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28(작성자; 손진길)
1884년 8월 1일 사돈 손성규를 만나고 집에 온 훈장 이덕화는 집사람 김옥심부터 찾는다. 그리고 내일 사돈과 함께 경주 오일장을 가면서 사정리에 있는 돌공장을 들르기로 했다고 말한다. 안사돈의 묘소에 상석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아내 김옥심이 기뻐한다. 갑자기 안사돈이 별세를 하고 나자 초상을 치른 바깥사돈이 집에 틀어박혀서 일체 대문 밖 출입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고 하여 훈장집에서는 그동안 내외간에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다음날 훈장 이덕화가 아침식사를 일찍 마치고 너븐들로 사돈 손성규의 집을 찾아온다. 가주 손성규도 행장을 차리고 있다가 사돈을 맞이한다. 잘 다녀 오시라고 인사를 하고 있는 손상훈 내외의 얼굴에도 모처럼 화색이 돈다. 부친이 정말 오래간만에 바깥출입을 하는 것이니 왜 아니 그렇겠는가?
내남 너븐들에서 경주 읍내까지는 2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30리 길인데 훈장 이덕화는 평소보다 걸음을 천천히 하면서 자꾸만 사돈 손성규에게 말을 건다. 3주나 집에서 칩거를 한 사돈인지라 그 발걸음이 다소 느린 것을 감안해서이다. 그리고 훈장 이덕화는 사돈 손성규에게 오래간만에 바깥바람도 쏘이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다.
훈장 이덕화의 그 배려심을 알기에 손성규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덕화가 금번 안사돈의 초상에는 경주의 교리 최부자 집에서 가주가 문상을 오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 그러자 손성규가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5년 전에 10대 가주 최만희가 48세로 일찍 죽고 그 아들 최현식이 26세의 젊은 나이에 그 큰 살림을 맡게 되었으니 아직은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를 못했을 겁니다”.
이번에는 손성규가 훈장 이덕화에게 묻는다; “양삼마을에서 생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고 있는 오경덕 선생은 결혼하여 잘 살고 있습니까?”. 훈장 이덕화가 즉석에서 답한다; “네. 저의 이웃에서 부부가 정답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결혼한지도 벌써 6년이 지났군요.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지요…”. 그들 부부에게 1남 1녀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훈장 이덕화의 목소리가 자꾸만 작아지고 있다.
손성규는 이덕화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그래서 한마디를 한다; “사돈,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는 아들이 있는 가정이 있고 그렇지 못한 가정도 많습니다. 삼신할미가 하는 일을 사람들이 어찌 좌지우지하겠습니까? 그 형편에 맞추어서 좋은 방향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부부가 사이 좋게 백년해로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며느리 이채령의 부친인 이덕화를 위로하려고 한마디를 하다가 그만 손성규는 아내와 백년해로를 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서 목이 메이고 만다.
훈장 이덕화가 얼른 화제를 바꾸고 있다; “형님, 오늘은 돌공장에서 상석을 주문한 다음에 바로 제 친구 김종민의 식당으로 가서 저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시지요. 제가 오늘은 맛있는 돼지국밥을 대접하겠습니다”. 손성규가 얼른 동의를 한다; “그렇게 합시다, 사돈. 오래간만에 저도 그 집 국밥을 맛보고 싶군요”.
경주 웃시장에 가는 걸음에 사정에 있는 돌공장을 먼저 들린 두 사람은 10년전에 숙부 손익채의 묘소에 사용한 것과 같은 크기의 상석을 하나 주문을 한다. 그러자 돌공장 주인이 다음 오일장에는 글자를 쓸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간단하게 일을 마친 두 사람은 김종민의 식당에 들려서 오래간만에 서로 인사도 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오전에 경주로 향하던 발걸음보다는 한결 가볍다. 오래간만에 바깥출입을 하자 손성규의 마음이 다소 가벼워져서 그런 것이다. 오늘 손성규는 떠들썩한 경주 웃시장도 들르고 또한 김종민의 식당에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도 하고 탁배기도 여러 잔 나누었다. 그것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 것이다.
5일후 두 사람은 다시 경주로 향한다. 돌공장에 들렀더니 약속한대로 상석이 말끔하게 준비가 되어 있다. 훈장 이덕화가 노란 물감을 묻힌 붓으로 정성스럽게 글자를 쓴다. 이제는 석수장이가 그 글자를 따라 끌로 조각을 하면 된다.
