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2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8. 4. 13:38

시간 이민자29(손진길 소설)

 

1999년을 지내면서 김상진이 두가지 일을 개인적으로 처리한다; 하나는, 살고 있는 반포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웃에 월세아파트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그 대금을 전부 금으로 바꾸어 둔다. 타임머신을 탈 때에 그 금괴를 가지고 박창진에게 여비를 지불할 예정이다.

또 하나는, 김상진 국장이 신문사에 사표를 제출한 것이다. 사장인 성기수가 깜짝 놀라고 있다. 그래서 김상진이 다음과 같이 둘러대고 있다; “제가 20년간이나 일한 회사입니다. 이제는 저도 나이가 50이 되어가니 좀 쉬고 쉽습니다. 그러니 명예퇴직으로 처리를 해주세요. 그동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

성기수 사장이 엄청 서운해 한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는 직장을 그만두고 편히 쉬고 싶다고 하는데 그 청을 들어주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김국장,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요. 나는 김국장이 내 곁에 있어서 든든했답니다. 그러면 내가 후배인 길순종 차장을 편집국장으로 발령하지요. 퇴사를 하더라도 김국장이 자주 신문사에 들러 후배 길차장을 많이 가르쳐 주세요. 부탁합니다… “.

19991231일이 되자 김상진은 홀가분하게 아내 윤지혜와 함께 정오 무렵에 종로로 가서 걸어본다. 그동안 1980년대와 1990년대 20년간 서울에서 살아오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지난 3개월 동안에 천천히 모두 처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껴 두었던 붉은 포도주 한 병을 1230일밤에 비워버렸다.

두 내외의 몸에 걸친 옷만이 남게 된 것이 다음날 1231일 아침이다. 그러니 기분이 얼마나 상쾌한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월세로 살고 있던 반포동 주공아파트의 열쇠를 오전에 동네 복덕방에 돌려주고서 아파트단지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그 다음에 김상진과 윤지혜는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서 종로로 일찍 나온 것이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서 천천히 걸어 명동 쪽으로 이동한다. 1시간쯤 명동구경을 했더니 배가 고프다. 두사람은 골목 안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식사를 한다.

그 다음에는 다시 천천히 걸어서 종각근처로 나온다. 큰 길을 지하도로 건너가니 교보빌딩이 나타난다. 일찌감치 10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1016호에 사무실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런데 시간이민사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다.

김상진이 깜짝 놀라서 리셉션의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아가씨에게 묻는다; “저는 박창진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 좀 일찍 왔습니다. 그분을 이 안에 있는 3호실에서 오늘 5시전에 만나기로 했는데 여기서 기다리면 될까요?... “.

상냥하게 보이는 리셉션 아가씨가 시원하게 대답한다; “, 오늘 박선생님과 5시에 약속이 잡혀 있군요. 김상진 선생님 내외분이시죠?... 510분전에 박창진 선생님이 사무실로 나오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김상진과 윤지혜가 안심한다. 그때 그 아가씨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 1016호실에는 여러 개의 방이 나누어 있는데 제가 예약 손님을 안내하는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지요. 그런데 아직 1시간 반이나 이른 시간이군요. 무료하게 여기서 오래 기다리시는 것보다는 천천히 세종로를 걷다가 한 15분전에 다시 오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들은 김상진이 아내 윤지혜와 함께 오래간만에 세종로 앞길을 걸어본다. 어느 사이에 윤지혜가 팔짱을 끼면서 말한다; “여보, 우리는 복이 많아요. 199912월을 두번이나 살아보고 있으니 말이예요. 그리고 변함없이 저는 당신과 팔짱을 끼고 걷고 있잖아요? 그것도 서울의 중심인 세종로 앞길을 말입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빙그레 웃으면서 아내 윤지혜를 쳐다본다. 언제나 자신의 옆을 지켜주고 있는 아내가 고맙기 그지없다.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을 거슬러와서 살다가 이제는 20년만에 일찍이 떠나온 그 시간대로 다시 손을 잡고 되돌아가고자 한다.

그러한 두사람의 운명적인 동행을 생각하면서 김상진이 말한다; “여보, 언제나 나와 함께 길을 걸어주어서 고맙구려. 이제 2020103일로 다시 돌아가서 우리 여기 세종로 앞길을 다시 걸어보도록 합시다. 오늘은 마음이 바쁘니 좀 일찍 박창진 선생 사무실로 올라가도록 하지요… “.

두사람은 430분에 그 사무실에 다시 들린다. 리셉션 아가씨가 3호실 문을 열어준다. 그 방에서 20분을 기다리자 정확하게 510분전에 멋쟁이 박창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반갑게 김상진과 악수한 다음에 고개를 숙여서 윤지혜 여사에게 인사한다.

