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38강(사49:22-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2월 3일(수)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사49:22-23)
본문에서 이사야는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이방인들에게 전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상급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창22:12-18).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본문의 두 구절을 분해하여 하나씩 그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도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a) 주 여호와(the Sovereign Lord, NIV)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b)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c)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사49:22); 이사야는 비슷한 내용을 이미 제11장에서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서로 비교하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주 여호와(the Sovereign Lord, NIV)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I will beckon to the Gentiles, NIV)”(사49:22a);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의 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의 나라까지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먼저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권에 따라 특별히 이방나라들에게 손짓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뜻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과연 모든 이방나라에 대하여 어떤 뜻을 선포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2)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I will lift up my banner to the peoples, NIV)”(사49:22b); 그것은 이미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 제11장에서 예언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0),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사11:12).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가 바로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깃발을 세우시게 되면 주권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나라와 모든 민족들이 하나의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과연 그 행동이 무엇일까요?
(3)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사49:22c); 이사야는 그의 선지서 제11장에 이어 본문에서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두 가지로 해석이 되어집니다;
1) 첫 번째의 내용은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그 백성들이 오랜 세월 이방인들의 나라에서 살아오고 있는데 이제는 그 세월이 끝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게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을 지배하고 있던 모든 이방인들이 선민의 후예들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되돌려 드리는 행동이 있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2) 두 번째의 내용은 선민의 후예들을 의미한다 라고 보기 보다는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을 따르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와 백성들을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본문의 서두에 특별히 “주 여호와(the Sovereign Lord, NIV)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I will beckon to the Gentiles, NIV)”(사49:22a)라고 기록하여 ‘주권자 하나님의 명령’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선민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포함하여 만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도 선민만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는 선민만의 구원이나 그들만의 현세적인 복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선포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그때부터 메시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많은 성도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져서 복음사역을 시작할 것입니다(마28:18-20, 행1:8). 세월이 지난 후에 그들을 천국으로 모으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이 됩니다. 그러면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땅끝까지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던 모든 성도들이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도들의 후예라고 부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5) 참고로, 그들이 입성하게 되는 최종적인 장소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릴 것이요,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 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66:20-21),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6-27).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여 최종적으로 모이게 되는 장소가 새 예루살렘 성임을 이사야와 요한이 다 함께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본문은 벌써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과 계시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둘째로, “(a)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b)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c)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사49:23); 이 대목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제22장 다음 구절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고 있는 하나님의 상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창세기의 기록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본문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1)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사49:23a);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들의 땅 가나안과, 애굽 및 블레셋의 땅으로 들어간 선지자입니다(창12:1-5, 10, 20:7).
1) 그 옛날 이방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창20:11). 그들은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의 신앙과 하나님 경외자인 아브라함의 신앙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더구나 고대족장사회에서는 종교와 문화가 다르면 서로 부정이 탄다고 하여(창43:32, 46:34) 탄압과 핍박이 심하던 시절입니다.
2) 과연 아브라함이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할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강력한 안전장치와 보호의 약속을 언약으로 주시고 있습니다(창12:3). 그리고 충분한 상급이 뒤따를 것임을 약속해주고 계십니다(창12:2). 이제 그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와 성도들에게 엄청난 보호하심과 상급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 사실을 여기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3) 고대사회에서 양자는 정식아들과 마찬가지로 상속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분이 높은 아기는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랍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믿음의 열조들이 이방 땅에서 재산을 일구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애굽의 황제인 바로와 블레셋의 왕중왕인 아비멜렉에게서 많은 재산을 얻게 됩니다(창12:16, 20:14, 16). 이삭은 블레셋의 곡창지대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어 부자가 됩니다(창26:12). 야곱은 하란 땅 라반의 집에서 양을 치고 부자가 됩니다(창30:43). 모세의 경우에는 애굽의 황궁에서 자라나며 친모 요게벳을 유모로 맞아 그 젖을 먹고 양육이 되고 있습니다(출2:9-10, 6:20).
