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손진길 소설)

다윗의 기도2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12. 10:52

다윗의 기도23(작성자; 손진길)

 

28세의 다윗장군이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을 겸하고 있는 가드왕 아기스에게 망명하여 30세가 될 때까지 아기스의 용병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다윗의 부대는 아기스 왕의 명령에 따라 시글락에서 블레셋을 지키는 외인부대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런데 다윗과 그의 부대가 시글락에서 16개월을 지내고 나자 엄청난 변화가 발생한다. 그것은 국력이 약할 대로 약해진 이스라엘왕국을 정복하고자 블레셋 5개 도시국가가 대군을 모아 원정에 나선 것이다(삼상28:1a).

그 정복전쟁에 앞장서고 있는 아비멜렉 곧 가드의 아기스왕이 다윗장군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삼상28:1b). 이 대목에서 3가지 사실을 넉넉하게 엿볼 수가 있다;

첫째로, 여호와께서는 그 옛날 대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초대 이스라엘왕국의 국왕으로 기름을 부은 사울왕의 통치를 지난 40년 동안 지켜보았지만 나이 80이 된 사울왕이 여전히 권력욕에만 미쳐서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국왕인 사울이 여호와의 뜻을 받들지 아니하고 마치 세속국가의 왕처럼 제멋대로 통치하자 신하들과 백성들이 하나같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제마음대로 우상을 섬기며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들 가고 있다.

특히 사울왕 통치 25년경 대선지자 사무엘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나자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에서 그만 선지자의 맥이 끊어지고 만다(삼상28:6, 15).

노년의 사무엘이 고향 라마의 나욧으로 은퇴하여 전심전력으로 20년간 양성해 놓은 선지자 생도들을 사울왕이 전부 신접한 자와 박수라고 부르면서 선지동산에서 쫓아내고 결국 이스라엘왕국에서 전부 쫓아내어버린 것이다(삼상28:3).

그 결과 80세의 사울왕이 블레셋의 침략을 맞아 왕국의 명운을 알아 보고자 선지자를 구할 때에 여호와의 뜻을 옳게 알려줄 선지자가 한사람도 없는 것이다(삼상28:9).

둘째로, 약속의 땅 가나안은 여호와께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원주민들을 쫓아내시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이 세속국가와 동일하게 타락하고 말았다.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태여 그 나라를 보호하고 지켜줄 필요성이 별로 없다. 그래서 서남쪽의 대적인 불레셋을 동원하여 그 버릇을 고쳐 놓으려고 하신다.

과연 제사장나라인 이스라엘왕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완전히 이방인 블레셋의 외침으로 멸망하고 마는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께서 벌써 13년전에 차기국왕으로 기름을 부어 놓은 다윗을 동원하여 그 나라를 새롭게 하실 것인가?

만약 다윗장군의 여호와신앙이 살아 있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왕국은 외적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지 아니하고 다시 여호와신앙을 새롭게 되살리는 전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지상에서 제사장나라가 멸절하고 말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다윗은 대선지자 사무엘이 생존한 때에는 라마로 그를 찾아갔으며 그후에는 여호와신앙이 뛰어난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하여 나름대로 여호와의 뜻을 실천하고자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 증거가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은 종 사울왕의 목을 2번이나 치지 아니하고 살려준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의 뜻을 어기고 이스라엘왕국을 얻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존중하고자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 올바른 신앙심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이제 사울왕을 마지막으로 명예스럽게 은퇴를 시키고 다윗에게 이스라엘왕국을 새롭게 할 기회를 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셋째로, 블레셋의 비옥한 그랄 평야를 지키고 있는 요새지 시글락에서 다윗장군과 그의 부대가 16개월동안 지내는 사이에 여호와께서는 다윗일행이 동족의 피를 묻히지 아니하도록 은밀하게 돌보신다(삼상27:6-12). 그 결과 다윗의 손이 이방인들의 피로 더러워져 있지만 동족들의 피에 대해서는 깨끗하다(왕상5:3).

따라서 이번 블레셋의 이스라엘 정복전쟁에 있어서만 다윗이 참전하게 되지 아니하게 되면 그는 이스라엘왕국의 차기 국왕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만약 다윗이 그 손으로 동족을 치게 된다고 하면 그때에는 신정국가의 국왕으로서는 그 자격을 여호와 앞에서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영적인 관점에서 다윗의 경우를 이제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블레셋의 5개 도시국가를 다스리고 있는 왕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고의 권력자는 그랄평야를 차지하고 있는 가드왕 아기스이다. 그가 전통적인 연맹왕 아비멜렉이다.