지주 손성규는 석수장이가 각자를 한 그 상석을 열흘 후에 찾아서 소달구지에 싣고 내남 구왕골로 향한다. 인부를 사서 그 무거운 상석을 네 사람이 고 이숙임의 산소로 운반을 하여 반듯하게 설치를 한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8월 27일에는 손성규가 아내의 묘소에서 아들 내외와 사돈 내외만을 불러서 간소하게 49제를 지낸 것이다.
상석을 설치하고 아내의 49제를 지내면서 손성규는 친손자의 이름이 거기에 새겨지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나 도리가 없다. 아들 손상훈 내외에게서 자식이 태어나지 아니하는 것을 자신이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하늘의 뜻이거니 생각을 하면서 손성규는 아들 상훈이와 며느리 채령이가 지금처럼 금슬이 좋게 부부로 살아 백년해로를 하기만을 소원해 본다.
손성규 자신은 61세에 4살이나 연하인 사랑하는 아내 이숙임을 먼저 떠나 보내는 슬픔을 겪었지만 아들 내외만은 그러한 불행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손성규는 꼭 자신의 혈통으로 대를 이어야만 한다는 그 욕심을 버리고 아들 손상훈과 며느리 이채령의 만수무강의 복을 빌어 주기로 결심하고 있다.
갑자기 애처를 떠나 보낸 손성규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정할 때까지 사실은 4년이나 걸렸다. 그것도 경주에서 유일한 만석꾼 집안인 교리 최부자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정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조천 최부자의 6대 가주인 최종률이 아들이 없자 9촌 조카인 최언경을 양자로 삼았다. 그때부터 최부자의 가문이 5천석이 아니라 만석꾼으로 살림이 불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최언경의 손자인 최세린이 역시 아들이 없자 동생 최세구의 아들 최만희를 자신의 양자로 삼고 만석꾼의 재산을 물려준 것이다. 이제는 내남 너븐들의 천석꾼인 손성규가 자신도 그렇게 하고자 강하게 마음을 먹고 있다. 손성규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너나없이 오랜 좌절과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나서 비로소 새로운 소망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자기 희생을 감수하고자 결심하게 되는가 보다.
1888년 여름에 가주 손성규가 아들 손상훈과 며느리 이채령을 자신이 거처하는 사랑방으로 부른다. 그리고 조용히 중요한 용건을 꺼낸다; “에미야 그리고 애비야 듣거라. 너희 모친이 별세를 한지 벌써 4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내가 너희들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지만 아직 종내 무소식이다. 너희들이 결혼한지 어느덧 15년인데 아직 무자식이니 이제는 대를 이어갈 다른 방도를 마련하지 아니할 수가 없구나”.
부친의 그 말씀을 들으면서 손상훈과 이채령이 고개를 떨군다. 손성규는 아들 내외가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야 말로 아들을 낳아 떳떳하게 대를 잇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력으로 되지가 않으니 얼마나 속이 상할 것인가? 부친을 보기에도 정말 면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손성규가 그들을 설득한다; “그리하여야 상훈이 너 뿐만 아니라 채령이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상훈이 너의 후사를 위하여 가까운 친척 가운데 너의 조카를 하나 양자로 삼았으면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손상훈이 결심을 한 듯이 답변을 한다; “아버지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큰아버지께서 후사가 없이 일찍 돌아가셨기에 아버지의 사촌이 가장 가까운 친척입니다. 제가 양자를 선택하자면 재종간인 손형과 손섭 그리고 손찬의 집안입니다. 그 가운데 아들이 둘인 집은 손형과 손찬 뿐인데 어떻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손성규는 말이 나온 김에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먼저 며느리의 생각을 묻는다; “채령이 너의 생각도 상훈이와 같은 것이냐?”. 이채령이 작지만 분명한 어조로 답한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저도 진작부터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양자를 들이게 되면 제가 저의 친자식처럼 돌보고 키우겠습니다. 아버님, 아무 걱정을 마십시오”.
