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빌립보서 제5과(3:1-21)(손진길 작성)
[OBS32-5]
Q1. 빌립보서 제3장은 제1-3절의 머리글(서론)과 제18-21절의 꼬리글(결론)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소위 ‘수미상관법(首尾相關法)’으로 되어 있고 제4-17절까지는 이를 설명하고 있는 설명문(본론)으로서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 그런데 제3장의 전제가 되고 있는 제3장1절을 보면,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로 되어 있어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세 가지의 용어가 나타나고 있음. 구체적으로는 첫째 용어는 ‘종말’이고 둘째 용어는 ‘주 안에서의 기쁨’이며 셋째 용어는 ‘같은 말’임. 그렇다면 그 용어들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각각 무엇인가?
l 첫째로, 두 번째 용어인 “주 안에서의 기쁨”을 먼저 살펴보면 그것은 빌립보서의 주제를 말하고 있는 용어임. 옥중에 있는 바울은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고 특히 그 때 많은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바울은 그 상급을 바라보면서 주 안에서 기뻐하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그 기쁨을 그가 사랑하는 빌립보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임.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들이 현재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방 사상과 다른 견해들 때문에 내부 갈등과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그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이며 주 안에서 누리는 궁극적인 승리와 기쁨은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임.
l 둘째로, 첫째 용어인 ‘종말’은 “파루시아 그리스도”(Parousia Christ)와 관련이 되고 있는 용어임. 이 세상의 종말에 영광의 주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환상 가운데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만났으며(행9:3-9, 고전15:8) 그 분의 계시로 아나니아를 만나서 세례 받고 이방 사도로 나선 것임(행9:10-22). 그 내용을 신학적으로 살펴보면, 종말론적인 파루시아 그리스도를 먼저 만났다고 하는 그것은 이미(already) 영적으로 선취된 믿음을 말하고 있음. 그러나 인간은 개인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는 “유한성을 지니는 육체”(mortal body)를 옷 입고 있으므로 그것이 영적인 기쁨과 승리를 제약하고 있음(롬7:21-25). 결국 주 안에서의 기쁨은 영적인 것이지 아직(not yet) 육체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닌 것임.
l 셋째로, 마지막 용어인 ‘같은 말’은 일찍이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개척하였을 때 그들에게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그 속에는 바울의 영적 체험과 깨달음이 그대로 녹아 있었음. 이제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편지로써 전하고자 하는 내용도 동일한 것임. 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과 이방 사도로서의 택정 받음, 그리고 그가 깨달은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 등이 그대로 다시 한 번 설명되고 있음. 하나님도 한 분, 바울이 깨달은 복음의 진리도 하나, 그리고 이를 증거하고 역사하시는 성령님도 한 분이시기에 복음의 진수와 영적인 체험 그리고 바울의 깨달음은 모두 하나로 동일할 수 밖에 없는 것임. 본질에서 이탈하거나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에 앞세워버린다면 그것은 종교적 변질이 될 것임. 바울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서 자신이 일찍이 전한 말을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다시 한 번 이 편지에서 확인하고서 그와 같은 복음의 진리, 그 본질을 떠나지 말라고 간곡히 권유하고 있는 것임.
l 그런데 현재 빌립보교회 내에 “주 안에서의 기쁨”을 “육체적인 기쁨”으로, ‘종말’ 보다는 ‘현세’를, ‘같은 말’ 보다는 ‘다른 말’을 강조하는 자들이 등장해 있다는 것임. 그들이 바로 ‘개들’, ‘악행하는 자들’, 그리고 ‘손할례당’ 들임(3:2). 바울은 그들에게 종말론적인 경고를(3:2, 18-19a) 보내면서 그들의 정체를 제3장 말미에서(3:18, 19bcd) 밝히고 있음. 그리고 제3장 본론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바른 복음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임. 따라서 제3장의 주제는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이며 그 설명 방법은 ‘간증 형식’이 되고 있음. 바울이 자신의 체험과 깨달음을 매우 함축적으로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면밀한 고찰과 묵상이 필요한 부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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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사도 바울이 과거 유대교의 젊은 리더 사울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제4-6절에서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l 첫째로,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리하리니”(3:4)라는 구절은 바로 앞에 있는 제3절과 관련되고 있음. 제3절 말씀 가운데 “성령으로 봉사,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이라는 구절을 빼버리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 만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영지주의적인 관점이 될 것임. 그 이유는 영지주의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지혜의 세계는 선한 세계이고 지혜에 의하여 만들어진 소위 보이는 세계는 악한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임. 그러므로 영지주의자들의 생각에는 육체는 악한 것이며 신뢰할 수 없는 것임.
