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손진길 소설)

다윗의 기도4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17. 02:47

다윗의 기도41(작성자; 손진길)

 

9. 두려운 여호와의 시험과 심판 그리고 다윗의 눈물의 기도

 

다윗대왕이 예루살렘 시온성에서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니 청명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비가 무지하게 적은 이스라엘 지역이다. 그리고 왕도인 예루살렘은 해발 780미터나 되는 고지대이다. 그러므로 먼지 한점이 없는 깨끗한 도성 시온이다. 그곳에서 맞은편 산지를 바라보니 금방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특히 밤이 시작되고 있는 시간이니 그 고즈넉함과 신비로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다윗왕은 시온성에서 그 가을밤의 정취와 여유로움에 흠뻑 취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다윗왕은 예루살렘에 천도를 하고나서 6년 내내 친히 정복전쟁을 떠났다. 블레셋, 모압, 아람, 아말렉, 에돔, 암몬 등을 치느라고 엄청 바빴던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이 물려받은 이스라엘왕국을 이제는 중동에서 가장 힘이 센 이스라엘제국으로 만들고 있다.

천도한지 7년째가 되는 금년 가을에는 구태여 다윗왕 자신이 출전하지 아니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유능한 사령관 요압이 현지에서 암몬왕국의 수도인 랍바성을 공략하고 있는데 몇달이면 함락시키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완벽하게 다윗의 이스라엘제국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높은 다윗성 궁궐에서 아래의 주택가를 내려다보니 괜히 기분이 좋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그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제국의 꿈을 다윗자신이 실현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통쾌한 것이다. 이제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윗대왕의 놀라운 위업을 칭송할 것이다;

한마디로, 다윗왕 자신은 불멸의 영웅으로 다윗의 별과 함께 이스라엘의 역사에 남게 된다. 그것도 선민의 유대교에 있어서는 구세주에 해당하는 메시아로 그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위업을 달성한 다윗 자신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현인신의 경지에 올라 있으므로 남은 인생을 제마음대로 본능적으로 살아도 될 것만 같다. 자신의 앞길을 이스라엘제국에서 그 누가 있어 막아 설 것인가? 다윗은 이 세상에서 적어도 이스라엘의 영역에서는 유아독존의 존재인 것으로 자신을 여기고 만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창조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큰일이다. 18년전에 다윗왕이 도망자신세로 지내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다윗의 여호와신앙을 시험한 적이 있다. 그때에는 여호와의 뜻을 어겨 사울왕의 목숨을 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왕국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은 사울왕을 살려주는 것이 옳다고 선언하고 그렇게 행동한 믿음의 용사 다윗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다윗은 정반대의 인물이 되어 있다. 제사장나라 이스라엘에서 다윗왕은 자신의 위업에 들떠서 그만 왕의 위에 그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교만에 빠진 자는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미 여호와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한번 더 다윗의 믿음의 실체를 보고자 하신다. 그래서 달빛 아래 흥얼거리며 나신으로 목욕하고 있는 젊은 여인 밧세바의 모습을 우연을 가장하여 다윗왕이 왕궁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그렇게 시험하고 있다;

 

다윗왕이 한번 싱긋 웃으면서 그냥 눈길을 돌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이 아니다. 안목의 정욕이 본능적으로 성욕을 강하게 충동하고 만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서는 자신을 제어할 그 무엇도 존재할 수가 없다고 여기고 있는 자만에 빠진 다윗대왕이기에 그 순간 그저 자신의 감정에 따라서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윗왕은 수치도 모른 채 조금 떨어져서 자신을 경호하고 있는 신하를 부른다. 그자에게 성안에서 달빛아래 목욕하고 있는 나신의 젊은 부인의 모습을 보게 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그대는 저 젊은 여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왕궁에서 그것도 밤중에 국왕을 경호하고 있는 그 인물은 예루살렘의 사정에 밝은 자이다.

그래서 즉시 대답한다; “저 여인은 예루살렘에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소문이 자자한 우리야 장군의 젊은 아내 밧세바입니다. 그녀의 모습을 한번 본 도성의 남성들은 평생 그녀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을 잊지를 못한다고들 말하고 있지요… “.  

그 말을 듣자 다윗왕은 그녀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을 한번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웃으면서 지시한다; “그대는 즉시 저 여인에게 가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짐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지를 한번 알아보고 오게. 그렇게 도성에서 소문이 자자한 미인이라면 과인이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구만. 나의 여러 비와 빈보다 더 아름다운지 말이야. 하하하… “.  

다윗은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다. 그러므로 그 시작은 그저 여흥삼아 도성에서 소문이 난 미인 밧세바를 한번 보고 싶어한 것이다. 그래서 시위장을 따라 다윗의 방에 들어온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을 본다. 역시 미인이며 싱싱한 젊음을 지니고 있다. 아직 자녀도 생산하지 아니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다윗왕이 밧세바에게 말한다; “나의 신하를 따라 이곳까지 와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한번 보여주니 고맙소. 역시 소문대로 그대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이요. 나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장수 중의 장수 우리야의 아내라고 하니 만나게 되어 반가웠소.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소… “.