그런데 그 옛날 족장시대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시절에는 정확하게 왕중왕 아비멜렉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다윗장군의 시대에는 그러한 표현이 없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아비멜렉의 힘이 약화가 되고 이제는 5개 도시국가의 왕 가운데 상대적으로 힘이 센 왕이 그저 왕들의 회의체에서 좌장 노릇이나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모임체를 말하면서 사무엘상 제28장에서는 블레셋의 다른 도시국가의 왕들에 대해서는 방백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오직 아기스 왕에 대해서만 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삼상29:3-4). 그것은 아기스 왕이 다른 도시국가를 모두 자신의 제후로 복속시켰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방백들이 다윗장군을 이번 이스라엘 정복전쟁에 참여시키지 말자고 말하자 그 의견에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삼상29:6-7). 애초에 아기스 왕은 다윗장군을 자신의 심복으로 알고서 그를 이번 전쟁에 참여시키고자 했으나 자신의 생각을 접고 있는 것이다.

아기스 왕은 다른 도시국가의 권력자들인 방백들의 의견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그만큼 블레셋 전체에 대한 그의 통치력과 영향력은 약한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가드왕 아기스가 그저 5개 도시국가의 권력자들의 모임에서 좌장역할 정도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가 비옥한 그랄평야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가장 부유하여 왕이라는 칭호를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인 그랄평야를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명장이었던 다윗을 용병으로 또한 다윗의 부대를 외인부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왕국의 초대왕인 80세의 사울왕은 블레셋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정신이 없다. 그가 여호와신앙을 떠난 지 오래되었으므로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울왕이 선택하고 있는 방법이 가관이다. 신접한 자나 무당을 찾아가서 전쟁의 승패를 묻고 있다. 그것은 점을 치고 있는 것과 진배가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편찬하면서 저자들이 다음과 같이 그 대목을 기록하고 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삼상28:5-7).

사울왕이 변장을 하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 그 무당이 사무엘의 혼백을 불러서 대화를 하게 하자 사울왕이 그 혼백에게 절하면서 미래지사를 묻고 있다. 그에 대한 답변이 걸작이다;

그 사무엘의 혼백이 3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전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울왕과 그의 아들들이 전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이스라엘왕국은 다윗장군에게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귀신도 미래지사를 아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미래를 결정하시는 여호와 앞에 사울왕이 진심으로 서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래지사를 슬쩍 커닝하여 전달하고 있는 두려운 귀신의 소리를 사울왕이 듣는다고 하여 그것이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일까?

사울왕이 진심으로 여호와의 뜻을 저버린 자신의 죄가 크다는 사실을 죄인의 심정으로 깨닫고 여호와 앞에 통회하기 전에는 그 미래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가 없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진지한 노력이 전혀 없다.

사무엘의 모습으로 나타난 귀신의 소리를 듣고서 사울왕이 벌벌 떨고 있지만 그는 그 어느 것 하나 바꿀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참된 여호와신앙인의 마음을 그가 완전히 버려버렸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다윗장군은 아기스 왕의 호출을 받고 이스라엘을 정복하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자 여호와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있다. 자신의 손에 지금까지 동족의 피를 묻히지 아니하도록 보호하여 주신 여호와께서 끝까지 자신을 지켜 달라고 간구한다;

 

다윗의 기도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 그 결과 블레셋의 다른 도시국가에서 온 방백들이 이스라엘출신인 장군 다윗의 참전을 극구 반대하고 나선다. 그 옛날 블레셋의 군사를 많이 죽인 다윗을 결코 믿을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노래까지 들먹이면서 그들이 끝까지 반대하자 아기스 왕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시글락에서 외적이나 막고 있으라고 다윗과 그의 군대를 돌려보내고 만다(삼상29:10-11). 이제 시글락으로 돌아가고 있는 다윗에게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블레셋의 대군이 해안길을 타고 북상하여 이스라엘 지경을 돌파하여 이스르엘 평야 수넴에서 진을 치고 있으며 사울왕이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길보아 산에서 진을 치고 있다(삼상28:4, 29:11);

 

그 전쟁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