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에스겔이 예언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1. 30. 13:56

제목; “에스겔이 예언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본문말씀; 47:1-12) (참고구절; 1:2, 2:10, 4:14, 21:6-7, 22:1-2)

설교일; 주후 20212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130일 화요일 작성)

 

에스겔은 선민 유대인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비참한 시대를 몸소 체험한 제사장이며 선지자입니다. 그는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지휘하고 있는 천하무적 갈대아 군대의 제2차 침입이 있자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하여 항복해버린 유다왕 여호야긴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적국으로 끌려온 제사장으로서 평생 포로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1:1-3);

 

바벨론의 교외 그발 강가에서 동족들과 함께 이방제국의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제사장 에스겔에게 주전 593년경 여호와의 말씀이 임재하기 시작하자 그는 그때부터 선지자의 역할을 시작하게 됩니다(1:2).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해주면서 가까운 장래 곧 주전 586년에 조국인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당하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7:24-27, 11:8-12);

 

여호와의 예언 그대로 역사가 진행되고 말기에 그때부터 제국의 포로가 되어 있는 선민 유대인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희망과 소망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희망이 없는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놀라운 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선지자 에스겔의 입을 통하여 전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마른 뼈와 같이 영적으로 죽어 있는 그들에게 선지자 에스겔이 대언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대선지서 에스겔 제37장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 유대인과 같은 처지가 되어 있는 사람들 곧 이 세상에서 지배자의 압제 아래 종살이를 하고 있는 백성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의 새 아침이 동터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인류역사의 종말로 모든 일이 허무하게 끝나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선지자 에스겔이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예언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악한 세력들이 연대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나라와 백성들을 공격하지만 그들이 결코 승리하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믿음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역사적인 종말심판을 벌써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제38장과 39장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셋째로, 새로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모습,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 나아가서 제사장나라의 왕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들의 기업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에스겔이 동족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제40장에서부터 마지막 장인 제48장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새로운 예루살렘과 성전의 규모가 일찍이 선민들이 경험한 것보다 훨씬 넓고 큰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영원한 천국의 수도로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2, 16, 22).

둘째, 새로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들은 예루살렘의 동과 서에 자신의 기업을 별도로 가지게 됩니다(48:21-22). 따라서 백성들을 수탈할 이유가 원천적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의미의 임금들의 시대가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12:31).

셋째, 예루살렘 성전을 포함하는 거룩한 땅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기업을 얻고 있습니다(48:9-19). 그러므로 이스라엘 12지파 백성들의 것을 탐낼 이유가 없어집니다.

넷째, 중앙에 거룩한 땅을 두고서 그 북쪽과 남쪽에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이 기업을 얻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선민들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성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동서남북의 성문 12개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단지 상징적으로 12지파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48:31-34, 21:12-13). 그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성경말씀의 기록을 마치기 전 요한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4. 그 성의 성곽에는 12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양의 12사도의 12이름이 있더라”(21:14). 사도들의 이름 아래 많은 성도들이 당당하게 새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고 있는 것입니다(21:24-26).

다섯째, 새로운 성전의 동문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입장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성전으로부터 생명을 살리는 강물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43:1-5, 47:1-2);

 

 그 강물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의 설교말씀의 주제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여기서는 먼저 그 강물의 정체가 무엇이고 그 기능이 무엇인지를 관련구절들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드려 두고자 합니다;

(1)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무질서한 혼돈의 세상을 그 능력의 물로 억제하고 계십니다. 그 모습을 창세기 제1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1:2). 흑암의 무리들이 팽창하려는 것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물의 능력으로 덮어서 막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날도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질서를 부수고자 하는 악한 영들의 세력을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막고 계시기에 이 세상이 창조의 질서 가운데 여전히 아름답게 보전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31).

(2)  인류문명이 여호와께서 아담부부와 함께 살고 계시는 그 에덴동산에서 발원하고 있는 큰 강들의 유역에서 다채롭게 발생하고 있습니다(2:10-14). 그러므로 문명을 일으키는 인간의 능력이 인류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아니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3)  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에게 야곱의 우물물이 아니라 영원한 생수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4)  대화를 통하여 구원주로 오신 예수님의 정체를 눈치챈 수가성의 여인이 자원하여 동네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4:39-42). 그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선민 유대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고서 살아가던 그들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 그리스도가 전파하고 있는 그 복음의 말씀이 바로 생명을 구원하는 강물이며 생수라고 하겠습니다.

(5)  에스겔 선지자가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새 성전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은혜의 강물에 대하여 그 효능이 어떠하다는 사실을 사도 요한은 성경말씀을 마무리하기 전에 그의 계시록 제21장과 22장에서 다시금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깃들어 있는 그 강물이 세상으로 흘러나와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죽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 것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1:6-7).

(6)  그리고 하나님의 강물이 상처입은 나라들과 만물들을 치료하는 생명나무를 키우고 있습니다;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2:1-2). 한마디로, 영생의 은혜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만민과 만물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성경의 말씀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동시에 말씀의 풀이과정에서 도출되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으로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 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47:1-2);

(1)  선지자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공간 이동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미래의 예루살렘 성전은 그 앞면이 동쪽입니다(47:1a). 그런데 성전의 동쪽 문은 여호와 하나님 만이 사용하시는 전용문입니다(43:1-5). 일단 여호와께서 성전에 들어가시면 다른 이가 동쪽문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그 문을 아예 닫아 버리고 있습니다(44:1-2). 그런데 유일하게 그 성전의 동쪽 뜰에 출입할 수 있는 자가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왕입니다. 제사장나라의 국왕이 추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에스겔이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3.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에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44:3);

(2)  그러나 제사장나라의 왕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여호와의 전용 출입문이 되고 있는 동쪽문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왕은 북문을 통하여 성전의 뜰로 들어옵니다. 그 다음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는 동쪽 뜰로 들어가서 제사장들과 함께 여호와께서 주시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44:3). 그런데 훗날 그곳에서 여호와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역시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신실한 성도들이야 말로 사도 베드로의 지적과 같이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2:9)이기 때문입니다.

