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3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8. 5. 09:18

시간 이민자30(손진길 소설)

 

상후종 사장이 경영하고 있는 부동산 신탁회사에서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것이 소위 HONORS’ CLUB’이다. 그 사교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회원은 제한적이다. 그 이유는 그 회사에 재산을 1천억원 이상 신탁하고 있는 회원에 국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회원들의 연령은 대체로 65세 이상이다. 그러므로 그들 노부부들에 대한 일종의 사교클럽을 상후종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이 안너즈 클럽이다. 우연히 20201221일에 그 회원들이 참석하는 송년회에서 처음 만난 이상우 부부와 성기수 부부는 그때부터 그 모임에 꼭 참석하고 있다.  

성기수임효린은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그 모임이 기다려진다. 이상우성혜를 만나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의 송년회장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친근하고 친숙한 것이다. 마치 오랜 동무를 만난 것과 같다.

더구나 재벌가의 자손인 성기수와 임효린은 조금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골프를 배우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여행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우와 윤성혜 부부가 자신들처럼 그러하다. 취미가 같은 것이다.

신탁회사의 상후종 사장이 두가지 종류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가 정기적인 골프모임이다. 또 하나가 여행스케줄이다. 그 가운데 안너스 클럽회원인 이상우 부부와 성기수 부부가 여행스케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20216월이 되자 작년 2월부터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19전염병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안너스 클럽에서는 회원들을 모집하여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물론 이상우 부부와 성기수 부부도 참여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구좌읍에 있는 조용한 팬션하우스를 구해서 회원들이 편하게 며칠 여행도 하고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호텔에 묵는 것보다는 나이가 든 회원들이 오히려 그러한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일반여행객들과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상우 부부가 성기수 부부와 함께 며칠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동안에 이상우는 기겁을 할 정도로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아주 우연히 송일섭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순전히 아내인 윤성혜의 덕분이다.

팬션하우스에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차양막을 크게 만들어 두고 있다.  그곳에는 편한 의자들이 여러 개 있다. 그곳에서 손님들이 일광욕도 하고 바다를 보면서 독서도 하고 있다. 이상우와 윤성혜도 그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날도 편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고 바다를 보면서 커피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윤성혜가 자꾸만 곁에 있는 여인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 그 여인도 윤성혜가 유심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알고서는 마주보기를 시작한다. 그러더니 동시에 두 여자가 소리를 친다; “아니 이게 누구야?... “.

윤성혜는 상대방을 지숙아라고 부르고 있다. 그 여자는 성혜야라고 부르고 있다. 그 다음에 두 여자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그 중간에 서서 서로 포옹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냐?... “.

함께 일광욕을 은근히 즐기고 있던 이상우가 어리둥절하다. 그래서 아내 윤성혜를 쳐다보고 있다. 그러자 그녀가 남편을 보고서 말한다; “여보, 오늘 내가 여기서 누구를 만났는지 아세요? 내가 어릴 때 함께 동네에서 뛰놀던 동무를 만났어요. 여기가 내 어릴 적 동무 이지숙이예요… “.

그 말을 듣자 이상우가 의자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이지숙에게 인사한다; “저는 윤성혜의 남편인 이상우입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죽마고우를 만나게 되었으니 축하합니다”. 이지숙이 고개를 숙여서 절을 하더니 갑자기 한쪽으로 걸어간다. 그 다음에 그녀가 남편을 데리고 온다.

이상우가 그녀의 남편을 보고서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라서 중얼거린다; “이게 누구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일하던 송일섭이구나. 그도 나이가 들어 벌써 일흔이 되었어. 그동안 어떻게 지낸 것이지?... “. 그러나 바깥으로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르다.