l 그와 같은 입장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자신의 육신 활동도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임. 육신이 있기에 전도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도 수행할 수 있는 것임. 그렇지만 만약 “자기 자랑과 자기 의를 추구하는 육신 생활”이라고 한다면 ‘롬10:2-3’ 말씀의 뜻에 비추어볼 때 그것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임.
l 둘째로,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3:5)라는 대목은 과거 바울의 혈통 및 종교적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남자는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음. 곧 포경수술을 하는 것임. 오늘 날은 수술실에서 현대적인 의료장비를 사용하여 손쉽게 포경수술을 할 수 있지만 고대사회에서는 빈약한 칼을 사용하여 수술을 할 경우 상당한 위험과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음. 그렇지만 남자로서 선민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그 할례의 흔적을 육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생식기관에 가져야만 했음. 바울 역시 율법을 지키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어릴 때부터 그 흔적을 가지고 있었음. 비록 이국 땅 길리기아 성 다소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님의 유대 전통주의는 그 만큼 확고했던 것임.
l 역시 부모님의 도움으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바리새파의 석학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과 유대교 사상을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까지 가질 수 있었음.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가진 할례의 흔적과 더불어 유대교 전통에 대해서도 학문적으로 그 식견을 자랑할 수 있는 바리새파의 엘리뜨였던 것임. 그것이 과거 사울 시절 지니고 있었던 바울의 정체성이었음.
l 참고로,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남조 유다 왕국을 구성했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일부 레위 지파만이 초대 교회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족보를 유지하고 있었음. 반면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멸망과 동시에 앗수르의 식민 정책과 혼혈 정책 때문에 수 백년이 지나는 사이에 그 민족적 종교적 흔적이 사라져버렸음. 그래서 남조 유다 왕국의 유민들은 북쪽 사마리아 인들을 이방인으로 여기고 멸시하면서 자신들만이 진짜 선민이라고 생각했음. 그 전통이 살아남아서 유다 지파와 더불어 확실하게 자신들의 족보를 보전하고 있었던 베냐민 지파 또한 선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음.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족속이며 유대인의 전통을 혈통적으로, 종교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파수해온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던 것임.
l 셋째로,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3:6)는 대목은 기독교를 핍박했던 골수 유대교인으로서의 사울의 행적과 사고방식을 함축하고 있음.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을 체계적으로 엄하게 교육받은 바울은 자연히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였음(행22:3). 그 열심이 지나쳐서 그리스도교를 핍박하여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기까지 하였음(행22:4). 그와 같은 바울의 전력은 그가 바리새파 중의 온건노선인 ‘힐렐’이 아니고 강경노선인 ‘샴마이’의 추종자임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음.
l 유대교 전통에 충실했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전하고 있었던 복음에 대해서 처음에는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음(롬1:16의 반대해석). 그 이유는 당시 예수 복음이라고 민간에 전파되고 있었던 내용이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일 뿐 아니라 전통적이고도 체계적인 유대교 신앙과 교리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었던 것임. 그래서 바울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핍박했음(참고로, 회심한 바울은 더 이상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회심이전에는 이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 이유는 ①갈릴리 출신 선지자 예수가 자신의 예언대로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했다. ②승천하면서 성령강림을 약속했는데 실제로 오순절 날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다. ③인간 예수가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④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주인 메시아(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고서 천국시민이 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이 모두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로서 전통적인 유대교의 신앙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진길, 구원의 의미,서울; 크레도, 2005년, pp.238-9.참조바람)
l 율법의 의라고 하는 것은 행위적으로 율법을 모두 지켰다고 하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고 또한 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의로움을 말하고 있음(롬10:3). 즉 공증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인 것임. 그와 같은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었던 부자 청년과 니고데모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찾아 왔음(막10:20, 요3:1-3). 왜냐하면,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임. 그들의 문제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행위이전에 마음속 진실과(신10:16, 막12:33) 성령으로 거듭나는 신령함이(요3:3)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자의 자격임을 분명히 하셨음(요4:23-4). 그러므로 바울 역시 여기서 ‘율법의 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질 수 있는 율법을 지켰다는 의로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마음속 진실”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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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제3장 7-11절에서 사도 바울은 과거에 율법을 잘 지키는 자신의 의로움으로 구원받으려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로움으로 자신도 십자가의 그리스도처럼 부활의 구원을 얻고자 소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증하고 있음. 그의 간증은 어떠한 논리를 가지고 진술되고 있는가?