그 말을 듣고 손성규가 말한다; “내 생각에는 손형의 아들을 달라고 하기는 힘이 들 것으로 본다. 그 집의 둘째가 작년에 태어나서 아직 어리다. 그리고 손형의 매형인 최사권이 천석꾼이며 또한 유림의 실력자이니 처남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는 것을 반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손찬의 차남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제 5살이다. 채령이가 잘 보살핀다면 제 에미로 알고 잘 따를 것이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손상훈과 이채령이도 그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합의가 되자 다음날 가주 손성규가 이웃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 손성곤을 자신의 사랑방으로 부른다. 그리고 신중하게 말을 꺼낸다; “성곤이 자네 우리집에 대가 끊어지고 있는 것 잘 알고 있지? 자네 생각에는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손성곤이 자기보다 한 살 위의 사촌형 손성규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금방 이해를 한다. 그래서 주저없이 답을 한다; “형님, 무슨 말씀하려고 하시는지 제가 알겠습니다. 상훈이가 후사가 없으니 당연히 아들이 둘 있는 집에서 양자를 주는 것이 옳지요. 저희 집안이 적당하다고 형님이 생각하시면 제가 아들 찬이를 설득하겠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가주 손성규는 사촌동생 손성곤이의 말이 고맙다. 그래서 한가지 약속을 한다; “성곤이 자네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힘이 자라는 대로 그 보답을 하고자 하네. 무엇을 해주면 좋겠나? 말을 해보게”. 그러자 손성곤이 뜻밖의 말을 한다; “형님, 저도 개천가 자갈밭을 개간하여 저희들 먹을거리는 충분합니다. 그 대신에 제가 형님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을 좀 들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가주 손성규가 의아하여 물어본다; “내게 청이 있다니 그것이 무엇인가?”. 손성곤이 입을 연다; “가주인 형님을 믿고서 제가 두 아내를 거느리고 오래 너븐들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형님도 알다시피 작년에 조강지처 김씨가 먼저 별세를 했지요. 그런데 형님, 제가 사실은 경주 읍내에 젊은 아내가 또 한사람 있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64이나 되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형님께 꾸중을 들을 각오로 죽기 전에 그 사실을 고백합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제가 죽고 나면 그녀와 제 사이에 태어나서 자라고 있는 두 아들이 가엾습니다. 7살과 4살이고 그 어미는 이제 서른입니다. 제가 처신을 잘못하여 그들은 족보에도 못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형님, 마지막으로 저를 한번만 더 불쌍하게 보시고 그들을 족보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가주 손성규는 기가 찬다. 사촌동생 손성곤이 집안에 있는 두 아내 외에 또 경주 읍내에 정을 통하고 있는 아내가 있고 그들 사이에 아들이 둘이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야단을 치고 내치기에는 그 벌어진 일이 보통이 아니다. 하기야 성곤이도 죽을 각오로 자신에게 매어 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본다; “성곤이 자네 생각에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그동안 남에게 말은 못하고 혼자서 많이 궁리를 해본 것이 아닌가?”.
그 질문을 받자 손성곤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형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집안에서 족보를 만들고 있으니 제가 알아서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지 형님께서는 눈만 감아 주시면 됩니다. 그 사실을 아시면 틀림없이 고지식한 형님께서 들고 나서 반대를 하실 것이라 제가 그동안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제가 무엇이든 못하겠습니까? 죽기 전에 제 소원이 그것입니다, 형님”.
가주 손성규가 종제 성곤의 얼굴을 보니 가엾기도 하다. 그가 처신을 똑바로 못한 것은 야단을 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세 사람이나 족보가 없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장차 조선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든 일이 될까? 그래서 무겁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알았네. 그래도 그 비밀을 말해주니 자네가 나를 형이라고 생각을 하기는 하는 모양이구만. 나도 집사람을 그렇게 갑자기 떠나 보내고 나니 사람이 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고 생각이 되네. 그러니 양반 체면이나 재물을 따지기 전에 자네의 숨어 있는 자식들도 버젓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애비가 된 도리이겠지…”.
가주 손성규의 사랑방을 떠나기 전에 손성곤이 한마디를 남기고 있다; “형님, 상훈이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들 찬이를 설득하여 그 차남 영주를 형님의 손자로 삼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부디 영주를 잘 키워서 천석꾼 집안의 살림을 장차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형님, 저는 그렇게 알고 가겠습니다”. 종제 성곤의 말을 들으면서 가주 손성규는 눈을 지긋이 감는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너나없이 사람들이 평생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다 바로잡아 놓고 가기도 힘든 것이 인생인가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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