박창진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김상진 부부에게 설명한다; “지난번에 타임머신을 타고 오신 경험이 있으시기에 다른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정확하게 2020103일의 서울로 돌아가는데 7시간 가까이 걸릴 것입니다. 그곳에 도착하시면 김상진윤지혜라고 하는 가명을 버리시고 옛날의 이름 이상우윤성혜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비는 마련해 오셨습니까?...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품에서 금괴 2개를 꺼내서 넘겨준다. 그것을 품 안에 넣으면서 박창진이 말한다; “충분한 금액이군요. 그러면 저와 함께 내실로 가서 타임머신을 타도록 하시지요… “. 김상진은 아직 자신의 품에 2개의 금괴가 남아 있다. 그것이 비상금이다.

세월이 20년이나 지났지만 타임머신은 변함없이 그때 그 모습이다. 박창진이 두사람을 먼저 뒷좌석에 앉게 하고 자신이 운전석에 혼자서 앉는다. 그러면서 안전벨트를 확실하게 매도록 주의를 준다. 그가 시동을 건 다음에 타임머신의 시간을 2020103일 오후 5로 조작한다. 그리고 천천히 악셀을 밟아간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모든 것이 정반대이다. 옛날에는 주변의 풍경이 앞으로 달려나갔는데 이번에는 뒤로 엄청 빠른 속도로 물러나기를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주변의 환경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시간이 7시간 가까이 지나자 서서히 주변의 풍경이 다시 나타나기를 시작한다.

타임머신이 멈추자 박창진이 말한다; “천천히 안전벨트를 푸시고 하차할 준비를 하세요. 지금이 2020103일 오후 5시이고 이곳은 교보빌딩 1016호의 내실입니다”. 그가 먼저 타임머신에서 하차한후 두사람을 내리게 도와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김상진의 얼굴이 그 옛날 이상우의 얼굴로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윤지혜의 얼굴이 다시 그 옛날 윤성혜 여사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그 앞에서 박창진이 말한다; “이 선생님은 다시 69세가 되셨습니다. 물론 사모님도 67세가 되셨고요. 그러니 지나간 서울에서의 과거 시간대에서의 삶은 한바탕 꿈과 같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음을 이제부터 남은 인생을 통하여 여실하게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이상우가 천천히 박창진을 포옹한다. 그리고 다시 악수를 나누고서 헤어진다. 윤성혜 여사가 깊이 고개를 숙여서 박창진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서 역시 남편을 따라 교보빌딩을 벗어난다.

교보빌딩 앞에는 세종로 앞길이 다시 보이고 있다. 그 길가에 서서 윤성혜가 남편 이상우에게 말한다; “여보, 우리 다시 세종로 앞길에 서 있네요. 감회가 새로워요. 이제는 어디로 갈까요?... “.

이상우가 담담하게 말한다; “여보, 사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기 한달 전부터 어디에서 살까? 생각했어요. 그 결과 이번에는 안국동도 아니고 반포도 아닌 제 3의 장소를 선택하고 싶어졌어요. 그곳은 마포 쪽에 있는 망원동입니다. 그 옛날 마포 설렁탕이 맛이 있어서 나는 그 근처 망원동에서 살고 싶어졌어요… “.

그 말을 듣더니 윤성혜 여사가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좋아요. 종로 안국동과 강남 반포동에 살아 보았으니 이제는 마포 망원동에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군요. 찬성입니다. 그러면 그쪽으로 이동할까요?... “.

의견의 일치를 본 두사람은 마포 쪽으로 이동한다. 그 다음에 그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아가서 일박을 한다. 그 다음날이 주일이므로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아직 코로나19가 남아 있어서 뚝뚝 떨어져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두사람은 호텔에서 한주간을 지내면서 합정동과 망원동에 있는 복덕방에서 살 만한 집을 찾는다. 그리고 이상우가 지니고 있는 금괴 하나를 처분하여 생활비로 삼는다. 사실 그 돈이면 충분히 몇 년을 살 수가 있다.

마침 망원동의 큰 골목 안 다세대주택 가운데 괜찮은 물건 201호가 매물로 나와 있다. 조금 오래된 주택이지만 201호는 전주인이 르노베이션을 참으로 잘한 것이다. 기초와 골조도 튼튼하게 보이고 골목이 넓어서 차를 세우기도 편안하게 보인다. 그래서 이상우와 윤성혜가 그 집을 계약한다.

그 값을 치루기 위하여 이상우와 윤성혜가 강남에 있는 신탁회사에 들렀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윤성혜가 1996년에 사둔 지방의 땅과 25년간 장기투자해 놓은 정기예금 그리고 1998년에 강남에 사둔 빌딩 3채가 엄청 비싼 물건으로 바뀌어 있다.

먼저 신탁회사의 상무가 그 재산의 규모를 이상우와 윤성혜에게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 다음에 신탁회사 사장 상후종이 깍듯이 이상우 부부에게 절을 하면서 말한다; “저희 회사를 믿고 이와 같이 엄청난 재산을 장기로 맡겨 주셔서 저희들이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리고… “.

