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의 비밀21(작성자; 손진길)
남기룡의 이야기를 듣고서 윤하선과 함께 호텔로 돌아온 유끼꼬는 자기방에서 문을 잠근 후에 먼저 공식적인 일부터 처리한다. 일본내각의 지시를 받고 있는 정보부의 윗선에 오늘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그대로 보고한다. 그 내용이 조총련의 간부인 남기룡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북한과의 물밑협상을 중지하고 이제는 중국과의 협상에 돌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공식적인 보고를 끝내고 나자 유끼꼬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그녀의 마음이 무겁다. 자신의 조국인 일본의 정부가 이웃나라 한국과 협력하여 극동의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정부는 옛날 일제시대처럼 한반도를 다시 점령하여 지배하고자 큰 야심을 품고서 비밀리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비밀작전이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옳은 일일까? 유끼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그것은 옛날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을 막고 싶지만 자신에게는 그럴 힘도 또한 선택의 여지도 없다. 부친인 하세가와 교수가 서울 명동에 있는 조상들의 땅을 되찾기 위하여 일본정부의 ‘정한론’에 내밀하게 찬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끼꼬가 서울의 대학교에서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보니 그 땅은 본래 조선인의 것이다. 그런데 일본제국이 갑자기 개인등기를 하도록 조선인들에게 선포하면서 그들이 미처 등기하지 못한 문중의 땅들을 가로챈 것이다. 그것을 동양척식회사를 통하여 조선에 온 일본인들에게 나누어 준 것에 불과하다. 일본제국은 36년간 조선인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농노로 부려먹은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군국주의 시대에는 조선인들을 전장에 내몰았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일본사람들이 그것을 자신들 조상의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억지이다. 그러나 부친 하세가와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져서 그 땅을 두고 억울하게 조선을 떠나왔으므로 이제는 다시 힘을 길러서 그 땅을 되찾는 것이 조상들의 유훈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일본의 정부가 비밀리에 그 일을 추진하고 있으니 유끼꼬에게 협조를 아끼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세가와 교수의 딸인 유끼꼬가 그 명령을 따르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청년인 윤하선을 대하기가 참으로 낯부끄럽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유끼꼬가 호텔 로비로 내려간다. 그녀가 호텔을 벗어나 신오사카 역이 보이는 곳까지 걸어간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산책이다. 그러다가 두 군데 상점에 들린 후에 다시 호텔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온다.
윤하선은 유끼꼬를 같은 6층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들여보내고 자신의 방으로 오자 가다마이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고서 그냥 침대에 몸을 누인다. 남기룡의 이야기를 편안한 상태로 한번 되씹어 보기 위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역시 일본정부가 갑자기 북한과의 막후협상을 포기하고 이제는 중국과 물밑에서 무언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정보이다.
그 협상의 의제가 무엇일까? 남기룡의 말 그대로 한국과 북한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자 하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비밀협상의 일환인 것일까? 분명히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자본주의 진영에 속하고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이 이끌고 있는 공산주의 진영에 속하고 있는데 어째서 미국 및 중국과 협상하여 일본이 그 큰 틀을 깨고자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비밀협상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하면 그 근거가 무엇일까? 윤하선의 지식과 경륜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그는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하여 누구의 도움을 구할까?’를 생각하며 침대에 누운 채 꼼짝하지 아니하고 있다.
바로 그때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벨 소리가 한꺼번에 들린다. 윤하선이 사색을 멈추고 문간으로 가서 도어뷰어로 손님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유끼꼬이다. 안심을 한 윤하선이 반갑게 방문을 연다. 그러자 유끼꼬가 방안에 들어선 그대로 윤하선에게 말한다; “하선, 잠깐 제방으로 같이 가요…”.
윤하선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가볍게 옷을 바꾸어 입는다. 그 모습을 유끼꼬가 미소를 띄면서 바라보고 있다. 남자인 윤하선이 여자인 유끼꼬가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바지를 벗고 캐주얼로 바꾸어 입고 있다. 그것은 유끼꼬를 남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괜히 유끼꼬는 기분이 좋다. 그래서 얼른 윤하선의 팔짱을 끼고서 자신의 방으로 함께 들어간다. 탁자가 있고 의자가 둘 있는데 그 탁자에 포도주가 두 병 놓여 있다;
잔도 두개가 있고 약간의 마른 안주와 두개의 벤또까지 놓여 있다. 유끼꼬가 의자에 윤하선을 앉게 하고 자신이 그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유끼꼬가 방긋 웃으면서 윤하선에게 정답게 말한다; “하선, 당신과 저는 그동안 열흘 가까이 함께 지냈지만 아직까지 술을 한잔도 같이 나누어 마시지 않았어요. 당신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니 제가 약한 포도주를 두 병 준비했어요. 우리 오늘 저녁은 벤또를 먹으면서 청춘남녀끼리 즐겁게 한 잔 씩 해요. 저는 하선 당신과 오늘 정신없이 취하고 싶어요…”.
