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37강(창42: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 21. 13:46

창세기 강해 제237(42: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319()

 

야곱의 눈에 보이는 애굽의 양식들(42:1-2), 그리고 요셉의 이복 형 열명이 모두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간 이유(42:3).

 

애굽에만 7년 풍년이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 이웃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찾아오는 연속 흉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애굽에는 곡식을 저장해놓고 있었고 주변국들은 그 정책을 추진하지 아니했습니다. 그 결과 각국 백성들이 곡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41:54-57). 이제 그들에게 곡식을 팔지 아니할지는 애굽의 총리인 요셉의 소관입니다. 한 마디로, 양식을 사려는 자는 누구든지 요셉 앞으로 나아와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41:57).

가나안 땅에도 두 해째 흉년이 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 흉년을 맞이했을 때에는 그래도 그 전에 연속으로 풍년이 들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2년 연속으로 흉년이 들자 이제는 더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이웃 주민들이 애굽으로 몰려가서 양식을 사오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야곱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아들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42:1-2). 여기서 두 가지 생각을 해볼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야곱은 애굽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곡식창고를 방문하고서 자신의 눈으로 그곳에 저장되어 있는 곡식을 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야곱은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았다”(42:1)고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웃이 애굽에 가서 사온 곡식을 보고서 야곱은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사실을 마치 자신의 눈으로 본 것처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눈으로 그 실체에 대한 증거를 접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11:1).

둘째로, 그 다음으로 생각을 해보아야 하는 것은 야곱이 이웃으로부터 들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42:2). 그것은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째, 먼저 돈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둘째, 애굽의 총리를 만나야만 합니다. 셋째, 값을 치르고 양식을 사서 먼 길을 운반해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서 애굽까지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되도록 많은 양의 양식을 사서 무사히 가나안 고향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많은 돈을 지니고 애굽까지 먼 길을 가야만 합니다. 만약 가는 도중에 마적 떼를 만나게 되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무술에 능한 자신의 아들 10명을 함께 애굽에 다녀오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42:3). 하지만 막내 아들 베냐민만은 제외하고 있습니다(42:4). 그리고 열명이 함께 가게 되면 장점이 또 있습니다. 한두 사람보다는 열명이 애굽의 총리를 예방하게 되면 더 많은 곡식을 사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도 연이은 흉년으로 곡식의 방출을 제한하고 있을 것입니다. ‘일인당 얼마씩이라고 제한을 하고 있다면 여러 명이 함께 가는 것이 더 많은 양의 곡식을 확보하게 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뿐입니까? 곡식을 가나안까지 운반해오는 과정에 있어서도 열 명의 형제들이 함께 행동을 한다면 엔간한 화적 떼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계속 흉년이 들게 되면 양식을 노리는 도적과 강도들이 들끓게 되기 마련입니다.

 

야곱은 왜 막내 아들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지 아니하고 있는가?(42:4)

 

야곱은 22첩을 거느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온통 애처(愛妻) 라헬에게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라헬이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라마 근처에서 죽게 됩니다(35:16-18). 그녀의 시신을 운구하여 베들레헴 근처에 장사를 지내고 나서(35:19-20) 야곱은 그녀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을 편애하게 됩니다(37:2-3). 그 결과 요셉이 17세가 되었을 때에 그의 이복 형들이 그를 미워하여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리는 비극이 연출됩니다(37:28). 물론 그들은 요셉이 형들을 찾아서 도단으로 오다가 짐승에 찢겨서 죽은 것처럼 물증을 만들어 거짓보고를 하고 맙니다(37:31-34).

그 후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시신도 보지를 못한 채 그를 자신의 가슴에 묻고서 살게 됩니다(37:35). 따라서 야곱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만은 절대로 먼 곳으로 보내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42:4). 당시 4살의 꼬마가 이제 22년이 지나 어엿한 26세의 청년이 되어 있지만 아버지 이스라엘이 보기에는 여전히 보호의 대상일 따름입니다. 그와 같은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