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318강(사65:17-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0. 1. 10:54

이사야 강해 제318(65:17-20)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4 23()

 

여호와 하나님이 새로운 천지와 예루살렘을 창조하시는 가장 큰 이유(65:17-20)

 

이사야는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의 구원을 위하여 평생 동안 노력한 선지자입니다그렇지만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동족들이 이방 땅에 흩어져서 고생을 하게 되는 미래를 바꿀 수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알기 쉽게 본문의 바로 앞 구절인 제16절을 참조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복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습니다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복을 구하지 아니하고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2)  둘째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습니다창조주가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다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들만 구원을 얻고 이방인들은 구원을 얻지 아니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셋째선민들이 잘못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해야만 하는 맹세를 사람들 앞에서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맹세의 이행여부도 사람들이 판정을 해줄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환언하면하나님말씀의 실천율법준수서원의 이행 등을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그 대신에 사람들의 눈 앞에서 한 것으로 하나님을 만족시켰다고 생각합니다그 결과 신앙적인 눈속임과 외식그리고 이중적인 믿음생활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선민이 타락하여 이방인처럼 되고 말았습니다이제는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따라서 이사야는 온 세상이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는 우상문화에서 벗어나 부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복을 추구할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그와 같은 맥락에서만민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나아가서 선민의 자손들이 진리의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언약을 정직하게 이행할 수 있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가능한 메시아의 나라가 과연 이 세상에 구축이 될 수 있을까요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불가능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시면 가능할 것입니다그래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가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써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벌써 제53장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이사야는 메시아의 나라가 종말심판 후에 하나님의 영생의 나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이른 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로운 예루살렘의 창조입니다(65:17-18). 그곳 영생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한 가지가 사라지고 없습니다사람들을 생노병사(生老病死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의 괴로움 가운데 구속하고 있던 기존의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65:20). 그 결과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게 되는 것입니다(65:19).  

그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순서는 먼저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a) 보라 내가 새 하늘 새 땅 창조하나니, (b) 이전 것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65:17);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새로운 천지의 창조로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어떠한 창조를 의미하고 있을까요?

(1)  보라 내가 새 하늘 새 땅 창조하나니(65:17a); 성경에서는 세 번의 천지창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①첫 번째 창조는 창세기 제1장입니다②두 번째 창조는 창세기 제7-9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③세 번째의 창조가 본문과 요한계시록 제21-22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과연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1)    창세기 제1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천지창조는 태초의 창조입니다땅이라고 불리는 소재가 까마득히 서로 멀리 떨어져서 산재하고 있을 뿐 캄캄한 흑암이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빛과 생명을 창조하십니다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만물과 만민을 만들어 배치하시면서 우주의 질서를 창조하십니다그 결과 혼돈의 세상(the world of chaos)이 막을 내리고 우주의 평화(the peace of cosmos)가 탄생하게 됩니다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서 창조가 된 인류가 자연을 다스리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참으로 좋아하십니다(1:31).

2)    창세기 제7-9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노아의 홍수심판과 그 이후의 새 세상의 창조에 대해서는 그것이 완전한 천지창조에 해당이 되는 것인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왜냐하면그 심판이 국지적(局地的일부 지역에 국한이 되는)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홍수 후에도 기존의 천지가 존속한 것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면밀하게 홍수심판의 전후의 모습을 대조하게 되면그것은 또 다른 천지창조의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고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3)    예를 들면①첫째노아의 방주에 탈 수 있었던 생물들 외에는 물고기를 제외한 모든 생물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②둘째, 40일간의 장대비와 더 오랜 기간의 지진과 지하수의 분출로 말미암아 땅의 지형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습니다③셋째편편한 지면의 평온한 기후가 사라지고 홍수심판 후에는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의 발생으로 말미암아 기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④넷째그로 말미암아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찾아오면서 생물들의 수명이 급격하게 줄어 들고 있습니다⑤다섯째식물로는 먹거리가 부족하여 육식(肉食동물의 고기를 먹음)이 전면적으로 허용이 되고 있습니다.

4)    결론적으로완전히 달라진 환경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사람과 동물들입니다비록 유전자는 보존이 되었지만 새로운 천지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그러므로 제2의 창조라고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렇지만 그것은 현존하는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는 완전한 새 세상 창조의 모습은 아닙니다단지 일부의 종자를 유전적으로 살려서 종래와 비슷한 방법으로 삶을 영위하도록 조치한 데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언제 완전한 천지창조로 영생의 구원이 이 세상에 임하게 될까요이사야가 본문에서 그리고 사도 요한이 성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에서 그 대답을 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이전 것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65:17b);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천지의 창조는 완전한 새로운 세상의 창조입니다그 이유는 기존 세상과의 완벽한 단절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은 기억과 의식의 흐름을 통하여 정체성과 자의식을 보전하고 있는 존재입니다만약 그 기억이 사라지게 되면 비록 육신이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더구나 의식이 끊어져버리게 되면 그것은 영육간에 완전한 죽음을 의미하게 됩니다.