그렇게 다윗왕이 여호와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다 집요한 시험이 그 다음에 밧세바의 음성으로 다윗에게 다가온다; “소녀는 오늘 달맞이 경수가 끝났으므로 몸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이제 대엿새가 지나야 아기를 가질 수가 있지요. 지금은 합방을 해도 아무런 생산을 할 수가 없는 몸입니다. 그것이 여인의 몸이지요. 호호호… “.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윗왕의 몸이 엄청 뜨겁게 반응하고 만다. 그 이유는 똑똑한 다윗왕이 밧세바의 유혹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인은 지금 자신과 합방을 해도 아기가 생기지 아니한다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그냥 돌아가라고 했더니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와 하룻밤을 지내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고 있구나… “.

다윗이 그 옛날 도망자 신세였을 때의 깨끗한 영성과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날 밤의 유혹은 아무것도 아니다. 밧세바를 그냥 돌려보내고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와 후궁들을 찾아가서 하룻밤을 지내면 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처첩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색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다(왕상11:1). 그래서 밧세바를 동원한 여호와의 시험에 그대로 걸려들고 만다.

그녀를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후안무치하게 하룻밤을 지내고 만다. 그 다음날에는 벌써 전날밤의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다윗왕이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결코 그날 밤 다윗왕의 만행을 잊지 아니하신다. 다윗의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똑똑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창조의 능력을 사용하신다.

석달이 지난 겨울날 밧세바가 다윗왕을 방문한다. 그녀가 은밀하게 보고한다; “소녀의 몸속에서 폐하의 용정이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어째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경수가 끊어진 그 밤에 합방을 했는데 어떻게 아기가 생긴 것일까요?”(삼하11:4-5의역);

 

그 말을 들은 다윗왕이 허둥지둥한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과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의 메시지가 그 속에 들어 있다. 그렇게 간파를 했으면 즉각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명령을 따라 뒷일을 처리하면 된다.

그런데 다윗왕은 인간적인 간사한 꾀를 사용하여 책임을 모면하려고만 한다. 그는 아무도 속일 수가 없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영적인 사실을 이미 잊어버리고 있다. 따라서 그 옛날 카인처럼 인간의 눈을 속일 수가 있으면 하나님의 눈도 속일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만다(4:8-9). 그것이 불신앙의 본질이다.

다윗왕이 인간적으로 영악하게 그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다. 그래서 암몬과의 마지막 전투에 동원이 되고 있는 우리야 장군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인다. 괜히 헷족속 출신인 우리야 장군을 왕성으로 불러서 격려를 한 다음에 집으로 돌려보낸다. 부부가 합방을 하면 칠삭동이나 팔삭동이 자식을 낳은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술책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 계략이 통하지 아니하도록 만들고 마신다. 그래서 우리야 장군이 집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수비대의 막사에서 며칠 지내다가 전선으로 바로 출발하고 마는 것이다. 그 보고를 은밀하게 받은 다윗왕은 애가 탄다. 그래서 중얼거린다; “이거 국왕의 체면을 꾸기게 되었구만. 어쩔 수가 없지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

다윗왕이 빠른 전령을 현지사령관 요압에게 보낸다. 그 전령이 급히 요압 사령관에게 전하고 있는 밀서에는 다음과 같은 끔찍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나의 조카인 요압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한다. 헷족속 출신의 장수인 우리야는 국왕인 나의 비리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암몬과의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내세우고 지원을 끊어 반드시 그 입을 막도록 하라”.

눈치가 빠르기로 유명한 요압 사령관이다. 그는 자신의 부관에게 긴히 명령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다윗왕과 우리야의 젊은 아내 사이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은밀하게 탐문하게 한다. 그 결과 그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 나이가 다윗왕보다 3살이나 많은 요압 사령관이다. 그는 횡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참으로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압 사령관이 랍바의 전선에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2년후면 50세이다. 그러면 사령관 자리에서 은퇴해야 한다. 야인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이번 일을 해치우고 외삼촌인 다윗왕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으면 현직에서 물러나지 아니해도 되고 죽는 날까지 군부를 내 손에 장악할 수가 있다. 다윗왕도 나를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하하… “;

다윗왕과 요압 사령관의 흉계에 의하여 무죄한 우리야 장군이 랍바의 성문을 공격하다가 그만 적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고 만다;

 

그의 시신을 운구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밧세바의 집에서는 초상을 치룬다. 다윗왕은 성대한 장례식이 되도록 도와준다. 그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다. 부하 장군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다윗왕이라는 흉내만 낸 다음에는 젊은 밧세바를 자신의 후궁으로 취하고 마는 것이다(삼하11:27). 다윗왕은 개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속였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요압과 그의 시위장만 자신의 비리를 알 뿐 나머지 신하와 백성들은 도무지 알지를 못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도 편하게 밧세바와 거듭 합방하면서 아기를 낳게 된다. 그러한 무사안일의 세월이 오래 갈 것인가? 결코 그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예언이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나단 선지자에게 다윗의 비리를 볼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섭리를 하신다. 그리고 다윗왕에게 전할 말씀을 주신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윗이 계속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 앞에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