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95(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7. 12:57

서배 할배95(작성자; 손진길)

 

두 해가 지나 1928년이 되자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최현식이 별세를 했다는 부고가 내남 너븐들 서배 할배 손상훈에게 전달이 된다. 서배 할배는 자신보다 3년이나 연하인 지주 최현식이 75세를 향년으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남의 일 같지가 아니하다;

1926년에 손상훈 자신이 을축년 대홍수의 피해로 끼니를 거르고 있는 내남의 일가들과 소작인들의 구휼을 위하여 자신의 전답을 팔려고 가주 최현식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그가 가지고 간 전답문서의 절반만 받고 서배 할배가 필요로 하는 곡식 전부를 내어준 고마운 사람이 대 지주 최현식이다.

그때의 은혜를 생각하면 서배 할배 자신이 경주 교동 초상집에 문상을 가는 것이 도리이겠지만 지금 그의 나이가  78세나 되기에 경주 교리까지 25리길을 왕복할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따라서 아들 손영주에게 부탁한다; “영주야,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최현식 진사가 별세를 하였다고 부고가 왔다. 응당 내가 가보아야 할 자리이지만 내가 그곳까지 먼 길을 다녀올 자신이 없구나. 네가 나를 대신하여 다녀왔으면 좋겠다”.

손영주가 공손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서배 할배는 조의금을 넉넉하게 넣은 봉투를 아들에게 맡긴다. 그날 손영주가 의관을 갖추고 경주 교리의 초상집에 들른다. 그도 벌써 45세의 중년이라 그 풍채가 남과 어울릴 만 하다. 문상을 하고 상주들에게 절을 하는데 맏상주인 최준 선생이 마주 절을 하면서 말한다; “멀리 내남 상신에서 여기까지 조문을 하러 오셨으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손영주는 교리 최부자의 대를 잇게 되는 최준이 자신에 대하여 벌써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조금 놀라서 말한다; “저는 내남 너븐들에 살고 있는 손영주입니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조문을 왔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재작년에 고인의 은혜를 크게 입은 바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각별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맏상주 최준이 말한다; “손선비께서는 제가 초면인지 몰라도 저는 저의 집안 여동생이 경주 성동의 정한욱과 결혼을 할 때 벌써 가까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정서방의 매형이 바로 손선비가 아니십니까? 서배 할배 손상훈 지주의 아드님이시고요. 그리고 아마도 저와는 동갑이시지요…”;

그 말을 듣고 손영주가 깜짝 놀란다. 과연 부자의 귀는 밝다고 하더니 최준의 총기와 기억력 그리고 정보력이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전번의 태풍과 홍수로 천석지기가 반 토막이 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손영주의 집안은 한때 천석꾼이었다. 그래서 경주 일원의 소식 가운데 중요한 것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교리 최부자의 가주에게 비하면 새 발의 피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손영주는 조문객들을 위한 천막으로 찾아 들어간다. 그가 자리에 앉자 마자 교리 최부자 집에서는 그에게 술상을 먼저 가져다 준다. 손영주가 정종을 한잔 부어서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나이가 드신 2사람이 일부러 자기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손영주는 교리 최부자 집에 오늘 처음으로 출입을 하고 있는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서 그냥 그들을 쳐다본다.

그때 그들 중 한사람이 말한다; “자네는 서배 할배의 아들인 손영주가 아닌가?”. 손영주가 깜짝 놀라서 그 노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그 분이 동행에게 말한다; “제 눈이 틀림이 없지요. 제가 1919년초에 내남 너븐들 손상훈 형님 댁에 들렀을 때에 그 집의 아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동행분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그 노인이 이번에는 손영주를 보고서 말한다; “자네는 나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구만… 내가 내남 안심 서당에서 오래 생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던 오경덕 선생이라네”. 그 말을 듣자 손영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정중하게 말한다; “제가 똑똑하지 못하여 선생님을 몰라 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주 북간도 용정의 선생님 댁을 방문하신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그 인사를 듣자 오경덕 선생이 말한다; “이 어르신은 천도교를 대표하여 경성에서 조문을 오신 권동진 선생이시지. 자네의 춘부장과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계시는 동지가 되시네”. 손영주가 깍듯이 권동진 선생에게 인사를 한다; “몰라 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그 옛날 일본 동경에서 만난 이후 오랜 인연이 있다고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강녕하십니까?”.

