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OBS교재(손진길 작성)

고린도후서 제1과(1:1-11)(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1. 22. 05:56

고린도후서 제1(1:1-11)(손진길 작성)

|OBS25-1|

 

Q1. 고린도후서의 저술 시기는 언제이며 저술 목적은 무엇인가?

 

l  AD 55년경부터 제3차 전도여행 중에 있던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 머물면서(19:8-10) 아시아에 사는 성도들에게 말씀 공부를 시키는 한편 고린도전서를 저술하여 디모데(고전16:10, 19:22) 또는 디도(고후2:12-13, 8:6, 16-19, 23, 12:18) 편으로 고린도교회에 보낸 것으로 보임. 그 때가 AD 57년경인데 바울은 봄철 오순절 때까지 에베소에 머물다가 겨울에는 고린도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상당기간 함께 지낼 수 있기를 희망하였음(16:6, 8, 20:1-3). 그의 뜻대로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를 거쳐 마케도냐에 이르렀을 때 바울은 곧 바로 고린도 지방으로 남하하지 아니하고 다시 이 편지(고린도후서)를 써서 먼저 보내고 그 후에 겨울 석 달 동안 머무를 예정으로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것으로 보임(20:3, 고후1:1, 15-16). 그렇지만 고린도후서 제1214절과 제131절에서 바울이 그의 세 번째 고린도교회 방문을 앞두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으므로 이 편지는 석 달 동안 머문 다음에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아니하다고 하겠음.

l  그러므로 고린도후서의 저술 시기는 빠르면 AD57년 오순절 이후 아니면 58년 오순절 이후로 추정이 되고 있으며 저술 장소는 마케도냐로 보임. 그리고 편지를 작성한 이유는 먼저 현지에 파송한 바 있는 디모데를(고전16:10, 19:22) 마케도니아에서 만나서 고린도교회가 여전히 그릇된 진리로 성도들을 유혹하는 거짓 교사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특히 ①복음에 대한 잘못된 해석 ②바울의 사도성에 대한 시비 ③성령의 역사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임.

l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오해가 깊어져서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만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1:23-24, 13:10). 따라서 고린도교회를 비롯하여 모든 그리스 지역의 성도들의 오해를 빨리 풀고자 ①복음에 대한 바른 해석과(고후1:18-19, 4:3-15) ②자신의 사도성에 대한 증언(1:14, 21, 3:1-9, 5:17-21, 6:3-13, 11:5-9, 11:22-12:12) 그리고 ③성령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1:22, 12:18, 13:4-5, 8-9, 13:13) 등에 대하여 먼저 편지로 간곡하게 적어서 보낸 것임.

l  그런데 뒤늦게 도착한 디도를 통하여 고무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편지의 내용을 다소 수정할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하고 있음(고후7:6-13). 그 이유는 많은 회개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행태가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임(11:4, 13-15, 12:1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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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서론 부분 제1 1-11절에서 사도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은 무엇이며 그 용어들을 사용하여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고 있는가?

 

l  다음과 같이 풍성한 용어를 사도 바울이 구사하고 있음; ①하나님의 뜻 ②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③은혜와 평강 ④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⑤자비의 아버지 ⑥모든 위로의 하나님 ⑦환난과 위로 ⑧고난과 위로 ⑨위로와 구원 ⑩우리의 소망 ⑪살 소망과 사형 선고 ⑫큰 사망에서 건지심 ⑬간구와 기도 ⑭은사와 감사 등임. 여기에 용어는 아니지만 편지를 보내는 측의 이름 그리고 받는 대상자까지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고린도교회와 아가야의 모든 성도”(고후1:1)라고 명시하고 있음.

l  이와 같은 다양한 용어와 이름자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음; ①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1:1). ②고린도전서에서는 바울이 소스데네와 함께 문안했지만 후서에서는 디모데와 함께 문안하고 있다(고전1:1, 고후1:1). ③고린도전서에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만 인사를 했지만 후서에서는 고린도와 전체 아가야 지역의 모든 성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고전1:2, 고후1:1-2). ④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의 정체성과 역사하심을 깨달으라(1:3-4). ⑤고난을 이길 수 있는 충분한 위로를 주신다(1:5). ⑥환난의 목적은 위로와 구원을 주고자 함이다(1:6). ⑦위로 받은 만큼 남을 위로 할 수 있다(1:4). ⑧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1:6-7). ⑨큰 사망에서 건지시고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라(1:8-9). ⑩하나님의 구원과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것을 전하라(1:10). ⑪중보기도 덕분에 은사를 얻어서 감사에 넘치는 선교를 할 수가 있었다(1:11)는 것 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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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는가?