송일섭이 먼저 정중하게 이상우에게 인사한다; “저는 이지숙의 남편인 송일섭입니다. 집사람이 어릴 적 동네친구를 여기서 만나게 되어 저도 감개가 무량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그 말을 듣자 이상우가 짤막하게 대답한다; “저는 이상우라고 합니다.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

4사람은 자리를 옮겨서 아예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윤성혜가 먼저 이지숙에게 묻는다; “지숙아. 너는 종로에서 이사한 후에 어디로 가서 살았기에 내가 그동안 한번도 너를 보지를 못했을까?... “.

그 말을 듣자 이지숙이 말한다; “멀리 이사 갔지. 아버지가 갑자기 대구에 새로 생긴 방송국에서 일하시게 되었으니까나는 그곳에서 공부하고 나중에 남편을 만나게 된 거야. 그 다음에는 남편의 직장이 서울이어서 여의도아파트에서 오래 살았지. 그 다음에는 또 외국에 나가서 오래 살다가 잠시 이곳에 들리게 된 거야… “.

그 말을 들은 윤성혜가 지레짐작으로 말한다; “남편이 사업을 했니?... 혹시 IMF를 만나서 외국으로 나간거니?... “. 이지숙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니야. 남편의 직장은 튼튼했어. 하지만 본인이 일찍 사표를 내고 명예 퇴직하여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거지.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한번 고국방문을 해본거야… “.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송일섭이 역시 빙그레 웃고 있다. 그러자 송일섭과 마주보고 의자에 앉아 있던 이상우가 속으로 생각한다; “1999년말에 내가 2020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왔는데, 그렇다면 송일섭은 21세기에 직장을 일찍 그만두고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것이겠군. 그 참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다니… “.

그렇게 속으로 생각한 이상우가 모르는 척하고서 슬쩍 송일섭에게 물어본다; “허허, 어떤 직장이기에 그렇게 일찍 명예퇴직을 하고 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까? 그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봅니다… “.

그 말을 듣자 송일섭이 얼른 대답한다; “아닙니다. 제가 여의도에서 오래 다닌 직장은 제 생각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직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20년넘게 근무하다가 보니까 그만 실증이 나서 외국으로 이민간 것이지요. 제 생각에는 한번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서 그렇게 모험을 한 것이지요. 하하하… “.

이상우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물어본다; “허허, 정년이 되기 전에 좋은 직장을 떠난다고 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지요. 저는 서울에서 방송사기자로 일했는데 평생직장을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했지요. 저보다는 송선생께서 더 색다른 인생을 사신 것만 같습니다. 하실 말씀이 많으시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송일섭이 말한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적으면 소설책이 여러 권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선생님도 방송사기자로 평생 일하셨으니 참으로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 안으로 성기수 부부가 들어선다. 그들을 보자 윤성혜가 얼른 일어나서 말한다; “임 여사, 이곳으로 와서 합석해요. 오늘 내가 어릴 적 동무를 만났는데 소개를 시켜줄게요… “. 그 말을 듣자 성기수임효린이 다가와서 합석한다.

그 자리에서 윤성혜의 소개로 송일섭 부부와 성기수 부부가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다 함께 하면서 3부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대화 중에 윤성혜이지숙이 그 옛날 종로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임효린이 깜짝 놀란다.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물어본다; “나는 효자동에서 자라났어요. 두사람은 어느 동네였지요?”. 이지숙이 얼른 대답한다; “어릴 적에 성혜와 나는 익선동에서 살았어요. 크게 멀지는 않지만 동네는 조금 다르네요… “.

그 말을 듣자 임효린이 만한다; “서로 걸어 다닐 만한 거리네요. 오늘 진짜 서울태생,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란 우리 3사람이 만났군요. 내가 윤성혜와 동갑이니 같은 학년인 이지숙이 하고도 나이가 같겠네요. 우리 앞으로 흉허물없이 친구로 지냅시다. 어때요?... “.

그 말을 들은 윤성혜가 말한다; “그래 지숙아, 그렇게 해라. 여기 임 여사는 내가 서울서 만난지 얼마 되지는 않지만 마치 오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아는 것이 많고 시원시원한 친구이지. 서로 친구가 되어 지내면 노후에 서로 의지가 될게야”.

