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무엇이 그들의 믿음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1. 23. 12:39

제목; “무엇이 그들의 믿음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가”(24:32-40, 56-61)

설교일; 주후 2021112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123일 화요일 작성)

 

창세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믿음의 조상들의 여호와신앙이 무엇에 의하여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요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창조주 여호와의 나타나심과 사명부여인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데라의 경우가 그러하고 또한 아브람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먼저, 데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205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11:31-32);

 

고대사회 최고의 선진문명을 자랑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 우르 지역에서 부자로 잘 살고 있던 족장 데라가 어째서 미개한 족속들이 살고 있는 변방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자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의문을 풀어주고 있는 글이 훗날 사도행전 제7장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집사 스데반의 고별설교 가운데 적혀 있습니다.

참고로 한말씀을 드리자면, 스데반의 증언이 비록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여호와의 사명부여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실제적으로 족장 데라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문명지역인 고향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미개지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중요한 문제를 집안에서 결정하는 권한은 족장의 장남인 아브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족장인 데라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을 이해하고서 스데반의 증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7:2-4);

주전 21세기 초에 족장 데라가 앞장서서 장남 아브람과 장손 롯의 가족을 솔거하여 우르 땅에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서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서쪽을 향하여 직선 코스로 진행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시리아의 사막지역을 피하여 말굽모양의 녹색지대를 통과하는 것이 순로(順路, easy road)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서 북서쪽으로 진행하여 우선 강의 상류지역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곳을 벗어나서 일단 서진한 다음에 남서쪽으로 남하하게 되면 가나안 땅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의 상류지역에서 족장 데라가 그만 행진을 멈추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개척지이지만 가치가 높은 좋은 땅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족장 데라는 여호와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셈의 아들 가운데 대대로 메소포타미아 중심지역에 자리를 잡고서 살고 있던 아르박삿의 후손입니다(9:26, 10:10-31). 그렇지만 데라의 여호와신앙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재에 너무 밝아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그것이 최우선이고 여호와의 말씀은 뒷전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우르 지역에서 아름다운 여신을 조각한 장신구나 예술품을 만들어 팔아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가 만든 고가품 가운데 걸작은 우상을 새긴 권력자의 홀인데 그것 중의 하나가 훗날 데라의 자손인 라반에게서 발견이 되기도 합니다(31:19, 35:4);

데라가 엄청난 부자라고 하는 사실은 그의 아내 여러 명 가운데 3명이 같은 해에 아들 3명을 생산하고 있다는 창세기 제11장의 특이한 기록에서도 넉넉하게 엿볼 수가 있습니다; “26.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11:26-28).

여호와신앙을 떠나 우상을 예술품이나 장신구로 제조하여 큰 돈을 번 사람이 족장 데라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변방 가나안으로 이방선교의 길을 떠나겠다고 자신들의 결심을 밝히고 있는 장남 아브람과 장손 롯의 말을 듣고서는 정신이 번쩍 들고 있습니다.

일단 그들의 고집을 말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데라의 생각으로는 그냥 부자로 고향에서 계속 살고 있으면 좋겠지만 장남과 장손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겠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늙은 족장인 자신이 후계자인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순리(順理, the reasonable)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유프라테스강 상류지역까지 진행하고 있는데 그만 그의 눈에 황금과 같은 노른자위 미개척지가 발견이 되고 맙니다. 그 땅을 한꺼번에 싼 값에 사서 도시로 개발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될 것이 눈이 훤합니다. 들판이 넓고 강물이 좋으니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게 되면 더 큰 부자가 될 것으로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족장 데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만 그 땅의 이름을 자신보다 먼저 죽은 삼남 하란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부동산 개발에 전념하고 맙니다. 그렇게 그의 나이 145세부터 향년 205세까지 무려 60년 세월을 더 큰 돈을 버는데 전부 사용하고 마는 데라입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훗날 집사 스데반의 영적인 설교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데라가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자신의 세상 욕심을 이루고자 살아간 세월은 한마디로 영적으로 죽은 자의 것이다. 그러므로 장남 아브람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아비의 집을 떠나게 된다”(7:4의역).

