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4(작성자; 손진길)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사사기시대를 끝내면서 왕정시대를 여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무엘이다. 그는 실로에 살고 있는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인 엘리의 후계자이다;
그런데 사무엘의 출신성분을 생각하면 엘리 대제사장의 뒤를 잇고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제사장 집안의 아들이 아니라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는 엘가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삼상1:1).
사무엘의 부친인 엘가나는 제사장의 신분이 아니다. 그리고 레위인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고향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는 라마의 나욧은 여호수아 시대 레위인에게 배정이 된 성읍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호수아 제21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베냐민의 땅과 에브라임의 땅에서 레위인의 성읍을 찾아보면 그 이름이 다음과 같다; 베냐민의 성읍 가운데 4개 곧 기브온, 게바, 아나돗, 알몬이 레위인에게 할당이 되는데 특히 아론의 자손들이 살게 된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성읍인 것이다;
그리고 에브라임의 땅 가운데 역시 4성읍을 레위인들에게 배정하는데 그 이름이 세겜, 게셀, 깁사임, 벧호른이다. 그 가운데 특히 세겜은 도피성이 된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혈통적으로는 레위인이 아니고 제사장이 될 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실로에서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인 엘리의 후계자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나실인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젖을 떼자 마자 부친인 엘가나와 모친인 한나가 어린 사무엘을 대제사장 엘리의 집에 맡겨서 하나님께 바쳐버린 것이다. 따라서 사무엘은 엘리의 집에서 양육이 된 나실인이다;
사무엘이 비록 대제사장의 집에서 자란 나실인이라고 하더라도 엘리의 신분과 직책을 그대로 계승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엘리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들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성막에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첫째, 두 아들은 여호와께 바쳐진 제물 가운데 좋은 것을 사전에 자신들의 것으로 도둑질을 한다. 둘째, 회막에서 일하고 있는 여인들을 겁도 없이 자신들의 잠자리에 불러서 수청을 들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의 아들들이 부친의 대사사와 대제사장의 신분을 계승하지를 못하고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고 만다.
자식을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엘리 대제사장도 죽고 만다. 따라서 역사상 유례가 없이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모의 서원에 따라 아기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 사무엘이 장성하여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인 엘리의 뒤를 잇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무엘의 특이성은 제사장 집안 출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룩하게 하나님께 바쳐진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누구나 제사장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참고로, 사무엘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인 사무엘은 자신의 출신성분에서부터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정책의 변화를 벌써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왕국의 초대왕으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국왕으로 세웠지만 사울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하는지 아니면 멸시하는지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있다.
만약 사울왕이 여호와의 뜻과 말씀을 존중하며 그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이스라엘 왕의 신분은 그의 아들과 자손이 계승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사울왕이 여호와를 멸시하게 되면 그의 대에서 왕위가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울왕이 엘리 대제사장처럼 여호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히 여기고 있다. 그것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보다 전리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멸하고 그들의 소유를 모두 없애라고 하는 여호와의 명령을 외면하고 그 재산을 차지하고자 한다(삼상15:1-3, 9);
또 하나는, 군사들과 백성들의 요구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시한다. 블레셋과의 전투를 개시하기 전에 대제사장 사무엘을 기다려서 제사를 먼저 드려야 한다. 그런데 사무엘이 늦어지자 사울왕이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약식으로 번제를 드리고 출전하고자 한다(삼상13:8-9);
자신의 군사들과 백성들이 적의 공격을 염려하여 그렇게 요구하자 그만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자신의 권위와 인기를 높일 겸 그렇게 행동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이 여호와를 멸시한 사울왕을 하나님께서는 버리신다. 그래서 그 왕위를 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인물에게 주고자 하신다. 그 뜻을 받들어 늙은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인 사무엘이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는 은밀하게 이새의 집을 방문하여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다음 국왕을 세우고자 한다.
사무엘의 생각은 두가지이다; 첫째, 국왕은 군사를 이끌고 외적을 맞이하여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왕의 재목은 전장에서 선봉이 될 수 있는 용력과 용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신체조건은 사울왕과 같은 것이다. 둘째, 세상의 그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 말씀을 존중하는 인물이라야 한다.
그런데 전자는 눈에 보이는 신체조건이지만 후자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경건한 신앙심이다. 따라서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관찰하면서 기름을 붓는데 있어서 처음에는 실수를 한다.
이새의 장남을 보니 사울왕처럼 건장한 거구이며 용맹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왕으로 세우려고 기름을 붓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말리시면서 말씀하신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그 결과 이새의 막내아들인 다윗이 형들을 제치고 사무엘의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 17세쯤으로 보이는 청소년 다윗은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인 사무엘이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면서 그를 이스라엘왕국의 다음 국왕으로 기름을 붓자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화려한 대관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남에게 말할 수도 없으며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살아있는 권력자인 사울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굉장히 위험한 기름부음이다. 그러한 위험을 청소년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다윗의 부친인 이새와 다윗의 누나와 형들도 대단한 신앙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막내인 다윗이 대제사장 사무엘에 의하여 다음 국왕으로 세우는 기름부음을 은밀하게 받았다는 사실을 결코 발설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17세의 다윗은 대제사장 사무엘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게 되자 그때부터 두가지의 기도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첫째, 평생 여호와를 섬기는 신실한 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 달라는 것이다. 둘째, 자신에게 맡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고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하는 기도이다;
첫번째의 기도의 제목은 다윗이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대로 응답이 된다. 그를 지키고 도우시는 여호와의 은혜가 각별하시기 때문이다. 두번째의 기도의 제목은 다윗이 청소년 시절 양치기생활을 하면서 위기에 처한 양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고 늑대와 사자를 물리친 그 경험 그대로 그에게 임하게 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처벌하신다. 먼저 여호와의 종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라고 오만하게 행동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제 마음대로 하룻밤 취하면서 여호와의 십계명을 버린 때에 여호와의 징계가 강력하게 임하는 것이다.
자신의 백성을 양처럼 돌보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해치는 경우에는 여호와께서 강력하게 징계하신다. 다윗왕이 훗날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하여 충신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도록 만들라고 현지사령관 요압에게 밀서를 보낸다. 그렇게 악한 흉계를 꾸민 다윗왕에게 강력한 여호와의 심판의 예언이 임하게 된다.
그 심판의 예언을 듣고서 다윗은 남은 인생을 눈물로 여호와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있다. 그 증거가 시편에 남아 있다. 다윗의 이름으로 실려 있는 73편의 시가 가운데 많은 것이 회개와 통곡의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은밀한 다윗의 잘못을 잘 알고 있는 군부의 실력자 요압에게 약점이 잡혀서 다윗왕은 그때부터 정치적인 어려움을 여러 번 당하게 된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제는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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