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82강(사58:9b-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3월 18일(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5가지를 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5가지의 놀라운 축복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을 하다(사58:9b-12).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선민과 성도들이 실천해야만 하는 5가지의 의무사항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5가지를 실천하는 자들에게는 구체적인 5가지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지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의미를 도출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 5가지의 의무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를 제하여 버리라”(사58:9b); 세 가지 용어에 유의를 하면서 이 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네’(you), ‘너희 중’(among you), 그리고 ‘멍에’(bondage) 등입니다;
1) 여기서 ‘멍에’(bondage)는 일종의 신분상의 불이익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포로나 인질, 그리고 노예나 하층민 등이 겪고 있는 불행과 같은 것입니다.
2) ‘너희 중’(among you)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에 있어서’라는 의미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제도적으로 천민계급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끌려온 포로나 인질, 그리고 돈을 주고 산 노예 등이 있습니다.
3)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구조화된 계층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와 권력의 측면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출신성분에 따라 사람을 부리는 계층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부림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이 될 수도 있습니다.
4) 그와 같은 기득권이 대대로 이어지게 되면 그것은 고대사회의 계급구조와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멍에를 제거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5) ‘네’(you)가 사회적으로 고착이 되고 있는 멍에를 없애는 일에 앞장을 서라고 이사야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령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 명령을 실천해야만 하는 사람이 바로 성도이며 선민들이기 때문입니다.
(2) “손가락질을 제하여 버리라”(사58:9c); 여기서의 ‘손가락질’은 남의 탓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과 허물에 대하여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1) 자신은 율법을 잘 지키고 의로운데 주위의 사람들 또는 특정인이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므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사회악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예를 들면, ‘인민재판’이 그러합니다. 자아비판을 시키고 인민재판에 의하여 공개처형을 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관행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달리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3) 감히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자기자신이 죄인의 괴수입니다(딤전1:15). 따라서 남을 향하는 손가락질을 없애고 자신의 잘못부터 성찰하고 반성을 하며 고쳐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겠습니다.
(3)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라”(사58:9d); 이사야의 관점이 그러하듯이 ‘허망한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1) 이 세상에서 소원성취를 하기 위하여 편리한 방법으로 우상에게 복을 빌고 있지만 그것은 헛수고이며 허망한 결과만을 얻게 된다고 이사야가 벌써 지적하고 있습니다(사44:9-11). 그러므로 여기서의 ‘허망한 말’은 이방 신과 우상을 섬겨서 현세적인 이익을 함께 향유하자고 하는 유혹의 말입니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가장 먼저 자신을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 옛날 살길을 찾아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세겜 성을 떠날 때에 야곱 일행이 행한 일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습니다. 특히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모두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서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창35:2, 4).
(4)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라”(사58:10a); 세상에서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가 먹을 것이 전혀 없어서 굶고 있다는 것입니다;
1) 굶주림이 오래되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존의 위기에 처한 자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도와주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좋은 이웃에 대한 예를 들면서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눅10:30, 33-37). 그리고 제자인 성도들에게 그 사마리아 인처럼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는 자를 도와주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행한 자에게 영생의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마25:34-36).
(5)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라”(사58:10b); 이사야는 육신적으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자를 ‘주린 자’라고 이미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린 자’를 도와주기 위하여 “너의 마음을 기울이라”는 뜻으로 “네 심정을 동하라”(사58:10a)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는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사58:10b)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여기서의 ‘괴로워하는 자’는 육신적이라기보다는 그 마음이 아픈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그 마음이 괴로운 자를 어떻게 위로하면 될까요? 어떻게 그 마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만족함을 얻도록 해줄 수가 있을까요?
2) 한 마디로,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줄 수 있는 위로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원한 죄 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주실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마음속 평안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따라서 이사야는 선민과 성도들이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그 마음 속에 평강을 얻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신이 얻은 그 구원과 평강에 대하여 이방인들에게 간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위의 5가지의 의무를 이행하게 되면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사58:10c); 흑암 중에서 헤매며 구원의 빛을 찾는 행위를 ‘암중모색’(暗中摸索)이라고 합니다.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구원의 빛이 있는가 하고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도하고 간구하며 금식을 해보아도 그 구원의 빛을 쉽게 만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1) 이사야가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의무사항 5가지를 실천한다면 그 해답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사58:9-10).
2) 그리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오르게 된다”(사58:10c)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묵상해보아야 하는 용어가 ‘네 빛’입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리비치고 있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이 성도의 속사람 속에 들어가서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다시 세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간접적인 빛입니다.
3) 풀이를 해보자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따라 위와 같이 5가지 성도의 의무사항을 실천하게 되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성도는 성령님의 역사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하면 초대교회의 사도처럼 성도들에게서 어두운 세상을 복음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밝히게 되는 밝은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2)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사58:11a); 흔히 영육간에 강건함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선민과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5가지 의무사항을 실천하면 영육간의 강건함이 임하는 것입니다.