창세기 제12장 첫머리에서 여호와께서는 세상 욕심에 사로잡힌 족장 데라를 과감하게 떠나라고 아브람과 롯에게 말씀하십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였더라”(12:1-4);

 

부자인 족장 데라의 재산상속을 장남 아브람과 장손 롯이 포기하는 대신에 그들에게는 더 큰 하나님의 상급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미래에 주어질 축복이지만 그것은 아브람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큰 것입니다. 아내 사래와의 사이에 무자식인 그에게 엄청난 자손의 번성이 약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1:30). 그리고 창조주 여호와께서 아브람 자신을 복의 통로로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시니 그것이 대단한 축복입니다.

한편 아브람의 장조카인 롯이 부자인 조부 데라를 버리고 백부인 아브람을 따라서 함께 행동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브람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축복을 그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롯 역시 아브람처럼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축복의 하나가 애굽을 다녀오면서 일찍 롯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백부 아브람이 애굽에서 얻은 재산을 함께 나눈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5. 아브람의 일행 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13:5-6).

그런데 롯이 그만 애굽에서 얻은 큰 재물에 만족하고 맙니다. 그는 복의 통로인 백부 아브람을 떠나 번창한 도시 소돔이나 고모라에 이주하여 편하게 한세상 향락을 누리며 살고 싶어합니다(13:10-11). 그 결과 롯은 믿음의 조상이 되지를 못하고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채 창세기의 기록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19:16, 35);

그렇다면 이제 한가지 문제만이 남게 됩니다. 그것은 족장 데라와 아브람 그리고 롯과 떨어져서 혼자 우르 땅에 남아서 살아가게 되는 나홀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홀은 훗날 하란으로 옮겨와서 부친 데라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하여 신도시 나홀의 성을 차지하게 됩니다(24:10, 22:20-24);

 

 그렇다면 부친 데라처럼 살아가고 있는 그의 가문의 여호와신앙은 어떻게 회복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오늘 강해설교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믿음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가?”. 그 점을 살펴보기 위하여 오늘의 본문말씀을 한 구절 씩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주요한 메시지를 도출하여 함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32. 그 사람(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그 집(브두엘과 라반의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낙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의 동행자들의 발 씻을 물을 주고, 33.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34.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24:32-34);

(1)  주인 아브라함의 심부름으로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하여 멀리 하란 땅으로 간 늙은 종은 그 이름이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로 추정됩니다. 일찍이 아브라함이 젊은 가신인 그를 크게 신임하여 자신의 양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15:2-3).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의 뜻과 다릅니다; “사라의 불임을 치유하고 늙은 아브라함과 합방하게 하여 90세의 사라에게서 적자 이삭이 약속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21:5-7). 사라가 향년 127세로 헤브론에서 별세하고 나자 아브라함은 후처 그두라와 생활하면서 3년상을 마친 40세의 이삭에게 신부감을 구해주고자 합니다(23:1, 24:3-4, 25:1, 20).

(2)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원주민을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지가 않습니다(24:3). 왜냐하면 원주민들은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 땅에 전하는 선지자는 부부가 전부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17:19).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여호와 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자신의 친가에서 구하고자 합니다(24:4). 유일한 남동생 나홀이 살고 있는 하란 땅으로 늙은 종을 파견하여 며느리감을 구해오고자 한 것입니다(22:20-24, 24:4, 10);

(3)  늙은 종 엘리에셀이 순조로이 하란 땅 나홀의 성에 도착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신부감 리브가를 우물가에서 만나고(24:12-24) 그녀의 인도로 부모님 집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24:32a). 그 집의 주인은 나홀의 막내 아들인 늙은 브두엘이지만 실무적인 일은 그의 장남인 라반이 전부 처리하고 있습니다(22:22). 늙은 종을 귀빈으로 맞아들이고 낙타를 쉬게 하며 싣고 온 귀한 물건을 창고에 들이는 일을 라반이 자신의 하인들에게 명령하여 조치한 것입니다(24:32b).