이지숙이 두사람을 보고서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게 3여자가 즐겁게 떠드는 것을 보고서 3남자는 빙그레 웃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좋은 친구를 만나고 다시 사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식사를 한 후에 장소를 옮겨서 구좌읍에 있는 전통찻집에 들린다. 세 쌍의 부부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 지 여러 시간 친교를 한다. 그 자리에서 이상우송일섭에게 물어본다; “오래간만에 외국이민생활을 하다가 잠시 귀국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래 어떤 생각이 듭니까?... “.

이상우1980년대로 시간이민을 가서 국회출입기자생활을 하면서 벌써 송일섭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김상진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15년이 넘는다. 그렇지만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서로 20년간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상우가 슬쩍 송일섭에게 물어보고 있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송일섭은 변함없이 진지하다. 그래서 그가 간략하지만 의미가 있는 이야기를 한다; “저는 사실 국회 경제관계위원회에서 입법실무자로 오래 근무한 사람입니다. 1997년말에 IMF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한국의 정부는 외국의 차관과 펀드를 무작정 들여와서 나라를 채무왕국으로 만들고 말았지요. 그것을 보고서 저는 외국으로 떠나버린 것입니다… “.

그 말을 함께 듣고 있던 성기수가 한마디 한다; “하지만 한국민들은 열심히 허리를 졸라매고 일하여 그 빚을 많이 갚았지요. 그리고 경제성장을 계속하여 지금은 세계선진국의 하나로 우뚝 서있어요. 그러니 송형이 너무 일찍 실망한 것이 아닐까요?... “.

그러자 송일섭이 조용히 대답한다; “그것은 겉으로 보면, 분명히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두가지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지요. 하나는, 한국민이 지고 있는 외국의 빚이 계속 늘어나 있지요. 또 하나는, 한국의 우량기업들이 다국적기업이 된다는 미명으로 너무 외국자본을 투자분으로 많이 받아들이고 말았지요. 그래서… “.

이상우는 송일섭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도중에 그가 대신 말한다; “그 말이 맞아요. 제가 알기로도 한국의 대기업을 보면, 실제로 한국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얼마 되지를 않아요. 그 점을 생각한다면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요… “.

송일섭과 이상우가 주장하는 말을 듣고서 성기수가 무겁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평생을 경제신문사에서 일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사실은 마음이 답답합니다. 그런데 송형은 외국으로 이민 가서 오래 사시다가 어째서 지금 다시 귀국하신 것입니까?... “.

그 말을 듣자 송일섭이 웃으면서 말한다; “사실은 이제서야 코로나19 전염병의 기세가 수그러들어서 해외여행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의 경제보다는 한국의 안보와 통일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공부하고 연구를 했지요. 그 결과 지금은 한민족의 통일을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귀국하게 되었지요… “.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상우와 성기수가 송일섭의 다음설명을 기다린다. 그것을 알고서 조금 뜸을 들이다가 송일섭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민족의 통일이란 한국의 정부가 앞장서서 연구하고 준비하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 나이가 든 사람들도 나름대로 연구하고 준비할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보고서 그러한 모임을 하나 만들었으면 싶어서 귀국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이상우가 성기수를 쳐다본다. 그러자 성기수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송형이 구상하고 있는 그 연구모임에 나도 한자리 끼어들고 싶군요. 이제 언론계에서 은퇴하였으니 나는 통일문제에 매어 달리는 것이 좋겠어요.. ”.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이상우가 말한다; “성선배가 참여한다면 나도 참여를 해야지요. 어떻게 송형 두자리가 날 것 같아요?... “. 그 말을 들은 송일섭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불감청 고소원이지요. 우리 세사람이 가칭 통일문제연구회를 만들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3사람이 의기투합하고 있다. 나이 70세에 아직도 기분은 젊은가 보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 그들 3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