 

l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에게 나타난 환상과 계시를 히브리 성경에 비추어 봄으로써 가능했다고 할 것임(9:3-19, 22:14-21, 1:15-17).

l  첫째로, 사도 바울은 본래 유대교에서 장래가 유망한 젊은 지도자였으며 조상들의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었음(1:13-14). 그런데 그 조상의 하나님이(22:14) 환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방인 사도가 되라고 계시를 주셨기에 그 뜻을 쫓아 평생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증하고 있는 것임(1:12, 15-16). 구체적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 때문에 그의 눈이 멀어버렸다는 사실을 간증하고 있음.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가 누구인가를 직접 물었으며 그 답변을 확실하게 들었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것임(9:3-9).

l  둘째로, 히브리 성경에 정통해 있었던 바울은 그 자신이 받게 된 환상과 계시를 과거 선지자들이 얻었던 영적 체험과(6:3-13, 1:4-28, 7:9-14) 비교하였다고 볼 수 있음. 그 이유는 바울이 아라비아를 방문하고 고향 다소에서 삼 년간 칩거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임(1:17-18, 9:30). 특히 그는 다소에서 교육을 받은 바 있는(22:3) 헬라파 유대인이었기에(9:29) 이와 같은 학문적 비교연구에도 능통했을 것으로 판단이 되는 것임.

l  셋째로, 율법에 따르면 계시라고 하더라도 두 사람 이상의 증언에 의하여(18:16) 그 확실성이 증명이 되고 있는데 고넬료의 경우와 비슷하게(10:3-23) 바울 역시 자신과 동일한 계시를 받은 아나니아에 의하여 그 계시의 확실성을 보증 받고 있는 것임(9:3-19, 22:6-16).

l  넷째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 있는 유대교인, 그것도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지도자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의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임. 하나의 하나님이 왜 세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서(4:4-7, 고후13:13)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인간의 역사를 직접 이끌고자 하시는지(28:18-20, 1:8, 2:4, 1:17-23) 그 이유와 속내를 알아야만 할 것임.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삼 년간의 공부와 또 십사 년간의 공부를 한 후에 비로소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열두 사도를 전부 만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임(1:15-2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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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사도 바울이 그의 조상의 하나님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으로(고후1:3)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l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 분이 깨달은 하나님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속 뜻을 하나님 말씀 해석의 기본으로 삼겠다고 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임,

l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율법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음. 이와 같은 율법주의 유대인 사회에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나사렛 예수가 나타나서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시고 그는 아버지의 참 사랑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선포한 것임(3:16, 14:10, 24, 31). 그리고 ①자신과 같은 시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영적인 아버지로 인식하고(1:12) ②그 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같은 형제들인 이웃을 사랑하고(19:18, 12:30-31, 15:9-10) ③모두의 안녕과 행복을 진작하기 위하여 율법을 생활화하라고 말한 것임(10:13, 15:10).

l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시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 분의 말씀을 상고한 것임. 그 결과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의 본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적으로 명료해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임. 따라서 유대교 식의 구원론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 대속의 진리만을 추종하게 된 것임(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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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환난의 목적이 성도들에게 위로와 구원을 주고자 한 것이다(1:6)라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가 가능한가?  

 

l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의 처음 기적이(5:17, 왕상17:1, 18:1, 41-46) 있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바울의 주장은 이해가 가능한 대목임. 당시 바알 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던 우상 숭배자들은 남신과 여신이 잠자리를 함께 함으로써 가나안 땅에 매년 풍요가 찾아온다고 믿고 있었음. 이에 대하여 엘리야 선지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3 6개월간 하나님의 능력으로 비가 내리지 아니하는 가뭄의 기적을 가나안 땅에 선보이고 있는 것임.

l  삼 년 육 개월의 한발이라는 환난은 그 목적이 창조주 하나님 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풍요와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기간에 해당됨. 이와 같은 가뭄의 기간이 없으면 하나님과 우상을 구별하지도 못하고 남자들이 적당하게 바로와 아세라를 섬기면서 산당에 올라가서 여사제들과 쾌락을 즐기는 것이 마치 경건한 제사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영적인 어두움의 시대가 계속되는 것임.

l  그러므로 삼 년 육 개월 동안의 가뭄과 환난이라고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인간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깨달음과 회개의 시간, 나아가서 그 일로 말미암아 영생과 구원으로 나아가게 되는 하나님의 긍휼과 배려하심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 삼 년 육 개월을 묵상해보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머리 둘 곳도 없이 고생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발견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메시아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던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임.

l  마치 광야 생활의 간난신고(艱難辛苦) 가운데 영적인 풍요가 약속되어 있는 것처럼 고난 가운데 앞으로 다가올 영광이(8:18) 숨겨져 있고 바울의 말 그대로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약속이 보다 선명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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