2)    만약에 신위적인 방법으로 다른 의식을 주입 받아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기존 정체성의 상실이며 새로운 정체성의 탄생을 의미하게 됩니다이미 정체성의 본질이 되고 있는 자체 의식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렇다면 여기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그것은 완전한 정체성과 자의식의 소멸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기존세상과 함께 소멸시켜버려야만 하는 것들만이 사라지고 없다는 의미입니다반면에 새로운 천지의 창조와 더불어 보전을 해야만 하는 것은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그렇다면 무엇을 단절시키고 무엇을 연결시켜주어야만 할까요그 답변이 이하의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a) 너희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b)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65:18); 새로운 천지의 창조가 영원한 기쁨이 되고 새로운 예루살렘이 즐거운 성이 된다고 합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너희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65:18a); 사람은 로봇(robot)이 아닙니다창조주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가 되어 있는 인간이기에 결코 로봇이 될 수가 없습니다(1:26-27). 따라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서 무조건 기계적으로 기뻐하며 박수를 치는 존재가 아닙니다그런데 여기서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신()세계를 보고서 사람들이 영원히 기뻐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그 신세계(new world)에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염원하고 있던 이상향이 영원히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2)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65:18b); 그것은 첫째멸망을 당하게 되는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이제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새로운 예루살렘 성이 탄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기존의 예루살렘 성이 멸망을 당하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면서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구원과 만사형통을 소원했기 때문입니다결코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으로 들어가기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반대로이방인들을 모두 지옥으로 보내기를 원한 것입니다그것은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아니하고 구원하여 영생을 주기를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과 정반대인 것입니다(64:7, 3:16-17). 그러므로 새로운 예루살렘 성에서는 만민과 이방인들이 모두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우는 소리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65:19); 두 번째로 새로운 예루살렘 성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사야가 예언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그것은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를 일체 들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일반적으로 우는 소리’는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무엇이 이 세상에서 슬픈 일일까요그리고 부르짖는 소리’는 너무 억울해서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고 있는 절규입니다무엇이 이 세상에서 그토록 억울한 것일까요그 두 가지의 내용을 알아야 새로운 예루살렘에 입성을 한 백성들이 그렇게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파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역시 그 해답은 다음 구절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넷째로, (a)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b)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65:20); 21세기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일부 선진국가에서 이제는 백세인생의 시대’라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이사야는 하나님나라의 수도라고 볼 수 있는 새로운 예루살렘 성에서는 성도들이 과거 백세를 살다간 사람들을 젊은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65:20a); 새 예루살렘 성에서 두 가지 없는 것이 있습니다;

1)    옛날 예루살렘 성에서는 존재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입니다①첫째영아사망(嬰兒死亡1세 미만)과 유아사망(乳兒死亡1-4등 어린이 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②둘째어른들의 병사(病死질병으로 죽는 것)나 사고사(事故死사고로 죽는 것)가 없는 것입니다.

2)    어린 자녀가 일찍 죽게 되면 부모들의 가슴에 무덤이 생기게 됩니다그것은 한번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생명이 애처롭게도 부모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부모들의 심정이 얼마나 기막히고 억울한지 모릅니다따라서 자녀의 죽음을 보고 그 자리에서 절규하는 부모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닿고 있습니다.

3)    부모가 향년을 맞이하여 편안하게 자연사를 하게 되면 그래도 유족인 자녀들의 마음이 덜 아픕니다하지만 일찍 질병으로 또는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그러한 경우에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게 되는 자녀들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그래서 그 울음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4)    이제 그 두 가지가 새로운 예루살렘 성에서는 사라지고 없다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하나님나라를 의미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성도들이 하나같이 긴 향년을 다시 누릴 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것은 창세기 제5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담의 자손들의 장수함(라멕의 향년 777---므두셀라의 향년 969)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2)  “곧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65:20b); 이사야가 위에서 설명한 바를 한번 더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1)    보통 동물은 육체적인 성장이 전체 생존기간의 20%를 점하게 된다고 합니다그러므로 육체적으로만 판단한다면먼 훗날 700세 이상의 긴 세월을 새 예루살렘 성에서 장수를 누리게 되는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그 옛날 예루살렘 성에서 100년을 향수하고 죽은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한갓 젊은이의 죽음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2)    그렇다면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젊은이의 나이라고 할 수 있는 100세를 누리지도 못하고 그 옛날 예루살렘 성에서 일찍 죽은 백성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를 하게 될까요한 마디로 그 모두가 장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된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65:20b). 그러므로 결국 이 대목에서 이사야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라질 기존의 세상이란 슬픔과 울부짖음이 지배하고 있는 저주스러운 천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그렇게 슬픔과 부르짖음이 가득 차있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이사야는 그의 동족들에게 부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의 종말과 더불어 준비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록 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여전히 선민출신의 선지자이며 히브리정경에 의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재해석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그 결과 이사야가 비록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그리고 새로운 예루살렘 성이라고 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은 태초의 천지창조 당시의 이상향을 회복하는 수준의 것입니다따라서 아담의 의인의 족보에서 말하고 있는 700세 이상의 장수의 복이 새 예루살렘 성에서 재현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사야의 예언이 메시아의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강력한 영생의 메시지로 바뀌게 됩니다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으며 무덤 속에서 부활하여 승천을 하시기 때문입니다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서 제자와 성도들을 위하여 영생의 거처와 승리의 면류관을 준비하십니다(5:24, 14:1-3, 22:28-30). 그 결과 죄와 사망이 사탄을 비롯한 악한 영들과 함께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20:10-15).

결국장수함이 문제가 아니라 죄와 죽음 자체가 새로운 예루살렘 하나님나라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그 사실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속사람 속에 임재하여 지금도 내주 역사하십니다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은 그와 같이 놀라운 계시와 성령님의 임재를 누리면서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날 성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예루살렘의 모습은 그 옛날 선지자 이사야가 바라보고 있던 그 모습 이상입니다천년 미만의 향년을 누리게 되는 이사야의 새 예루살렘 성과 향년이 사라지고 모두가 영생을 누리는 오늘날 성도들의 새 예루살렘 성을 어떻게 같다고 하겠습니까따라서 오늘날의 성도들은 메시아의 은혜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거듭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그 영생의 새 예루살렘 성에 입장하기를 고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의 이사야의 예언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비교하시면서 하나님나라를 더욱 사모하시는 신앙인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