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의 비밀9(작성자; 손진길)
저녁에 열차로 동경에 도착한 윤하선과 유끼꼬는 시내 중심지에 있는 하세가와 교수의 저택에 들어선다. 하세가와 교수와 그 아내인 히로꼬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외동딸 유끼꼬와 그녀가 좋아하는 한국청년 윤하선이 함께 1박 2일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무라지를 않는 그들 부부이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지혜로운 딸 유끼꼬의 선택을 그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유끼꼬가 스스로 선택한 동반자이다. 그러므로 그들 부부는 은연중에 윤하선을 사위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유끼꼬와 윤하선은 그냥 자기들끼리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의 비밀’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파헤치고 사라진 특파원 윤치국의 흔적을 찾기 위하여 여행한 것이다.
그래서 그 집의 안주인인 히로꼬가 먼저 말한다; “먼 여행에 피곤할 것이니 우리 모두 먼저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여보, 제가 곧 저녁상을 차릴 것이니 그렇게 해요”. 하세가와 교수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두 사람을 식당으로 안내한다. 윤하선과 유끼꼬는 후쿠시마 현에서 동경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 식사를 조금하고 너무 피곤하여 주로 잠을 잤기 때문에 여전히 배가 고프다.
젊은 유끼꼬와 윤하선이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하세가와 교수 부부가 유심히 보면서 서로 의미가 있는 미소를 나누고 있다. 유끼꼬만 데리고 부부가 식사를 하던 때와 비교하니 더 좋은 것이다. 역시 아무리 귀한 외동딸이라고 하더라도 나이가 차면 배필을 찾아 부부로 살아가게 해주어야 그것이 부모에게는 흐뭇한 것이다.
‘그렇게 서로 마음이 맞는 두사람이 훗날 가정을 이루어 함께 잘 살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하세가와 교수와 히로꼬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줄 모르고 젊은 두사람은 식사에 열중한다. 차를 한잔 마시고 식사를 마치자 하세가와 교수가 윤하선에게 묻는다; “그래,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을 다녀보고서 그 비밀의 실마리를 좀 찾은 것인가?”.
윤하선이 간략하게 대답한다; “한가지 실마리는 찾았는데 또 그보다 더 어려운 숙제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후쿠시마 567’이라고 하는 단서는 그 지역의 환경단체를 비밀리에 이끌고 있는 수장을 가리키는 암호였습니다. ‘나나사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그자를 만나서 3달전에 그가 윤치국 특파원을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막냇삼촌의 행적을 쫓아서 히로시마와 나카사키를 방문했습니다”.
하세가와 부부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윤하선이 이어서 말한다; “1945년 원폭이 투하된 그곳에서 저희들은 방사능에 노출이 된 피해자들이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도 방사능으로 인한 유전자 변이로 말미암아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그곳에서 한국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사실도 인터넷으로 확인을 했고요…”.
그러한 윤하선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하세가와 교수 부부가 크게 놀라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정도의 정보는 벌써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하선이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한다; “후쿠시마 현으로 올라가서 나나사마를 다시 만났지요. 저희들은 그에게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도 히로시마와 같을 것이며 그것은 현재진행형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윤하선이 조금 숨을 돌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그는 벌써 그러한 사실을 윤치국 특파원을 통하여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치국이 자신에게 남긴 ‘이사야 765’라는 수수께끼를 저와 유끼꼬에게 풀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해답은 자신도 아직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 동경에 계속 머물면서 내일부터 삼촌이 근무하던 ‘한양신문사’ 지국을 방문하고 또한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서의 수사결과도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러한 설명을 듣자 하세가와 교수가 논리적으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유끼꼬와 자네가 알아낸 사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겠군. 첫째로, 74년이나 지났지만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의 비극이 끝나지 아니한 것처럼 8년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피해는 앞으로 일본 열도를 계속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둘째로, ‘이사야 765’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윤치국 특파원의 나머지 행적을 짐작할 수가 있다는 것이군…”.
윤하선과 유끼꼬 그리고 히로꼬가 다 함께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떡인다. 그것을 보고서 하세가와 교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2층 서재에서 ‘이사야 765’가 무슨 의미인지를 파악해볼 테니까 유끼꼬는 내일부터 윤상과 함께 신문사와 경찰서를 방문해보는 것이 좋겠군. 물론 두사람도 ‘이사야 765’의 의미가 무엇인지 틈틈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생각을 해보게나… 수고들 했어요”.
하세가와 교수의 저택은 식구가 3사람인데 비하여 훨씬 넓고 큰 집이다. 손님방이 두개나 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하선이 편하게 손님방을 하나 사용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 마자 세수를 하고나서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내어 이사야 제7장을 찾아서 읽어본다.