권동진 선생이 인사를 받으면서 오경덕 선생에게 말한다; “우리 이 자리에 합석을 하도록 하지요. 서배 할배를 보듯이 그렇게 한자리에 앉으면 좋지 않겠어요?”. 그렇게 3사람은 우연히 교리 최부자의 초상집에서 조우를 하여 서로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두 분은 주로 서배 할배의 건강에 대하여 손영주에게 묻는다. 서배 할배보다 3년이나 연하인 교리 최부자 최현식이 별세를 한 자리이니 그것이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날 손영주는 오경덕 선생과 권동진 선생으로부터 고 최현식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그가 물심양면으로 손병희 교주를 도와 주었다고 한다. 본래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 선생이 같은 친척이기에 그 대를 이은 최시형 교주도 도망을 다닐 때에 교리 최부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은혜를 많이 입었기에 멀리 경성에서 권동진 선생이 천도교를 대표하여 조문을 온 것이다. 그리고 마침 경성을 방문하고 있던 오경덕 선생이 권동진 선생 댁에 묵고 있다가 차제에 동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오늘 경주 성동의 김춘엽 선비를 찾아보고 내일은 부산으로 가서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을 한번 만나보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조문이 끝났으니 김춘엽 선비의 성동 집으로 가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손영주의 의향을 묻는다. 그들은 벌써 손영주의 장인 장모가 김춘엽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손영주는 그들을 따라 함께 성동 처가로 간다.

손영주가 성동 사랑방에 그들과 함께 들어가서 처 외숙부인 김춘엽에게 절을 올렸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허, 오늘은 내 친구 서배 할배가 오지를 못하고 그 아들이 대신 왔구만. 그래 이제 사랑방모임도 세대교체를 할 때가 되었지…”.

김춘엽은 서배 할배 손상훈과 동갑이다. 그러므로 78세의 서배 할배가 경주까지 먼 길을 오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얼마나 보고 싶을 것인가? 그래서 그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시선으로 서배 할배의 아들이며 조카사위인 손영주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묻는다; “그래 춘부장께서는 요즈음 건강이 어떠신가?”.

손영주가 공손하게 대답한다; “네, 달리 편찮으신 데는 없으십니다. 단지 먼 길을 걷지 못하셔서 경주 출입을 못하고 계시지요. 안부를 전해 올리겠습니다”. 그날 손영주는 장인 정진평과 장모 김경화에게도 문안을 드리고 일찍 내남 너븐들로 돌아갈 준비를 서두른다. 시간만 많으면 웃시장에서 돼지국밥 집을 운영하고 있는 처남 정한욱 내외를 만나고 가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

늦은 오후에 집에 돌아오니 모친 이채령이 6살이나 된 셋째 손자 손수석을 등에 업고 계신다. 3살 짜리 아기인 손수권이 아니라 그 형인 손수석을 업고 계시는 것을 보고서 손영주가 아들 손수석에게 야단을 친다; “네 이놈 수석아, 어째서 연로하신 할머니의 등에 업혀 있는 것이냐? 썩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손수석이 민망한지 할머니의 등에서 슬그머니 내려온다. 73세나 된 이채령이 아들 손영주에게 말한다; “애비야, 수석이를 너무 야단치지 말아라. 내 등에 업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내가 참으로 오래간만에 한번 업어보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게야. 내 눈에는 수석이나 수권이나 모두가 아기들이지…”.

모친 이채령이 그렇게 손자를 감싸 돌기에 손영주는 그 정도로 야단을 치고 만다. 그런데 자신이 보기에 어머니는 자주 손수석을 등에 업고자 하신다. 왜 그러실까? 어째서 3살짜리 손자가 아니라 6살 짜리 손자를 업고자 하시는가? 그때 손영주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나중에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된다.

그 이유는 먼 훗날 셋째 아들인 손수석이 부모께 다음과 같은 할머니의 말씀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는 저를 등에 업으시고 제가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언제나 중얼중얼 말씀을 하셨어요..”. 무슨 내용의 이야기를 꼬마인 손자에게 하신 것일까? 손영주와 부인 정애라는 아들 손수석의 입을 쳐다본다.

그때 천만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마 제 기억으로는 을축년 대홍수가 터진 다음부터 일거예요. 할머니의 말씀은 언제나 한가지였어요; ‘수석아, 수석아, 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태풍과 홍수가 쓸어가 버린 논과 밭을 다시 개간할 능력이 없단다. 그러니 수석아 네가 커서 반드시 천석꾼 살림을 되살려 다오. 이 할미의 소원이다. 꼭 그렇게 해다오’…”;

아들 손수석으로부터 손영주 부부가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이 10년이 지난 후인 1938년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손영주와 정애라는 손수석과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천석지기 손성규의 집에 외며느리로 시집을 와서 자신을 각별하게 사랑하는 남편 손상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이채령이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하여 참으로 남편에게 미안했던 이채령이다. 그런데 양자 손영주로부터 많은 손자를 얻게 되어 행복해한 그녀이다. 하지만 1925년 을축년의 대홍수는 도저히 그녀와 남편의 능력으로는 치유를 할 수가 없는 큰 재앙이었다. 그것을 뼈아프게 생각하는 남편 손상훈을 생각하여 이채령은 꼬마 손자를 어부바하면서 자신의 소원을 말한 것이다.

자신이 남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절망을 한 이채령이 마지막으로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철부지 손자 손수석이었다. 그 마음이 오죽이나 아팠으면 그러한 유언과 같은 부탁을 한 것일까? 그 점을 생각하니 손영주와 정애라는 마음이 미어진다. 그래서 아들 수석이 보고 있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