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동족 이스라엘이 여수룬의 잘못을 범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세의 마음(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 4. 11:50

제목; “동족 이스라엘이 여수룬의 잘못을 범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세의 마음”(32:13-23, 10:1-4, 3:18-19)

설교일; 주후 20221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4일 화요일 작성)

 

신명기는 향년을 앞둔 모세가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특히 여호와의 선지자인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훗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맞이하게 되는 여호와신앙의 이탈에 대하여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이 80세에 미디안 광야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만나 출애굽의 사명자로 세움을 받은 모세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합니다. 그후 40년간 동족과 함께 광야생활을 하면서 여호와의 은혜로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동족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모세는 걱정이 큽니다(1:37). 왜냐하면, 그의 눈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될 때에 그만 믿음생활에서 이탈하게 되는 불상사가 내다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미래에 닥치는 동족들의 신앙적인 잘못을 미리 가르쳐 주기 위하여 모세는 본문 곧 신명기 제32장 제15절에서 여수룬이라는 용어를 특별히 이스라엘대신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광야생활 가운데 여호와신앙을 잘 지키고 있는 동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라고 한다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세상적인 풍요에 취하여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게 되는 동족들의 이름이 여수룬입니다;

그런데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은 겉으로 보기에 여전히 언약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생활을 열심히 영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가 보기에 여호와신앙을 이탈한 자의 자기 변명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중심 곧 심령속을 살피시는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있는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수룬이라는 용어의 뜻은 세상적으로 자신들이 의인이라는 의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고 의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 보기에 그리고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이 보기에 올바른 신앙인이라고 여김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차이를 밝히 설명하고 있는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때 유대교의 랍비로서 자신의 종교적인 열심을 의인의 지표로 삼았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만남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적인 의인이 곧 하나님 앞에 의인이 아니라고 하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과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동족들 곧 유대교인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랍비 사울이 아니라 이방인 사도 바울이 되어 있는 그가 로마서 제10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1-4).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자면 올바른 지식을 따라야 합니다(10:1-2).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올바른 지식은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 에베소서 제3장 제18-19절에 의하면 길이, 넓이, 깊이, 높이라고 하는 4가지 차원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올바른 지식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나오고 있습니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너비길이높이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8-19);

 

(1)  여기서 길이는 올바른 지식은 반드시 창조주 여호와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1:3-14).

(2)  넓이는 선민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3)  깊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악한 영이 장악하고 있는 음부의 권세가 깨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8:2).

(4)  높이는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간 성도들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22:28-30).  

(5)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그것을 실천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본받아 살아가는 성도들은 자연히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구현하는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그리스도의 올바른 지식에서 넘쳐나오고 있는 만민구원의 사랑인 것입니다(24:44-48).

둘째로,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종교적인 열심은 구원에서 멀어지며 의인을 상하게 하는 해독을 끼치게 됩니다(10:2). 한때 랍비 사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교리가 완전한 진리라고 굳게 믿고서 종교적인 열심이 지나쳐서 그리스도의 제자인 집사 스데반을 정죄하고 돌로 쳐서 죽이는데 앞장을 선 적이 있습니다(8:1);

 

 마찬가지로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들의 종교재판을 통하여 나사렛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로마총독의 권세를 빌려서 십자가에서 처형하고 말았습니다(26:64-66, 18:31, 19:14-16) .

셋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자신의 의를 구별하고 있습니다(10:3).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것입니다. 그 반면에 자신의 의는 피조물인 자신과 사람들이 보기에 의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의 정신과 인간이 이기적으로 또는 집단이기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정의(justice)와의 차이와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의 또는 공의는 하늘의 법정에서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인간의 의 또는 정의는 이 세상의 법정에서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영생의 구원이란 본질적으로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신실하게 주인의 뜻을 따랐을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2)  그 반대로 사람들이 자신과 이웃 또는 종교적인 집단의 인정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기에 불완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종인 성도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내려놓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과 의를 따라서 신앙생활을 영위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의 구원을 얻는 비결입니다.

넷째로, 4절 말씀 곧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는 말씀의 뜻은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면 사람은 결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의를 올바로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사도 바울이 레위기 제18장 제5절 말씀(“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을 원용하여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10:5)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능히 자신들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한때 유대교의 율법선생인 랍비였던 사도 바울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사도 바울은 그의 로마서 제7장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1-24);

(3)  랍비 사울은 유대교인들이 보기에 율법 선생이며 온전히 율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영이신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속사람으로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싶지만 이기적인 마음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목숨유지와 육신적인 삶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율법의 의를 온전히 이룰 수가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율법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성령님의 영적인 도우심을 받아 육신을 이기는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8:1-17).

