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21강(창40: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 10. 07:31

창세기 강해 제221(40: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35()

 

친위대장의 집안에 자리잡고 있는 의금부 옥사에서 요셉이 애굽 왕의 측근을 만나다(40:1-3)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성장을 한 사람입니다. 비록 애굽에 노예로 끌려왔지만 그가 조상의 하나님을 의지하였기에 그에게 형통함의 복이 있었습니다(39:2). 17세의 소년이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는 타국에서 종살이를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애굽의 문물과 학문을 빠르게 배우고 익힐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고관대작인 보디발 집안의 대내외적인 일을 얼마나 잘 처리를 했는지 모릅니다. 요셉의 매끄러운 일 처리와 그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형통의 복을 부러워했던 보디발이 그를 가정총무로 삼아서 집안의 일과 자신의 사업체를 모두 돌보게 했습니다(39:3-6). 그렇게 종이지만 종 같지 아니한 좋은 세월을 보내면서 요셉은 5년 이상 보디발의 집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안방마님의 모함으로 옥살이를 시작하게 됩니다(39:16-20). 다시 요셉이 하나님께 매어 달립니다. 그 결과 요셉은 간수장으로부터 신임을 얻게 됩니다(39:21). 그는 감옥에서도 제반 사무를 관장하는 실무자가 됩니다(39:22). 요셉은 이미 보디발의 집에서 귀족의 집과 재산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입니다(39:4-6). 이제는 감옥에서 관청의 실무를 배우고 있습니다(39:22-23). 그렇게 폭넓은 식견을 갖추고 행정조직 및 귀족집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셉을 그와 같이 성장시키고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훗날 만민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용이 될 것입니다(45:5, 7, 50:20).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통은 요셉에게 우호적이고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는 의미를 뛰어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성숙한 인물 그리고 실력을 갖춘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요셉의 삶을 인도해주고 있다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그렇게 실력을 쌓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요셉의 나이가 28세가 되고 있습니다(41:1, 46). 17세의 소년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와서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 11년의 세월이 지나간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비참한 삶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릅니다. 구체적으로, 변방 가나안 촌놈이 애굽 제국의 중심부에 와서 귀족가문의 실무도 배우고 관청의 제반 사무도 익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용도에 맞도록 쓰임을 받기 위하여 환골탈태를 하고 있는 요셉의 젊은 시절입니다.

그렇게 준비가 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요셉을 장차 바로에게 인도해줄 끈을 붙여주시고 있습니다(41:9-14). 바로의 최 측근 두 사람이 죄를 얻어서 의금부 옥사로 들어온 것입니다(40:1-3). 모세는 그저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0:2). 그러나 그들의 직책은 그렇게 간단한 자리가 아닙니다. 애굽 제국의 황제인 바로는 항상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 민족을 정복하여 다스리고 있는 제국입니다. 언제 어느 민족이 반란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더구나 반란과 전쟁은 내부에서 자신을 암살하거나 독살함으로써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는 것 마시는 것 어느 하나 사전에 철저한 점검이 없이는 식사를 할 수도 없습니다. 자연히 최 측근을 그 자리에 임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 대한 신임도는 항상 무장을 하고서 자신을 경호하고 있는 친위대장에 버금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두 관원장이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바로에게 죄를 범하고 분노를 사서 의금부 옥사에 수감이 되고 있습니다(40:1-3).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저택 안에 설치되어 있는 그 의금부의 옥사는 일반죄수들을 수감하고 있는 감옥이 아닙니다. 바로의 신변의 안전과 관련이 된 범죄를 행한 중죄인만을 수감하고 있습니다. 그 감옥에 요셉이 수감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 불합리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치에 맞지 아니하는 조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친위대장 보디발의 권력입니다. 드디어 요셉의 쓰임새가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디발은 두 관원장이 지금은 비록 죄수의 몸으로 자신의 저택 내 의금부 옥사에 갇히고는 있지만 그들에게 바로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관원장에게 잘 보이고 싶습니다. 그들이 언제 다시 복권이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감옥에서 그들을 섬기도록 요셉을 그 두 관원장에게 종으로 주고 있습니다(40:4).

 

종살이에서 감옥살이로, 다시 감옥에서도 종살이로, 그렇게 요셉을 한 없이 낮추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여주고 있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공생애, 십자가의 삶(40:4, 2:5-11)

 

요셉은 형제들의 배신으로 억울하게 애굽에 종으로 팔려온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이방 땅에서의 종살이가 서러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또 억울하게 안방마님의 모함으로 감옥살이까지 하고 있습니다. 무슨 그러한 기구한 운명이 다 있습니까? 그의 인생의 바닥은 그 정도로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살이를 하면서 동시에 두 관원장을 상전으로 섬기며 그들의 수발을 들어야만 하는 종살이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인생 밑바닥 아래에 다시 지하층이 나타난 셈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알 수 없는 인생, 바닥에서 또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요셉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변방 가나안의 소년이 꿈도 꿀 수 없는 경험을 애굽에서 하면서 하나님의 배려로 애굽 제국의 문물과 관청의 일을 밑바닥에서부터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로 비상을 하고 크게 쓰임을 받을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 인생의 완전한 바닥에서 일어서는 것 말고 또 떨어질 바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상과 같은 요셉의 스토리는 그 의미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후계자로 군림했던 요셉이 갑자기 애굽의 노예로 떨어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창조주 옆에서 독생자의 영광을 누리고 있던 하나님의 아들이 비천한 피조물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1:14). 둘째, 요셉이 보디발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와 똑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3년반 동안 12명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공생애가 끝나가는 시점에서는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고 있습니다(13:5). 그것은 종이 손님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섬김의 삶에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셋째, 요셉이 옥중에서도 두 관원장을 섬기는 그들의 종이 되고 있습니다. 두 관원장을 위해서 그들이 해야 될 일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스승을 버리고 제 살 길을 찾아서 흩어져버린 제자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만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요셉이 지불하고 있는 쓰디쓴 인생의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들고서 만민구원에 나서야만 하는 성도의 삶도 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억울함과 모함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난의 세월 등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고통의 세월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자는 성화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받은 대로 되갚아주겠다고 벼르면서 칼날을 갈고 있는 자는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이는 결말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의 글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