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의 비밀50(작성자; 손진길)
혜산에서 강계까지는 족히 300리나 된다. 야율종진을 수행하고 있는 낭추 장군과 팽이호 장군은 혜산성을 출발하여 삼수지역으로 서진한다. 그 다음에 낭림을 거쳐서 강계성으로 가려고 길을 잡는다;
그런데 낭림성에서 나온 군사들이 야율종진의 기병대가 200명이나 되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라 그 길을 막아 선다. 길을 막는 기마병의 수가 100명 정도나 되어 보인다. 그 중에 장수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서 큰소리로 외친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 기마병들이요. 우리 낭림성 구역을 지나가자면 사전에 허락이 필요하오”;
그 말을 듣자 팽이호 장군이 앞으로 나서서 대답한다; “나는 삼수성의 장수 팽이호입니다. 이번에 저의 주군을 모시고 강계의 채고수 성주를 찾아 뵙고자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귀공은 낭림성의 어느 장수이십니까?”.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갑자기 팽장군을 호의적으로 대하면서 말한다; “나는 채고수 성주의 당질이 되는 채원병입니다. 귀성의 팽호남 성주님께서는 평안하십니까?”. 팽이호 장군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점잖게 대답한다; “네, 평안하십니다. 그런데 강계성주의 당질께서 낭림성의 기마병을 이끌고 계시니 어쩐 일이십니까?’.
그 말을 듣자 채원병이 껄껄 웃으면서 대답한다; “몇 달 전에 낭림성주 탕웅이 저의 당숙인 채고수 성주에게 비무를 신청하였지요. 승자가 서로 성을 차지하는 내기였는데 그 시합에서 채고수 성주가 이겨서 자연히 낭림성이 이제는 강계성의 관할 하에 들어간 것입니다. 지금은 낭림성의 수비대장을 저의 부친인 채고흥 장군께서 맡고 계시지요. 하하하… “.
그 말을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야율종진이 팽이호를 불러서 말한다; “낭림성주 탕웅이 삼수성주인 팽호남과 비무를 하지 아니하고 강계성주인 채고수와 비무를 한 까닭이 무엇인지 한번 물어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나의 정체를 아직 밝히지 말고 그냥 길을 사용하도록 교섭해보세요”.
그 말을 들은 팽이호가 고개를 끄떡이고 나서 채원병을 향하여 말한다; “우리 삼수성의 팽호남 성주께서도 무예가 뛰어납니다. 그런데 어째서 탕웅 성주가 우리 팽성주님과 비무를 하지 아니하시고 귀하의 채성주님과 무예를 겨루어 성을 상납한 것일까요? 나는 당최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채원병이 솔직하게 대답한다; “사실은 탕웅 성주가 옛날 삼수성주였던 대무수와 친분이 두터웠지요. 그런데 몇 해전에 젊은 팽호남이 이끄는 기마대에 의하여 친구인 대무수가 성을 빼앗기고 말았어요. 그러니 탕웅 성주는 팽호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강계의 채고수와 연합하고자 했는데 그 방법이 비무였지요. 그 결과 패배를 당하고 이제는 자신의 성의 수비를 채고수 장군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야율종진이 나서서 자신의 신분을 고려이름으로 밝히면서 채원병에게 질문한다; “나는 팽이호와 동행하고 있는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낭림성주는 지금 누구입니까?”. 채원병이 서우진이라고 하는 이름을 듣자 한참 야율종진을 살펴본다.
그리고 대답한다; “탕웅 성주가 성의 정무를 처리하고 군사적인 업무는 강계성주가 파견한 수비대장이 전부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 그 말은 일종의 삼군부와 의정부의 직무의 분리와 같은 것이다;
채원병이 자신의 고개를 갸웃하면서 야율종진에게 질문한다; “혹시 서우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시는 귀하는 개경에서 오신 분이 아니십니까? 저의 주군이신 채고수 성주님의 사제의 이름이 서우진인데 그 이름이 같아서 혹시나 해서 여쭈어 봅니다만… “.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깜짝 놀란다.
야율종진이 속으로 생각한다; “채고수 사형의 오촌 조카라고 하는 채원병이 어떻게 서우진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그래서 그에게 물어본다; “제가 개경에서 온 서우진이고 채고수 사형의 사제입니다. 그런데 귀공께서는 어떻게 저와 사형과의 관계를 그렇게 잘 알고 계십니까?”.
그 말을 듣자 채원병이 깜짝 놀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경에 나가 있는 저의 고모님께서 일전에 강계성을 방문하셔서 채고수 성주님에게 서우진 공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했습니다. 그의 도움을 얻기만 하면 채고수 성주가 하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우리 강계성의 장수들은 모두 개경의 서우진이라고 하는 인물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요… “.
그 말을 들은 야율종진은 개경에서 월향루라고 하는 기생집을 차려 놓고 첩보활동을 벌이고 있는 행수 월향이 채원병의 고모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야율종진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역시 첩보부대의 행수의 눈을 피하기는 어려운 법이군요. 그렇다면 이제 이 서우진이 사형인 채고수 성주님을 예방하고 싶은데, 채원병 장수님께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채원병이 활짝 웃으면서 대답한다; “서우진 선생이 확실하다면 강계성의 귀빈입니다. 제가 낭림성을 벗어날 때까지 길안내를 하겠습니다”. 채원병 장수의 호의로 야율종진 일행은 무사히 강계성 구역으로 들어선다.
그곳에서 채장수가 강계성의 장수인 자신의 동생 채문병에게 인수인계를 한다. 그 결과 야율종진 일행이 참으로 편하게 강계성에 들어가게 된다. 보고를 받은 채고수 성주가 서우진과 야율애령을 자신의 접견실로 오게 한다.