1) 여기서 영적인 강건함을 이사야는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사58:11a)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성도의 영혼이 만족함을 얻고 있는 장소가 메마른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결코 풍성한 세상에서 만족함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풍요로운 물질적인 만족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그것은 마치 선지자 하박국의 영적인 깨달음과 같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3) 이사야가 성도의 육체적인 강건함에 대해서는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사58:11a)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강골’(强骨, 강한 뼈)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비근한 예를 찾아보면,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그는 85세의 노인이지만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수14:10-11). 유다 족속을 이끌고 헤브론을 비롯한 가나안 남부지역을 전부 점령하게 됩니다.
(3)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1b); 두 가지의 은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물 댄 동산’은 비옥한 땅을 말합니다. 하늘에서 비가 흡족하게 내리는 땅입니다. 그리고 갈수기(渴水期,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 없어 기갈이 드는 때) 때에도 강물이 풍성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물을 끌어다가 언제나 동산에 있는 식물에 공급을 할 수가 있습니다.
2) ‘샘’은 수원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하수가 분출이 되어 모이는 곳에 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샘은 그 물을 모아서 인근지역의 농토에 공급을 해주고 있습니다.
3) 따라서 여기의 ‘물’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가정한다면, 첫째, 성도가 하나님의 복을 흡족하게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이 이 세상에 공급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의 은혜가 임하게 됨을 이사야가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4)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사58:12a); ‘네게서 날 자들’은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1) 첫째, 선민이나 성도의 자손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하나님신앙이 무너진 나라와 민족을 다시 하나님신앙으로 일으켜 세워줄 것입니다.
2) 둘째, 선민이나 성도들이 영적으로 양육을 해낸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의무를 실천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그 모범을 보고서 후진들이 신앙적으로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그리하면, 오래 전부터 하나님신앙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살아오고 있던 이방인들이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풍성한 선교의 열매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5)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58:12b); 용어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기초’(基礎, foundation)는 성경에서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땅의 기초’를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정하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을 이사야가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사48:13, 51:13, 16).
2) 둘째는, ‘하나님신앙의 기초’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었던 아담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실락원에서 살게 되면서 그 후손들이 점차 영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창4:24, 6:2-3, 11-13). 끝내 홍수심판으로 멸망을 당하고 노아의 가족만이 살아남습니다.
3) 그렇지만 홍수 후에 노아의 아들인 함의 자손들이 먼저 하나님신앙을 떠나게 됩니다(창9:22, 25). 그리고 하나님신앙을 파수하고 있다고 하는 셈족들도 점차 타락을 하고 있습니다(창9:26, 10:22, 욘3:4). 그와 같이 오랜 세월 무너진 하나님신앙의 기초를 다시 쌓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메시아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에 의하여 그 일이 수행이 될 것임을 은연중에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사58:12b).
4) ‘보수하는 자’는 수리하는 자를 말합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 예루살렘 성벽을 수리한 자가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느헤미야 등입니다.
5) 그런데 이사야와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사65:17-19, 계21:1-2). 그것이 지상의 예루살렘과 성전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처럼 치장을 하게 됩니다(계21:2, 9-10). 그 성벽에는 하나님신앙을 회복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계21:14).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6)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58:12b)는 대목에 대한 설명은 어렵습니다. 도대체 어떤 길을 새로 보수하고 건설을 해야 천국으로 들어가서 성도들이 거처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7) 그리스도의 예언의 말씀을 한 토막 인용해야만 하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것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요14:1-4).
8) 하나님신앙을 회복하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데 그리스도가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그 뒤를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회개한 죄인들이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동족인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열심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가 없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무사항을 이행하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선민들은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잘 지키고 절기와 제례의식에 충실하며 할례를 받기만 하면 선민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그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의무사항이 본문에서와 같이 5가지나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무를 이행하게 되면 5가지의 축복이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5가지 의무와 5가지 축복의 예언을 요약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먼저, 다섯 가지 의무사항이 다음과 같습니다;
(1) ‘네’(you)가 사회적으로 고착이 되고 있는 멍에를 없애는 일에 앞장을 서라고 이사야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 남을 향하는 손가락질을 없애고 자신의 잘못부터 성찰하고 반성을 하며 고쳐나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3)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가장 먼저 우상문화를 청산하고 자신을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4) 성도들에게 좋은 이웃 사마리아 인처럼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는 자를 도와주라고 하십니다.
(5) 자신이 얻은 구원과 평강에 대하여 이방인들에게 간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와 같이 행하는 경우 다음 5가지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1) 위와 같이 5가지 성도의 의무사항을 실천하게 되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성도는 성령님의 역사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2) 영육간의 강건함이 임하게 됩니다.
(3) 성도가 하나님의 복을 흡족하게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이 이 세상에 공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4) 성도의 의무를 실천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그 모범을 보고서 후진들이 신앙적으로 바로 서게 됩니다.
(5) 오랜 세월 무너진 하나님신앙의 기초를 다시 쌓게 됩니다. 장차 메시아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에 의하여 그 일이 수행이 될 것임을 은연중에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사58:12b).
그러므로 아무쪼록 위의 5가지 성도의 의무사항을 준행하여 상기한 5가지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강해 제284강(사59:1-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20 |
---|---|
이사야 강해 제283강(사58:13-14)(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19 |
이사야 강해 제281강(사58:8-9a)(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19 |
이사야 강해 제280강(사58:5-7)(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19 |
이사야 강해 제279강(사58:1-4)(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