그 말을 하고 있는 유끼꼬의 뺨이 술을 마시지도 아니했는데 벌써 홍조를 띤다. 윤하선이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어째서 그러한 심경의 변화를 유끼꼬가 보이고 있는지 속으로 생각해본다. 윤하선의 생각으로는 그녀가 유능한 첩자로 보인다. 하지만 역시 말못할 사정이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윤하선이 그러한 속셈을 드러내지도 아니하고 지금 이 순간만은 자신도 만사를 잊어버리고 싶다. 유끼꼬가 일본정부의 정보원이라고 하는 사실을 제외하고서 보면 참으로 예쁘고 마음에 드는 처녀이다. 그래서 윤하선은 그저 남자와 여자로 그것도 젊은이로 그날 저녁과 밤을 유끼꼬와 함께 즐기고자 한다.
그렇게 두사람이 국적을 초월하여 또한 각자의 조국의 이익을 뒤로한 채 단지 서로 좋아하는 청춘남녀가 되어 하룻밤을 보내고 있는 사이에 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두주 전 일본 동경에서 실종이 된 윤치국 특파원이 미국 뉴욕과 수도인 워싱턴 DC를 오가면서 엄청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윤치국은 서울에 있는 장조카 윤하선에게 한밤중에 통화를 하고 있을 때에 문간에서 두드리는 소리와 초인종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급히 전화를 끊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마련해둔 비밀실로 숨었다. 그 조그만 비밀실은 그가 그 아파트에 입주할 때에 지국장이 가르쳐준 것이다. 특파원이 신변의 위험을 느낄 때에는 그 비밀실에 숨어서 지국장인 자신에게 연락을 취하라는 것이다.
어째서 한양신문사 동경지국장이 그러한 설비를 갖춘 아파트를 특파원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당시에는 의심이 들었지만 윤치국이 캐묻지를 아니했다. 그저 지국장인 김호성 선배의 얼굴만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 보았을 따름이다. 그는 당시에 특파원 생활을 하다가 보면 그러한 위기도 맞이할 수가 있는 것으로 평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날 밤 자신을 찾는 자들이 교묘하게 아파트 문을 따고서 침투를 했을 때에는 그 비밀실이 참으로 요긴했다. 그들 침입자들이 실내를 모두 뒤져도 윤치국을 발견하지 못하자 화를 내면서 물러가고 만 것이다. 잠시후에 윤치국은 김호성 지국장에게 전화로 급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김선배가 윤치국을 자신의 아파트로 부른다. 윤치국이 급히 이동하여 그 집으로 갔더니 그가 명함을 한 장 준다. 김호성 선배의 명함인데 그 뒷면에 한국말로 간단한 인사말과 부탁의 말이 적혀 있다; “고선배님, 사정이 급하게 생겼습니다. 윤특파원을 미국으로 빼내어 주십시오. 일본에서 수배하고 있습니다. 감사”.
그 명함을 가지고 오사카 시내에서 ‘뉴 코리아 펀드회사’의 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고현중 선생을 찾아가라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를 고선생에게서 듣도록 하고 빨리 오사카로 가서 그를 만나고 일본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 모든 준비를 고선생이 해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윤치국은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그 방법 외에는 자신의 안전을 도모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꾸려온 약간의 짐과 가방만을 지니고 그대로 오사카로 내려간다. 고현중 선생을 만났더니 일전에 자신이 만난 그 50대의 점잖은 신사분이다. 그가 직원 한사람을 지사장실로 부르더니 윤치국 선생의 여권을 하나 만들어주라고 지시한다.
그 직원이 윤치국의 사진을 촬영하더니 인적사항과 사인을 부탁한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더니 한시간 후에 다시 지사장실에 돌아온다. 그가 탁자에 내놓는 여권이 두개이다. 하나는 윤치국 특파원이 그에게 준 자신의 한국여권이다. 또 하나는 ‘장병국’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있는 한국여권이다. 그런데 두개의 여권의 사진이 똑 같다.
