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16강(창38:27-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 8. 08:27

창세기 강해 제216(38:27-3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32(주일새벽)

 

이삭이 얻은 쌍둥이의 예언,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는 말씀이 유다의 집안에서는 어떻게 응하고 있는가?(38:27-29)

 

이삭은 아내 리브가에게 자식이 생산되지를 아니하자 하나님께 20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25:20, 26).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태를 열고 닫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듣고서 자라난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20:17-21:7). 그의 믿음의 간구는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아내 리브가의 태중에 쌍둥이가 들어선 것입니다(25:21-23). 그런데 그 쌍둥이는 모태에서부터 서로 치고 받으며 싸우고 있습니다. 전례가 없는 사실인지라 기도로써 그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입니다(25:23).

이삭과 리브가가 살고 있던 사회는 고대 가부장사회입니다. 장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지차는 그의 신하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극상이 가능하다는 예언의 말씀입니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말씀입니다. 그 점에 관하여 훗날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1:2-3)라고 말라기 선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는 사도 바울이 다시 그 대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9:12-13). 그렇다면 과연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 점과 관련하여 본문에서는 유다의 집안에서 똑 같은 일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다말이 해산을 하고 있는데 손을 먼저 내밀었던 세라가 다시 태중으로 들어가고 그 대신에 둘째인 베레스가 머리를 먼저 내밀고 있습니다. 마침 양수가 터지면서 세상에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38:28-30). 모태에서는 누가 형이고 아우인지 모릅니다. 세상에 태어난 순서로 보면 손이 먼저인가 아니면 머리가 먼저인가의 차이가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판정은 손이 아니고 머리입니다. 그 점을 유다의 족보가 다음과 같이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대상2:4).

같은 맥락에서, 교회에서는 주님의 손발이 되고 있는 성도의 뜻이 우선이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뜻이 항상 우선입니다(5:23). 그리고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먼저 받아들이고 주님의 뜻대로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이 우선입니다. 결코 선민 유대인 출신이라고 하여 먼저가 아닙니다.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하자면, 성전, 할례, 율법, 그리고 혈통과 가문이 우선이 될 수가 없습니다(1:12-13).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주님처럼 인생을 살고 있는 자라면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이 가장 먼저 천국으로 직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7:21, 8:11-12).

 그와 같은 사실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했던 유대인들은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이방인 다음으로 물러나게 되는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11:11-12). 그러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을 받게 되면 유대인들도 충만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11:25-27).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법칙을 사도 바울이 실감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3-36).

참고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사울이었던 시절에는 유대교의 랍비 가운데 가장 학문이 뛰어났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10년 이상 유대교의 교리와 율법에 관하여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22:3b). 사울은 본래 소아시아 길리기아 성의 중심도시인 다소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헬라식 교육을 받았습니다(22:3a). 그의 부모는 사울이 출중하므로 그를 본국 예루살렘으로 보내어서 유대교식 수업을 받도록 했습니다. 장차 유대교의 뛰어난 랍비, 곧 구약선생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 만큼 사울과 그의 부모님의 동족 사랑은 대단한 것입니다(9:1-3, 10:1).

그러했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게 되는 기적을 맛보고서 남은 평생을 이방인 사도로 전력투구를 하고 있습니다(22:6-21, 11:13). 그렇지만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자신이 이방지역에서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만큼 주님께서 자신의 친척과 동족을 구원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11:14). 참으로 그의 기도는 풍성하게 응답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성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십분 깨닫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그 증거를 로마서 제16장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동역자와 후원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4분의 1정도가 그의 친척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시었다. 그러나 야곱의 후손인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사랑하여 그만 만민구원사상을 부르짖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여버렸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만민구원의 복음이 이방으로 넘어가버렸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이지만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에서를 구원하시고 있다. 그들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말라기 선지자의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먼저 사랑하신 분이시다(1:2-3). 그러므로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방인 다음에는 다시 야곱을 사랑하실 것이다(11:24). 그와 같은 측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에는 선후가 있을 뿐 진정으로 한쪽을 미워하거나 다른 쪽을 영원히 사랑하는 그와 같은 편파적인 불공평은 없는 것이다. 결국 누가 먼저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고 먼저 그 은혜를 충만하게 받는가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11:33-36).

 

베레스와 세라의 자손은 어떻게 차이가 나고 있는가?(38:29-30)

 

베레스의 아들이 헤스론과 하물입니다(38:29, 대상2:5). 그런데 헤스론의 가계가 훗날 다윗 왕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1:3-6). 이스라엘의 정통왕가를 이루는 집안이 베레스로부터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으로까지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1:16).

한편 세라의 집안에 대해서는(38:28, 30) 100% 딱 맞게 떨어지는 성경상의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세라의 아들이 다음과 같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세라의 아들은 시므리와 에단과 헤만과 갈골과 다라니 모두 다섯 사람이요”(대상2:6). 그 가운데 세라의 세 아들의 이름이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헤만과 갈골과 다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혜자라고 불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는 후대에 가서 솔로몬 대왕에 필적하는 지혜자들의 이름이 그들 삼형제의 이름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에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왕상4:30-31). 고대 중동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이름자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2:18, 르우엘의 사위 모세, 4:18, 이드로의 사위 모세, 16:17, 요나의 아들 시몬, 1:42, 요한의 아들 시몬). 따라서 세라가 마홀이라는 이름자를 동시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세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라의 이름이(대상2:6) 지혜가 뛰어난 삼형제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왕상4:31) 너무나 흡사합니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요? 베레스에게 형의 자리를 양보한 세라입니다(38:27-30). 형의 집안이 훗날 다윗 왕가를 이루고 메시아의 출신가문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에 걸 맞는 하나님의 은혜가 세라에게도 주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바로 슬하의 아들 3명이 모두 지혜자가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왕상4:31).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혜자가 되는 것이 왕이 되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