l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을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6-8) 라는 바울의 간증을 고찰해보면 ①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가 왜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없는가? ②예수는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줄 수가 있는가? 라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하고 있는 내용임.
l 첫째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는 바울의 증언은 그가 과거에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롬10:5)는 말씀을 믿고서 열심히 율법을 지켰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 그러나 율법의 의라고 하는 것은 행위적으로 율법을 모두 지켰다고 하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고 또한 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의로움에 불과한 것임(롬10:3). 즉 공증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인 것임.
l “율법을 몸과 마음으로 완전하게 지키는 자는 율법의 의로 살 수 있다”는 바울의 지적은 사실 구약 ‘레18:5’ 말씀을 인용한 것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으므로 구원의 길이 이미 율법적으로 마련되어 있음이 분명함. 그러나 실제로 인간의 마음속을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롬8:27) 율법을 마음속으로 온전히 지켰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마23:28, 롬3:9-10)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임.
l 둘째로, 바울이 자신의 마음속을 완전히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만난 장소가 다메섹 도상임. 그 곳에서 그는 빛과 환상 가운데 임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형상을 보았으며 그 분의 음성을 계시의 말씀으로 들었음(행9:3-6). 그리고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던 기독교인 아나니아로 부터 안수 받아 장님신세를 면하고 동시에 바울을 이방인 사도로 삼으셨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 들은 후 회심하고서 세례를 받았음(행9:10-18).
l 그러므로 바울의 다메섹 체험에 비추어 보면, 율법의 의를 마음속으로 완전히 이루어 구원을 얻을 자가 이 세상에 없는 대신에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그 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한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구원의 길이 자연히 열리는 것임. 전통적인 율법에 충실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나아가서 그것은 구원의 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해로운 것임을 바울이 똑똑하게 경험한 바 있기에 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임.
l 다음으로,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9-11)라는 말씀을 살펴보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제9-11절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전적으로 편승하는 방법이 곧 믿음이며 하나님께서 새로이 마련하신 의인화(義人化, justification)의 방법이었던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임.
l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는 뜻은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라는 의미임. 그러므로 그리스도처럼 그의 모범을 따라서 공생애를 살아가고 그 분의 사생관(死生觀)을 분명히 가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자신의 인생살이가 되는 것임. 그리스도처럼 대속의 삶을 살아가면, 십자가의 고난과 같은 애매한 모함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 길이 바로 부활이라는 영광의 문을 열 수 있는 구원의 방법론이 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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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예수 그리스도가 얻은 그것을 자기도 얻기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그리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바울은(3:12-14)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자기처럼 믿음에 흔들리지 말고 경주를 계속하라고 권면하고 있음(3:15-17). 그 자세한 내용은 어떠한가?
l 제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
l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쫓아가는 인생살이임. 그 분이 고난 끝에 얻은 바 부활과 영생을 나도 얻기 위하여 그 분처럼 달려가는 삶임. 바울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있어서 아직 그의 마지막 경주는 끝나지 아니했음. 일찍이 파루시아 그리스도를 만나서(고전15:8) 바울은 내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고 아나니아에게서 세례를 받아 외적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인으로 설 수는 있었지만 아직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육체적으로 완전히 경험하지는 못한 것임.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인생의 종말을 빨리 맞이하여 그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부활의 영광을 얻고 싶은 것임. 그가 얻고자 하는 그 똑 같은 열매를 선취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음.
