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75강(사57: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3월 11일(금)
선민들의 우상숭배의 이유와 그 허망한 결말에 대하여 이사야가 지적하다(사57:11-13)
비록 짧은 세 구절로 구성이 되어 있지만 본문은 탁월한 이사야의 예언의 기록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본문에서 선민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이유에 대하여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사57:11a).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 깊은 이유를 이해하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사57:11b).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십니다(사57:12). 그 대안이 바로 메시아와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주시는 것입니다(사48:12-16). 그리고 메시아를 영접하고 따르는 자들과 그러하지 아니하고 배척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상급과 처벌이 각각 주어질 것임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사57:13).
그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이사야가 흥미진진하게 예언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메시지를 도출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랐기에, (b)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c)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사57:11);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랐기에”(사57:11a);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라고 있는 것일까요?
1) 사람들이 인생 가운데 가장 지키며 보전하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과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해치고자 하는 자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까닭 없이 처벌하고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 자가 바로 사망의 권세를 쥐고 있는 악한 영입니다.
2) 악한 영의 공포는 그것이 인생 가운데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절실하고도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끔찍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3) 옆 사람이 갑자기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 공포스럽습니다. 나아가서, 자신에게 슬며시 그 검은 손이 미치게 되면 마치 사자를 만난 토끼처럼 당사자는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경악을 금치 못하며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공황장애와 같고 두려움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는 절규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사57:11b); 그 생생한 두려움과 절실한 공포 때문에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 육신을 보전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의 대상에게 부디 살려달라고 매어 달립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악한 영들은(엡6:12, 롬8:2)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거짓을 말하며”; 자신이 말하고 있는 거짓말을 진리로 알아들으라고 합니다(요8:44). 그것은 마귀의 화신인 뱀이 하와를 유혹한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창3:1-5). 사람들이 자신만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심에 이끌리어 거짓말과 거짓 행위를 밥 먹듯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증과 외식도 마치 필요악처럼 생각하면서 행하고 있습니다.
2)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사탄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말라고 합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리와 진심을 깨닫게 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거짓말이 탄로가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인위적인 학문과 철학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과 사회적인 상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면 사람이 곧 신이 되는 유물론적인 사회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 마음속에서 창조주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우라고 강요합니다. 그 대신에 천하권세를 가진 악한 영인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고 경배하라고 말합니다(마4:9). 그리하면 죽음의 공포도 이웃의 해침도 모두 막아 주고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주겠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마4:8-9).
(3)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사57:11c); 이사야는 위와 같은 내용들이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위의 내용을 반대로 해석하게 되면 하나님경외의 구성요소들이 무엇인지 눈치를 챌 수가 있습니다; ①첫째, 거짓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식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직한 신앙생활을 영위합니다. ②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알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③셋째, 창조주의 주권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인 자신은 주인의 뜻을 실천할 따름입니다.
2) 그와 같은 하나님 경외의 구성요소들을 잊어버리고 사탄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악한 영들의 위협은 너무나 가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이 동원하고 있는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가해행위가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현존하는 직접적인 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는 불쌍한 인생들을 돌아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사57:11c). 그러므로 이제부터 대안을 제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안에 대하여 이사야는 벌써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메시아)와 그(하나님)의 영을 보내셨느니라”(사48:16).
3)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죽음의 공포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시는 현장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가해행위의 극치인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면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바칠 것입니다. 그 결과 회개하는 죄인들이 성도가 되어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거듭난 삶을 끝까지 살아가며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주실 것입니다(요14:16). 그리하면 죽음의 공포와 세상적인 위협이 성도를 더 이상 이길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요16:31-33, 롬8:34-39).
둘째로, “(a) 네(가 행해야만 하는)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b) 네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 없이)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사57:12);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겠다고 하십니다;
(1) “네(가 행해야만 하는)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사57:12a);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위에서 말씀 드린 그대로, ①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②말씀을 묵상하며, ③종으로서의 법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 분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는 진실된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1)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창조주의 마음’, 곧 ‘진리’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 자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생명을 모두 살리겠다고 하는 창조주의 지혜와 사랑이 깃들어 있는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 공의의 정신을 사람의 힘으로는 행할 수가 없다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과 능력으로써는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공의를 실천하는 자를 이 세상에 보낼 것이며 그 거룩한 삶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담당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아무도 핑계와 변명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서 죽음의 공포도 물리치고 육신적인 삶의 어려움도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완벽하게 실현시키는 메시아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 “네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 없이)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사57:12b); 메시아가 믿음으로 행한 일은 그 열매를 얻고 있습니다(요15:1-5, 히11:1).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승천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마28:6, 눅24:50-53, 행2:31-33). 반면에,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악한 영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간 자들은 허망한 결과를 얻게 될 따름입니다. 부활하더라도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요5:27-29). 육체에 얽매어 있는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변명해보아야 메시아가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를 못하게 되고 맙니다(마25:41-46).
셋째로, “(a)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들에게 너를 구원하게 하라. (b) 그것들은 다 바람에 날려가겠고, 기운에 불려갈 것이로되, (c)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d)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사57:12); 상급과 처벌에 관한 내용입니다;
(1)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들에게 너를 구원하게 하라”(사57:12a);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삶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현세적인 성공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무병장수하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과제는 그 소원을 어떻게 이루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1) 첫째, 창조주 하나님의 뜻인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희생할 수도 있느냐? 그 경우에는 현세에서는 마이너스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영생과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둘째, 자신의 소원을 현세적으로 성취시켜줄 우상을 찾아 섬길 것인가? 이 경우에는 공의의 정신을 실천한다고 현세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의 영생이나 상급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3) 이사야는 너의 우상들에게 너의 구원문제를 한번 부탁해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공포와 육신적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영생의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따라서 현세적인 성공과 이익이라는 것을 절대적인 가치로 숭상하고 있는 유물론자들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현세주의 유물론자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들이 그들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만 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2) “그것들은 다 바람에 날려가겠고, 기운에 불려갈 것이로되”(사57:12b); 우상들은 영생의 구원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상들이 현세에서 진정한 행복이나 기쁨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100년 안팎의 짧은 인생 가운데 느끼는 행복과 기쁨이 영원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현세의 기쁨이 모두 바람에 날려가는 허망한 결과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과 성취도 자랑거리가 되지를 못하고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에 불려가는 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단 하나 인생 가운데 구원과 영생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물론적인 삶이 아니라 영생의 하나님과 구원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모시고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도의 삶 자체입니다(사48:12-16).
(3)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사57:12c);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의의 정신을 실천한 자는 영생과 하나님의 상급을 얻게 됩니다. 그 첫 번째 내용이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땅은 옛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일부가 될 것입니다(사65:17-18,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28-30).
(4)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사57:12d); 고대사회에서는 산이나 강 또는 바다가 일종의 경계표시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더 광대한 경계의 표시를 말하고 있습니다.
1)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입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에 미디안 광야의 호렙 산 또는 시나이 반도의 시내 산이 거룩한 산으로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출3:1-4, 19:11). 그와 같은 거룩한 산이 경계가 되는 넓은 영토를 성도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사57:12d). 그것은 엄청난 상급입니다.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하나님 자녀의 상속분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6-18).
결론적으로, 본문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어떠한 결론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다음 말씀으로 요약이 가능할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28-33). 아무쪼록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많은 깨달음과 용기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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