그것을 윤치국에게 주면서 고현중 지사장이 말한다; “내가 방금 그 젊은이에게 윤특파원의 또다른 이름 ‘장병국’으로 미국 뉴욕에 가는 가장 빠른 항공표를 끊어오라고 지시했어요. 당신이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면 ‘장병국’을 환영하는 팻말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서 일본의 정한론의 실체를 추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몸조심 하십시오”;
윤치국 특파원은 일본에서는 계속 실종상태이다. 그는 미국의 뉴욕으로 가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이 50대의 ‘제임스 박’이다. 그는 뉴욕 월가에 있는 ‘뉴 코리아 펀드회사’의 사장이다. ‘장병국’으로 위장하고 있는 윤치국을 케네디 공항에서부터 ‘제임스 박’에게로 인도한 30대 중반의 젊은이가 ‘강수재’이다.
사장실에 또 한사람이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그는 40대의 ‘오철수’이다. 그들 두 직원의 보좌를 받으면서 사장인 ‘제임스 박’이 윤치국에게 말한다; “윤기자의 안전을 위하여 이제부터 저희들은 ‘장병국’ 동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여기 왼쪽의 오철수 이사와 오른쪽의 강수재 과장은 저와 함께 두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윤치국은 그 회사가 평범한 펀드회사가 아니라고 진작에 눈치채고 있다. 그러한 느낌은 일본의 오사카에서 ‘뉴 코리아 펀드회사’의 일본지사장인 ‘고현중’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다. 얼마전에 오사카에서 고현중을 처음 만났을 때에 자신에게 고급정보를 제공하면서 말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윤특파원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지도 몰라요. 그때에는 즉시 제게 연락주세요. 제가 대비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윤치국이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는데 사장인 제임스 박이 말한다; “우리는 펀드회사가 맞아요. 한국인들과 재미교포들의 돈을 맡아서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한국인들이고 또한 한국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적인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누구보다도 희구하고 있지요. 그 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끝까지 추적하여 그들의 계획을 백지화 시키고자 합니다”.
가장 솔직한 설명이다. 그래서 윤치국 특파원이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제임스 박이 다시 말한다; “장선생이 하고자 하는 그 일이 바로 저희들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Peaceko 21’의 이름으로 저희들이 돕겠습니다. 저희들 펀드회사의 사원들이 모두 비밀단체인 ‘Peaceko 21’에 가입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윤치국 특파원이 눈치가 빠르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박 사장님과 여기의 두분 그리고 일본 오사카의 지사장 고현중 선생님과 동경의 김호성 지국장 정도가 그 비밀 회원들이겠군요…”. 그 말을 듣자 박 사장이 파안대소를 하면서 말한다; “네, 그 정도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세력으로는 막강한 일본의 극우세력과 그들에게 동조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국들의 세력을 상대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저희들은 폭넓은 협조망을 다양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장병국으로 불리게 되는 윤치국 특파원이 박 사장에게 묻는다; “지금부터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답변한다; “일본에서 파헤치신 것처럼 일본정부는 비밀리에 미국의 정계에 큰 로비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설득하여 일본이 옛날처럼 한국에 무력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추적하는 것이 장선생님의 과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들이 힘껏 돕겠습니다”.
그때부터 윤치국 특파원은 미국 뉴욕에 머무르면서 장병국이라는 신분으로 활동한다. 그는 일본에서 정계의 인물이 워싱턴 DC를 방문하는 경우 강수재 과장과 함께 현지를 방문한다. 그리고 내밀하게 일본정치인의 동선을 점검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미국 쪽 인사들을 만나 비밀회담을 하고 있는 그 현장에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고 그 타개책을 찾지 못하여 윤치국이 2주 동안 고심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좋은 정보가 들어온다. 장조카인 윤하선이 윤치국 자신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다가 하나의 단서를 찾아내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의원친선협회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하여 정계 인물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한사람의 로비스트와 또 한사람의 펀드 매니저를 대동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일본측 의원친선협회 인사들과 함께 움직인 인물이 일본계 로비스트 ‘나까무라 겐죠’와 일본계 펀드 매니저 ‘기시 노부스께’이다. 그렇다면 그 두사람을 미행하고 그들의 정보를 빼내면 된다. 장병국과 강수재는 그때부터 그 일을 은밀하게 추진하게 된다. 과연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 두 일본인의 정보를 취득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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