상사장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이제 수천 억원에 이르는 재산의 규모를 말씀드렸으니 앞으로 그 처리방침을 저희 회사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의 뜻을 따라 저희들이 철저하게 관리해 나갈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윤성혜가 말한다; “저희 부부가 별도의 지침을 말씀드리기 전에는 지금처럼 관리를 해주세요. 그리고 당장 필요해서 그러니 12억원을 은행수표로 내어 주시기 바래요… ”.

그 돈을 가지고 윤성혜가 망원동의 주택을 구입하고 생활비로 충당한다. 집을 구입하고도 4억원 이상이나 남아 있으므로 두 내외가 앞으로 5년 동안은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다. 그리고 예비비로 별도의 금괴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새 주택으로 이사한 다음에 윤성혜가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이제는 우리가 아들과 딸 집을 들러 볼 차례입니다. 우리가 말도 없이 안국동 집을 팔고 자취를 감추었기에 그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거예요. 여기 시간으로는 며칠 상간에 불과하니 적당히 둘러 대시면 됩니다”.

이상우가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아들 내외는 자녀들과 함께 안양에 살고 있다. 그리고 딸네는 인천에 살고 있다. 그래서 두사람은 하루는 안양에 들리고 그 다음날에는 인천에 들린다. 남편과 미리 상의를 하고서 윤성혜 여사가 생활비에 보태어 쓰라면서 아들과 딸에게 용돈을 넉넉하게 쥐어 준다.

아들인 이양호는 안양의 중학교에서 수학선생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인천에 시집가서 살고 있는 딸 이근영은 남편이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아들네와 딸네가 모두 자식들을 낳고 건실하게 생활하고 있으니 이상우 부부는 별로 걱정이 없다.

202012월 초순에 부동산신탁회사 상후종 사장으로부터 정중한 초대장이 집으로 배달이 되어온다. 자기  회사에서 1천억 이상 투자하고 계시는 특별고객들을 위하여 일년에 한차례 연말에 송년의 밤을 개최한다는 것이다. 25년만에 왕림을 하셨으니 금년에는 부디 동영부인으로 참석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말씀이다.

1221일 토요일 오후 5시 강남에 있는 쉐라톤 팔레스 강남호텔의 큰 홀이다. 때로는 예식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홀을 저녁에 특별히 HONORS’ CLUB’을 위한  송년회장으로 꾸몄으니 왕림해달라는 것이다.

이상우윤성혜는 자신들이 과거의 시간대로 이민을 다녀온 후 그 신분이 자기들도 모르게 격상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부부가 그날 팔레스호텔에 들리게 된다.

홀에 들어서자 부동산신탁회사의 직원이 그들 부부를 알아보고서 깍듯하게 접대를 한다. 그날 이상우와 윤성혜는 깜짝 놀라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 장소에서 성기수 사장과 임효린 여사를 만났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왔기에 김상진과 윤지혜는 사라지고 지금은 이상우윤성혜이다. 하지만 그들의 뇌리속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으로 가서 20년동안 살아온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니 두사람을 보자 마자 엄청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상우가 아내 윤지혜의 손을 세게 잡으면서 말한다; “여보, 우리는 이제 이상우와 윤성혜입니다. 그들을 처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행동에 각별하게 조심하세요”. 윤성혜가 무겁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런데 오래 보아온 사람들은 얼굴이 달라져 있어도 그 분위기가 비슷한 모양이다. 자꾸만 임효린 여사가 윤성혜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천천히 다가와서 어렵게 말을 꺼낸다; “혹시 윤지혜 여사와 친척이 되시는 분이세요? 제가 오래 전에 알고 지낸 윤지혜 여사와 너무나 분위기가 닮아 있어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여쭈어 봅니다… “.

그 말을 듣자 윤성혜가 반가운 낯빛으로 대답한다; “혹시 제 4촌인 동갑내기 윤지혜를 말하는 모양인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20년전에 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지금은 소식을 모르고 있어요. 지혜의 친구라고 하시니 반가워요. 저는 윤성혜라고 해요… “.

그 말을 들은 임효린 여사가 기뻐서 얼마나 반기는지 모른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내 친구처럼 수다를 떤다. 그것을 보고서 이상우가 천천히 성기수 사장에서 다가가서 말한다; “제 아내가 금방 댁의 부인과 동무가 되고 있군요. 이것도 인연이군요. 저는 이상우라고 합니다. 오래간만에 이 모임에 참석을 했습니다… “.

성기수가 이상우가 내민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저는 성기수라고 합니다. 신문사에서 오래 일을 하다가 얼마전에 은퇴를 했지요. 이제 시간이 나서 처음으로 부부동반으로 이 모임에 참석했어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록 하십시다”.

그날 이상우성기수와 다시 사귀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전혀 처음 만난 사람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성기수와 함께 경제신문사에서 한조가 되어 기자생활을 했기에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서로가 친숙한 사이가 된다. 그렇게 새로운 인연이 서울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