(4)  따라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요컨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령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비로소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제4절 말씀 곧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명심하고서 이제부터 오늘의 본문말씀을 빠른 속도로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13.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엉긴 젖과 양의 과 어린양의 기름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을 먹이시며,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32:13-16);

(1)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40년 광야생활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들판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고단한 삶이 아니라 높은 곳 시원한 곳에서 편히 쉬어도 충분한 먹을 거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32:13a).

(2)  둘째,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서 다음과 같은 땅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1) 바위산에서 석청과 감람유를 얻으며(13b), 2) 목축으로 양유, 소젖으로 만든 요구르트와 버터, 맛있는 어린양고기를 충분하게 얻으며(14a), 3) 아람에서 수입하여 바산에서 키운 숫양과 염소의 좋은 종자 그리고 우량품종인 밀과 포도주가 풍족함을 더해주고 있으며(14b), 4)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풍요로 살이 찌고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15a);

 

(3)  그 때 영적으로 겸손하지 아니하면 창조주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모든 것이 당연한 자신의 복이라고 치부하는 교만 곧 자신의 세상적인 의로움을 내세우는 여수룬의 행태가 생겨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15a&b). 영원한 구원의 반석이신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고 다시 광야생활의 어려움 가운데로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15c).

(4)  그 점을 모세가 달리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32:16)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창조주 여호와가 아닌 다른 영적인 존재 곧 악한 영을 섬기고자 하며 더 나아가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신을 하나님 대신 섬기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우상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이데올로기, 교리, 자신의 의, 의인사상 등이 내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자녀가 그를 격노하신 까닭이로다.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32:17-20);

(1)  영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께 제사하느냐 아니면 악한 영인 귀신들에게 제사하느냐로 대별이 되고 있습니다(17a). 그 가운데 가나안 땅의 풍요에 취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 대신에 악한 영들에게 제사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는 모세의 경고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잘못된 행태가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은 히브리정경의 기록만큼이나 지켜야 될 것이 많고 어렵습니다. 반면에 악한 영을 섬기는 것은 심히 간단합니다. 그저 무당을 통하여 성의껏 제사를 드리면 그것으로 만사형통입니다;

(2)  가나안 원주민들과 주변국에서 도입이 된 것은 사람이 만든 우상과 일월성신을 섬기는 것 등입니다(17b). 광야생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만을 섬겼으며 그러한 것들을 섬기지 아니했습니다(17c). 단 한번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잘못 섬겼다가 혼이 났기 때문입니다(32:1-10).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금기사항을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외래 우상과 일월성신을 함부로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3)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약속의 땅에서 기업을 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주변의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19:4-6). 그런데 그 결과가 반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32:18).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대단합니다. 가나안 땅에 세워진 그들의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를 떼고 세상 가운데 이방인처럼 살아가도록 선민들을 버려버릴 것입니다(32:19-20);

 

셋째로,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22.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 도다. 23.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32:21-23);

(1)  선민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이데올르기와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탐닉하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당장 모세를 통하여 두가지의 예언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선민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을 먼저 구원하겠다는 것입니다(21). 선민 이스라엘이 구원을 베푸시는 창조주 하나님 대신에 허탄한 우상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의로움만을 추구하였기에 이제는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할 실익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민과 이방인 차별을 하지 아니하고 진실로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전부 구원하겠다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구세주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만민구원 뿐만 아니라 영생구원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32:22). 죽음의 세계 스올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처단하고 사망과 음부도 불태워버릴 것입니다(20:14).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간 성도들은 오른쪽으로 들어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25:46, 5:29).

결론적으로, 모세가 예언적인 노래를 지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승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신명기 제32장에 실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강해설교의 본문으로 선택한 대목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구절들입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의 풍요에 취하여 그만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기 때문에 여호와의 버림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정도의 이야기만 담고 있는 대목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철저한 유대교인이며 히브리경전을 가르치는 랍비였던 사울이 훗날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만나 기독교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사도 바울이 더 깊숙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설명을 함께 검토해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사도 바울이 자신의 깨달음을 기록하고 있는 로마서의 내용 가운데 한 대목 그리고 에베소서 가운데 한 대목의 말씀과 대조를 해보면 비로소 그 깊은 내용이 드러나게 됩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세상의 풍요에 취하여 그만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편리하게 우상을 섬기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적인 이데올르기, 율법만을 강조하는 종교적인 교리, 세상지식에 대한 자랑,  맹목적인 사랑과 지나친 의인사상 등이 전부 우상 섬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것들입니다.

그와 같이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로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 본문에 담겨 있는 모세의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세상적인 의나 자기 의를 주장하는 여수룬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앞에 종의 도리를 지키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성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