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85강(사59:6-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20. 07:10

이사야 강해 제285(59:6-8)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3 21()

 

이사야가 선민들이 개인적으로사회적으로그리고 국가적으로 어떠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설명하다(59:6-8).

 

본문에서 이사야는 동족인 선민들의 영적인 범죄행위에 대하여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내용과 의미에 대하여 깊이 있게 묵상을 해보게 되면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예를 들면본문 제6절은 자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개인적인 차원의 죄와 악행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리고 제7절과 제8절은 모두 개인적인 행악이 사회적으로 만연이 되고 드디어 국가적으로 정의마저 사라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따라서 제7절을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점으로그리고 제8절을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점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부터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본문의 세 구절을 하나씩 검토를 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그 깊은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짠 것으로는 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b)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c)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 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59:6); 악한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음모와 실행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그리고 이사야는 죄악의 행위의 특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1)   짠 것으로는 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59:6a); 사회적으로 범죄행위가 구성이 되자면 범행을 하겠다는 의도와 그 행위능력이 존재해야만 합니다하나님께 대한 범죄행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범행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먼저 범행계획으로 수립되어 있어야 합니다그 다음에는 그 계획을 실천하는 행위입니다여기서는 먼저 이사야가 범행의 계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악을 범하고자 계획할지라도 그 계획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그것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왜냐하면결코 그 이득을 누릴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59:6a의역).

(2)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59:6b); 사람이 범행을 하는데 있어서 솔직하게 자기 욕심을 이루고 또한 자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를 않습니다그러한 의도를 꼭꼭 숨기기 위하여 좋은 명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합니다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인간적인 명분과 핑계가 설득력을 가지지를 못합니다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과 만민구원의 의지가 이미 정경으로 선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구체적으로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의지와 실행이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자 하는 자신의 희생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밝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 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59:6c); 이사야는 친절하게도 더 알기 쉬운 판별법 하나를 여기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이 아무리 그럴듯하고 좋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에 있어서 포악성을 내포하고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악된 행위라는 것입니다(59:6c의역). 참고로그 옛날 노아의 홍수를 초래한 것도 그 포악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3).

둘째로, (a)   행악하기에 빠르고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b)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59:7); 개인의 행악이 사회적으로 빠르게 전파가 되어 전체사회의 황폐와 파멸을 몰고 온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행악하기에 빠르고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59:7a);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은 그 전파속도가 다릅니다악을 행하는 사조가 훨씬 빨리 전파가 됩니다그 이유는 선이란 피조물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자 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지만 악이란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비록 타인에게 몹쓸 짓을 행하지만 그 보상으로 쉽게 자신의 이익과 쾌락이 보장이 되고 있으므로 악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그 결과 사회적으로 무죄한 약자들이 피를 철철 흘리게 되고 맙니다(왕하21:16, 59:7a).

(2)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59:7b);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것이 악한 생각입니다모두가 그렇게 사고하며 행동을 한다고 하면 그 사회는 지탱이 될 수가 없습니다그 결과는 모든 인간관계가 황폐화되고 마침내 사회적인 파멸이 도래하고야 말 것입니다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들의 욕심대로 내어 버려두신 결과입니다(1:24-27).

셋째로, (a)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b)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c)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d) 무릇 이 길을 밟는 자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59:8); 선민국가의 영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1)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59:8a); 사람들은 마음의 평강을 중시하고 있습니다그것은 근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선민들은 그것을 하나님을 떠나서 물질세계에서 얻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기본적으로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 요소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그것은 영적인 영향과 육신적인 영향입니다어느 것이 더 근본적인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일까요사람들은 육신적인 평강이 마음의 평강의 바로미터(barometer)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영적인 평강이 모든 것에 우선하고 있습니다.

2)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①첫째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이시기 때문입니다(1:2, 4:24).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1:3-31). 그러므로 생명의 능력과 영원한 평강은 모두 하나님의 영의 능력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②둘째물질적인 육신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사람이 유한한 인생을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고 그로써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고 한다면 참다운 마음의 평강을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요컨대부활과 영생의 희망이 존재하고 있을 때에만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59:8b); 자기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정의의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1)    그러므로 두 나라가 전쟁을 한다면 서로가 정의를 지키기 위하여 전쟁을 수행한다고 말합니다그것은 참으로 난센스입니다왜냐하면자신들의 사회나 국가만이 지니고 있는 의로움이 바로 정의라고 서로가 아전인수격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이사야는 선민집단이 지니고 있는 그 의로움이 정의로서의 구실도 못하고 있다고 여기서 언급하고 있습니다그 말뜻이 무엇일까요그 이유는 선민사회마저 여러 집단으로 분열이 되고 있습니다그리고 서로가 정의의 세력이라고 주장하며 반목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정의사회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더구나 그들의 분열은 불가피하며 지속적인 것입니다왜냐하면남을 해치더라도 자신만 잘 살게 되면 그만이라고 하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죄악 행하기를 좋아하는 선민사회의 자화상입니다.

(3)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59:8c); 하나님말씀의 뜻을 굽게 하여 율법의 세칙을 정하고 생활규범을 정해나가게 되면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7:6-9);

1)    하나님말씀을 정확하게 알고서 그 뜻대로 실천하는 성도의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59:20-21).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신을 자각하고 있습니다그 반대로 외식적이고도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2)    선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변형 왜곡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그것이 선민우월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율법생활입니다그렇게 선민들이 애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재하여 그들의 신앙생활을 바르게 지도해줄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4)  “무릇 이 길을 밟는 자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59:8d); 선민들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나님말씀을 왜곡하고 굽은 길로 행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참된 영적인 평강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여기서 이사야가 언급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을 바른 길로 돌이키시려고 여러 번 선지자를 보내어주셨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얼마나 목이 곧은지 모릅니다(32:9, 9:6-7, 7:51-53). 끝끝내 자신들의 선민사상이 옳다는 것입니다그 결과 선지자들의 외침은 공중에 흩어지는 메아리가 되고 맙니다.

2)    그렇다면어떻게 하면 이방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참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을 만들어낼 수가 있을까요그 모범을 보여주는 인물이 필요합니다따라서 선민의 사회에 멀지 아니하여 메시아가 오실 것입니다(59:20).

3)    이사야는 선지자들을 배척한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할 것임을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39:4-7). 그리고 장차 메시아를 영접하지 아니하게 되면 선민들의 자손들에게 평강이 사라질 것이라고 또한 여기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59:8d).

결론적으로참된 평강에 대하여 알지 못하게 되면 유대인들이 어떻게 행동할까요영적인 평강을 대신하기 위하여 더욱 철저하게 세속적인 안전과 평안을 추구할 것입니다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들의 자손들이 집요하게도 오늘날 세상의 물질문명과 국제관계를 선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의 정신을 저버리고 자신들과 자신이 소속된 집단만 잘 살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경우에는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그 결과는 서로가 분열하고 대립하며 끝내 세상문명은 황폐와 파멸의 길로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인 악행을 바로잡기 위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와 백성을 살리고 궁극적인 평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해야만 합니다그것이 황폐와 파멸의 길이 아니라 영생과 부활의 길로 달려가는 그리스도의 삶의 방법론이라고 하겠습니다아무쪼록 그 길로 달려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