 정면으로 배신하는 행위가 바로 총리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을 훔친 것입니다. 무조건 도둑의 누명을 씌우고 그렇게 억울하도록 몰아 부치라는 지시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지시일까요? 그 옛날 22년 전에 17세의 철부지 요셉을 미워하여 이복 형들이 그를 벌레 보듯이 하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창37:20). 유다가 말리는 바람에 애굽으로 가는 무역상에게 노예로 팔아버린 것입니다(창37:26-28). 그 때 요셉이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그 억울한 심정을 십 분의 일이나마 느껴보도록 요셉이 연출을 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창44:4-5).
애굽의 총리인 요셉의 은잔은 두 가지의 목적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 마시는데 사용을 합니다. 둘째, 점을 치는 데에 사용을 합니다(창44:5). 은잔으로 마시는 것은 포도주와 같은 비싼 술일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서 자신의 잔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장차 은잔에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는 성찬식은 자신의 보혈을 마시는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막14:23-25). 다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이 은잔으로 점을 치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점쟁이가 하는 일입니다.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자는 계시록의 기록에 따르면 영벌의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계21:8). 그렇다면 요셉은 그 은잔으로 포도주를 마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애굽에 노예로 팔려온 17세의 히브리인 요셉이 형통한 삶을 일구어갈 수가 있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물 설고 낯이 선 이국 땅에서 오로지 조상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했습니다(출3:15).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노예로 팔려왔지만 아버지 야곱이 그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려주었던 하나님 이야기만은 함께 온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이 하란 땅에서 조상의 하나님을 의지하여 고난을 물리치고 자수성가하여(창31:42) 훗날 가나안 땅에서 대 족장 이스라엘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사건들을 잘 암기하고 있습니다(창37:13-14, 48:22). 반드시 언약을 성취하시는 벧엘의 하나님을(창35:6-15) 요셉도 의지하고서 살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계속 묵상하면서 자신의 힘든 생활을 극복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이제는 하나의 버릇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은잔으로 포도주를 마시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역사를 묵상하고 자신의 미래를 조망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라고 하겠습니다. “점 치는데 사용하는 은잔”이라는 말은 그와 같은 좋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강해 제256강(창44:11-1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1.31 |
---|---|
창세기 강해 제255강(창44:6-10)(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1.30 |
창세기 강해 제253강(창44:1-3)(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1.29 |
창세기 강해 제252강(창43:33-34)(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1.29 |
창세기 강해 제251강(창43:32)(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