8월 1일 일본으로 와서 벌써 3일째 밤을 맞이하고 있다. 21일까지 3주간의 짧은 기간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머뭇거릴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다. 윤하선이 대뜸 이사야 제7장을 찾아서 읽고 있는 이유는 ‘이사야 765’라고 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사야의 장과 절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야는 총 66장으로 되어 있어 그것은 제7장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그런데 제7장을 살펴보니 제25절이 끝이다. 65절이 없다. 그렇다면 ‘이사야 765’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윤치국 삼촌이 나나사마에게 앞으로 자신의 별명을 ‘이사야 765’라고 불러 달라고 말한 것일까?
‘그 단서가 이사야 제7장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라고 생각하고서 윤하선이 한글 개역개정판 성경으로 이사야 제7장을 자세히 읽기 시작한다. 그러자 제8절에서 갑자기 윤하선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이사야 선지자가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다메섹을 수도로 가진 아람왕국이 멸망하고 또한 사마리아를 왕도로 하고 있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완전히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대목인데 그곳에서 기이하게도 ‘65년’이라는 글귀를 새삼 발견한 것이다.
깜짝 놀란 윤하선이 자신의 노트북을 가지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다. 앗수르에 의하여 아람과 이스라엘이 망한 때가 언제인지를 당장 알기 위한 것이다. 검색결과 아람이 망한 때가 주전 733년경이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시기가 주전 722년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임박한 아람 왕국의 멸망을 먼저 예언하고 있으므로 예언의 시기를 주전 733년 약간 전으로 본다면 65년 후는 주전 668년이 되기 약간 전이다. 그 시기에 도대체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기에 다시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유민들이 나라를 이루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민족정신이 말살되고 만다는 것인가?
한성고등학교 국사선생인 윤하선이 집요하게 그 점을 파고 든다. 그래서 그 밤에 앗수르의 역사와 그들의 침략전쟁의 특징에 대하여 상세하게 조사를 하고 연구를 거듭한다. 그 결과 새벽이 되기 전에 하나의 결론을 도출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세가지이다;
첫째로, 앗수르 제국의 시작은 티크리스 강의 상류에 있는 도시 니느웨이다. 그 세력이 강을 타고 남하를 하면서 갈라와 앗수르에서 번성한다. 그때 주전 9세기의 왕이 아슈르바니팔2세이다. 작은 앗수르 왕국이 이웃나라를 치고 위대한 제국을 이루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우상을 섬기는 종교국가인 앗수르의 사제들이 전리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특이한 제도를 가지고 있어 그들이 정복전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리품을 챙기는 자본주의 제국의 습성과 유사하다. 특히 과거 일본제국의 군국주의가 그러하다.
둘째로, 티크리스 강 유역에서 발흥한 앗수르는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치고 서진을 계속한다. 주전 733년에 아람 왕국을 멸망시키고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마저 정복한다. 그리고 주전 671년에는 에살핫돈 황제가 이집트의 수도인 멤피스까지 점령한다. 주전 669년에 그가 원정도중에 죽자 후계경쟁에서 승리한 황자 아슈르바니팔이 그 다음해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다.
그가 앗수르제국의 최고번영기의 황제이며 동시에 주전 627년까지 제국을 경영하면서 쇠퇴기의 시작을 경험한다. 주전 612년이 되면 앗수르제국의 수도가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군에 의하여 점령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유민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전혀 염두에 두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민족 자체와 민족정신이 완전히 말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셋째로,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열왕기하 제17장에 기록이 된 내용 그대로 앗수르제국은 유일신 여호와를 창조주로 섬기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고자 계획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왕국의 백성들을 앗수르제국의 변방으로 이주시키고 그 대신 앗수르제국 변방의 잡족들을 그 땅에 식민으로 들여보낸다. 그 결과 철저하게 혼혈이 이루어지고 잡족들의 우상문화가 사마리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마는 것이다.
주전 701년에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가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자 원정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개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성 바깥에서 18만 5천명이 천군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만다(왕하19:35, 사37:36). 그래서 앗수르제국은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끝내 정복하지 못한다. 참고로, 그 사실을 보여주는 지도가 다음과 같다;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들은 전혀 여호와신앙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전 671년에 애굽제국마저 앗수르제국에게 정복을 당하게 되자 독립할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앗수르제국에 충성하는 신민으로 살아가고자 작심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것이 1940년대를 전후하여 일제에 의하여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한민족 말살정책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탐구한 윤하선은 끝으로 또다른 한 장의 지도를 보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후손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북서쪽에 있는 거대한 다른 제국의 모습을 일부 보여주고 있는 지도이다. 당시 앗수르제국은 그저 중동지역의 일개 패권국에 지나지 않는다. 그 북쪽과 서쪽에는 거대한 제국들이 역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국제정세를 전혀 살피지 못하고 북쪽의 이스라엘 10지파가 앗수르제국을 절대국가로 믿고서 그 신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이 딱한 노릇인 것이다. 그와 같은 현상이 20세기를 전후하여 조선인들에게 있었다고 하는 것이 국사선생인 윤하선의 인식이다. 그는 그 정도로 연구를 하고서 그만 잠자리에 든다. 실로 피곤한 하루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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