(3)  그 점을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지어다”(3:20-22). 동일한 취지의 약속을 공생애 기간 중 예수님께서 벌써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4)  여호와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실 수가 있다는 것은 영생을 누리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영생의 기운을 받아서 누리고 있으니 그 앞에 서있는 성도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영생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생명수가 여호와의 보좌로부터 이 세상으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이제부터 선지자 에스겔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서두가 다음과 같습니다;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47:1b).

(5)  이미 모두(冒頭, 글의 첫머리)에서 말씀드린 그대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은 물에 깃들어 있으며 그 천상의 수면으로 여호와께서는 창조 전의 흑암과 혼란의 세상을 제어하고 계십니다(1:2). 장차 천국의 중심인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에 좌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입성하는 모든 사람과 만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수를 넉넉하게 보좌에서부터 성전 바깥으로 흘러 보내고 계십니다. 그 생명수가 흘러나오고 있는 방향을 선지자 에스겔이 유심히 관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생명수가 보좌에서 동쪽으로 흘러나오는데 번제단 부근에서 방향을 남쪽으로 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에스겔이 북쪽문으로 나가서 성전의 동쪽 문을 관찰하였더니 자신의 오른쪽 곧 동쪽 문 하단에서부터 생명수가 끊임없이 스며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47:1b-2 의역).

둘째로,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1,000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1,000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1,000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1,000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47:3-5); 넓은 천국에 입성하여 있는 만민과 만물의 생명을 모두 살리자면 창조주의 생명력이 깃들어 있는 강물의 양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본문 제3절에서 제5절 사이에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1을 성전의 자를 사용하여 53cm정도라고 한다면 매 530m마다 자로 재었더니 그 물의 양이 에스겔의 발목에 차고, 그 다음에는 무릎에 차고 나중에는 허리에 차고 마침내 사람의 키를 넘어서고 있어 헤엄을 치지 아니하면 도저히 건널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러한 표현은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전부 마셔도 충분한 생명수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는 충만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만민과 만물의 생명을 전부 구원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생명수를 공급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의 발현입니다.

셋째로,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47:6-10);

(1)  새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 점을 보여주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성전 바깥에 있는 강가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다정하게 인자’(人子, son of man)라고 부르면서 에스겔을 순식간에 요단 강가로 인도한 것입니다(6). 마침 비가 오지 아니하는 계절이라 요단 강의 수량이 적습니다. 게다가 염해를 지나면서는 마른 건천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아라바계곡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요단 강에 유입되자 다 죽어가던 강가의 수목들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7). 그 다음에는 염해에 유입이 되자 사해의 물이 되살아나서 생물이 숨을 쉬는 바다와 같은 호수로 변모하고 있습니다(8).

(2)  선지자 에스겔은 자신이 깨닫게 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동족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그는 동족들이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하여 새로운 성전에 관한 진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보좌에서 비롯되고 있는 생명수의 강의 흐름도 유다의 지명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마른 건천이 되살아나고 죽음의 바다 염해가 생물이 살 수 있는 바다로 회복이 된다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3)  강물과 바닷물이 회복력과 생명력을 보이게 되면 그 다음에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유익이 돌아오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을 선지자 에스겔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첫째, 강물이 흘러가는 여러 지역에서 어부들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다고 야단입니다(47:10a). 강에서 잡는 생선의 어획량이 상당합니다(47:10b). 마치 지중해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처럼 그 양이 많은 것입니다;

 

(4)  둘째, 새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도달하는 곳마다 죽어가던 식물과 동물들의 기력이 회복되고 있습니다(9).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의 복주심이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새 예루살렘 성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소위 생명의 축제가 열리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엔게디는 그 옛날 청년 장군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하여 살던 황량한 지역인데 그 위치가 사해 서안의 중간입니다(삼상23:29);

 그리고 에네글라임은 엔게디에서 30km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11.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열매는 먹을 만하고,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47:11-12);

 

(1)  새 예루살렘성을 비롯한 하나님의 나라에는 바다가 없습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21:1). 그 이유는 이 세상의 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온 새로운 강물이 강가의 식물을 살리며 기타 동물들의 생명을 전부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오늘날의 오대양 육대주가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바다 연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진펄( 빠차 בצה 늪을 말함)과 개펄(조수간만에 의하여 생기는 뻘 밭을 말함)이 사라지고 그곳은 소금 투성이의 땅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11).

(2)  생명수 강물이 흐르는 강가에서는 온갖 유실수가 싱싱하게 자라며 달마다 각종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47:12a).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특히 그 잎사귀는 치료제로 애용이 되고 있습니다(47:12b).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요한 역시 그의 계시록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2:2).

결론적으로, 선지자 에스겔은 천국의 모습을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성전의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생명수가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으며 강가에서는 유실수가 달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으며 어부들이 싱싱한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기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무서운 파도가 목숨을 빼앗아가는 사나운 바다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따라서 에스겔은 진펄과 개펄이 사라지고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선민 유대인들이 살아가던 마른 광야와 사해가 하나님의 생명수가 강같이 흐르자 풍요로운 강과 호수로 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기록하고 있는 본문의 말씀은 대부분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 의하여 다시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생명력이 풍성한 천국에 대한 묘사가 성경말씀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사람과 만물이 서로 생명을 돌보고 살릴 수 있는 선한 곳으로 만들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