l 제13-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
l 여기서 현재 바울에게 있어서 ‘앞에 있는 것’과 ‘뒤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앞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상급이라면 ‘뒤에 있는 것’은 회심이전에 그가 지니고 있었던 율법의 의로 구원받는다는 선민의 자부심과 회심한 이후 이방인 사도로서 그가 겪었던 고난의 역정일 것임.
l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이 신실하게 상급을 주시는 분이시다 라는 사실은 창세기 제15장 1절에서 이미 선포되어 있으며 신약 히브리서 제11장 6절에서 이를 재차 확인하고 있음. 그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서 그 분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또한 죽는 자가 그리스도인인 것임. 그러므로 바울의 설명 그대로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십자가를 떠나서 다른 구원의 길을 모색하지 아니할 것이며 인간의 의로운 행위를 자랑하는 외식적인 종교행위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아니할 것임.
l 제15-16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l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두 가지 부류, 곧 ‘온전히 이룬 자’와 ‘달리 생각하는 자’가 공존하고 있음을 여기서 전제하고 있음. ‘온전히 이룬 자’들은 빌립보 교회의 초대 목사인 바울의 가르침을 그대로 온전하게 지키고 있는 자들임. ‘달리 생각하는 자’들은 유대주의자, 우상숭배자, 또는 헬레니즘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 자들임. 어느 쪽이 구원의 길인가? 그 대답을 하나님께서 장차 나타내실 것이라는 바울의 설명임. 그러므로 바울 자신이 전한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고 행하면서 하나님의 나타내심을 기다리라는 것임.
l 끝으로, 제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를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l 바울은 여기서 ‘나’와 ‘우리’라는 두 가지 인칭, 곧 단수와 복수를 사용하고 있음. 바울의 신앙을 본 받는 자가 우리가 되고 우리의 신앙을 본 받는 자가 다시 늘어나는 현상을 기대하고 있음. 빌립보교회에 이와 같은 온전한 신앙인들이 많아지기를 간구하면서 그 점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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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사탄을 따르는 이단들은 영벌에 처해지겠지만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천국의 시민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의 몸의 형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제3장 끝머리 제18-21절에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어떠한가?
l 제18-19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l 바울은 빌립보교회 내에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가 있다는 사실을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하고 있음. 자신이 개척한 교회, 오랜 기간 기도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자신의 선교여행을 후원해준 고마운 지인들이 있는 교회, 그 교회 내에 원수의 사상을 가진 이리들이 들어와서 양들을 해치고 있는 것임. 당장 달려갈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는 사도 바울은 매인 상태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또한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의 사항을 적고 있는 것임.
l 그 내용은 온전한 자인 양과 해치는 자인 이리의(요10:12) 인생의 결말에 관한 것임. 양은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품에서 안식을 얻겠지만 이리 또는 염소는(마25:33, 44)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 그 이유는 자신의 배를 불리고 땅의 권세를 추구하면서 세상의 영광을 부끄러운 방법으로 획득했기 때문임. 교회 내에 다른 사상을 전파하고 있는 여러 영적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바울은 사익, 권력, 영광의 추구와 세상적인 부끄러운 방법의 거리낌 없는 동원으로 보고 있음. 그 결론적인 언급은 제3장 앞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세 가지 부류, 곧 개들(우상숭배자), 행악자(성령훼방자), 손할례당(유대주의자)의 종말이 어떠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에 해당함. 그와 같은 과감한 결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본문에서 자신의 간증 형식으로 바른 복음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했기 때문일 것임.
l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제3장은 제1-3절의 머리 부분과 제18-21절의 꼬리 부분이 수미상관법(head and tail correlational method)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우상숭배자, 유대주의자, 영지주의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바로 자기 잇속을 챙기고 세상 권세와 영광을 추구하며 그것도 세상적 방법을 부끄러움 없이 함부로 동원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임. 그들은 양을 치는 목자가 아니라 양을 해치는 이리들이기에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바울은 부디 바른 복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이들을 물리치라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임. 그와 같이 행하고 바울이 가르친 바른 복음을 생활화하면 천국의 시민으로 영광 가운데 참여하게 될 것임을 결론 삼아 말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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