(4)  그리고 나홀 성의 주인 나홀의 이름이 여기서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 데라의 향년 205세에 135세인 나홀이 선친의 재산을 상속한 후 5년이 되지 아니하여 별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가 140세에 여전히 생존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손녀 리브가가 멀리 시집을 가는 장면에 얼굴을 내비치었을 것으로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5)  늙은 종은 10마리의 낙타에 혼수감을 잔뜩 싣고서 헤브론에서 하란까지 먼 길을 왔습니다(24:10). 낙타를 몰고 있는 10명의 젊은 종을 인솔하여 하란까지 와서 이제 비로서 풍성한 만찬을 즐길 시간입니다. 그런데 늙은 종은 먹고 마시는 일보다 주인이 맡긴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자 합니다(24:33a). 그것이 사명을 받은 일꾼의 신실한 모습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정확하게 밝히면서 늙은 종 엘리에셀이 이제부터 주인 아브라함이 맡긴 일을 최우선적으로 정확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4.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24:34).

(6)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가 140세입니다. 그러므로 늙은 종 엘리에셀의 나이도 80세 정도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동갑인 이복동생 나홀의 막내아들인 브두엘의 나이가 엘리에셀 정도일 것입니다(22:20-22). 그런데 귀빈의 식사자리에서 손님접대를 하면서 대화상대가 되고 있는 자가 그 집의 주인 브두엘이 아니고 그의 아들인 젊은 라반인 것이 상당히 이상합니다(24:33b). 그 이유는 그 집의 실력자가 이미 늙은 브두엘이 아니고 지극히 머리 회전이 빠른 영특한 장자 라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라반이 조부 나홀의 뒤를 이어 하란 들판의 지배자가 되고 있습니다(29:6-10);

둘째로,35.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36.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37. 나의 주인이 나에게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너는 내 아들을 위하여 내가 사는 땅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38. 내 아버지의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24:35-38);

(1)  10마리의 낙타에 혼수감을 잔뜩 싣고 그 먼 길을 며느리를 구하고자 늙은 종을 보냈다고 한다면 그 주인 아브라함의 재력은 어느 정도일까요?(24:10) 리브가의 친정 식구들이 궁금한 사항은 그것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늙은 종이 한마디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35.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24:35). 북부 시리아 유프라테스 강 상류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신도시 하란은 강물이 풍성하여 농사가 잘되고 목축이 성공적이어서 라반의 집안이 부유합니다. 그렇지만 변방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 호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의 집안이 더욱 부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혼수의 규모로 그 점을 넉넉하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막강한 부자로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가나안 원주민에게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아브라함 부자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형통의 복이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과 애굽 그리고 블레셋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애는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며 동시에 창조주 여호와의 선지자라는 자부심과 영광이 풍성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브두엘과 라반 그리고 기타 아들과 딸들은 식어가고 있던 여호와신앙심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요컨대,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 집안의 이야기가 그들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여기서 늙은 종이 설명하고 있는 한 대목 곧 36.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24:36)라는 언급은 다소 어폐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와 살면서 6명의 아들을 얻어 그들을 분가시키면서 나름대로 한 재산 씩 떼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25:6). 그렇지만 대부분의 재산은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 상속하여 주었기에 훗날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25:5)라는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의 재산은 엄청난 것이어서 비록 그두라의 아들 6명에게 사전에 나누어 주었지만 여전히 이삭이 상속받게 되는 재물이 대단히 크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4)  그 많은 재산을 상속한 이삭이 나중에 그랄 땅에서 백배의 소득을 더 얻게 됩니다(26:12-14). 그것은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이 볼 때에도 대단한 성공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재력인 것입니다(26:28-29). 그와 같은 측면에서 말하자면 늙은 종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브두엘 집안 사람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이방선교에 나서게 되면 여호와의 형통의 복이 큰 상급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가까운 친척 아브라함의 가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도 여호와신앙을 새롭게 하여 그와 같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마침 늙은 종이 아브라함의 명령으로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하여 여호와신앙을 보전하고 있는 하란 땅 동생 집안에 들린 것입니다(24:38). 따라서 차제에 브두엘과 라반은 자신의 집안에서 이삭의 신부감을 내고 싶은 것입니다.  