4) 그와 같은 믿음의 열조들의 기사를 검토해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만민구원에 나서는 성도들은 이방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명지인 이방 땅에서 분깃과 상급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깃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급은 선교한 그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게 되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대목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확약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8-29).
(2)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사49:23b); 메시아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헌신하는 성도가 어느 정도로 존귀함을 얻게 될까요?
1) 그에 대하여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4). 메시아는 창조의 역사에 여호와와 함께하신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습니다(요1:1-4, 14). 이 땅에서 메시아로서의 사역이 끝나자 승천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 어린양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행2:32-36).
2) 사도 요한은 세상만물과 만민이 그 앞에서 찬양을 올려드린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계7:9-12). 세상의 임금이나 권력자들도 그 앞에서는 한갓 티끌과 같습니다(사49:23b). 그와 같은 창조주의 영광이 빛나고 있는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승천하여 함께 서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예수님이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간구를 들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허락하시게 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6-17).
4)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사49:23b) 라는 이사야 예언의 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17세 때 아비 야곱의 집에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꿈 가운데 부모님과 형제들을 상징하고 있는 해와 달 그리고 11별들이 그에게 절을 하고 있습니다(창37:9-10).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은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7년 연속 흉년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웃나라의 백성들을 구원해줄 수가 있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만민구원의 복음사역에 나서게 되면 마치 요셉의 때와 같은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5) 창세기를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에 와서 그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창42:6). 아버지 야곱과 모든 식솔들이 요셉 덕택에 애굽에 이민을 와서 먹고 살 수 있게 됩니다(창45:11, 47:12). 그래서 요셉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45:7-8).
(3)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사49:23c);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이사야의 증언은 그의 선지서 제53장에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 내용은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비참한 죽음을 당하시고 세상에서 고난과 수모를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사야는 선민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실천하기만 하면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맞는 예언일까요? 역시 위에서 제시한 사도 바울의 글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얻자면 그리스도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롬8:17). 그 길은 이 세상에서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입니다. 엄청난 성취의 길이 아니라 핍박과 수모를 당하는 길입니다.
2) 그러나 그 고난과 수모는 장차 얻게 되는 영광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롬8:18). 사람이 육신을 입고서 인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고난과 수모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100년 안팎의 고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천국에서 하나님 아들의 분깃을 상속하게 되고 세상을 다스리는 영원한 영광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3) 그와 같은 영광과 천국의 상속이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고난은 결코 수치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일종의 ‘영광의 상처’와 같은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로 오시는 예수님의 ‘성흔’(聖痕, 스티그마)과 같은 것이므로 그것이 수치스러운 것이 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4) 그와 같은 관점에서 정작 수치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은 히스기야 시대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선민우월주의에 젖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독점하고 있으며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의 땅에 전해주지를 않습니다. 동시에 현세적인 하나님의 복만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들의 그 집단이기적인 탐욕이야말로 가장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자기 백성들만 하나님을 섬기고 복을 받아 이세상에서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는 선민사상이야말로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가를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과는 전혀 반대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동족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열방을 구원하시고 모든 족속들에게 하나님 자녀로서의 영생의 복을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메시아가 이 세상에 선포하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그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이 세상 끝까지 이방세계로 나아가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2) 성도들이 복음사역을 하다가 많은 고난을 받을지라도 그 열매가 천국에서 풍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본문에서 성도들이 장차 이 세상의 왕과 왕비들이 누리지 못하는 엄청난 상급과 분깃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3) 이사야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동족들이 회개를 하고서 그와 같은 부러운 천국의 상급과 복을 얻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와 같은 입장에서 우리 한국인 성도들도 기도해야만 합니다. 부디 그러한 복을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들이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4) 또한 한반도가 복음의 대로와 기지가 될 수 있도록 하루 속히 남과 북의 통일도 이루어져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수년 내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 복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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