채고수 성주가 서우진이 여진족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흔히 고려사람들이 비밀리에 월경을 하여 여진 땅에 들어오면 그렇게 복장을 바꾸어 입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고수 성주가 그날 서우진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그 말을 들은 채성주의 입이 떡 벌어진다;
서우진의 설명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사형, 저는 고려의 신분이 귀족인 서우진이지만 또 하나의 신분은 야율족의 추장인 야율종진입니다. 사실은 7년전 완안족의 침입으로 멸망이 된 야율추장의 사위이지요. 그래서 그 원수를 갚고자 이제는 동북여진을 치고자 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사형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채고수가 질문한다; “야율족의 새로운 추장 야율종진에 대해서는 지금 서여진과 동여진의 땅에서는 소문이 무성해. 그가 한달 남짓 만에 무산에서 혜산에 이르는 여진의 땅을 전부 정복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 야율종진이 바로 나의 사제인 서우진 자네라고 하니 내가 할 말이 없어… 그래 김숙번 사부님께서는 이 일을 알고 계시는 거야?... “.
야율종진이 솔직하게 대답한다; “워낙 중요한 일인지라 비밀리에 원정에 나서느라고 아무런 사전 언질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때가 되면 말씀을 드려야지요”. 그 말을 들은 채고수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군. 은밀하게 군대를 만들어 그 넓은 땅을 정복한다고 하는 것이 기밀 중의 기밀사항이지. 어쨌든 축하하네, 서우진 사제 덕분에 이제는 우리 3명의 사형들이 편히 잠을 자게 생겼어.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말한다; “채사형께서는 의주의 조금강 사형 그리고 온성의 김영웅 사형과 동맹을 맺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그 조약이 유효합니까?”. 그러자 채고수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그 조약은 우리들의 존립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것이야. 동북여진을 지배하고 있는 완안웅이 만주의 대금의 군대를 끌고서 남침하게 되면 우리는 연합하여 그들에게 대응할 수밖에 없거든… “.
그 말을 들은 야율종진이 정식으로 채고수 성주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사형, 저의 야율족의 군대도 사형들과 함께 완안웅이 이끄는 대금의 군대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동맹조약에 참여시켜주세요. 3자 동맹보다는 4자 동맹이 더 힘이 세지 않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채고수 성주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말한다; “사제, 그 부탁은 오히려 우리 사형들이 먼저 사제에게 해야 하는 거야. 사제의 기마대가 강력하다는 사실은 지난 한달 남짓 만에 동여진과 서여진의 동부를 전부 차지한 것으로 벌써 증명이 되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 우리 사형들은 사제의 그 군사력이 필요해… “.
그 말을 들은 야율종진이 기분 좋게 말한다; “채 사형의 말씀을 듣고 보니 소제가 참으로 사형 복이 큰가 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완안웅이 지배하고 있는 동북여진의 군사가 10만명에 가깝고, 또한 심양에 주둔하고 있는 대금의 군대가 10만명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그 절반이 원정에 나선다고 보면 우리는 10만명의 대군을 상대해야만 하지요… “.
야율종진이 잠시 숨을 돌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그런데 저는 터무니 없이 군사의 수가 적습니다. 물론 사형들의 군사를 전부 합해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전선이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으로 심히 넓으니 국지적으로는 한번 싸워볼 만합니다. 그렇게 전선을 넓혀 버리는데 있어서 우리들의 동맹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은 채고수 사형이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사제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적군의 수가 엄청나게 많으니 우리들이 여러 곳에서 그들을 공격해야지. 그렇게 산발적으로 기습하다가 보면 없는 기회도 생겨나는 법이지... “.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사형, 저는 여기서 혜산성으로 그만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곳에 벌려 놓은 일이 많아서 이번에는 의주성과 온성을 방문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그러니 사형께서 의주와 온성에 기별을 좀 해주세요. 제가 혜산성에 주둔하고 있으며 사형들의 동맹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그만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러자 채고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았어. 내가 사제의 시간을 절약해주지. 사제의 당부를 그대로 의주성의 조금강과 온성의 김영웅에게 전서구로 전해주겠네. 그러니 동맹관계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도록 하게. 그리고 강계와 혜산이 가까우니 내가 한번 방문을 하겠네. 자네도 급한 연락은 전서구나 파발로 내게 보내어 주게나”;
야율종진은 강계성에서 급한 볼일이 끝났으므로 더 이상 체류하지를 않는다. 다음날 바로 혜산성으로 출발한다;
의주성과 온성은 나중에 방문할 생각이다. 일단은 혜산성에서 원정에 나선 3개 부대의 장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동북여진의 중심지인 길림과 하얼빈을 어떻게 배후 공격할 것인지를 궁리해야만 한다.
야율종진이 혜산성에 돌아오자 아직 3개 원정군으로부터는 당장 전투의 결과가 장계로 올라오지 아니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낭추와 팽이호 그리고 야율애령과 퉁예란에게 무예를 전수하는데 열심이다. 이미 상당한 무술을 익히고 있는 그들이다. 그러나 야율종진은 그들에게 우선 고대의 심법부터 가르친다.
단전호흡을 통하여 내기를 어떻게 다스리며 그것을 활용하여 몸을 가볍게 하고 무기에 내력을 불어넣는 방법 등을 설명한다. 4사람은 그 설명을 처음 듣는 것이기에 하루 종일 실습하느라고 열심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 마침내 전투의 결과에 대한 장계가 파발로 당도한다. 과연 어떠한 내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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