셋째로,39. 내가 내 주인에게 여쭈되, 혹 여자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면 어찌 하리이까 한즉, 40.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24:39-40);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아브라함이 이방지역 가나안 땅에서 선지자의 역할을 계속하기 위하여 믿음을 가진 며느리를 맞이하고 싶어합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여호와의 뜻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이 아닌 믿음의 여인 사라의 아들이 여호와의 뜻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계자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7:15-21);

 

그러므로 늙은 종이 만약 신부감이 헤브론으로 따라오지 아니하겠다고 말한다면 어찌하면 좋을까요?”(24:39의역)라고 질문할 때에 아브라함이 자신을 가지고 즉시 답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24:40).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에 실패할 수가 없다는 단언입니다.

넷째로,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5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61.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24:56-61);

(1)  늙은 종은 다음날 바로 리브가를 이삭의 신부감으로 데리고 멀리 헤브론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따라서 먼저 리브가의 친정 어른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24:56). 부친 브두엘이나 오라버니 라반의 입장에서는 늙은 종의 말만 들었지 생전에 조상 나홀의 친형 아브라함의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40세라고 하는 신랑 이삭은 더더구나 생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브가를 그곳으로 시집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욕에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여호와신앙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2)  그래서 늙은 종의 말을 듣고서 그들이 마지막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당사자 리브가가 좋다고 하면 자신들은 이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5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24:57-58a). 리브가가 마치 훗날 페르시아의 황후 에스더처럼(4:16, “죽으면 죽으리이다”) 씩씩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24:58b);

 

(3)  믿음에 찬 리브가의 대답을 듣자 브두엘은 물론 라반을 위시한 남자 형제들의 여호와신앙심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여호와의 뜻에 따라 그들이 누이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24:60). 그 말씀은 그들이 늙은 종으로부터 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 한대목을 그대로 반복한 것입니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6-18);

 

(4)  리브가의 친정 역시 부유합니다. 따라서 멀리 시집을 가는 딸을 위하여 많은 여종을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24:61). 그 가운데 리브가의 유모가 들어 있습니다(24:59). 그녀의 이름이 드보라입니다. 훗날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인 야곱이 하란에서 일가를 이루어 가나안 땅 벧엘로 돌아왔을 때에 나이 많은 유모가 모친 리브가를 대신하여 야곱을 맞이합니다. 유모 드보라는 리브가가 벌써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100세쯤 되는 야곱에게 전달하고 그곳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야곱은 생전에 모친을 다시 보지 못하는 슬픔과 그 유모마저 떠나 보내는 슬픔이 이중으로 겹쳐서 벧엘 상수리 나무 아래 그녀를 매장하면서 그만 통곡합니다(35:8a). 따라서 그 나무이름이 알론바굿통곡의 상수리 나무가 되고 있습니다(35:8b);

 

결론적으로, 성도들의 여호와신앙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것은 너나없이 창조주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고 사명을 부여 받는 그때입니다. 그때부터 진리의 성령님이 내주 역사하시면서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깨닫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은 히브리경전을 믿고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던 구약시대에도 별로 다르지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을 따라 이방지역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게 되면 형통의 복이 임하고 그 땅에 창조주의 축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부친 데라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비록 메소포타미아 우르를 떠나 변방 가나안 땅에 여호와신앙을 전하고자 출발하였지만 도중 북부 시리아 땅에서 그만 낙오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세상적인 욕심에 사로잡혀서 부동산 개발이나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 집안에 여호와신앙심이 새로워지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요?

오늘의 본문을 참조하면 가나안 땅에서 한평생 여호와의 선지자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그들이 늙은 종의 이야기를 통하여 전해 들었던 그 시점에 믿음회복의 변화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리브가의 결심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면서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힘있게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용사들의 이야기는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제는 자신의 인생스토리가 바로 그러한 선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는 바입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